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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엑? 뭐... 뭐라고!
순백의 신관복, 단아하게 틀어올린 은색의 머리.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향기로운 내음이 물씬 풍겨나고,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듯한 그녀의 이름은, 이제 제국의 성녀로 다시 태어나게 될 아이리엔이었다.
그녀는 태어나 자신을 인지할 무렵부터 늘 입어왔던 이 백색의 신관복이 이제 더 이상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몸에 닿는 옷의 스침은 너무도 생소하게 느껴지고, 언제나 순백으로 빛나는 옷의 광채는 너무 눈이 부셔 더 이상 눈을 들수가 없었다.
“........어쩔수가....없잖아....”
누구에게 말하는 것일까, 신관복의 앞자락을 두 손으로 꾸욱 움켜쥔 아이리엔은 조용한 어조로 말을 하며, 고개를 푹 숙였고, 그녀의 그 한마디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변명과도 같은 이야기인듯 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참고 서있던 아이리엔은 이내 고개를 들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구겨진 신관복의 앞자락을 펴고는 앞을 향해 걸어나갔다.
방금까지도 슬픔에 잠길듯한 그녀로부터 분위기는 이제 전혀 반대가 되어 누가 보더라도 함께 미소 지을만한 그런 즐거운듯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이토록 순신간에 변화하는 그녀의 감정은 뇌옥에서 있었던 일들의 반동인지도 몰랐다. 늘 긴 은색의 생머리를 고집하던 그녀의 머리칼이 지금과도 같이 빙빙 꼬여 틀어올려진 것과 같이 말이다.
“그디어 오늘이 모든 일들이 시작되는 날인가. 미안해요, 여러분. 그래도 나 이제 더 이상 아픈 것은 싫어요. 나 이제 더 이상은 무서워하기가 싫단말이에요. 헤헤헤, 미안해요...”
슬픈듯 기쁜듯 알수없는 미소를 짓던 아이리엔은 잠시 방 안을 둘러보고는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곧 멈추어 버리고 말았다.
그 이유는 바로 문 밖에서 들리는 강한 파손음과 함께 들려오는 한 소녀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콰앙!
“어디있어! 망할 신관계집!!”
“이, 이러시면 안됩니다. 카이아린님! 그렇게 함부로 문을 걷어차시면 안됩니다.”
“닥쳐! 지금 그 인간계집을 봐야한단 말이야! 어디있어! 어디있냐고!”
문 밖에서 들려오는 자신을 찾는듯한 목소리에 아이리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 앞으로 걸어나갔고, 그녀가 문 앞에 도착함과 동시에 콰앙하며 격한 소리를 내지르며 방문이 열려버렸다.
그리고 열린 문 앞에는 얼마나 빨리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이며 씩씩 거리고 서있는 검은 머리의 소녀, 카이아린이 서있었다.
카이아린은 눈 앞의 아이리엔을 보며 헐떡이는 호흡을 가다듬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녀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차...찾았다. 하악...”
“이,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 분은 대신관이신 아이리엔님입니다. 카이아린님이 함부로 만나실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시끄러! 내가 저 년보다 낮다는 소리야 그건? 이 자식이!”
“그, 그건...”
카이아린이 아이리엔을 가르키며 그녀에게 다가서려고 하자, 카이아린을 따라온듯한 시종이 그녀를 붙잡으며 말렸고, 이에 카이아린은 더욱 격분하여 시종을 걷어차며 난리를 피워댔다.
그녀들의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시종의 입장에서는 고작 황제의 밤시중이나 드는 카이아린이 카룬 교국의 대신관이자 제국의 황궁신관인 아이리엔을 보며 함부로 대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기에, 지금 받는 취급은 그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점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입 밖에 낼수도 없는 억울함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앞에서 옥신각신하고 있는 시종과 카이아린을 잠시 바라보던 아이리엔은 더 이상 안되겠다고 생각한듯 둘의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그만하세요. 카이아린님이 저에게 할 말이 있으신가본데, 막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만 가보셔도 됩니다.”
부드럽게 말하는 아이리엔의 어조에 땀을 뻘뻘 흘리며 당혹해 하고 있던 시종은 천사를 만난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재빠르게 그 자리에서 벗어나버렸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리엔님!”
“야, 이 인간놈이! 내 말은 안듣고 저 계집이 하는 말은 들어! 크으으!!”
그리고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아이리엔에 대한 취급에 카이아린은 다시 한번 격분하며 그를 쫒아가려고 했지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아이리엔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만하십시오, 카이아린님. 저한테 용건이 있으신듯 하던데, 무슨 이유에서 그러시지요?”
그녀의 말에 시종과의 다툼으로 잠시 잊고 있던 자신의 목적을 기억해낸 카이아린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양손을 허리에 척 하고 걸치며 입을 열었다.
“흥, 좋아. 내가 찾아온 이유는 간단해, 난 빙빙 돌리는거 싫어하니까 빠르게 묻겠어. 내 몸에 생긴 두 번째 마나의 흐름에 관해서 설명해줘.”
“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툭 튀어나온 카이아린의 질문에 아이리엔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되물었고, 그녀의 표정을 본 카이아린은 갑갑한듯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니가 이 육체를 만들었잖아, 그러니까 누구보다 잘 알거 아냐! 내 배 아래 여기에서부터 어긋나는 마나의 흐름이 대체 뭐냐고!”
“에... 어긋나는 마나의 흐름요? 카이아린의 그 육체는 평범한 인간 소녀의 육체일텐데, 그것말고는 없을텐데. 어긋난 마나의 흐름이라니요? 그리고 그쪽에서 마나가 어긋나는 일은 없을텐데?”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아이리엔을 보며, 카이아린은 답답한듯 발을 동동 구르다가 한껏 비명을 지르고는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아악! 잘들어, 니가 나를 이 몸에 봉인했잖아. 그런데 이 몸은 인간 여자라고, 리리안이 그러는데 인간여자는 생리라는걸 해야한다며, 근데 왜 나는 그 생리를 안하냐고. 거기다가 여기 배 아래에서 두 개의 흐름으로 나눠지는 이 마나는 대체 뭐란 말이야. 리리안도 모르고 나도 모르니까, 이것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내 몸을 만든 너밖에 없잖아! 대체 이거 왜 이러는거냔 말이야!”
여전히 짧고 간결한 카이아린의 설명이었지만 전보다는 이해하기가 쉬웠기에 아이리엔은 그제야 카이아린이 말하는 것이 무슨 내용인지를 알아채고는 조금 심각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으음... 그랬단 말이지요. 카이아린을 봉인했을때 특별히 그 봉인의 육체에 손을 본 것이라던지 그런 것은 없었어요. 그저 가장 평범한 소녀의 육체를 만든 것 뿐일텐데... 그리고 갈라지는 두 개의 마나 흐름이라고요? 흐으음... 에... 혹시?”
잠시간의 고민을 하는듯 턱을 괴어 생각하던 아이리엔은 무엇인가 생각이 난듯 카이아린의 한쪽 팔을 잡고는 신성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야, 너, 너 뭐하는 짓이야. 뭐하려고!”
서서히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하는 신성력의 기운을 느낀 카이아린은 깜짝 놀라며 그녀에게 붙잡힌 손을 뽑아내려고 했지만 아이리엔은 더욱 완고하게 붙잡으며 카이아린을 쳐다봤다.
“가만히 계셔보세요. 확인할게 있으니까요. 나쁜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한점의 거짓도 없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리엔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던 카이아린은 잔뜩 힘을 주고 있던 손에 힘을 풀고는 그녀에게 팔을 맡겼다.
“으... 알았다. 근데 만약 허튼 수작 부리면 끝나는거야!”
“예, 걱정마세요.”
카이아린의 협조로 한층 편하게 움직일수 있게 된 아이리엔은 신성력을 마저 끌어올리며 카이아린의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게 만들었고, 잠시간 그렇게 카이아린의 몸을 확인하던 아이리엔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무...무슨 일이길래 그런 표정이얏!”
자신의 몸을 확인하던 아이리엔의 굳어있는 표정을 본 카이아린은 조금 불안한 마음에 다급하게 물었고, 그녀의 다그침에 아이리엔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카이아린...”
“왜, 뭐냐고! 빨리 말하라니까!”
“카이아린... 놀라지말고 들으세요.”
“아! 정말 답답하게 왜이래! 빨리 말이나 하라고! 죽을래!”
카이아린, 그녀 역시도 아이리엔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기만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며 다그치기 시작했고, 아이리엔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카이아린은 지금... 아기를 가졌어요.”
“...............”
아이리엔의 말 이 끝나자 주변의 모든 것이 정지한듯 조용해진 상태로 정적만이 흘렀고, 카이아린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 그...그게 정말이야? 거짓말이면... 죽는다!”
“신성력으로 확실하게 확인한 것이니까, 틀릴수는 없어요. 확실해요. 마나의 흐름이 두 개로 나눠진 이유도 확실하게 설명이 되네요. 아이가 모체에 생겨나면 하나의 육체에 두 개의 마나 흐름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
설마 설마 하던 일이 아이리엔의 입에서 확정적으로 튀어나오자 카이아린은 그대로 돌이 된듯 꼼짝하지 않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눈을 감고 서있었다.
“카이아린?”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는 카이아린을 보며 아이리엔은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을 건넸고, 그 순간 눈을 번쩍 뜬 카이아린은 아이리엔을 보며 나지막하게 으르릉 거렸다.
“너, 신관계집. 절대로 이 일, 아무에게도 말하지마. 그 누구에게도! 특히 베라즈에겐 더욱! 알았어!”
“아? 왜...왜죠?”
“시끄러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란말이야! 절대로 말하지마! 알았냐고!”
몇 번의 윽박지름 끝에 아이리엔에게 ‘침묵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낸 카이아린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벗어나며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 정처없이 한참을 뛰어나가 더 이상 뛰지 못할 정도로 숨이 차올라서야 멈추어서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하악...하악...크큭...크크큭...”
더 이상 일어설 힘도 없는듯 모로 누워 바닥에 쓰러진 카이아린은 갑작스레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숨을 쉬는건지 웃는건지 모를 웃음을 터트리다가 불현듯 고함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그렇게 가슴 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꺼내듯 고함을 내지른 카이아린은 자세를 바로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내가 아기를 가졌다고? 베라즈의 아기를? 후...후후...하하하하! 드래곤과 인간의 아이? 키득... 그래, 그래서 봉인이 제대로 안 풀어졌던 거구나. 마나의 흐름이 이미 두 개로 나눠진 상태에서 봉인이 해제됐으니 제대로 될 리가 있나. 키득...키득... 그때 큰일이 안난었던 것 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이었네. 꺄하하! 그래, 이 인간의 육체에 전반적으로 퍼져나갔어야할 봉인해제의 신성력이 너한테로도 흘러들어가 버린거였구나. 후...후후후.”
잔잔하게 그리고 어딘가 공허하게 웃음짓던 카이아린은 자신의 배를 살며시 감싸쥐고는 다시 한번 중얼거리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거야. 특히 베라즈에게는 더욱 말하지 않을거야. 나 베라즈가 좋아, 그리고 내가 원한게 아니었대도, 그가 원한게 아니었대도... 그와 나 사이에 생겨버린 이 아이도 좋아... 그렇기에 베라즈에게는 더더욱 말하지 않을거야. 그가 이 아이 때문에 봉인이 제대로 해제가 안된 것을 안다면....... 그렇기에 더 말할 수 없어. 꼭 내가 아니더라도, 베라즈 주변에는 그를 도와줄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 하지만 이 아이한테는 나뿐이야. 그러니 말하지 않을거야....”
멍하니 중얼거리던 카이아린은 다시 한번 자신의 배를 부드럽게 문지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쿠쿡...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위대한 블랙드래곤의 일족인 카이아린이 인간의 아이를 임신하고, 거기다가 그 아이를 뺏길게 무서워 숨긴다고? 하...하하! 하하하! 인간의 육체에 너무 오래 봉인되어 있어서, 바보스런 인간의 사고가 나한테도 전염되 버린건가. 아니면 그 멍청한 엘프계집이랑 같이 있어서 흐물흐물 해져버린건가.... 키득... 상관없어! 그런건! 나는 나다! 드래곤의 육체를 가지고 있을때의 카이아린도 나고! 이 인간의 육체를 지니고 있을때의 카이아린도 나다! 위대한 블랙드래곤 일족의 카이아린이 바로 나야! 필요없어,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거야! 누구의 허락도 필요없어.”
자신에게 다짐하듯 배를 문지르던 손을 꼬옥 주먹을 쥐며 부르르 떨던 카이아린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황궁 안으로 걸음을 옮겨 나갔다.
============================ 작품 후기 ============================
자, 이제 카이아린에 관련된 떡밥들도 회수가 다 됐고.
다음 화 부터는 본격적인 전쟁의 돌입 준비 인가!
대대적으로 사람들 앞에 카이아린, 리리안, 아이리엔이 소개 되겠네요.
뭐 어떻게 소개 될지는 베라즈 마음이겠지만요. 냠냠.
자 이제는 회수할 떡밥도 없는데 이렇게 1부를 종료를? 쿨럭....
아니 떡밥이 남긴했네.. 크큭 +_+
여튼 제국 연대기의 엔딩이 나오려면 아직도 한참은 남았지만...(원래 60화가 종료였따고!)
엔딩은 대략 세가지 중 하나겠네요. 가르쳐 드릴수는 없듬! 냐하하핫! 뭘로하지? 독자님들을 멘붕시킬수 있는 지독한 엔딩이 뭐 없으려나... 허억! 사...살려줒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