소설리스트

3화 (3/169)

내쪽을 보더니 앞으로 나섰다.

“지금까지 원범도령. 아니 덕완군 저하를 찾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였습니다.”

공손했지만 얼굴에는 황당함과 짜증이 스며있었다.

그것도 당연하지.

한양으로 데려갈려고 왔는데 산으로 튀었으니까.

기왕에 상황은 벌어진거 여기서 수습을 잘해야한다.

“그대들이 오해를 한것 뿐입니다.”

“그러하옵니까?”

“오늘은 저기있는 촌민과함께 산에 약초를 캐러갈 예정이였습니다. 그 때문에 안내를받아 입산하였던 것인데 오해가 벌어질줄은 몰랐군요.”

“그것이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안그런가? 동석아!”

배동석을향해 확인하듯 말했다.

당황해있던 동석이지만 눈치는 제법있었다.

곧바로 정원용 앞에 엎드리더니 대답했다.

“도련님의 말씀이 사실이옵니다. 소인은 원범 도련님의 부름을받아 산을 안내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알겠다.”

정원용의 표정이 풀어졌다.

더 큰 소동이 벌어지면 곤란하니까 말이다.

주변에 모여있던 주민들 몇명이 수근거렸다.ㅎ

“동석이 저놈이 왜저래?”

“그런데 덕완군이라니? 이건 무슨 일이야?”

수근거리는 주민들을 보더니 예조판서가 신호를 보내었다.

앞으로 진행될 엄숙한 자리에서 촌것들이 물을흐리면 곤란하니까.

지시받은 군관들이 호통을친다.

“무엄하도다. 이놈들.”

“영상대감과 덕완군께서 대화를 나누는데 아랫것들이 방해를 하는것이냐?”

“아닙니다.”

“소인들을 용서해 주십시요.”

주민들이 엎드리며 떨었다.

그들도 상황이 엄청난 것을 느낀것이다.

분위기를 만든뒤 예조판서가 말했다.

“영상대감. 교지를 내릴때가 된거 같습니다.”

“알겠소이다.”

정원용이 고개를 끄덕였고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었다.

군관들이 외친다.

“어명이다! 아랫것들은 고개를 숙여라.”

“어명이라니!”

“갑자기 무슨 변고야?”

주민들이 엎드리며 머리를 땅에 쳐박는다.

군관과 포졸들도 예를갖추어 엎드렸다.

이순간 서있는 존재는 교지를 들고있는 영의정 뿐이다.

나 또한 교지를 받기위해 무릅을 꿇었다.

“지금부터 조정과 대왕대비 마마의 교지를 발표하겠다.”

정원용의 음성이 퍼져나갔다.

대왕대비라면 순원왕후일 것이다.

선대(헌종)이 죽고난뒤에 궁궐에서 큰 어르신은 순원왕후니까.

그녀는 헌종의 선대왕인 순조의 왕후였다.

정원용이 두루마리를 펼쳤다.

“이원범은 앞으로나와 교지를 받들라.”

영의정이 말할 교지의 내용이 뭔지는 짐작된다

모른척하며 고개를 숙였다.

“얼마전 조선의 국왕께서 승하하셨다. 이에 조정의 중신들과 대왕대비께서는 나라를이끌 새로운 국왕을 추존하는 고심의 시간을 보내었다. 그에따라 왕손의 피를 이어받은 여러 후손들을 물색한결과 강화도에있는 이원범을 차기 임금으로 추존하게 되었다. 이후로 이원범은 덕완군으로 봉해지고 앞으로 진행될 즉위식을위해 한양으로 떠날 차비를 서두르시오!”

“.....!”

영의정의 발표가 진행되고 난뒤.

주민들은 충격을받은 표정들이다.

조금전까지 이원범은 강화도에서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서 생활하던 사람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조선의 국왕이라니?

혼란에빠져 웅성거리는 주민들을향해 예조판서가 외쳤다.

“뭣들하느냐? 새로운 임금이 추존되셨다. 전하를향해 백성의 예를올려라!”

주민들이 숨을죽였다.

잠시후 마을촌장이 선창하듯 외쳤다.

“주상전하의 탄생을 온 백성이 경축드립니다. 천세! 천세!”

“천세! 천세!”

주민들이 외쳤고 주변에있던 포졸들.

군관들까지 절을하였다.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이원범이 하루아침에 국왕이된 사건이다.

역사를 알고있던 나조차도 온몸에 전율이 흐를정도다.

그런데 실제 역사에서 철종으로 왕에올랐던 이원범은 더 큰 혼란에 빠졌을게 분명했다.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임금이 되었다.

이것저것 보고들은게 많은 현대인이라도 충격으로 정신이 없을것이다.

밀덕에게 찾아온 기회.

“예판대감! 부탁이 있습니다.”

“어떤 것입니까? 하명 하십시요.”

예조판서 장우영이 대답했다.

봉송행렬을 이끄는 책임자는 영의정 정원용이다.

교지를 들고왔고 발표한것도 그였다.

교지의 낭독이 끝난뒤에 영의정인 정원용 그리고 같이온 예조판서와도 인사를 하였다.

같이있던 강화유수 조형복은 죽다 살아난 표정으로 눈물까지 흘렸다.

왜 저래?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는데 예조판서의 설명을통해 이해되었다.

잘못했으면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였으니.

강화유수면 강화도에서 끝발날리는 직책이다.

그래봐야 지방의 관료일 뿐이니.

왕으로 추존되긴 했지만 영의정은 조정내 최고 대신이다보니 만나서 인사한게 전부이다.

뭔가 부탁을 할때에는 같이온 예조판서가 더 편했다.

한바탕 벌어진 소동-

조금전까지 천세! 천세! 를 외치던 주민들은 흩어진 상태다.

이웃들에게 소식을 전한다고 발이닳도록 뛰어갔을 것이다.

강화도에서 새로운 국왕이 탄생했으니까.

“언제 한양으로 떠날 계획이십니까?”

“소신들의 임무는 전하를 모시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비마마의 교지를 전달했고 전하께서 무사하신것을 확인했으니 한시라도 한양으로 돌아가는것이 좋을거 같습니다. 만약 옥체에 이변이라도 생긴다면 그것은 소신들이 불충을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조판서가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그로서도 조정의 결정에 당황했을 것이다.

조정에서 논의를거쳐 나를 25대 국왕으로 선출했다.

역사에 따르면 헌종의 사망이후 철종을 조선의 다음왕으로 정하는데는 순원왕후의 결정이 상당한 역활을 하였다.

야사에 따르면 헌종이후 차기국왕을 정하는데는 또다른 후보자도 있었다.

조선말기에 한차례 태풍을 일으켰던 풍운아.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다.

이하응을 후보로 밀었던쪽은 신정왕후 조씨다.

그녀는 순조의 아들이며 젊은나이에 세상을떠난 효명세자의 부인이다.

국왕의 자질을 본다면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이원범보다는 학식을쌓은 이하응쪽이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세도정치라는 막장 드라마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권력을쥐고 마음껏 유린중인 세도가문들에게 국왕은 허수아비같은 존재여야했다.

그것을위해 강화도 촌동네에서 농사나짓던 강화도령 이원범을 차기국왕으로 선정한 것이다.

역사에서 철종시기는 세도정치와 부패.

사회적 붕괴가 최악의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원범도 개혁을 시도하고 세도정치에 맞섰지만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전개될 철종 이원범의 운명은

바뀔것이다.

“예판대감의 마음을 충분히 알겠습니다. 하지만 강화도는 본관이 수년간 지내왔던 곳입니다. 한양으로 떠나기전에 잠시 정리를 하고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뜻대로 하시옵소서. 전하의 신변안전을위해 저와 수행원들이 동행을 하겠습니다.”

“그건 허락하겠습니다.”

장우영이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신분.

어제만해도 강화도에서 지내던 이원범은 평범한 촌부에 불과했다.

오늘부터 이원범은 조선에서 귀하신 몸이 된것이다.

이제부터 이원범에 대해서는 최상급 경어가 붙는다.

이원범의 육체는 옥체가 되는것이다.

신변에 이상이 생기거나 건강이 악화되면 관련된 사람들은 처벌받는다.

장우영이 신경쓰는 것도 당연했다.

예조판서라면 조선에서 정2품에 해당하는 높은 벼슬.

하지만 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조차도 무사하기는 힘들다.

* * *

지금까지 저런곳에서 지냈단 말인가?

반사적으로 한숨이 나왔다.

이원범이 강화도로 유배된것은 14살때의 일이다.

19살의 나이로 조선의 25대왕 철종으로 추존된 것이다.

14살부터 19살까지 4~5년동안이나 저기서 지냈다.

이원범이 유배된 이유는 역모죄-

일반적인 유배자들과는 처우부터 틀렸다.

역모죄에 걸리면 3대가 멸문지화를 당한다.

온가족이 사형대에 오른다.

이원범이 살아남은건 운이 좋아서였다.

그나마 방계지만 왕족이라는것.

기껏해야 10대초반의 어린 나이였다는게 이유다.

강화도로 보내진후 이원범은 모진 고생을 해야했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일을 해야했다.

아침에 곡괭이를 들고나갔고 밤이되서야 돌아왔다.

이런건 이원범이 속해있는 마을과 주민들의 일상이다.

조선백성들의 삶.

해뜨면 일하고 해지면 누워자는 생활의 반복일 뿐이다.

남아있는 이원범의 기억들-

굶주림에 시달렸고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에 떨었다.

역모죄에 연류된걸 알고있던 주민중에는 침을 뱉기도했다.

“이것이 그 증거로군.”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손등에 박혀있는 굳은살들.

몇번이나 살갗이 벗겨지기를 반복했다.

눈앞에있는 허름한 초가집-

멋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비나 겨우 피할수 있을만큼 지어진 움막이다.

‘용케도 살아남았군요. 지금부터 당신이 이루지 못했던 야망과 꿈을 대신해 주겠습니다.’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21세기에 살았던 내가 뺑소니차에 죽은것에 분했다.

지금이라도 그놈을 잡아서 목을 비틀고싶다.

그러나 21세기의 최성준은 이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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