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9 / 0107 ----------------------------------------------
조우
카이아린의 임신 사실을 들키고 난 후 베라즈와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황량한 백색의 공간을 그저 걸어가고만 있었다.
“...........”
계속되는 침묵은 카이아린에게 여지껏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기분이 들게했다.
그것은 그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카이아린.”
"....? 아! 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갑작스레 불린 자신의 이름에 화들짝 놀란 카이아린은 허겁지겁 대답을 하며 베라즈의 앞으로 달려나갔다.
“리리안에게 도착하려면 아직도 멀은 것이냐?”
“아... 잠시만요.”
카이아린은 눈을 감고 잠시동안 주변을 둘러보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난 뒤에 다시금 눈을 떠 베라즈를 쳐다봤다.
“얼마 안남았어요. 움직임이 없는걸로 봐서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흠, 알겠다. 다시 안내를 부탁하지.”
“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카이아린은 한쪽 방향을 향해 손을 뻗었고, 둘은 그 곳을 향해 다시금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
“으음...으으...”
하얀 백색의 공간에 가녀린 신음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 신음의 근원지에는 새하얀 나신의 두 여인이 기절한듯 서로를 안고 누워 있었고, 그 중 붉은 머리의 소녀가 깨어나려는듯 조금씩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으응...흐음...”
짧은 신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붉은 머리의 소녀는 아직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듯 게슴츠레 멍한 표정으로 허리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으음... 어? 우왓! 이...이게 뭐야!”
그리고는 자신의 옆에 쓰러져있는 푸른 머리의 여인을 보고 한번 더 깜짝 놀라 버둥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와악! 레...레이린?! 아윽! 아으으...”
쓰러진 푸른 머리의 여인을 향해 레이린이라고 외친 소녀는 곧바로 어딘가에 격한 통증을 느끼는듯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에 다시금 엎드려버렸다.
미숙하지만 탐스럽게 영근 엉덩이를 아픈듯이 쓰다듬는 소녀의 정체는 다름아닌 세레나, 그녀였다.
“으으... 교왕 그 개자식...크으...”
교왕에게 겁탈 당했던 엉덩이에서 고통이 느껴지는듯 세레나는 잠시동안 엎어진 상태로 아픔을 참아내고는 조심스레 일어나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는 레이린의 곁으로 다가갔다.
“일어나라, 레이린. 일어나란 말이다.”
“으음...”
몇 번을 흔들고 깨워도 그저 약간의 신음만 흘릴뿐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레이린을 잠시 쳐다보던 세레나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의 두 뺨을 거세게 쳐대기 시작했다.
짝짝!
“일어나라고!”
세레나에게 얻어맞은 레이린의 볼은 금새 빨갛게 부어올랐고, 그 충격이 상당했는지 굳게 닫혀있던 그녀의 눈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그...그만...”
“아, 일어났는가.”
“사람을 그렇게 때리는 법이 어딨어요, 아흐윽...”
“자네가 일어나지 않아서 그렇지 않은가. 흠흠...”
아픈 볼을 어루만지며 흘깃 째려보는 레이린의 모습에 세레나는 눈을 돌려 어색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고, 레이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그나저나 여긴 어디죠?”
“음, 그건 나보다 자네가 더 잘알것 아닌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세레나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레이린은 이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후... 그래요, 물어본 제가 잘못이죠. 일단 교왕의 텔레포트로 인해서 이동된 것 같은데... 아무리 강력한 아티펙트라도 불가지역에서의 텔레포트였으니 뭔가 불안정했던 것 같네요. 분명히 일반적인 장소는 아니고, 공간상의 한부분에 끼인듯한데 그 이상은 모르겠네요.”
이야기를 끝마친 레이린은 다시금 고민을 하는듯 생각에 잠겼고, 세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몸상태를 확인하는듯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헛, 둘. 으음... 아직 좀 쓰리기는 하지만 그렇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군. 크으... 교왕 그자식은 내가 반드시 죽여버리고 말겠어!”
세레나는 교왕에게 받은 치욕을 떠올리며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겠는듯 부들부들 몸을 떨었고, 그 사이 레이린은 생각을 끝낸듯 자리에서 일어나 세레나에게 다가갔다.
“일단은 나머지 일행들을 찾으로 가요. 모두 모여서 의논하는 편이 더 빠를것 같으니까요.”
“음, 알겠다. 그건 그렇고 혹시 뭐 좀 걸칠만한게 있을까?”
“??, 걸칠...아...아앗!”
세레나의 이야기에 레이린은 잠시 동안 그녀와 자신을 번갈아 쳐다보다 그제서야 자신들의 상태를 알아차린듯 새빨개진 얼굴로 비명을 내질렀다.
“와...와앗! 고, 고개 돌려요! 뭘 보고 있는거에요!”
“흠, 자네 은근히 둔하구만. 그리고 어차피 볼거 다봤는데 뭘 가리고 그러는건가.”
“그래도 다, 당신은 원래 남자잖아요!”
“하?”
레이린의 말에 세레나는 기가 차는듯 혀를 한번 차고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앞으로 이끌었다.
“꺄...꺄악!”
“그런 알몸이 보고싶으면 내걸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빨리 앞장이나 서게!”
조그마한 소녀의 손놀림에 그보다 큰 여인이 휘둘리는 모습은 어찌보면 우스꽝스러웠으나, 체내에 다시 마나가 쌓이기 시작한 세레나의 힘은 보통수준 넘어선지 이미 오래전이었기에 그리 쉽게 볼 것은 아니었다.
“아, 아파요!! 알았다고요, 그만!”
“흠...”
레이린의 비명에 세레나는 쥐고있던 손을 풀었고, 붙잡혔던 곳이 꽤나 아픈듯 레이린은 자신의 팔목을 한손으로 문지르며 두 눈을 감고 주변을 살짝 둘러봤다.
“지금 주변을 확인하는 중이니까, 건들지마세요.”
“아, 알았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흥.”
세레나의 대답에 약간은 새침한 표정은 지은 레이린은 잠시동안 마나를 확인하고는 이내 눈을 뜨고 한방향을 가리켰다.
“주변에 교왕의 흔적은 보이지가 않네요. 다행이 저쪽 방향으로 베라즈님과 카이아린, 리리안이 같이 있는 것 같으니 우리도 그쪽으로 이동하죠.”
“크으... 알겠다. 그런데 교왕이 없다고? 쳇!”
아쉬운듯 말하는 세레나를 보며 레이린은 약간은 비웃는듯한 웃음을 내지었다.
“훗, 다행인것 아닌가요? 설마 이번엔 이길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죠? 후후.”
“무, 무슨 소리냐! 당연히 이길수 있는 것을!”
“아, 그래서 아까전엔 그렇게 가녀린 소녀의 울음을 터트리며 울부짖었던 거에요? 쿠쿠쿠.”
레이린의 비아냥에 세레나는 터질듯이 발갛게 변해 버린 얼굴로 고함을 꽥하고 내질렀다.
“다, 닥쳐! 그때는 갑작스레 기습을 당한터라 달리 방도가 없었단 말이다! 제대로 방비하면 그 교왕자식쯤은 한칼에...!!”
“아아, 네네. 그러시겠죠.”
“이익! 그러는 너도 당했지 않느냐!!”
얼마나 화를 참고 있는지 몸까지 발갛게 변한 세레나를 보며 레이린은 가볍게 두 손을 들어 어깨를 으쓱하고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뭐 저는 누구와는 다르게 몸을 쓰는 타입이 아니라, 머리와 마나를 쓰는 사람이니 마나가 동결되면 그렇게 당할 수밖에 없죠.”
“크, 크으!! 그건 나도 마찬가지란 말이다!”
“네네. 알겠으니 그만하고 베라즈님에게나 가지요.”
머리 끝까지 화가난듯 씩씩 거리는 세레나를 뒤로 한 채 몸을 돌린 레이린은 새하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베라즈가 있는 곳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콰앙!
“이...이익!!! 제엔자앙!! 너도 두고봐!”
자신의 분을 못이기고 바닥을 강하게 내려찍은 세레나는 벌써 저 앞으로 걸어나간 레이린을 쫒아 작은 몸을 움직여 달려나갔다.
============================ 작품 후기 ============================
음... 오늘 서바이벌 동호회를 갔다 온다고 좀 늦었네요.
이제는 던파를 조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