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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조교 연대기-14화 (1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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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 리리안과 베라즈

“일단은 먹을수 있는것부터 찾는게 좋겠군. 리리안, 자네는 몸을 회복하는데 전념해주게. 그럼 나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음식을 조금 찾아올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를 부탁드리지요.”

간단히 리리안에게 말을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 베라즈는 동굴 입구로 걸어가던 중 무엇인가 생각난듯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불럿다.

“아, 리리안.”

베라즈의 부름에 다시 금 자리에 누우려던 그녀는 그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시지요?”

“혹시 자네 엘프들은 인간들의 이야기 처럼 육식을 전혀 하지 않는건가?”

“푸훗!”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리안은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으며 작게 웃었다.

“후후훗, 아하하하. 흠흠, 아 죄송합니다. 예의에 어긋나는 짓을 했군요. 왕께서 지금 하신 일들과 다르게 순진한 이야기를 물어보셔서 잠시 웃음이 터졌습니다. 다시 한번 사죄드리지요. 저희 엘프들도 육식은 한답니다, 물론 인간들 처럼 대량으로 잡거나, 사육하고 그러지는 않지만 가끔 저희가 먹을만큼은 사냥으로 가끔 해결 한답니다. 후후훗.”

베라즈는 조금 머슥한듯 머리를 긁적이며 한번 씨익 웃고는 몸을 돌렸다.

“그렇군. 그럼 안심이네. 몸 조리 잘하고 있게. 하하.”

그가 완전히 바깥으로 나갔음을 확인한 리리안은 자리에 누우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뭔가 어딘가 어색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게 딱히 뭔지를 모르겠어, 대체 이 기분은 뭐지. 으음... 마력만 회복이 된다면 금방이라도 알수 있겠는데. 하아... 아무래도 적이었던 인간과 이렇게 있다는것 자체에 이상한 느낌을 느끼는것 같네. 그나저나 베라즈라고 했던 저 인간들의 왕... 생각보다 순진한 구석이 있네. 푸훗.“

이런 저런 생각과 고민을 하던 리리안은 금새 그 자리에서 사르르 잠이 들었다.

동굴 안은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조용한 가운데 그녀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바깥은 물 흐르는 소리만이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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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안은 한참을 잘자고 있다가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에 살며시 눈을 떳다.

“으음....”

자신이 잠든지 얼마나 지났는지 궁금해진 리리안은 동굴 바깥을 바라보았다. 입구의 통로를 향해 작은 달빛만이 들어오는것을 보니 벌써 밤이 되고도 남은 시점인듯 했다.

‘나 꽤나 오래 자버린 모양이네.’

“아, 일어났는가. 때마침 깨우려고 하던 참이었네만.”

리리안은 자신의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작게 비명을 질렀다.

“꺅!”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리리안이 아래를 쳐다보자 그곳에는 간단한 모닥불을 피우고 물고기를 굽고있는 베라즈가 보였다.

깜짝 놀라고 있는 그녀를 보며 베라즈는 한번 웃어주고는 그녀에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물고기 하나를 건넸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나, 자, 여기 다 구워졌으니 한입 먹게.”

“아, 네에.”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향해 잘 구워진 물고기를 건네는 그를보며 되려 그녀는 자신이 부끄러워지는것을 느꼇다.

‘아우아우, 매번 이렇게 놀래서야. 일단 지금은 적이 아니라, 동료라고 생각하고 지내야겠어.“

화끈거리는 얼굴을 간신히 진정시킨 그녀는 베라즈가 건네는 물고기를 받아들고 한입 베어 물려고 했지만 그녀를 지켜보던 베라즈가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

“어어, 잠시 기다리게나. 이거 그냥 그것만 먹으면 쓰나. 그렇게 먹으면 그다지 맛이 없다네. 여기 이 소금을 찍어서 먹어야 맛이 있지.”

그렇게 말하며 모닥불 주변에서 작게 기름 종이에 쌓여진 흰색 가루를 펼쳐놓은 베라즈는 리리안에게 그곳에 찍어먹기를 권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의심을 버린것은 아닌 리리안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베라즈는 그녀의 눈빛에 대략적인 뜻을 알아챈듯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는 자신도 모닥불 앞의 물고기를 하나 뽑아들어 살며시 살점을 뜯고는 그 흰가루에 찍어서 먼저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캬아, 맛있구만. 역시 황궁에서 요리사들이 해주는 음식보다 소금 하나만 있더라도 내가 직접 만들어서 먹는게 맛있다니까. 뭘하고 멀뚱히 섰나, 소금 맞으니 먹으면 되네. 이 상황에 내가 뭐 따로 이상한 짓이라도 할것 같은가.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베라즈를 보며 자신의 생각이 들킨것을 안 리리안은 다시금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물고기를 뜯어 그 소금에 찍어 먹기 시작했다.

‘음... 의외로 맛이있다. 인간들의 왕치고는 소탈한 면도 있는 자였구나.’

그가 내민 가루에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그녀는 괜히 다시한번 그를 의심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그를 향한 약간의 믿음이 생긴것을 느꼇다.

‘이런 때에는 아무리 인간이라고 하지만 정도는 지키는것 같네. 그런데...’

리리안은 가만히 물고기를 먹으며 베라즈를 힐끗힐끗 하며 훔쳐보듯 살며시 쳐다봤다.

20대 후반의 나이라고 들었지만 되려 그보다 젊게 보이는 그의 얼굴, 흘러내리는 금발을 뒤로 질끈 묶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이마, 자신에게 상의를 벗어준 탓에 상체가 그대로 드러나며 움직일때마다 꿈틀거리는 잔근육들...

찌릿.

‘으윽...뭐...뭐지 이건. 무, 무슨 느낌이야.’

그를 계속해서 훔쳐보던 리리안은 갑자기 아랫배에서부터 무엇인가 짜릿한 기분이 드는것에 놀라 먹고있던 물고기를 떨어트려버렸다.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에 베라즈가 고개를 돌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것을 보았다.

“흠, 왜그러나. 맛이 없는가? 아니면 가시때문인가. 으음... 역시 좀 더 익혔어야 했나?”

“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물고기는 맛이 있었습니다만...”

그녀가 말끝을 흐리자 베라즈는 턱을 쓰다듬으며 되물었다.

“다만? 그럼 뭔가 다른 이유라도 있는건가.”

그의 질문에 리리안은 화들짝 놀라며 손사레를 쳤다.

“아닙니다. 그저 조금 뜨거워서 놓쳤을뿐입니다. 마저 드시지요.”

“흠, 그럴수야 있나. 나보다야 자네가 환자니 내것 마저 먹도록 하게. 나는 내일 더 잡아서 먹으면 되니 말일세.”

베라즈가 물고기를 건네기위해 그녀의 가까이에 다가오자 물씬 풍기는 그의 냄새에 리리안은 다시한번 올라오는 이상한 감정에 얼굴이 달아오르는것을 느꼇다.

‘무...무슨 기분이지, 이 기분은. 아까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혹시 저 소금 때문에? 아니야, 그도 같이 먹었잖아. 대체 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엉겁결에 그가 건네준 물고기를 받은 리리안은 가슴에서부터 올라오는 이상한 기분을 천천히 가라 앉히며 황급히 식사를 마쳤다.

그녀가 식사를 마치자 남은 소금을 다시 곱게 싼 베라즈는 자신의 구겨진 갑옷으로 다가가 상의 갑옷의 한쪽 인장을 살짝 눌렀다.

탈칵.

무엇인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갑옷에 있던 인장이 튀어나오며 조그마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구멍 안으로 주섬주섬 소금을 챙겨넣던 베라즈는 리리안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것을 보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원래 전쟁에 나가면 이런건 기본으로 만들어 두는 것일세. 아무리 왕이라도 이것저것 챙기지 못할때가 많거든. 하하.”

가볍게 웃는 그를보며 리리안은 살그머니 고개를 돌리고는 자리에 다시금 누웠다.

동굴에서 일어났을때부터 느껴지는 이상한 위화감과 갑작스레 생긴 그를 향한 감정들이 변화와는 거리가 먼 그녀에게는 너무도 피곤하게만 느껴졌다.

살짝 고개를 돌려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는 베라즈를 잠시 바라보던 리리안은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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