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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협객의 사회-111화 (111/120)

< 111 : 110. 화산귀환(Homecoming)(2) >

본래 화산파(華山派, Huashan clan)는 하나의 문파를 일컫는 말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산시성 화산(華山)에 자리를 튼 수십 개의 도관을 통틀어서 화산파라고 불렀다.

여러 도관은 각자의 전통과 종파에 따라 오랜 시간 따로 수행해왔다.

그러나 일개 도관 홀로는 풍파를 버티기 힘든 몇 번의 난세가 있었다.

전쟁과 흉년, 종교 갈등, 정사대전, 왕조 교체, 황실의 압박, 양차 서계대전, 문화 혁명 등…….

처음에는 작은 교류로 서로 도우며 견뎠으나, 종래엔 그런 미약한 연결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이 도래했다.

화산의 수많은 도관은 몇 개의 문파가 되었고 문파 역시 곧 힘을 모으기로 했다. 어느 순간 대내적 삼대문을 필두로 화산의 모든 문파가 하나로 합쳤다.

그것이 지금의 화산파 총본산이었다.

대내적 삼대문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비인부전의 순수무예 수련 문파 무무문(武無門).

이들 무무문도는 명색만 도사일 뿐 할 줄 아는 것은 강호의 다른 인간 백정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말코였다.

그저 칼 휘두르는 것 하나만 잘하는 사회 부적응자.

한마디로 그냥 무림의 흔한 무공광(武功狂, Arts fanatic)이었다는 것이다.

사업도 못했고 행정 능력도 형편없었다. 도가 수행엔 뒷전이었고 문도의 숫자도 적었다.

대신 화산 내에서 평균 무위는 가장 강했다.

덕분에 문도 대부분이 집법당 및 주요 검대에 편성되었고, 전투 임무 비중이 다른 문파에 비해 높았다.

현재 무무문의 문주는 나였다. 스승님의 등선하신 후부터였다.

무무문은 오직 실력만으로 문주를 뽑았다.

무무문의 사회 부적응자들이 어디 가서 사고를 쳤을 때 들이패서라도 데려올 실력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무무문에서도 내 나이는 어린 편이었다.

그러나 검선의 직계였기에 배분은 충분했고 남은 사람 가운데 가장 강했기에 문주 자리를 이었다.

다음으로는 오직 여자 수행자만을 받는 홍설문(紅雪門)이 있었다.

당초 화산으로 도피한 여성들을 보호해 주던 여도인(女道人) 무리가 어느새 도가의 일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지금은 무공 수련과 도가 수행에 더불어 대륙 내 사업까지 병행하는 종합 도가 문파에 가까웠다.

의외로 전통만 따지면 대내적 삼대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됐으며, 여전히 오래된 도교 수행법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화산 여러 문파 중에서도 홍설문의 부적이 가장 인기 있었다.

그리고 대내적 삼대문의 마지막 한자리.

보통 '화산파' 하면 떠올리는 바로 그 문파.

바로 연화문(蓮花門)이었다.

초국적인 규모를 가진 정종 도교 문파였다. 구파일방이나 칠대세가 같은 다른 거대 문파들과 같이 진작 기업화한 상태였다.

사업도 오래전부터 다각화했다.

전투, 보안, 경호, 호위, 군사 지원, 대테러 활동 등 무력 기반 전투 위주의 사업이 기본 뼈대였다.

그 외 본산 속가제자 제도 시행, 분타 무관 경영, 무학원 및 공대 파견, 생활체육으로서의 무공 전파, 비무 대회 개최와 복권 판매까지, 무공 자체의 사업화 부문도 연화문이 책임지고 있었다.

비공식적으로는 암살과 극비 임무까지 수행했다.

나도 대원으로 있었던 암매화칠수가 연화문의 극비 독립 무력대였다.

화산파가 대내적으로 삼대문이었지만 대외적으로는 연화문을 중심으로 뭉친 형태였다.

현대에는 다른 대내적 삼대문과 말 그대로 격이 달라졌다. 수입과 규모가 천문학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연화문이 다른 문파보다 위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화산파는 '하나의 화산'이었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갈라지고 합쳐졌지만 개별 문파의 구속력이 강하지는 않았다. 도가로써 마땅히 갖추어야 할 존중과 조화가 화산의 기본이었다.

도하나가 홍설문의 무공을 익히고 내가 연화문의 암매화칠수로 활동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아무튼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있는 화산파는 죄다 연화문의 지부였다.

연화문이 화산 글로벌 네트워크의 본체라는 뜻이다.

만매난검 류텐위, 우리말로 류천우는 그러한 연화문의 소문주였다.

화산파의 장문인이라고 하면 보통 연화문의 장문인을 일컫는 말이다.

사실상 류천우가 화산파의 차기 장문인이라는 소리였다. 비슷한 문번 항렬에서는 류천우가 대사형(大師兄)이었다.

그러나 나와는 오랜 기간 친하게 지낸 막역지우일 뿐이었다. 홍설문의 소문주까지 해서 우리 셋은 어려서부터 말을 놓는 사이였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배분도 내가 위였으니 내가 제일 손해였다.

나와 류천우는 가파른 화산 잔도를 걸으면서도 멋대로 떠들었다.

"곽 매는 잘 있나?"

"네가 오면 죽여버리겠다고 열심이더군."

"저런. 쉽지 않을 텐데."

"그래 보이는군. 바깥에서 성과가 좀 있었나?"

"아무렴. 내공량이 드디어 두 자릿수가 되었다."

"축하한다. 네게 그런 말을 들은 건 열 살 때 이후로 처음이구나."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지."

"이따 한판 붙어보자."

"시간 나면."

"시간은 만들어서라도 내라. 곽유까지 한 번에 해결하면 되잖아."

"그럼 내야지."

"그래."

어느새 연화봉 정상이었다.

류천우는 연화문에서 가장 큰 건물인 천매전 입구까지만 나를 마중했다.

연화문의 장문인과 본산 장로들이 상주하며 업무를 보는 공간이었다.

"너는 안 들어가나?"

"나는 내 일을 해야지. 아직 날이 밝다."

그러면서 류천우는 끌고 다닌 젊은 무인들을 향해 턱짓했다. 나이대를 보니 2대 제자와 3대 제자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오후 수련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애초에 끌고 오지를 말던가.

"너무 힘 많이 빼지 마라. 이따 수련을 핑계로 대도 안 봐준다."

"두 자릿수 내공으로 그만 까불거려라."

"하. 오랜만에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군."

"일이나 봐라."

"알았다."

"도 사매도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네, 사형. 이따 봬요."

인사를 끝낸 류천우가 발걸음을 돌렸다.

2대 제자 무리도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류천우를 우르르 따라갔다.

나는 천매전으로 들어갔다.

넓은 도교식 건축물에는 전깃불이 여기저기 달려 있었다.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는 야명주랑 비슷하긴 했다.

나는 곧장 대회의실로 향했다.

류천우가 마중 나온 걸 보아 나를 기다렸던 모양인데 그렇다면 아마 지금 대회의실에 있을 것이다.

대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안쪽에 앉은 노인이 힘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샨(Shan) 사제. 왔는가."

"예, 장문사형을 뵙습니다."

회의전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대문파의 장로란 아주 바쁜 직책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본산에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베이징 화산 타워에서 근무하는 장로가 더 많을 것이다. 특히 무공보다 행정 능력이 뛰어난 장로는 그럴 확률이 더욱 높았다.

연화문 사람은 장문인 외에 장로가 셋 더 있었다.

홍설문은 문주와 장로 하나.

무무문 측은 고작 장로 한 명만 있었다.

내게 인사한 노인이 바로 화산파 연화문의 문주였다.

대화산 장문인. 천매검자(天梅劍子, Celestial florist) 장학우.

배분으로는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 내 사형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문파는 달랐지만 항렬이 그랬다.

"근래에……."

장문사형이 입을 열었다.

"네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리더구나."

"예.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니더라도 내가 네 소식을 다른 사람 입을 통해서 들어야겠느냐."

"……그건 죄송합니다."

"화산에 좀 자주 오거라. 무무문은 문주 대리를 언제까지 혹사할 셈이냐."

"조금만 더……."

그 말에 무무문의 유일한 참석자, 무무문 문주 대리 검광자(劍狂子, Sword fanatic) 임위상 장로가 나를 노려보았다.

검에 미친 수련광이 뜻하지 않게 행정 업무만 보고 있으니 열이 뻗칠 만도 했다.

나는 애써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쪽에는 홍설문주가 앉아 있었다.

외견은 사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나 실제 나이는 예순에 가까운 여고수였다.

매류일검(梅流一劍, Sword dribbler) 곽소화.

도가 수행과 무공 수련이 모두 경지에 다른 여도사였다. 그리고 곽유의 친모이기도 했다.

그녀도 할 말이 있어 보였다.

홍설문주가 나를 노려보았다.

"재림천마를 자칭했다고 들었다."

"의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상을 보았다. 파천공의 성취가 무척 뛰어나더구나."

"무무문에서는 흠도 아니지요."

"그건 그래."

검광자가 한마디 거들었다가 매류일검의 눈총, 아니 안검(眼劍)을 맞았다.

움찔한 검광자가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게 화산의 무공보다 우선이어서는 안 되지."

홍설문주가 한 차례 끄덕이더니 다시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임 장로의 말이 맞다. 무무문주가 익힌 파천공이 자하신공을 넘어서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당연히 파천의 성취가 자하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합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긴 했는데, 나 역시 화산의 문도인지라 마음에 자하신공에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까 자하신공의 판정승이었다.

"……그럼 되었다."

홍설문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뒤로 기댔다. 그 상태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한데 곽유는 어찌할 거냐."

"좀 이따 한판 붙을 예정입니다."

"살살해라."

"……예"

분위기를 보아하니 천마신교의 성인이 된 건 가능한 한 오래 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도사가 재림천마를 칭한 것 자체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홍설문주는 시선을 다시 연화문주 쪽으로 돌렸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습니다. 이제 장문인께서 다시 하실 말씀을 하시지요."

"고맙소, 홍설문주."

천매검자가 나를 보았다.

늙은 몸. 피로한 목소리. 그는 끝없는 일거리로 지쳐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눈동자는 한창때의 청년처럼 빛났고 바다처럼 깊었다.

기공의 경지가 하늘에 닿았다고 불리는 내가 고수였다.

화경의 끝자락에 이른 현시점 화산제일검.

"산 사제."

"예. 장문인."

"화산을 자주 찾지 않는 사제가 무슨 일로 이 노인을 찾아왔는지 궁금하구나."

"두 가지 일로 왔습니다."

"말해 보아라."

"중동에서 대량의 공청유전이 발견된 걸 아십니까?"

"얼핏은 들었다. 세 나라가 유전을 두고 다툰다던가. 상 장로."

장문인은 시선을 옆에 앉은 연화문의 장로에게 두었다. 무공보다 행정을 잘하는, 사실상 화산파의 총관이었다.

장문인의 시선을 받은 총관은 나를 잠깐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랍 에미리트 토후국 모든 곳에서 검대 지원을 바라는 요청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장문인. 그 외에도 분쟁에 참가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의뢰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의뢰 규모는?"

"요구 검대에 따라 다르지만 이십사수매화검대 기준 착수금이 1억 위안 수준입니다. 조건에 따라 최대 10억 위안 규모도 있습니다."

1억 위안은 한화로 200억 규모였다. 10억 위안이면 2,000억. 한 계절에 그 정도 보수였다. 거대 문파로서는 빠지기 아쉬운 큰 건수였다.

"그렇군. 산 사제는 이제 하고 싶은 말을 해보거라."

"중동 일은 저 혼자 하겠습니다. 다른 화산의 문도들이 오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천매검자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노인의 몸에서 강렬한 기세가 뻗어나와 대회의실을 장악했다.

"10억 위안 규모의 의뢰를 무무문주 혼자 받겠다는 이야기인가?"

"예."

"보수는 어찌할 건가?"

"이미 받았습니다."

"얼마를 받았기에?"

"검패 한 조각."

나는 무무문주로서 연화문주와 눈을 마주쳤다.

눈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내 의무였기 때문에 당당했다.

설령 2,000억이 걸려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그곳에서 같은 화산의 제자를 벨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잠시 대회의실에 고요가 찾아왔다.

"그럼 해야지."

천매검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세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총관을 보며 말했다.

"상 장로. 모든 화산 문도들의 중동행을 금하게."

"중동 지부 문도들과 이미 중동에 있는 문도들은 어떡합니까?"

"데려올 수 있는 자는 데려오고, 중동 지부에는 공청유전 문제에 개입을 금하는 명령을 전달하게."

"예, 장문인."

총관이 고개를 숙였다. 장문인은 다시 나를 보았다.

"산 사제. 두 번째 용건은 무엇이더냐."

나는 품에서 철 파편 네 개를 꺼냈다. 이제까지 모은 검룡패 조각이었다.

"이걸 맡기고자 합니다."

"이건 검선 사백의……."

"제가 돌아오지 못하면 화산이 이어 주십시오."

이번 중동행은 나로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가는 거였다.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은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무인이라면 언제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했다.

이번은 특히 위험했을 뿐이다.

개인의 무위보다 숫자가 중요해지는 전쟁에 언더독으로 참여하는 것이었으니.

화산의 장문인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검선 사백의 유품을 회수하는 것은 화산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무무문주는 필히 돌아오거라."

"……노력은 하겠습니다."

"명령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장문인을 바라봤다.

연화문주에게 내게 명령할 권한은 없었다. 나 역시 화산 일파의 문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천매검자는 사제를 걱정하는 사형의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사형은 사제에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암매화칠수 0호. 명을 받겠습니다."

연화문의 비밀병기로서 사형에게 나의 생존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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