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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힌 아이리엔
베라즈에게 꽁꽁 묶여 붙잡힌 아이리엔은 약간 초조한듯한 모습이었지만 그렇게 크게 걱정하는 듯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가 전쟁을 원한다고는 했지만 현실은 그것이 불가능 하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제국의 재정 상태나 내부적의 불안 요인들로 볼때는 절대 전쟁을 시작해서도 시작되어서도 안되는것이 분명했기에 아이리엔의 마음은 그나마 편안할 수가 있었다.
아마도 그가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는것은 분명 교단과 교국으로부터 우위를 점해 제국에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한 아이리엔은 자신과 함께 침실에 앉아있는 베라즈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폐하. 저의 잘못에 대한 충분한 보상은 교단으로부터 해드릴테니 여기까지 하심이 어떨런지요. 저를 잘못을 이용하여 교단이나 교국의 위에 올라서려 한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까까지의 당황하고 허둥대던 아이리엔은 이제 어느정도 진정이 된듯 원래 자신의 모습대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베라즈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베라즈는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후후후, 아이리엔. 자네는 뭔가 착각하고 있군. 내가 교국과 교단을 움직이고 싶어서 이런다고 생각하나? 그럴려면 벌써 다른 수를 썻겠지.”
그의 대답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아이리엔이 되물었다.
“그럼 대체?”
“말했지 않은가. 교국과 너희 이르피온 교단과의 전쟁!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지. 크하하!”
자신을 이용하여 어느정도 얻어낼것을 얻어낸뒤 풀어줄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설마 저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정말로 했을거라고는 생각 조차 못했던지 약간 벙찐 얼굴로 베라즈를 향해 강하게 외쳤다.
“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십니까. 폐하께서는 현재 제국의 상태를 아시지 않습니까. 전쟁을 벌이는 순간 멸망입니다. 이르피온을 믿는 모든 왕국과 교단들이 제국은 그대로 놔둘것 같습니까? 그렇게되면 지금이 제국은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무너져 내릴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시고 저를 풀어주신다면 어느정도는 저희쪽에서도 물러서 드리겠습니....아악!”
짝!
말을 하던 아이리엔의 고개가 베라즈의 휘두른 손바닥에 강한 소리를 내며 꺽여졌다. 그녀의 볼은 새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하자 아이리엔은 자신에게 손을 휘두른 베라즈를 무슨 짓이냐는듯한 표정으로 노려봤다. 그녀의 그런 표정을 보며 피식 웃은 그는 한번 더 그녀의 뺨을 때려버렸다.
짝!
“아악!”
한번 더 그의 손속이 휘둘러지자 비명을 지른 아이리엔은 그의 침대 위로 쓰러져버렸다.
“네가 지금 감히 나에게 협상을 하겠다는거냐, 크큭. 감히 니가 나에게 협상을해! 그 누구도 나를 무시하지 못한다, 그 누구도 다시는 나를 업신여기지 못할것이야. 크하하, 아이리엔! 너의 그 몸뚱아리를 철저하게 짖밟아주고, 그 정신은 아무런 생각도 못하도록 만들어주마.”
분노가 이글거리는듯한 두 눈을 한 베라즈가 아이리엔의 다가가 턱을 움켜쥐며 이야기를 마저 이어갔다.
“너희 이르피온 교단이 말하는 지옥이라는게 현세에 도래하면 어떤 모습인지를 너에게 보여주도록하지. 기대해도 좋을것이야.”
정말로 지옥의 악귀를 연상케하는 일그러진 그의 표정을 보며 아이리엔은 약간의 공포를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순간 열려있던 침실의 방문 앞에 한 기사가 뛰어와 무릎을 꿇어 앉았다. 베라즈는 그런 그를 보며 조금은 못마땅한듯 말했다.
“무엇이냐, 함부로 나의 침실 앞에 들어오고.”
조금 싸늘한듯한 그의 말에 기사는 부복하며 외쳤다.
“죄송합니다, 폐하. 현재 진행상황을 말씀드리고자 왔습니다. 괜찮으시련지요.”
그런 기사를 보며 베라즈는 아이리엔에게서 몸을 돌려 그 기사의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좋다, 말해보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 기사는 가볍게 목례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 폐하. 현재 황궁 내부의 모든 신관과 신전에 있는 자들을 모조리 추포하고, 카룬 교국의 연관자들을 잡아들였습니다. 현재 몇 명은 놓쳤지만 얼마지나지않아 모두 잡을수 있을것으로 사료됩니다.”
기사의 보고를 다 들은 베라즈는 무엇인가 좋은 생각이 난듯 씨익 웃으며 그 기사를 향해 말했다.
“좋다, 수고했군. 너는 현재 잡아들인 모든 이르피온의 신관들을 신전에 모아두고 대신관 아이리엔을 그곳으로 데리고 오도록하라. 그리고 나도 지금 신전으로 출발할테니 모두에게 준비해두록 하여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커다랗게 대답한 기사는 곧바로 일어서 어디론가 달려갔고, 그런 그를 잠시 지켜보던 베라즈는 몸을 돌려 아이리엔에게 다가갔다.
자신이 다가가자 약간 움찔 몸을 떠는 그녀를 보며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 내가 무엇을 할지 궁금하지 않나? 기대해도 좋을것이다. 참, 그리고 황제암살의 시도의 처벌은 알고 있겠지. 그에 연관된 자들의 참살! 그것을 막으려면 자네가 꽤나 노력해야 할것이야. 크큭, 크하하하!”
광기서린 웃음을 터트리는 베라즈를 보며 말도안되는 소리지만 왠지 그의 말이 사실로 벌어질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에 아이리엔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게 광소하던 베라즈는 침실 밖으로 나갔고 그녀는 계속해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이 떠오르며 그의 무서움을 조금씩 느껴갔고, 아이리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화...황제는 미쳤어, 정말... 미쳐버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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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 기사들에 의하여 신전의 한곳에 모두 끌려온 이르피온의 신관들은 모두 웅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제국과의 마찰이 있을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제국이 움직일 줄은 몰랐기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듯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근위기사들을 힐끗 쳐다보며 서로 현 상황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한참 그들의 추론이 무르익어 갈 무렵 근위기사들 중 한명이 자신이 들고있던 칼을 바닥에 꽂으며 외쳤다.
“모두 주목하라! 제국의 황제 폐하, 베라즈님이 오셨으니 전부 무릎을 꿇고 인사하라!”
그 기사의 말대로 신전의 정문이 열리며 모두의 시선이 쏠린 그곳에서 금발의 청년이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누가봐도 황제라는 이름이 어울릴정도의 분위기와 압력이 느껴지는 그의 모습에 서있던 신관들이 하나 둘 무릎을 꿇으며 그를 향해 인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베라즈는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천천히 걸어나가 신관들의 앞에섰다. 그가 자신들 앞에 서서 잠시 쳐다보고 있는것을 느낀 신관들 중 하나가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황제폐하, 신관 아마르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자신에게 말을 건넨 중년의 신관을 지긋이 쳐다보던 베라즈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좋다, 말해보라.”
황제의 반응에 조금 용기를 얻은듯한 신관은 대범하게 입을 열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제국과 교단과는 현재까지 어떠한 반목없이 지금껏 잘 지내왔는데 갑자기 저희를 이렇듯 핍박하시는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만일 정확한 이유도 없이 어떠한 의심만으로 저희를 이토록 홀대하시는거라면 교단으로부터 그에따른 대가가 있을것입니다. 그러니 속히 저희를 풀어...”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나가던 신관은 점점 서늘해지는 분위기를 느끼고는 꿀꺽 침을 삼키며 자신의 앞에 다가온 베라즈를 쳐다봤다. 그의 눈에 비친 베라즈는 시리도록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한손에는 그의 검을 들고 있었다.
“너희 신관들은 어찌 그토록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군. 그토록 너희 교단이 대단하고 교국의 위세가 하늘 높은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모든 왕국과 왕들이 너희 밑에 있다고 보는것인가! 크크큭, 무슨 말을 하나 들어보려고 했지만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나는 너희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협상을 하러 온것이 아니다! 너희들에게 마지막 통보를 하러 온 것이다. 너희는 모두 황제를 암살하려한 반역죄로 처단당할것이다.”
“!!!”
베라즈의 마지막 말에 신관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변하며 모두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그들 중 베라즈에게 이야기를 걸던 중년신관은 새파랗게 변한 안색으로 떠듬거리며 말했다.
“무, 무슨 소리십니까. 암살이라니요! 대체 그런 누명을 저희에게 뒤집어 씌우고도 제국이 무사하시리라 봅시는 겁니까!”
“호오, 누명이라. 여봐라! 암살자를 대려와라!”
베라즈의 명령과 함께 신전의 문이 다시금 열리며 온 몸이 밧줄로 묶인 아이리엔을 기사들이 그의 앞으로 끌고 와 무릎을 꿇렸다. 베라즈는 기사들이 데리고온 아이리엔의 은발을 부여잡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고, 머리채가 붙잡힌 아이리엔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나오며 여기저기서 그를향한 비난이 터져나왔다.
“아악!”
“무슨 짓입니까! 교국의 차기 성녀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 법은 그 어느 왕국에서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짓입니까! 신관을 그런식으로 대하다니요! 이르피온님의 분노가 두렵지 않으신겁니까!”
“아이리엔님이 암살자라니 그게 대체 말이 되는 소리라고 하시는겁니까. 황제여, 정신을 차리시지요!”
모두 제각기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의 분노를 터트리듯 베라즈와 그의 기사들을 향한 외침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신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엉망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어지러워지기 하는 상황을 보며 잔인하게 미소 지은 베라즈는 자신의 검을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너무 시끄럽군.”
촤악!
그의 검이 내리쳐지자 바로 앞에 있던 신관의 가슴팍이 붉은 빛으로 물들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순간 방금까지 난장판이던 신전이 자신들의 눈 앞에 벌어진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기 시작하는 자들 때문에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제국의 황제가 신관을 죽였다.
이것은 지금까지와 다른 하나의 커다란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륙의 그 누구도 그 어떤 왕국도 스스로 신관들을 건든 자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는것이 맞으리라, 신관에게 위해를 가한 자들은 그 신관이 아닌 교단과 교국, 그리고 이르피온을 믿는 모든 왕국의 공격을 받는다는것과 똑같은 말이었기때문이었다.
황제 스스로가 정말로 교국과 교단과의 전쟁을 선포하겠다는 말과도 같은 이 믿기지 않는 상황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제국의 황제, 베라즈에게로 모였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과 조용해진 신전으로 인해 흡족해진듯 살며시 미소지은 베라즈가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야 조용하군. 말했지 않은가, 나는 너희들에게 통보를 하러 온 것이라고. 왜 죽는지 이유는 알아야 죽어서 이르피온의 천국에 가더라도 원통하지는 않을것 아닌가. 크큭. 너희들은 여기 붙잡혀온 대신관 아이리엔의 황제 암살죄에 연루된 자들로서 제국법에 따라 즉결 처형 될것이다!”
그의 말이 끝남과 함께 모든 신관의 시선이 아이리엔에게 쏟아져나갔고, 그런 그녀는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는 듯한 그들의 시선에 더듬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화, 황제의 말은 틀립니다! 제가...제가 황제의 방에 들어간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암살의 시도나 또한 다른 짓은 한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전부 황제의 음모입니다! 믿어주세요!”
다급하게 외치는 아이리엔의 열변을 듣던 베라즈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품에서 이르피온의 대거를 꺼냈다. 그리고 그 대거를 신관들에게 잘 보이도록 들어 올리며 외쳤다.
“보이는가, 이것은 너희들 이르피온 교단의 여신관들에게 나누어지는 이르피온 대거이다. 이것이 내 손에 있는 이유를 아는가! 바로 그녀가 이 대거를 가지고 나를 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너희 신관들도 생각이 있다면 말해보거라, 내가 과연 이 대거를 대신관의 가슴에서 꺼내어 훔쳐내고는 암살죄를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녀의 입에서 나온대로 그녀는 내 방에 침입했다! 그리고 나를 해하려다 실패하고 이렇게 붙잡혔다. 내가 왜 교국과 교단과의 전쟁 위험을 무릎쓰고 너희들에게 이렇게 하겠는가, 정당한 이유가 있으니 그런것이다! 제국의 법이 바로 서있음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교국도, 교단도 그녀와 너희들을 도우려면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할것이다. 크하하.”
그 사이에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생각해낸 베라즈를 쳐다보며 경악에 찬 아이리엔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미...믿지 마세요! 황제는 미쳤습니다!”
“보아라, 제국의 황제에게 이런 말도 서슴치 않는 신관의 말을 믿겠는가? 모든 것은 진실이다! 너희들의 저승길에 던져줄 변명거리는 이야기 해주었으니, 그럼 지금부터 집행을 시작한다. 들어라! 기사들이여!”
“예!”
베라즈가 외치자 모든 기사들 자신들의 검을 가슴팍으로 올리며 우렁차게 외쳤다.
그런 기사들을 한번 훑어본 그는 자신도 검을 고쳐쥐며 명령했다.
“모든 기사들은 반역도들을 처단하라!”
“예!”
기사들의 입에서 다시 한번 우렁찬 대답이 터져나오고 모든 신관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그리고 잠시 뒤 이르피온의 신전에서는 남녀 할것 없이 신관들의 비명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새하얗던 신전 대리석의 바닥은 점점 붉은 빛으로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