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조교 연대기-13화 (1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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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 리리안과 베라즈

“으으음...으음...”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던 리리안은 타는듯한 갈증에 눈을 떳다.

“아아, 무...물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물을 찾는 그녀의 눈 앞에 왠 손이 쭉 내밀어졌고 그 손에는 간단하게 만든 컵 같은 것에 물이 찰랑이며 들어있었다.

“감사합니다.”

아직 멍해진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리리안은 짤막하게 인사를 하고는 아무 생각없이 그 컵을 받아들고는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어느정도 갈증이 해소되고 시원한 물이 몸을 일깨우자 그제야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에게 컵을 준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다, 당신은! 이 악적! 꺄아악!”

그녀에게 물을 건네준 자는 다름 아닌 금발의 청년인 베라즈였다. 상의를 벗고 있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리리안은 크게 분노하며 그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지만 두 다리에서 올라오는 강렬한 통증에 다시 바닥에 주저 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대체 이게 무슨, 으으윽. 다리가 크으.”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며 베라즈는 천천히 다가가 다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입니까. 저리 가지 못하겠습니까! 아으으윽!”

윗통을 벗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베라즈를 보며 그녀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지만, 자신을 향해 고함을 치는 그런 리리안을 무시하듯 베라즈는 퉁퉁 부어있는 그녀의 다리만을 관찰하며 슬쩍슬쩍 만져댓다.

그리고 턱을 괴고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흠... 이거 부러졌군. 한동안 움직이면 안되겠는데, 지금 잘못 활동하면 뼈가 어긋나 붙겠어. 잠시 부목을 찾아올테니 움직이지 말도록해라.”

자신이 할 말만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지는 베라즈를 보며 그녀는 그의 등 뒤로 무엇이라 더 말하려 했지만 금새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침음성을 삼켜야했다.

그가 사라지고 나자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은 리리안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분명히 자신의 기억상 베라즈 그를 끌어안고 같이 죽을 생각으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기는 했는데 어째서 자신과 그가 둘다 살아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뛰어내리며 정신을 잃은탓인지 그 뒤의 기억이 전혀 나지가 않았다. 결국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는것을 포기한 그녀는 그대로 자신의 상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시커멓게 천정에 달려있는 종유석과 깊숙한 굴, 우둘투둘하게 솟아있는 돌들을 보며,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떤 동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동굴의 앞쪽에서 거세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절벽 아래의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한 동굴인듯 했다.

자신이 누워있는 등 뒤로 얇게나마 깔려있는 부드러운 풀들과 알몸인 자신의 육체에 덮혀있는 인간왕국의 문장이 찍혀있는 옷들, 그리고 동굴 한쪽 구석에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정도로 찌그러져있는 그가 입고 있었던 갑옷들의 상황으로 보아 대충적으로 상황은 파악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를 끌어안고 뛰어내린뒤 자신은 정신을 잃었고, 그만이 정신을 차리고 저 갑옷이 엉망이 될정도록 필사적으로 자신을 구해냈으리라.

그를 이렇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자신을 위해 배려해준 그를 조금 새롭게 보게된 리리안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무, 무슨 생각입니까. 그는, 그는 인간들의 우두머리입니다. 그가 이렇게 했다는것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어서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리리안 당신은 또 속으면 안되는겁니다.”

그렇게 그녀 스스로 다짐을 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동굴로 돌아온 베라즈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무엇을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건가, 가만히 있어라. 조금 아플테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이 힘드니 참아라.”

그리고 리리안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는 그녀의 다리에 가져온 부목을 대고는 자신의 바지 일부를 찢어 붕대 처럼 사용해 묶기 시작했다.

“으으윽, 조...조금 살살 하십시오.”

아마도 그의 말대로 부러진게 확실한듯 붕대가 한번씩 감길때마다 끊어질듯한 고통이 엄습해오며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리리안이었다.

양 다리에 부목을 감으며 그가 치료를 하는동안 리리안은 치밀어오르는 고통을 참느라 그 얼굴이 빨갛게 변할정도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하아...하아...다, 당신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겁니까. 난 당신을 죽이려고 했을텐데요.”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바라보는 리리안을 보며 베라즈는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도 너를 가두어두지 않았는가. 우린 서로 똑같은 존재들일 뿐이지. 그저 지금은 내가 그대를 도울수가 있고 그대는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것만이 중요한것이다.”

그의 대답에 조금 색다른 기분을 느낀 그녀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에게 다시금 물었다.

“그건 말이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죽이려고했고, 당신을 죽을뻔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죽음의 위협 속에서 스스로를 먼저 구하지않고 나까지 구했다는것은 있을수가 없는 일입니다! 대체 어째서 이런겁니까.”

그녀의 대답에 잠시 턱을 괴고 생각하던 그는 툭 던지듯 말했다.

“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는 나도 알수가 없군. 원래 인간이라는게 자신 스스로도 잘 모르는것 투성이라 말이지. 그냥 네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 것쯤으로 해두지.”

“무슨 말도 안되는...!”

얼굴을 확 붉히며 무어라 외치려던 그녀는 베라즈의 방해에 하려던 말을 마저 다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베라즈가 넌지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일단은 그 내가 준 옷부터 입으면 안되겠나,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나도 남자라서 말이네.”

“???....!!!!!”

그의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했던 리리안은 불현듯 드는 생각에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처음에 그가 덮어줬던 상의가 흘러내려 겨우 자신의 그곳만을 가리고 있었고, 핑크빛 유두가 오똑한 가슴이 그를 향해 자신을 뽐내듯 솟아 올라있는것을 말이다.

“......아......히익.......꺄아아아악!! 이 악적! 저...저리 고개 돌리지 못하겠습니까!! 어서, 어서요!”

“가...가만히 위험하다고! 이봐! 으윽!”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치는 그녀 때문에 치료를 하다가 손이 뒤엉킨 베라즈는 그대로 그녀의 위로 넘어지며 그녀의 위로 올라탄듯한 자세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베라즈가 넘어지려는 몸을 버티기 위해 뻗었던 손이 리리안은 자신의 가슴에 닿아있는 것을보고는 다시 한차례 몸부림을 쳤다.

“어...어디를 만지는!! 으읍!”

그녀의 몸부림때문이었을까. 그녀의 가슴을 쥐고 있던 베라즈의 손이 미끌어지며 그대로 그녀와 그의 거리가 좁혀지며 서로의 입술이 살며시 부딪혔다.

실수라고는 하나 태어나 처음으로 당하는 이성의 입맞춤에 터질듯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리리안은 그에게 따지듯 외쳤다.

화끈.

“으으읍. 파하. 무...무슨 짓입니까!!”

베라즈도 얼굴을 살짝 붉히며 괜한 헛기침을 하고는 그녀에게서 떨어져 시선을 이곳 저곳으로 돌려대며 연신 볼을 긁적였다.

“흠흠...부...불가항력이었다. 자, 자네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것일세. 흠흠.”

그의 말도 맞는 말이었기에 리리안은 그저 붉게 얼굴을 붉히고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않고 천천히 그가 벗어준 옷을 챙겨입었다. 그러나 성인 남성의 옷이여서 그런듯 그의 셔츠는 그녀에게 조금 헐렁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차라리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지도 몰랐다. 그가 준 옷에는 바지가 없었기에 허벅지까지 내려가는 그의 셔츠가 그녀의 비밀스러운 곳을 가려주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그녀는 안도했다.

리리안이 옷을 다 입은듯 하자 다시금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린 베라즈가 천천히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크흠, 진정이 좀 된듯하군. 자 이제 그럼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부터 찾아야 할때인것 같네만?”

그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던 리리안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네요. 잠시 당황해서 못난 모습 보인점 죄송합니다. 일단 적이라도 지금은 같은 상황에 놓인 자들이니 서로 협력하는것도 괜찮겠지요. 하지만 이곳을 벗어나는 순간 당신과 나는 적이라는것을 잊지마십시오.”

살며시 눈을 흘기며 자신을 바라보는 리리안을 보며 베라즈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래 알겠네. 그대에게 나란 존재는 용서할수 없는 자겠지. 그 점은 이해한다네.”

“그렇다면 일단 이곳을 빠져 나가려면 힘이 필요할텐데 이 봉인구를 좀 풀어주십시오.”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개목걸이를 가르키며 말하는 리리안에게 베라즈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네만, 그건 나로서도 해제 할 수가 없네. 황궁마법사 레이린이 설치해둔것이기 때문에 그녀가 아니면 풀수가 없어.”

그의 대답에 리리안은 의외로 빠르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으음...그렇군요. 믿겠습니다. 자신도 위험한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호오, 의외군.”

턱을 한번 쓰다듬으며 말하는 그의 말에 리리안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무엇이 말씀입니까?”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고는 하나, 그렇게 빨리 수긍하다니 의외라서 말일세. 나라면 좀 더 확실해질때까지 다그쳤을텐데 말이지. 내가 그렇게 신용있는 자였나 해서 하는 말이었네.”

그의 말에 리리안은 고개를 획 돌리며 조금 떠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엘프는 인간과는 다릅니다. 믿을수 있는건 믿습니다. 흥.”

“하하하, 그래 알겠네. 하지만 나는 인간이라서 말이지, 잘은 이해가 안되는군. 뭐, 그대가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내가 더 미안해지지만 말일세. 흠, 그건 그렇고 일단 지금 우리 상황에 대해서 말해주자면, 자네가 날 끌어안고 뛰어내린뒤 우리는 신이 도운 탓인지 정확하게 절벽 아래 급류에 떨어졌지. 만약 조금이라도 어긋났었다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을거야. 물론 위험은 그것뿐이 아니었지, 저기 보이는 내 갑옷이 무거워보이지만 실상은 경량마법이 걸려있어 간단히 물에 뜰수있다네, 그런데 저렇게 찌그러진건 급류에 휩쓸리면서 온갖 암초에 다 부딪혔기때문이네. 물론 나혼자만 빠져나오면 쉽게 나왔겠지만 저 갑옷이 저리된것 자네 탓이지, 정신을 잃은 자네를 끌고 헤엄치다보니 제대로 빠져나올수가 있나. 물살에 휩쓸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보니 저렇게 된것이지. 여튼 그렇게 겨우겨우 물가로 빠져나오긴 했는데 이곳... 생각보다 답이없더군. 후...”

긴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리리안은 그의 한숨에 궁금한듯 물었다.

“왜 그렇습니까?”

“운이 좋았던지 급류에서 벗어난 내가 도착한 곳은 바로 이곳이었네. 중요한건 이 주변에 이렇다할 탈출로가 없다는 말이지. 여기는 완전히 외부와 고립되어 있는 곳이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말이지.”

“그렇군요.”

“뭐 그 뒤 상황은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이 꼴이지.”

그의 말을 끝으로 리리안과 베라즈는 둘다 침묵하며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던 중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 이렇게 생각해봤자 이렇다할 수가 지금 생기는것도 아닐테니. 일단 지금은 할수 있는것부터 하는게 맞을것 같군. 우선 리리안, 그대의 그 다리부터 나은 뒤에 탈출 방법을 생각해보지.”

“흐음...예, 저도 별다른 묘책이 떠오르지 않으니 아무래도 그러는게 좋겠습니다.”

“하하하, 알겠네. 일단 자네는 두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니 어느정도 움직일때까지는 내가 수발을 들어주지. 영광으로 아시게나, 인간의 최고 황제에게 간호받는 엘프는 자네가 처음일테니 말이지.”

크게 웃는 그를 보며 리리안은 조금 삐죽이 입술을 내밀고는 툴툴 거리듯 말했다.

“뭐 그다지 영광이지는 않습니다. 모든 원흉은 당신이었으니까요.”

“그런가. 크하하하!”

============================ 작품 후기 ============================

호오, 일이 이상하게 되어가는군요.

과연 베라즈가 갑자기 저렇게 친절하게 구는 이유는 또 뭘까요 +_+

으으음... 속이 시커먼 녀석.

[차회예고]

리리안과 베라즈가 사라지고 난뒤 한참이 지나고

이미 사내의 맛을 알아버린 카이아린은 몸이 달아올라 버티지는 못하고

레이린을 닥달해 베라즈의 위치를 찾아 결국 그에게 도착하는데

이미 베라즈는 엘프 리리안을 먹어치우고 있었고.

그의 외도를 확인한 카이아린은 분노하며 베라즈에게 달려드는데

아~ 어찌 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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