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169)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정신차려! 일어나!”

귓가에 들려오는 외침.

우왁스런 손짓으로 누군가 흔들어댄다.

무슨 일이야?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들-

팔다리가 쑤시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다.

“으음.”

반사적으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나를 세차게 흔들던 목소리가 기쁨으로 바뀌었다.

흐느끼는 울음도 같이.

“흑흑! 난 네가 죽은줄로만 생각했는데.”

어떤 상황인지 짐작도 안되었다.

천천히 눈을 떠보았다.

보이는 주변 풍경들.

지금 있는곳은 산속이다.

반대쪽에는 10미터 높이의 절벽이 있었다.

설마 저곳에서 떨어진 건가?

상황을보니 그런거 같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의 이유를 알아냈다.

아무래도 저위에서 떨어지고 난뒤 부딪치면서 발생한거 같다.

그런데 뭣때문에?

기억이 조금씩 올라온다.

‘분명히 나는 죽었던거 같은데...’

같은데...가 아니라 확실히 죽었다.

뒤에서 달려와 나를 깔아뭉갰던 뺑소니차-

두터운 바퀴와 육중한 차체의 중량이 몸위로 지나갔다.

갈비뼈가 으스러지고 심장이 박살나는 지옥을 경험했다.

숨을 헐떡이며 생을 마감하는 육체를 보았다.

개같은 놈.

죽여버리고 말겠다-

하지만 늦어버린 것이다.

육체가 죽어버리고 영혼만남은 상태로 할수있는건 없었다.

그후에 나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검은구멍-

저승으로가는 길이라 생각했다.

사후세계.

그런데 여기가 사후세계?

느낌은 아닌거 같다.

“당신은 누군데 나를....”

사내를향해 외쳤다.

그런데 좀 어리네.

나이는 기껏해야 20살 남짓.

“정말로 다행이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껴안는다.

그런데 이게 뭐야?

사내놈이 껴안다니-

“이것봐. 좀 진정하고...”

끌어안은 녀석을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욱신거린다.

손을 가져갔다.

뭔가 끈적거리는 느낌.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제야 상황이 정리된다.

지끈거리는 두통사이로 조금씩 기억들이 돌아왔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기억이다.

“원범아! 괜찮아?”

“누군데 나를 원범이라고 불러? 그러니까 나의 이름은...”

“왜그래? 절벽에서 떨어진뒤 정신이 어떻게 된거아냐?”

“그러니까. 그런데 넌 누구지?”

“나를 모르겠어? 너의 친구인 동석이! 배동석 말이야.”

자신을 동석이라고 말하는 녀석-

덩치가 제법이다.

중량급 이종격투기나 특수부대 요원으로 활동하면 좋을만한 체격이다.

그런데 이녀석과 나의 관계가 뭐길래.

정신을 추스리고 있을때 녀석이 손을 잡아끌었다.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야. 서둘러 도망쳐야해. 너를 잡을려고 한양에서 포졸들이 왔어. 이번에 잡히면 사약을 받을지도 몰라.”

“사약이라고? 뭣때문에?”

“정신이 없는거야? 집안의 가족들이 한양에서 역적으로 몰려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돌아가셨잖아. 그리고 너는 겨우 목숨을 부지해 강화도로 유배를 온거잖아. 하지만 한양에있는 높으신 분들이 너를 살려두기 싫어서 이번에는 수십명이 넘는 포졸들과 무사들까지 왔단말이야.”

“그래서 지금 도망치고 있는거라고?”

“맞아! 서둘러야해. 안그러면 강화도에서 탈출도 못해!”

동석의 외침-

다급한 표정으로 팔을 잡아끌었다.

몇발자국 끌려가다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이원범이라고 불리는 인물.

그리고 강화도.

강화도령-

설마?

‘내가 철종으로 환생한거야?’

뺑소니 사고로 육체가 갈기갈기 찢겨지고.

검은 구멍을통해 영혼이 빨려들어갈때.

모든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조선시대로 온것이다.

그것도 누군가의 육체에 영혼이 환생해서.

본래 영혼인 이원범은 어떻게 된거지.

몇차례 고개를 내저었다.

단편적인 기억들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저녀석의 얼굴.

동석은 강화도에서 유배생활하던 이원범에게 둘도없는 친구였다.

지금은 이원범을 강화도에서 탈출시키기위해 목숨까지 걸고 있었다.

그런데 탈출이라고?

아차! 이런.

역적으로몰려 가족이 멸문지화를 당했으니 그럴만도 하겠다.

본래 육체의 주인이였던 이원범.

벼랑에서 떨어지며 머리를 부딪쳤고 뇌진탕으로 죽었던 것이다.

사망한 육체에 어떤식으로 영혼이 들어간 것인지는 모르겠다.

우연의 일치거나 운명의 장난이거나.

본래의 이원범은 강화도에 나타난 수십명의 포졸과 군관들을보자 겁을먹고 도망치고 있었다.

이원범을 탈출시키기위해 죽마고우였던 동석도 같이 산속에서 도망치던 중이였고.

내가 알고있던 역사지식으로 볼때.

강화도에 나타난 수십명의 포졸들과 군관들은 다른 목적으로 온것이다.

이런 기막힌 상황이 있을줄이야.

강화도령인 이원범은 자신을 죽이러 온줄알고 친구와 산속으로 도망치다가 추락해서 뇌진탕으로 죽었다.

그런 이원범의 육체에 나의영혼이 들어온 것이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왜그래? 아직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거야?”

“이미 정상이다.”

팔을뻗어 동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녀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표정이 여러차례 바뀐다.

귀신을 보는듯한 놀라움.

안도감등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역사에서 비운의 군주로 살다간 철종.

역사에서 이원범은 소심한 성격이였다.

운좋게 왕이 되었지만 신분상으로 불리했다.

철종이 왕이되던때 조선은 혼란의 시대를 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철종은 개혁정책을 할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철종이 상대해야할 적들은 너무나도 거대했으니까.

* * *

“정말로 괜찮은거야?”

“나만 믿어!”

“한양에서 온 군관들에게 끌려가 목이잘리는 참수라도 당하면 어떻할려고?”

동석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목이잘리는 참수?

이원범이 몰락한 왕족이긴하다.

그래도 사약을 받으면 받았지 참수까지 될 정도는 아니다.

조선시대때 왕족을 참수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으니까.

이럴때 역사지식이 도움이 되는군.

사학도를 꿈꿨지만 졸업까지 못한 반푼이의 경우다.

정확히는 사학과에서 2학년까지 마치고 군대를 갔다.

제대하고는 사학과를 그만두고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

생각해도 그런 과정이 씁쓸하다.

그래서 반푼이 사학도.

자랑할건 아니지만 그래도 역사에대한 지식은 제법 있었다.

생각해보니 한국사를 배울때.

조선사를 공부할때 철종에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조선의 역대왕들 중에서도 특이한 경우니까.

강화도에서 농사나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왕이라니.

자고나니 왕이되었다-라는 엄청난 일이 이원범에게 벌어졌지만 그의 인생은 기구했다.

조선역대 왕들중에 불행한 임금이 되었으니까.

그때문일까?

알수없는 감정이입 같은것이 생겼다.

그래서 사학과를 다닐때 철종에대한 책들도 살펴보았다.

그런 지식들이 이럴때 도움이 되었다.

“아직도 늦지않았어. 지금이라도 도망치자!”

“강화도까지 유배된 상태에서 어디로 가? 그리고 내 이름은 원범이 아니라....”

말끝을 흐렸다.

무심코 튀어나온 것이다.

이녀석에게 진짜 이름을 말해봐야 뭐하겠나?

귀신 들렸다고 하겠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던 최성준이 까마득한 과거의 조선시대에 오게되다니.

운이좋다고 해야하나?

죽으면 모든것이 끝나버리는 상황에서 마지막 희망이 생겼으니까.

희망이 아니라 엄청난 기회다.

“처음에는 도망갈 생각을 했지만 그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조금전 도망친다고 몰랐는데 상황이 좀 다른거 같거든.”

“어떻게?”

“저기봐. 아래쪽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안들려?”

동석이가 귀를 기울였다.

산 아래쪽에는 포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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