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0 / 0107 ----------------------------------------------
시작된 전쟁과 붉은 꽃
세레나에 의해 어이없는 방식으로 성벽이 무너져내린 교국병사들은 황급히 물밀 듯 밀고들어오는 제국군을 저지하기 위해 갖은 방법은 동원했지만 이미 뚫려버린 입구를 막을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병사들을 막기위해 입구를 향해 마법을 쏘아대던 교국마법사들의 마법은 사기가 올라간 제국군의 방패병이나 마법사들에 의해 와해되었고, 나머지 궁병들과 교국병사들은 이미 치고 올라온 제국군의 공세를 막느라 입구를 신경쓸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게 난공불락의 요새로 불리우던 라파르 요새는 한 소녀에 의해 제국의 손에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따각, 따각.
“히이잉, 푸르르...”
치열했던 전투가 종결되고, 저항하던 교국병들 마저 모조리 정리된 뒤 모든 상황이 종결되고, 완전히 제국의 손아귀에 넘어가버린 레파르 요새의 입구로 거대한 흑마를 탄 금색 갑주의 사내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 사내의 옆으로는 네명의 여인이 뒤따르고 있었고,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품고 있었다. 금발의 사내는 바로 네 여인의 주인인 베라즈였다.
“수고했다, 세레나. 이번에도 그대의 공이 가장 큰 것 같군. 하하하, 역시 베이디언 대공의 딸이라 이건가. 그는 없지만 자네만으로도 충분히 든든하군.”
베라즈의 칭찬에 세레나는 고개를 숙이며 살짝 무릎을 굽혔다가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폐하. 모든게 폐하의 은총이지요.”
“하하하, 무슨 소리인가. 신관들과 교국마법사들이 버티고 있는 이상 제 아무리 9서클의 마법사가 있는 우리라고 해도 쉬이 뚫지 못했을터, 이토록 쉽게 들어올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네의 공이지. 그럼, 지쳤을텐데 쉬도록하게.”
“네. 감사하옵니다.”
세레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베라즈를 향해 인사를 했고,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카이아린들을 쳐다봤다.
“너희들도 수고가 많았다. 나는 귀족들과 회의가 있으니 너희는 여기서 잠시 쉬도록해라.”
베라즈의 이야기에 카이아린과 나머지 세명의 여인들은 대답을 하며 그에게 인사를 했고, 베라즈는 말을 돌려 커다란 막사가 만들어지고 있는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보일정도로 사라지자 이제는 다섯명이 되어버린 여인들 중 카이아린은 허리에 손을 얹으며 세레나를 노려봤다.
“야, 변태인간. 베라즈한테 칭찬 받았다고 너무 우쭐해 하지 말라고!”
“하?”
톡 쏘는 카이아린의 말에 세레나는 무슨 헛소리냐는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그 모습이 거슬리는 듯 카이아린은 발끈하며 앞으로 나섰다.
“이게 어디서! 너 또 한번 죽어볼래!”
“크, 치, 치사하기는... 왜 가만히 있는 날 가지고 그러는건가! 그러면 너희들이 좀 더 잘했으면 될 것 아닌가! 고서클 마법사라고 뻐기기만하고 정작 쓸모는 없는 주제에.”
빠직.
“인간주제에 어디서 감히! 야! 너 죽는다! 앉아!!”
털썩.
“크으윽!”
“일어서!”
벌떡.
더 이상 말로는 안되겠는지 카이아린은 손가락을 올렸다 내리며 세레나에게 명령을 내렸고, 여전히 카이아린의 마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레나는 명령대로 움직이며 치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둘 사이에 깜짝 놀란 리리안이 황급히 달려나가며 중재를 시작했다.
“카이아린, 그만하세요. 여기는 밖이라구요.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이곳에서 그녀의 지위는 인정해주어야 한답니다. 이런 식으로 명령을 내려서는 안되요.”
“아, 진짜. 엘프계집 너는 내가 하는 일마다 왜 이렇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거야!”
“그게 옳은 일이니까, 그러는거에요. 아셨죠?”
타이르는듯한 리리안의 이야기에 카이아린은 윗니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으....쳇, 알았어. 야, 빨강머리. 오늘 잘했어, 미안. 내가 조금 지나쳤다.”
한동안 같이 살아온 탓일까, 안하무인이었던 카이아린은 어느새 리리안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자신의 생각을 굽혔고, 세레나는 그녀로부터 풀려날수가 있었다.
“젠장, 사람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지 말란 말이다! 더욱이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는!”
카이아린의 구속에서 벗어난 세레나는 욱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대로 그녀에게 폭발시키듯 토출해내며 쏘아붙였고, 카이아린의 이마에는 다시 한번 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너 이 자식,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래서 뭐? 더 해보겠다고?”
“크으... 제기랄, 다음부터는 조금 더 조심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그만하지.”
싸워봤자 자신만 손해라는 것을 잘 아는 세레나는 그쯤에서 꼬리를 말고는 한창 막사가 지어지고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피곤해서 쉬로가도록 하겠다. 그럼.”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 세레나는 자리를 이동했고, 뒤를 이어 가만히 있던 레이린이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보도록 하지요.”
레이린 역시 간단한 한마디만 남기고 그녀들로부터 떨어져나왔고, 둘은 순식간에 카이아린들로부터 사라져버렸다.
세레나와 레이린이 사라지고 난 뒤 카이아린은 기분나쁜 표정으로 볼을 뾰루퉁하게 부풀리고는 툴툴거렸다.
“정말, 저 두 인간은 마음에 들지가 않아! 정말 마음에 안든다고!”
계속해서 짜증을 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카이아린의 머리 위로 리리안의 손이 살며시 얹어지며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카이아린, 요즘 들어 짜증이 점점 많아지네요. 아이 때문에 걱정이 많은가봐요?”
움찔.
정곡을 찌른듯한 리리안의 물음에 카이아린은 잠시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무, 무슨 소리야. 그렇지 않아!”
“흐음... 그래요? 그건 그렇고 언제까지 그렇게 숨기고 있을거에요. 슬슬 배도 나오고 있잖아요.”
“맞습니다, 카이아린님. 배를 동여메거나 하는 방법으로는 베라즈님을 속일수가 없어요. 폐하의 밤시중을 가장 많이 드는 사람은 바로 카이아린님이지 않습니까.”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아이리엔까지 합세하자 카이아린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버렸다.
“시, 시끄러워! 나도 고민 중이란 말이야! 너희들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고!”
계속해서 푹푹 찔러대는듯한 리리안과 아이리엔의 질문에 카이아린은 참지못하고 고함을 빽 지르며 화를냈다.
“나보고 뭐 어떻게 하라고! 베, 베라즈한테 말하기 무섭단 말이야... 씨이...”
“푸훗.”
불안한 듯 눈을 굴리며 고개를 떨구는 카이아린을 보며 리리안은 갑자기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막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발끈.
“왜, 왜 웃어!”
버럭 화를 내는 카이아린의 모습에 리리안은 한손으로는 입을 막으며 손사레를 쳤다.
“아니에요. 그냥 카이아린이 너무 귀여워서, 후후후.”
“이게 남은 심각해 죽겠는데!”
씩씩 거리며 화를 내기 시작하는 카이아린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다시 한번 쓰다듬은 리리안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카이아린이 그럴줄 알고 제가 준비해놓은게 있죠, 후후. 감사해야 할걸요~”
의미심장한 리리안의 웃음에 카이아린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뭐, 뭐길래?”
“기다려봐요, 실피드! 운디네!”
포퐁, 쉬이잉.
카이아린의 의문을 뒤로하고 리리안은 두체의 정령을 자신의 앞으로 소환해냈다. 그리고 정령들에게 무엇인가 속삭이며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내 두체의 정령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카이아린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게 뭐하는거야. 어어? 리리안, 이거 뭐냐고! 왜 내 몸 주변에 들러붙는거야!”
자신의 몸 주변으로 다가와 달라붙기 시작하는 정령들을 보며 깜짝 놀란 카이아린은 리리안을 보며 고함을 질렀지만 리리안은 검지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움직임을 취했다.
“잠시만 기다려봐요, 위험한건 아니니까.”
“으....”
가만히 있으라는 리리안의 이야기에 카이아린은 불만가득한 얼굴을 하면서도 고분고분히 말을 들으며 서있었다. 그녀의 몸에 달라붙은 정령들은 서로 엉켜붙기 시작하며 투명한 하나의 얇은 막처럼 변해서 카이아린의 배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우으...”
얇은 막이 배를 조여오기 시작하자 카이아린은 조금 힘든지 신음을 흘렸고, 리리안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카이아린, 조금 조이나요?”
“어? 응. 풀어줘.”
“아, 네. 실피드, 운디네. 돌아가.”
사아아...
리리안의 명령과 함께 카이아린의 몸주변에 있던 두체의 정령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그제야 카이아린은 조금 편안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볼수가 있었다.
빙긋.
“후후, 어때요? 방금 그런거라면 옷을 벗더라도 괜찮겠죠?”
정령을 이용한 압박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리리안의 방법에 카이아린은 씨익 웃음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오, 대단해. 대단해! 역시 엘프 니가 최고야.”
“후후후.”
방실방실 웃음을 터트리는 카이아린이 귀여운 듯 리리안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시 한번 쓰다듬고는 기분좋은 미소를 지었다.
리리안이 카이아린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중 아이리엔도 둘의 곁으로 다가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 저도 생각해둔 방법이 하나 있긴한데요. 리리안님만큼 빠르게 효과를보지는 못하지만 제 방법은 조금 천천히 효과를 보지만 아주 확실한 방법이랍니다.”
무엇이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카이아린은 또 다른 방법을 들고온 아이리엔을 바라보며 함지박한 웃음을 터트렸다.
“오오! 정말!! 역시 신관계집, 너도 최고야! 냐하하!”
“후훗.”
아이리엔 역시 방긋방긋 웃고 있는 카이아린을 귀엽다는 듯이 리리안과 함께 머리카락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사실 전쟁이 터지고 꽤나 시간이 흐르면서 리리안과 아이리엔 둘은 카이아린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해버리고 말았고, 이제 그녀의 앙탈은 그저 귀여운 수준으로 밖에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전장의 한복판에서 세 여인의 이야기는 끝이 날줄을 몰랐다.
============================ 작품 후기 ============================
글쓰다가 자다가 쓰다가 자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