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조교 연대기-91화 (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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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된 전쟁과 붉은 꽃

빠득.

“제기랄! 두고보자, 도마뱀새끼, 꼭 후회하게 만들어줄테다.”

카이아린과 헤어진 세레나는 부득부득 이를 갈며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자신의 깃발이 세워진 막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투욱.

“윽, 어떤 자식이야!”

툴툴거리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던 세레나는 갑작스레 앞을 가로막아오는 벽에 부딪히며 짜증나는듯 신경질을 냈고, 그녀를 가로막았던 벽은 큰 웃음을 터트리며 들썩거렸다.

“허허허, 역시 블러디 로즈라고 불리우는 세레나님다운 입담이시군요.”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세레나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고, 그곳에는 상당히 거구의 사내가 부드러운 미소를 띄고는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넨 뭔가? 급한 용건이 아니면 비켜주지. 난 지금 피곤하단 말이다.”

카이아린 때문에 한껏 기분이 저조해진 세레나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없었기에 앞을 가로막은 사내를 옆으로 밀어내며 다시금 막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세레나가 옆을 지나가는 순간 사내는 손을 쭉 뻗어 그녀의 갑옷 목덜미를 붙잡아 번쩍 들어올렸고, 덕분에 그녀는 갑옷에 걸려 대롱대롱 메달린 상태가 되어버렸다.

터억.

“으윽! 뭐, 뭐하는거야!!”

“세레나경, 같은 기사직위를 가진 사람끼리 너무 그렇게 쌀쌀맞게 하면 안되는거지요.”

세레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치욕스러운 자세에 마지막 남은 인내심이 끊어져버렸고, 곧바로 버둥거리며 자신의 등 뒤에 꽂혀있는 검의 손잡이를 붙잡고는 사내를 향해 으르렁 거렸다.

뿌득.

“이 새끼고, 저 새끼고 하나같이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여!”

스릉.

대롱대롱 메달린 상태에서 검을 뽑아올리는 세레나의 행동에 사내는 깜짝 놀라 그녀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크, 실례했군요. 하하하, 숙녀의 몸을 함부로 만지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너무 그렇게 기분 나쁘게 쳐다보지만 마십시오, 불손한 의도는 없었으니. 하하하.”

“으득, 벌써 저질러 놓고 죄송하다면 다야! 오호라, 그래. 나도 한번 죄송해보자!”

차앙!

“자, 잠깐! 잠까아안!! 으아악!”

이미 짜증이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세레나는 사내가 무어라 말을하든 그저 뽑아낸 검을 그를 향해 휘두르기만 했다.

휘잉.

“끄아악! 죄, 죄송합니다아아!”

카앙, 휘이잉.

“미안하다고요!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으아!”

거구의 몸집과는 다르게 엄청난 움직임으로 세레나의 검을 이리저리 피해다니던 사내는 지치지도 않는듯 계속해서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고, 되려 세레나가 지쳐 검을 놓을때까지 지치지않고 도망을 다녔다.

쿠웅.

“하아...하아... 제기랄, 역시 계집의 몸이라 근력은 형편없군.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고작 이거 휘둘렀다고 지치니... 아오!! 제기랄!!”

커다란 검을 바닥에 꽂아넣은 숨을 고르던 세레나는 여전히 짜증이 풀리지 않는듯 발을 쿵쿵 굴리며 화를 냈고, 그녀의 곁으로 도망다니던 사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곁으로 다가왔다.

“하하, 화는 좀 풀리셨는지요.”

“젠장! 닥치고, 용건이나 말하라!”

“으음... 죄송하지만 닥치고는 말을 못...”

차앙!

“아니 아닙니다. 성격도 급하시기는 하하하.”

실없는 농담을 하던 사내는 다시금 검을 치켜드는 세레나의 모습을 보고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세레나님을 찾아온 이유는 저희 주군께서 세레나님을 뵙고 싶어해서 말입니다.”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의 말에 세레나는 잠시 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쥐고 있던 검을 등 뒤로 집어넣으며 관심없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스르릉.

“날 보고 싶으면 직접 오라고 그래, 어디서 오라가라야!”

여전히 사내들에게는 불친절한 세레나는 검을 완전히 집어넣고는 볼일 없다는듯 몸을 돌려 자신의 막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내는 세레나가 그냥 몸을 돌려 움직이자 황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계속해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자, 잠시만! 아이, 왜 이럽니까. 세레나경, 저희 주군이 누군지 들어는 보시고 가셔야지요.”

“필요없다고 말했다.”

“아이, 그러지 마시고. 저희 주군으로 말씀드리자면 여태까지 카룬교국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신 파라미르 백작님이십니다. 어떻습니까?”

“뭐? 뭐라고 했냐.”

사내의 말에 세레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그를 바라봤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반응을 보이자 사내는 주군의 이름이 먹혔다고 생각한듯 다시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복부를 통해 갑작스레 올라오는 고통에 그저 입에서는 비명만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퍼억!

“꺼...꺼억...”

신음을 흘리는 그의 배에는 조그마한 주먹이 박혀들어가 있었고, 그 주먹의 주인공은 바로 세레나였다. 그녀는 사내의 배에 꽂아넣은 주먹을 뽑아내고는 두 손을 탁탁 털어냈다.

“씨발, 이제는 백작새끼까지 날 불러대는건가. 최소 공작은 될줄 알았다. 꺼져!”

쿵!

마나가 실린 일격에다가 방심하던 차에 당한 공격이라 사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무너지듯 고꾸라져버렸고, 세레나는 그의 곁을 지나 자신의 막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그녀의 막사는 도착하는 순간 완성된듯 병사들이 하나 둘 빠져나오고 있었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않고 자신의 막사에 누울수가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뒹굴뒹굴 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세레나는 몸을 돌려 막사의 천장을 바라봤다.

“하아... 제기랄...”

천장을 바라보던 세레나는 갑작스레 한숨을 내쉬며 한손을 들어 손가락을 쫙 펴보았다.

“이게 검사의 손인가...”

여성 특유의 가느다란 손가락, 그리고 햇빛에 보기 좋게 그을린 갈색 피부까지 아무리 좋게 봐줘도 건강한 소녀의 손 말고는 다른 특징을 찾아볼수가 없었다.

검을 쥐고 휘두르며 생긴 굳은살도, 수없이 칼날에 베인 상처들도 모조리 사라져버린 자신의 손이 마음에 들지 않는듯 세레나는 주먹을 쥐고 자신의 침대를 내리쳤다.

쿵.

“무슨 수를 써서든 빨리 황제의 염원을 달성시켜주고, 나도 남자로 돌아간다. 반드시!”

꼭꼭 다짐하듯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외치던 세레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몸을 일으켜 세웠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막사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흠흠, 안에 세레나님 계십니까?”

“?”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에 세레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고, 이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까전에 거구의 사내 목소리라는 것을 기억해낸 그녀는 짜증난다는 말투로 고함을 질렀다.

“볼일 없으니까, 가라.”

스르륵.

“이 자식이!”

자신이 축객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막사의 문이 젖혀지자 세레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지르려고 했다.

“너...응?”

그러나 막사 안으로 들어온 자는 예상과는 다르게 거구의 사내가 아닌 꽤나 핸섬하게 생긴 푸른 제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였기에 짜증을 폭발시키려던 세레나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그를 쳐다봤다.

“하하하, 역시 듣던대로 기운이 넘치시는군요. 세레나양.”

사내가 기분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다가오자 세레나는 그리 좋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공의 자리까지 올라갔던 그녀였기에 처음보는 사람에게까지 막 나가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다.

“당신은 누구야.”

그녀의 질문에 남자는 제복의 카라를 붙잡고 정리를 하며 싱긋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제 소개를 드리지요. 저로 말할것 같으면 파라미르 백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블러디로즈라고 불리우는 전장의 붉은 꽃, 세레나양을 만나뵙게되어 영광입니다.”

“아, 네...여기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정중한 파라미르 백작의 인사에 세레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인사를 받아줬고, 귀족들에게까지 거구의 사내와 같이 막 대할수는 없었기에 그녀의 행동은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간결하게나마 예를 갖추는 세레나의 모습에 파라미르 백작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다른 이유는 아니오라, 요즘 소문이 자자한 제국의 보물인 세레나양의 얼굴을 한번 뵙고 싶어서 말입니다. 황제폐하의 호위기사에 거기다가 베이디언 대공님의 영애라고 하니 어찌 마음이 동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실제로 세레나양을 뵈니, 소문보다 더 미인이십니다. 하하.”

대충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눈치챈 세레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하아, 됐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려는건지는 잘 알겠습니다. 직접 찾아와주신 파라미르 백작님까지 하면 벌써 다섯명도 넘는 분들이 다녀가셨군요. 저는 아직 결혼할 생각 같은건 없으니 그만 돌아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륙의 가장 강력한 남자인 베이디언 대공의 딸인데다가 그녀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무력을 지닌 강력한 기사였으니 귀족들의 눈에는 그녀는 걸어다니는 황금이나 다름 없었다. 눈에 들어 결혼만 한다면 엄청난 권력과 재력, 그리고 무력까지 따라오는 그야말로 누가 보더라도 인생역전의 한방이었기에 파라미르 백작과 같이 자신의 아들과 맺어주기 위해 찾아오는 귀족들이 끊이지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예상했던대로의 진행으로 넘어가자 세레나는 귀찮은듯 한숨만 푹푹 내쉬며 막사의 문을 직접 열고는 그를향해 눈짓을 보냈다.

“어흠흠, 그러지 말고 한번 생각해보게. 내 아들이 생긴건 꽤나 잘 생겼다네, 자네 마음에도 쏙 들거라니까. 한번 만나나보고 말해보게나.”

찌릿.

“괜찮습니다.”

강력한 세레나의 눈빛에도 억지로 버티던 파라미르 백작은 애걸복걸하며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썻지만, 사실 남자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세레나에게 남자를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에 그런쪽으로 전혀 취향이 없는 그녀는 정색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 세레나의 목소리에 파라미르 백작은 아쉬운듯 입맛을 쩍쩍 다시며 몸을 돌려 막사의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하아, 정말 다시 생각해볼수 없겠는가? 후회할텐데?”

“그럴일 없습니다.”

“크으... 알겠네. 그럼 내 선물이라도 받아 줄수는 없는건가? 나중에 생각이 바뀔수도 있으니 말이네, 그것만 받아준다면 내 지금은 그냥 가도록 하지.”

파라미르 백작은 울먹이는 눈망울로 그녀를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고, 세레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일단 선물을 받아드리도록 하지요. 하지만 아마 원하시는 용건으로 다시 뵙는 일은 없을것입니다.”

그의 선물 마저 받지않고 보낸다면 또 질질 시간을 끌며 버티고 있을 가능성이 많았기에 세레나는 일을 빨리 처리하려는 마음에 승낙을 했고, 그녀의 허락을 받자마자 파라미르 백작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막사 밖으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하하,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네. 이보게, 무닌경. 어서 세레나양에게 드릴 선물을 들고 오게나.”

“예!”

파라미르 백작의 외침과 함께 밖에서는 거구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막사문이 젖혀지며 조그마한 상자를 들고 있고있는 사내가 들어왔다.

“여기있습니다, 백작님.”

“오, 고맙네.”

무닌경이라고 불린 거구의 사내는 파라미르 백작에게 그 상자를 건네주었고, 백작은 상자를 살짝 열어 세레나에게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자, 보게나. 세레나양.”

그가 열어젖힌 상자에는 붉은색의 커다란 보석이 박힌 목걸이가 있었고, 백작은 그 목걸이를 들어 올리며 싱글싱글 미소를 지었다.

“보이는가, 이렇게 커다란 루비는 구하기가 꽤나 힘든 것 정도는 알고 있을테지. 게다가 이정도면 엄청난 마력을 저장해서 아티펙트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테고 말이야. 어떤가 아름답지 않은가?”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목걸이를 세레나의 앞에 가져간 파라미르 백작은 그녀의 반응을 기대했지만, 남자로 태어나 여자와 검에만 미쳐 살며 전혀 그런 것에 신경 조차 써본적 없는 세레나로서는 그 목걸이는 그저 빨간 돌맹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쓸모없는 물건일 뿐이었다.

“아, 그런 귀한걸 제가 받아도 될런지요.”

그래도 자신의 속마음은 철저히 숨기고 대답을 하는 세레나였다.

“물론이지. 이 목걸이를 보면서 항상 우리 파라미르 백작가를 생각해주면 고맙겠네. 하하하.”

“아...네...”

그렇게 쓰잘데 없는 잡담을 조금 더 나눈 뒤에야 파라미르 백작은 그녀의 막사에서 벗어났고, 세레나는 목걸이가 들어있는 상자를 귀찮다는 듯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는 자신의 침대로 걸어가 누웠다.

“슬슬, 저녁인가. 후우... 이래저래 오늘은 짜증만 쌓이는군. 하아...”

아직은 이른 저녁이었지만 세레나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려는듯 두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아웅... 고향 갔다왔더니...

졸리네요... 운전 귀찮아...

그런고로 전 잠을!! 휘리릭~

근로자의날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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