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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는 음모
다시 급류가 흐르고 있는 동굴 밖의 모래공터에 도착한 베라즈는 자신이 헤집은 마법진 위의 모래더미를 다시 잘 덮고는 동굴 입구로 걸어갔다.
그의 양손에는 여전히 시종에게서 받은 두 개의 약병들과 갈색의 가죽 주머니가 들려있었다.
잠시 동굴 안을 쳐다보던 베라즈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흐흐흐, 이제부터 즐거운 시간이다, 리리안.”
그는 들고있던 약병 중 하나를 뽑아 들고는 뚜껑을 열었다.
시큼한 냄새가 물씬 풍기며 전혀 입을 대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베라즈는 꾹 참고 입을 가져다 대고 벌컥이며 그 안의 액체를 마셨다.
“크으, 대체 이 해독제 종류는 뭐가됐든 이렇게 쓴것인가.”
약병 안의 액체로부터 강렬한 맛이 느껴지는지 인상을 잔뜩 찡그린 베라즈는 들어있던 약병의 액체를 마저 다 마시고는 저 멀리 던져버렸다.
여전히 텁텁하게 올라오는 해독제의 맛에 한번 몸을 부르르 떨고 다음 약병을 꺼내든 베라즈는 천천히 그 뚜껑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까의 그것과는 다르게 향긋한 향기가 풍겨나왔다. 약병을 들어 그 향기를 한번 음미한 베라즈는 기분이 좋은듯 웃으며 그 병 안의 액체를 동굴 입구에 골고루 뿌리기 시작했다.
그 뿌려진 액체에서는 병 밖으로 나왔음에도 여전히 향긋한 향기가 솟아 올라오며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을 따라 천천히 동굴 전체에 퍼져나갔다.
두 개의 약병을 모두 다 쓴 베라즈는 가죽 주머니를 풀어 그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그곳에서부터 나온것은 축 늘어진 푸른 색의 뱀 한 마리와 조그마한 붉은색 보석이 박혀있는 반지였다. 바닥에 뱀을 내려두고 반지를 낀 베라즈는 보석을 살짝 어루만지며 가만히 있는 뱀에게 명령을 내리듯 생각했다.
‘몸을 숨겨라.’
움찔.
여태까지 축 늘어져 아무 움직임이 없던 푸른 뱀은 그가 생각함과 동시에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며 동굴 벽을 따라 스르르 모래 안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패밀리어라, 역시 마법은 굉장하군. 크큭.”
레이린의 마법으로 반지에 결속되어진 푸른 뱀은 이제 그 반지를 소유하고 있는 베라즈의 수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시 한번 반지를 쓰다듬은 그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동굴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아직 꺼지지 않고 따듯하게 동굴에 온기를 채워주고 있는 모닥불 옆에 여전히 새근새근 거리며 자고 있는 리리안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무런 걱정도 하지않고 순진하게 자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베라즈는 그 태평함에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엘프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바로 저 이상하리만치 무신경함 아닐까?’
그가 엘프에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는 동안 동굴 전체를 채우고 있는 향기가 조금씩 옅어지며 리리안의 얼굴에서 홍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결에 조금 갑갑한듯 자신의 가슴을 옥쥐고 있는 셔츠의 깃을 붙잡고 뒤척거렸다.
“호오, 벌써부터 효과가 있는건가. 역시 괜히 서큐버스의 숨결이라고 불리는게 아니군.”
그가 말한 서큐버스의 숨결이라는 약품은 가장 강력한 미약 중 하나였다. 여러 가지 미약들을 섞어 특수한 조제법으로 제작한 이 미약은 직접적으로 한번 향기를 흡입하기만 해도 몸에서 끓어오르는 욕정을 주체 할수 없게만드는 강력한 약들 중 하나였다.
리리안에게 직접 이 약을 먹이거나 맡게 할수 없었기에 베라즈는 엄청난 양의 약품을 그대로 동굴 입구에 뿌려버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몸으로 흡수될수 있게 했던 것이었다.
직접적으로 흡수하게 한것이 아니라 그 효과가 원래보다 많이 반감될지라도 베라즈의 계획상으로는 그정도로 충분한 것이었기에 그다지 신경쓰지는 않았다.
약의 효과로 인하여 몸에 차오르는 열 때문인지 괴로운듯 리리안이 신음을 흘리며 살며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으음...응...”
그녀가 눈을 천천히 뜨는것을 보고 베라즈는 여태까지의 음습한 미소를 지우고 활짝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일어났어, 리리안?”
눈을 뜨자마자 그의 미소를 본 리리안은 왠지모르게 아랫배가 욱신거리며 가슴이 떨리는 느낌에 황급히 그의 얼굴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네에. 흐흠. 베라즈, 미...미안하지만 물 좀 부탁드릴게요.”
“응, 알았어. 잠시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행동에 베라즈는 속으로 웃으며 물을 뜨기 위해 동굴 밖으로 걸어나갔다. 베라즈가 사라지자 리리안은 여전히 쿵쾅거리며 뛰고 있는 가슴 위로 손을 얹었다.
두근,두근.
빠르게 뛰고있는 심장박동이 가슴 너머 손으로 전해지는게 느껴졌다. 리리안은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과 자신도 그에게 호감이 생겨버렸다는것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방금 처럼 그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은 없었기에 더욱 방금전 생긴 몸의 변화와 감정에 당황스러웠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 얼마전 뇌옥에서 간수들이 자신에게 하려던 짓과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전히 그들을 생각하면 화가 머리에 치밀어 올랐지만 그게 만약 베라즈였다면 이라고 생각을 하자 다시금 아랫배가 아려오는게 느껴졌다.
망상을 떨쳐버리기 위해 두 눈을 꼭감고 머리를 흔들어봤지만 망상은 점점 더 짙게 그녀의 머리 안을 헤집을뿐 사라지지가 않았다.
“뭐해?”
탈탈 머리를 흔들고 있던 중 그녀의 옆에서 베라즈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리리안은 어찌나 놀랐는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히끅!”
“뭘 그리 잘못하다가 들킨 사람 처럼 그러는거야. 자, 여기 물 마셔.”
“히끅, 네. 히끅.”
물을 마시는 도중에도 솟아나는 딸꾹질에 마시는건지 뿜어내는건지 모르게 입 안으로 집어넣듯 물을 마신 리리안은 가슴을 두들기며 딸꾹질을 멈추려고 했다.
“히끅.”
“아아, 안되겠는데 얼굴이 빨개.”
딸꾹질 때문인지 아니면 망상때문이었는지 점점 더 불게 변해가는 리리안의 얼굴을 보며 베라즈가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만졌다.
그의 부드러운 손길에 리리안은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하, 히끅! 하지마요!”
“응? 왜그래, 볼에서 열이나는데 셔츠만 입고 있어서 뭐 다른 병에 걸린것 아니야?”
“아니에요, 에, 히끅. 엘프는 왠만한 병에는 안걸리니 걱정, 히끅. 걱정 안해도 괜찮아요. 그냥 딸꾹질 때문이니까, 걱정하지마요.”
“리리안이 그렇다면 뭐 알았어.”
베라즈가 그녀의 볼에서 손을떼어내자 그제서야 약간은 진정된듯 리리안은 딸꾹질을 멈추어갔다. 다시금 조용하고 어색한 침묵이 동굴을 뒤덮고 리리안의 딸꾹질 만이 울렸다.
꽤나 시간이 지나서야 그녀의 딸꾹질이 멈추고 둘 사이엔 이제 완전한 침묵이 흘렀다.
여태까지 처음 빼고는 이런식으로 침묵한적이 없었기에 조금 더 어색한 기분에 리리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리리안.”
그녀가 입을 벌려 그를 부름과 동시에 베라즈도 그녀를 불렀다. 서로는 황급히 얼굴을 붉히며 손을 흔들었다.
“아, 리...리리안이 먼저 이야기해.”
“아니요, 베라즈가 먼저...”
조금씩 뒷말을 흐리는 리리안을 보며 베라즈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난 그저 그냥 조용한게 조금 어색한듯해서 뭐라도 말을 하려고 그랬던건데.”
“후훗, 저랑 같네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리리안이 가볍게 미소지었고, 베라즈 역시 웃었다.
그러던 중 둘의 눈이 공중에서 마주치며 눈빛이 얽혔다. 그의 눈빛이 조금은 부담스러운듯 어색하게 미소짓고 있는 리리안을 보며 베라즈가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리리안.......”
이름을 부르며 살며시 다가오는 그의 접근에 리리안은 잠시 움찔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척 고개를 살짝 돌리며 화제를 다른대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 지금 밖은 날씨가 어때요? 요 근래에 한번도 나가본적이 없어서 궁금하네요. 하...하하...”
떨리는 목소리로 웃고있는 리리안에게 다가간 베라즈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어깨를 잡고 그녀를 뒤로 넘어트렸다. 이상하게도 머리에서 반항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는 몸을 움직일수가 없었다.
쓰러져있는 그녀의 몸 위로 베라즈가 덮치듯 쓰러지며 그녀의 목 주변에 따듯한 입김을 불어냈다.
“하아...리, 리리안...하아...”
“무, 무슨 짓이에요. 이...이러면 안돼요, 베라즈. 베라즈?”
목을 통해 올라오는 그의 뜨거운 입김과 목소리에 몸에서 짜릿한 감각이 느껴지며 머리가 잠시 멍해진 리리안은 무엇인가 이상한 감각에 정신을 차렸다.
“?!”
덜덜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왠지 이상하게 들린다는것을 눈치챈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자신의 위에 누워있는 베라즈를 밀쳤다.
그녀가 미는데로 널부러지듯 쓰러진 베라즈의 발 아래에서 푸른 색의 뱀이 혀를 낼름거리며 나타났다가 스르륵 모래 속에 몸을 파묻고는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사라진 그 푸른 뱀을 보자마자 리리안은 경악에찬 비명을 질렀다.
“프, 프로즌 스네이크!”
그녀가 놀라는 이유는 따로 없었다. 바로 그 푸른 뱀은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는 맹독사였기 때문이었다.
차가운 물이나 눈지대에 사는 그 뱀은 계곡이나 산 위에서 정말 귀하게 볼수있는 종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뱀의 독에는 냉기의 마나가 몰리는 성질이 있었다.
뱀 자체의 독만으로는 그저 가벼운 열정도만 날뿐인 가벼운 독이었지만, 정말 무서운것은 그 독에 내포되어 있는 냉기의 마나였다.
물리는 순간 전신에 그 마나가 퍼지며 물린 자의 몸을 동사시켜버리는 무서운 독이었다.
치료법은 오로지 그 마나는 뽑아내는 방법뿐, 그렇기에 마법사나, 마나를 다룰줄 아는 기사들에게는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지만, 평민들에게는 물리는 순간 응급조치를 하지않으면 바로 죽는 그런 존재였다.
절망적이었다. 리리안이 아는한 자신의 눈앞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베라즈는 절대 마나를 다룰수있는 몸이 아니었다.
인간 중에 그저 머리가 조금 똑똑한 혈통을 잘 타고난 인간들 중 하나였을뿐 그 본 육체의 능력은 보통 인간과 다를바가 없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
리리안은 다급하게 숨을 헐떡이는 베라즈의 몸을 만졌다.
“베라즈! 베라즈!!”
이미 독이 퍼지기 시작하는듯 몸이 싸늘하게 변해가는것이 그녀가 움켜쥐고 있는 그의 몸으로부터 느껴졌다.
이미 그녀의 목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듯 서서히 차가운 입김이 그의 입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안돼! 베라즈! 정신을 차려요! 베라즈!”
그녀의 간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점점 더 딱딱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미 독이 퍼지기 시작해 더 이상 방법이 없음을 깨달은 리리안은 잠시 그를 쳐다보다 굳은 결심을 한듯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과연 무슨 결심을 했을까요!
응급조치는 뭐지?
뻔한것을 훗...
[차회예고]
셔츠를 다 벗은 리리안은 민간요법을 실시하기로 결심했다.
베라즈가 뱀에게 물린 부위를 이리저리 쳐다보던 리리안은 그가 물린 부위를 발견하고 모닥불을 가져와 그의 상처를 지져버렸다.
"끄르륵..."
리리안은 베라즈의 입에서 거품이 일었지만 상관없다는듯 어디선가 나타난 약병을 쥐고는 쏟아부었다. 와르르 쏟아진 알약을 곱게 가루로 만든 그녀는 그의 상처붙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스피린은 소독약 작용을하지, 그 원리는...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참을 베라즈의 치료에 전념하던중 리리안은 다시금 나타난 푸른 뱀을 발견했다.
그 뱀은 혀를 낼름거리며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쉿 쉬쉿 쉬쉬쉿 쉿.
몇번을 그 녀석의 공격을 피하던 리리안은 씨익 웃으며 외쳤다.
"너의 공격패턴은 파악됐다! 강약 중강약! 자진모리장단!!"
격렬한 뱀과의 파이트에서 리리안은 승리했지만 그 사이 베라즈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베라즈의 원대한 꿈은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게되었다.
응? 뭔가 잘된것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