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조교 연대기-68화 (68/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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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경우 [리리안]

[리리안의 경우]

베라즈로부터 도망치듯 뛰쳐나간 리리안은 새빨갛게 변해 후끈 후끈 열이 오르는 볼을 어루만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내가 왜 그랬지. 아아, 왜 그랬냐 말이야. 우으으... 부, 부끄러워. 가라고 할때 그냥 갈걸... 으으...”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마음을 진정시키듯 심호흡을 했지만, 오늘 본 그의 미소를 한번 떠올리기만 해도 그녀의 마음은 왠지 모를 감정으로 두근두근 거려왔고, 진정이 되지가 않았다.

“휴우우...”

삐둘어지고 일그러진 시작이었으나, 지금 그녀의 가슴과 머리에는 그런 생각은 차지할 자리가 없는듯 리리안의 표정은 사랑에 빠진 소녀의 그것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고고하고 드높기로 유명한 엘프 족들 중에서도 가장 특출나다는 하이엘프로 태어나 선택받은 힘을 지니고, 누구보다 강하게, 누구보다 현명하게, 그리고 선하게 자라온 그녀였지만, 베라즈와의 만남 이후 수많은 것들이 그녀로부터 바뀌어버렸다.

사랑을 모르고, 사내를 모르던 순진한 엘프 족의 처녀는 이제, 사내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 육체를 탐내는 암컷으로 전락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본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기간, 오랜 세월동안 그녀를 만들어낸 이성과 순수한 본성은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그녀의 몸과 마음을 부여쥐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뜻대로 살아오던 카이아린과 다르게, 공포로 억눌러진 아이리엔과 다르게 자신을 지키며 그의 앞에 서있을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

“후으응, 지금부터 뭘 해야하나. 베라즈한테 가기는 좀 그렇고, 자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인데...우응...”

황궁에서 딱히 자기의 일이라고 정해진 것이 없는 그녀였기에 갑작스레 남아도는 시간은 상당히 처리하기 곤란한 것들 중 하나였다.

다른 때라면 시종이나 시녀들을 도와주러 돌아다녔겠지만, 그것도 이제 시녀장에게 엄포를 들은뒤부터 불가능하게 되었기에 그녀의 고민은 더욱 깊어만져갔다.

그렇게 하릴없이 주변을 서성이며 초록 머리칼을 빙글빙글 꼬우며 돌아다니던 리리안은 다시 한번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럴때 정령들이라도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을텐데. 휴우...”

아주 어렸을적부터 정령들과의 친화력으로 인해 계약을 맺지 않고도, 놀았던 그녀로서는 지금 거의 단절되어버린 정령들과의 소통 때문에 어딘가 텅 비어있는 느낌을 항상 받고 있었다. 몸의 일부가 어딘가로 떨어져 나가버린듯한 기분에 리리안은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밴드를 갑갑한듯 잡아당기며 벗기위해 노력했지만, 제 아무리 힘을 써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밴드에 실망한듯 고개를 숙이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위스프가 보고 싶어...”

주르륵.

리리안의 두 눈에서 갑자기 맑은 두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참을 자리에 주저앉아있던 리리안은 정령들에 대한 그리움이 솟아나기 시작하자, 뇌옥에서 자신을 구하고 사라진 위스프가 떠올랐고, 그 고마움과 그리움은 그대로 눈물이 되어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조금 더 많이 불러주고, 조금 더 많이 놀아줬어야 하는건데, 내가 필요할때만 불러내고, 그 뒤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래도... 그래도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주고...”

한번 차오르기 시작한 눈물은 그치지 않고, 더욱 그녀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솟아 올라왔고, 흐느끼던 그녀의 울음소리는 이제 조금씩 울부짖음으로 변해갔다.

“흐윽...흐아아앙!!”

카이아린과의 전투, 인간들의 배신, 처음으로 당할뻔한 겁탈... 그리고 베라즈와의 만남까지...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기억들이 떠오르며 뒤엉켜가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그의 미소가 다시 한번 떠오르자 리리안은 자신의 머리를 부여쥐며 고함을 내질렀다.

“알아! 나도 안단 말이야, 모든 것은 그의 명령이었고,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걸! 하지만... 하지만 모르겠단 말이야, 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왜 그를 보며 가슴이 쿵쾅거리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고뇌하는 리리안의 모습에서 옛날의 순진하던 엘프는 없었다. 그곳에는 이제 무엇인가를 깨달아버린 한 울부짖는 여자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음을 터트리던 리리안은 조금 진정이 되는듯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을 손바닥으로 슥슥 닦아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본듯한 포즈로 자신의 허리춤에 양손을 턱하니 올려놓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핫! 그래, 뭐가 그렇게 고민이야! 힘은 쥐뿔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높은 어디사는 검은 용의 말마따나. 나의 선택, 나의 마음, 나의 결정이 따르는데로 갈뿐이야. 지금의 나는 베라즈가 좋아, 그리고 그를 도와주고 싶어. 그게 지금의 내 선택이야.”

누군가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듯한 어투로 말을 끝낸 리리안은 너무 울어서 빨갛게 부어오른 두 눈을 다시 한번 슥슥 비비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자, 그럼 일단은 이런 이상한 기분을 날려버리기 위해서 목욕이나 해볼까!”

다음 목표를 잡은듯 중얼거린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기는 리리안의 모습은 꽤나 즐거운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기분전환겸 목욕을 하기로 결정한 리리안이 도착한 곳은 그녀의 방에 딸려있는 욕실이 아닌 시종들과 시녀들이 사용하는 공동 목욕탕이었다.

리리안이 그곳으로 간 이유는 다름 아니라 시종들과 시녀들의 목욕탕에는 아주 큰 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기분전환을 할거라면 좁은 자신의 방 안에서 하는것보다 탁 트인 넓은 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하는게 좋을거라고 생각한 리리안은 그렇게 그곳으로 갔던 것이었다.

“음, 보자. 여기가 여자 목욕탕이었던가.”

여자 목욕탕이나 남자 목욕탕이나 입구는 하나에서 갈라져 나갔기에 리리안은 조금 신중하게 붙어있는 표지판을 보고는 여탕을 향해 걸어들어갔고, 들어간 여탕의 탈의실에는 일찍 업무를 끝낸 시녀 세 명이 막 옷을 벗고 있었다.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에?”

“.......리, 리리안님?”

서로 모여서 수다를 떨며 재잘거리던 시녀들은 갑작스런 리리안의 등장에 깜짝 놀라며 옷을 벗던, 그 상태 그대로 그녀를 향해 의문 가득하나 대답을 던졌고, 시녀들의 놀란듯한 표정에 리리안은 괜히 왔나하는 걱정을 하며, 조금 수줍게 몸을 모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 놀라지들 마십시오. 기분 전환 삼아서 온거니, 저도 같이 목욕해도 괜찮겠습니까?”

시녀들과 리리안은 그렇게 잠시 동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굳어있는 상태로 있었고, 왠지모르게 리리안을 바라보는 시녀들의 얼굴이 조금씩 빨개지기 시작했다.

“ㄲ...꺄...꺄아악!! 리리안님!”

“리, 리리안님이 저희랑 목욕을 하시다니!”

“아아, 나 오늘 당직 안하길 잘했어! 엉엉!”

비명을 지르는 시녀,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는 시녀, 벌벌 떠는 시녀까지 각양각색의 리액션을 취하며, 리리안을 향해 방정을 떨어대던 세 명의 시녀는 곧바로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리리안에게 달려가 그녀의 옷을 붙잡고 벗겨내기 시작했다.

“아...저, 저기 제가, 제가 할겠습니다.”

갑작스런 시녀들의 움직임에 당황한 리리안이 몸을 조금씩 꼬으며, 그녀들의 손길을 뿌리쳤지만 시녀들의 집요함을 이길수가 없었다.

“리리안님은 가만히 있으셔도 되요.”

“아아, 리리안님과 같이 목욕을 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어어, 가만히 계세요. 그렇게 하면 드레스가 안 풀려요.”

리리안은 모르겠지만, 그녀는 사실 시녀들 사이에는 꽤나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아름다운 얼굴에 상냥한 목소리, 그리고 누구나 동등하게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실력까지. 시녀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요건들을 두루갖춘 그녀였기에 리리안의 인기는 시종들과 시녀들 너 나 할것없이 최고라고 할 수 있었고, 그런 리리안이 자신들과 목욕을 같이 하겠다니, 시녀들은 흥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세 명의 시녀들로 인하여 ‘어,어’ 하는 사이에 탈의가 완료된 리리안은 부끄러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그녀의 나체를 마치 인형을 가지고 놀듯 이리저리 만지작 거리며 감탄을 터트리는 세 시녀의 행동때문이었다.

“어머어머, 이 가슴 좀 봐. 부러워요, 리리안님. 나는 언제쯤 이렇게 될까.”

“아, 으으... 주, 주물럭 거리면 안됩니다!”

“우와아, 리리안님 정말로 군살하나 없이 매끈하시네요.”

“히, 히익! 그렇게 비비지 말아주세요!”

정신없이 달려드는 시녀들의 대쉬에 리리안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절실한 감정을 느끼며, 그녀들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빠르게 탈의실 문을 열고 욕탕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아아, 리리안님! 같이가요!”

“어머, 어쩜... 리리안님은 엉덩이도 저렇게 아름다우실까...”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 처럼 리리안이 뛰어들어간 탕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간 시녀들은 순식간에 수증기가 자욱한 욕실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 들어가서도 리리안과의 쫒고 쫒기는 실랑이가 계속 되었다.

그리고 결국 참다 못한 리리안이 폭발하며, 그녀들에게 고함을 빽 지르고 나서야 상황은 잠잠 해지기 시작했다.

“후으... 죄송해요, 리리안님.”

“네, 이제는 안그럴께요...”

“하아,하아. 정말이죠? 이제 안하는거죠. 한번 더 그러면 이번에는 저 정말 화냅니다.”

숨을 헐떡이며 나직히 읇조리는 리리안의 말에 시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그제서야 리리안은 숨을 고르며 시녀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네, 좋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미안합니다. 그럼 다 같이 목욕이나 할까요?”

“!!”

“.....!”

리리안의 미소에 시녀들은 감격받은듯한 얼굴을 하며 다시금 그녀에게 달려들듯 눈을 빛냈고, 그녀들의 기운을 눈치챈 리리안은 황급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일이 터지기 전에 재빠르게 먼저 탕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풍덩.

“하으, 뜨...뜨겁다!”

급하게 뛰어든 탕 안은 꽤나 뜨거웠기에, 리리안은 다리에서부터 올라오는 간질간질한 감각에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고는, 조심스레 물 속으로 들어갔다.

“우으으... 좋다... 후아아...”

따듯하게 온 몸을 휘감아 오는 물의 기운에 긴장되있던 리리안의 몸이 사르르 풀리며, 어느새 그녀는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익숙해지자 적당히 뜨겁게 느껴지는 물이 그녀의 가슴골 사이를 왔다갔다 거리며 부드럽게 오가고 있었고, 조금씩 풀어지는 육체의 기분좋음에 그녀의 얼굴도 풀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긴장이 완전히 풀린 순간 갑자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남탕 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으아아악!!”

“우, 우왁!!”

화들짝.

꽤나 높은 남자들이 비명이 들려오자 리리안은 깜짝 놀라며 물 안에서 솟구치듯 일어났고, 벽 너머의 남탕쪽을 바라봤다.

터어엉!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여탕의 문이 벌컥 열리며 새빨간 무언가가 구르듯 여탕 안으로 들어오며 데굴데굴 굴러서 탕 안으로 떨어져내렸다.

첨벙.

“아, 뜨뜨!! 뜨거워!!”

리리안도 느꼇었지만, 갑작스레 들어오면 꽤나 뜨거운 탕이었기에, 그곳으로 굴러들어온 그 빨간 물체는 곧바로 솟구치며 비명을 내질렀고, 덕분에 그 빨간 물체의 정체를 확인한 리리안은 깜짝 놀라며 외쳤다.

“세, 세레나?”

============================ 작품 후기 ============================

오옹~ 오옹~ 오오옹~

3월부터 기술력 시험인데... 아 싫어... 회사에 한번 들어가면 끝이지 뭔 시험을 매년마다 두번씩 치냐고!

ㅜㅜ...

자, 그리고 오늘은 특별편을 위한 이벤뜨!

제조연에 궁금하신 점이라던지, 혹은 원하는 스토리 라인이 있으면 댓글로 적어주세요.

그러면 제가 귀찮아 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겠죠. ㅇㅅㅇ.... 응?

여튼 적어주시면 뽑아서 특별편을 한번 만들어 볼까 하는데, 아마도 귀찮아서 안할지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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