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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격
모든 마음을 정리하고 그렇게 신전에서 나온 아이리엔은 힘없이 터벅터벅 걸음을 걸으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폐하께서는 지금 침실에 계시려나, 아니면 집무실에 계시려나...”
슬슬 약의 기운으로 억제되고 있던 드레인 웜의 활동이 재개되는 3일째인 오늘 아이리엔은 다시 한번 약을 받기 위해 베라즈를 찾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을 해도 적응되지 않는 그와의 관계에 급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몸은 쉬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그런 짓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그녀로서는 사랑도, 그 어떠한 애정도 없이 오로지 목적과 수단이 되어버린 그와의 성관계가 기분이 좋을리도, 기다려질리도 없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의 몸은 이미 그가 필요하게 바뀌어버렸고,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아버린 이상 현실에 순응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렇게 그녀는 베라즈를 찾아 황궁으로 걸어들어갔다.
“아직 자기에는 이른 시간이니 먼저 집무실로 가봐야겠네.”
목적지를 잡은 아이리엔은 망설임 없이 걸음을 바꾸어 황궁 안 베라즈의 집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집무실은 대회의장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그녀는 여전히 웅성거리고 있는 대회의장을 지나 금새 그의 집무실로 도착을 할 수가 있었다.
집무실 주변에는 시종이나 호위기사들이 없었지만 원래 그가 자신이 있는 곳 주변에 그러한 자들을 배치해두지 않는 다는 것을 아는 아이리엔은 돌아가지 않고 방문 앞에서 길게 심호흡을 했다.
“후읍... 후우...”
마음의 준비를 하는듯 몇 번의 심호흡을 더 한 아이리엔은 천천히 손을 들어 방문을 두들겼다.
탕탕탕.
“베라즈 황제폐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으음... 안계시나?”
한번의 노크에도 방 안에서는 전혀 인기척이 들려오지를 않았고, 고개를 한번 갸우뚱 거린 아이리엔은 혹시 못 들었지도 모르니 다시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또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탕탕탕.
“베라즈 황제 폐하, 안에 안 계십니까?”
“......”
탕탕탕.
“안 계십니까?”
계속된 그녀의 두들김에도 문 뒤에서는 어떠한 움직임 조차 일어나지를 않았다.
“아아, 집무실에는 안 계시나 보네, 그럼 침실에 계시려나.”
집무실에서 인기척이 나지 않자 아이리엔은 베라즈가 침실에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몸을 돌렸고, 순간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호, 혹시 이 이른 저녁부터... 그 드래곤과... 흐...흐이...”
항상 그의 침실에서 같이 자는 카이아린과 베라즈와의 관계가 생각난 아이리엔은 그와 그녀가 침실에서 헐벗고 뒹구는 모습이 떠오르며 점점 새빨게 져버렸다.
“아으으,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그래도 지금 가야하는데... 우으으...”
침실에 갔을대 만약 상상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대해서 고민을 하는 아이리엔은 이동하지 않고, 문 주변에서 서성이며 생각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아, 크...큰일이다. 안돼, 안돼!”
잠시 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던 아이리엔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며 불안한듯 주변을 둘러봤다.
“으, 으으윽... 안된다고...버, 벌써 움직이기 시작하면...으으윽, 안된다고! 으아아!”
자신의 몸에서 무엇인가가 다시 움직이는 것을 느낀 아이리엔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자신의 배 아래를 움켜쥐었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입에서는 짐승 같은 송곳니가 조금씩 자라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약효가 끝나 드레인 웜이 다시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차린 아이리엔은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미 드레인 웜의 활동이 시작된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곧장 눈앞에 가장 빠르게 숨어들 수 있는 집무실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 피를 마시는건 정말 싫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 피를 마시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으으윽.”
끼이이익, 덜컹.
문 손잡이를 붙잡은 아이리엔은 황급히 문을 열어젖히고 집무실 안으로 구르듯 뛰어들어갔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제 자신의 발작을 기다리려고 고개를 드는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
“대, 대신관 아이리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분명 황궁마법사인 레이린의 목소리가 분명했지만, 눈 앞의 펼쳐진 광경은 도저히 믿을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온 사방이 난장판으로 부서져있고, 마력에 의해 산발로 날리는 푸른 머리를 하고 있는 레이린의 발 밑에는 기이한 각도로 다리가 꺽여있는 베라즈가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대, 대체 이게?”
“제기랄, 대신관 당신에게는 아무런 악감정은 없지만 어쩔수 없네요, 이런 광경을 봐버렸으니.”
당황해하는 아이리엔의 모습에 레이린은 꼬여버린 일에 욕설을 내뱉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얌전히 앉아 계세요. 뒤는 기억을 지워드릴테니. 매직 미사일.”
피잉, 푸욱.
“꺄아아악!!!”
레이린의 손에서 떠난 빛의 화살들은 곧바로 아이리엔의 두 다리를 관통하며 피를 뿜어냈고, 그녀는 고통 속에 힘이 풀린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으...으아아아!”
“신성력도 사용하면 안되니 두 팔도 마저 못쓰게 만들어야겠네요. 나중에 치료해드리지요. 매직 미사일!”
피잉, 푸욱.
“끄...끄으윽!!”
지금 상황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차 감을 못잡고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리엔은 레이린의 손에서 쏘아져 나간 빛의 화살을 막을 만한 경황이 없었다. 그리고 그 빛의 화살들은 곧 그녀의 양 팔을 관통해버리며 조그마한 구멍을 만들어 버렸다.
울컥.
“흐극! 크으윽, 대체 이게... 흐윽...”
관통 당한 팔과 다리에서는 울컥이며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아이리엔은 지독한 고통 속에 기절을 한듯 그대로 바닥에 무너져 내려버렸다. 아이리엔이 정신을 잃은 것을 확인한 레이린은 곧바로 베라즈에게 고개를 돌려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은 나랑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야겠어요.”
“크크...크크큭, 그래 이야기? 좋지. 얼마든지 하자고. 으하하하!!”
“??, 당신 지금 무슨 상황인지는 알고 웃는거에요? 빨리 말 안하면 점점 더 고통스럽게 죽어갈겁니다. 호호호.”
방금까지도 절망에 빠져 허우적 거리던 베라즈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며 그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미소를 짓자 레이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자신도 웃으며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겨 그의 팔 위에 다리를 얹었다.
“이번에는 당신 팔이에요. 천천히 부서지는 고통을 느껴보세요. 빨리 말하면 그만큼 고통은 없답니다.”
“키득...키득키득. 내가 여기서 벗어나면 네 년은 반드시 그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오도록 만들어주마. 키득키득.”
“시끄럽군요. 이익!”
우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베라즈의 팔이 기이하게 꺽이기 시작했고, 그는 타오르는듯한 통증 속에 목이 찢어지듯 아이리엔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끄아아악!!!! 아이리엔!!!!!! 아이리엔! 일어나라!”
“그녀는 당신을 도와줄수가 없어요. 호호호, 뭘 믿는지는 모르겠...응?”
자신에게 두 팔과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쓰러져버린 아이리엔을 애타게 부르는 베라즈를 보며 비웃음을 던지던 레이린은 머리 뒤쪽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동공은 무엇인가에 놀란듯 크게 커져버렸다.
“무, 무슨 말도 안되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팔과 다리에서 피를 주륵주륵 흘리면서도 두 다리로 땅을 밟고 일어서고 있는 아이리엔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가 척하고 완전히 몸을 일으키자 뒤가 보일정도로 구멍이 났던 팔, 다리에서는 언제 그랬었냐는듯이 깔끔하게 치유가 되고 있었다.
“시,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을텐데. 뭐, 뭐지? 뭐냐고!”
일어서지도 못할 상처를 입고 기절을 한데다가,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데도 순식간에 아물어 버리는 상처, 또 다시 자신의 이해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눈 앞에서 벌어지자 레이린은 당황하며 잠시 주춤 거렸고, 그 틈을 타 베라즈는 울분을 토하듯 아이리엔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크으으... 아이리엔 저 마법사 계집을 제압해라! 죽지만 않으면 된다. 날뛰란 말이다!! 복종하라!! 크아아아아!!!”
우드득.
“캬아아아!!”
베라즈의 명령과 함께 기절을 해있던 아이리엔의 두 눈이 번쩍 띄여지며 엄청난 속도로 레이린에게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뜬 두 눈은 하얗게 흰자만이 보이고 있는데에다가, 이빨은 짐승의 그것마냥 송곳니가 돋아나있고, 민첩하게 자신을 향해 화살 처럼 달려오는 아이리엔을 보며 레이린은 깜짝 놀라 그녀를 향해 손을 들고는 주문을 외쳤다.
“매직 미사일!”
파바바바바방, 푸욱!
수 개의 화살들이 달려오는 아이리엔에게 쏟아져 나갔고, 그것들은 곧바로 그녀의 몸에 적중되며 지독한 상처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푸욱, 푸욱.
“크, 크으으...크아아!”
울부짖는 그것은 분명 한 마리의 괴물이었다. 고통으로 인해 그녀의 정신이 사라져버리고, 베라즈의 명령에 의해 종속의 고리가 발동하여 육체가 반응해 움직이고, 활동을 시작한 드레인 웜이 엄청난 재생력으로 그녀의 몸을 수복하는 더 이상 따로 말할 수 없는 괴물 그 자체였다.
“이런 미친!!”
레이린은 믿을수가 없었다, 빛의 화살에 온 몸이 구멍이 뚫리면서도 달려오는 아이리엔이 분명 자신이 알고 있던 대신관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마법에 의해 상처를 입고, 순식간에 회복하며 고통을 느끼면서도 달려드는 그녀의 모습에서 레이린은 한 생명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모, 몬스터... 꺄아악!”
아이리엔의 엄청난 모습에 놀란듯 한마디 내뱉던 레이린은 곧바로 도착한 그녀의 강력한 태클에 부딪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고, 그런 레이린의 위로 무엇인가가 휙 하고 타고 올라왔다.
으르렁 거리며 놀란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는 그것은 바로 은색의 괴물로 변해버린 아이리엔이었다.
============================ 작품 후기 ============================
음음... 주말 동안 갑자기 삘받아서 부산가서 찜질방 투어 (허심청, 베스타 찜질방)
를 하고 돌아온데다가 또 쓰라는 글을 안쓰고 갑작스레 삘받은 마법소녀물 설정과
글을 한편 두편(글은 조아라가 아닌 판도라의 상자에 있습니다) 적다가 그렇게 연대기를 못적었네요.
음... 깊은 잘못은 통감하고 있습니다.
냠... 무슨 마법소녀 물이냐, 이거나 완결하고 놀아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