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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협객의 사회-110화 (110/120)

< 110 : 109. 화산귀환(Homecoming)(1) >

며칠간은 꽤 바빴다.

인터뷰 요청은 셀 수도 없을 정도였고 수많은 방송국 관계자들이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싶다고 사천공대를 찾아왔다.

나와 도하나, 이신, 먼지까지가 주된 캐스팅 대상이었고 당초아나 자율무공학부 나머지 학생들까지 캐스팅하려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들은 <드래곤 레어>니 <검룡의 아이들>이니 유치한 특집 프로그램 제목을 들먹이며 제발 출현해달라고 간청했다.

분명 대박이 날 거라고 자신하면서 말이다.

그 외에도 주말 예능, 라디오, 인터넷 방송, 고무림 인플루언서, 인터넷 무공 강사 등 이곳저곳에서 우리를 초대하려 들었다.

나는 대부분의 출연 제의를 거절했지만 몇 개의 짧은 인터뷰와 고무림, 무림맹 방송은 받아들였다.

수련에 악영향을 미칠 정도여서는 안 되겠지만, 시장에 노출되는 것도 만만찮게 중요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자율무공학부 애들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독괴의 난 이후 이연타였다.

지금 당장 학교를 때려치워도 밥 굶을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였다.

스무 살은 사실 전국적인 별호를 갖기 힘든 나이였다.

무공이 높건 낮건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업적을 쌓을 기회 자체가 거의 없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언론이 작정하고 띄우니 나이와 업적은 사소한 문제일 뿐이었다.

내가 수련에 지장을 받지 않게 방송 출연을 제한한 것이 의도치 않게 신비주의 효과를 내기도 했다.

독괴의 난 이후, '만들어졌던' 별호가 전국에 알려졌다.

타임지 용봉 선정이 독괴의 난 때와 달랐던 것은, 이번엔 개인뿐만이 아니라 무학원이 같이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입시에 미친 나라였다.

그건 문과, 이과, 예과, 무과를 가리지 않았다.

부모들의 시선이 먼저 들어오자 세상이 자연스럽게 따라서 자율무공학부를 알리고 파헤쳤다.

유명세가 그들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대학 입시가 머지않은 시점에서 당초아에게는 호재였다.

당장 이 순간만큼은 세계 제일의 무학원이 자율무공학부였기 때문이다.

수시 원서가 무수하게 쏟아졌다.

작년 전국체전 고등부 최상위권은 거의 다 지원한 수준이었다고 들었다.

당초아로서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긍정적인 효과는 자율무공학부에만 그치지 않았다.

검과를 필두로 한 다른 무학과들도 역시 낙수 효과를 받았다.

덕분에 요즘 당초아는 행복한 티를 한껏 내고 다녔다. 그러나 내게는 더는 요구르트를 권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내가 보기에 당초아만큼이나 이 사태를 즐기는 사람은 한 명 더 있었다.

"오오오오오! 개쩔어! 먼지야! 사랑해!"

최수아는 양팔에 폰과 먼지를 한쪽씩 붙잡고 연무장을 뒹굴면서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말 그대로 뒹굴었다. 옷이 더러워지는 건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었다.

최근 먼튜브는 그야말로 '떡상'했다.

원래도 몇십만 명 수준이었던 구독자는 며칠 사이 몇 배로 뛰었다.

타임지가 언급한 '개'는 단연코 현시점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동물이었다.

용봉으로 선정하지도 않았으면서 굳이 함께 언급한 순간부터 전 세계 무인들이 개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들이 발견한 것은 거대한 포메라니안이었다.

그것도 너무나 큰 개.

고무림 영어 사이트에 가장 먼저 한 개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나도 애들이 링크를 보내줬길래 한 번 봤다.

<드디어 타임지에서 언급한 개(The dog) 찾았다>

[거대한 포메라니안 사진]

[곰돌이 컷을 한 포메라니안 사진]

[대형 버스 옆에서 소녀에게 털 관리를 받는 포메라니안 사진]

└저게 The dog이라고? 농담이겠지? 그건 그냥 별호(Nickname) 아니었어? 난 성질 더럽고 짐승 같은 스타일의 7피트 키 남자를 상상했는데.

└저 버스와 소녀가 미니어처가 아니라면, 개가 버스 반만 한 크기라는 건데 그걸 믿는 얼간이는 없겠지? 그리즐리 베어가 올려다봐야 할 크기의 포메라니안이 있다고? Bruh.

└글쓴이 : 믿기 힘들겠지만 진짜야. 합성이라고? 멋대로 믿으라지. 하지만 난 이미 The dog이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방송 채널까지 찾아냈어. <먼튜브Dustube>(링크). 가서 수십 개의 동영상을 보고도 합성이라고 주장해보시지.

└맙소사. 저 개는 진짜였어. 정말 엄청나게 커. 게다가, 파멸적으로 귀여워(Damn cute).

└귀엽기만 한 게 아니야. 몇 개의 비디오에서 그 혹은 그녀는 그야말로 용봉에 걸맞은 운동 능력을 보여주고 있어. Dragon of sea와의 싸움을 촬영한 비디오는 말 그대로 미쳤어. 최소한 초절정 수준으로 보여.

└게다가 드래곤과 피닉스는 허구의 동물이지만 저 개는 진짜 존재한다고! 타임지는 내년부터 칠룡칠봉 대신 14 Dust를 뽑는 게 옳은 행동일 거야.

└너 바보야? 드래곤과 피닉스도 진짜 있어. 드래곤이 허구의 동물이라면 드라마에 나오는 드래곤은 어디서 구해왔다는 거야?

└*Deep sigh*

└근데 "Meonji"의 뜻이 Dust라는데 왜 그런 이름을 붙인 거야? 이 포메라니안은 Dust라기엔 너무 크고, 귀엽잖아!

그 아래에 댓글이 수백 개가 더 달려있었고 실시간으로도 계속 추가되는 중이었다.

최수아는 물 들어올 때 노를 확실하게 저었다.

발 빠르게 영어 제목을 병기하고 인기 있는 영상에는 자막까지 달았다.

피드백을 받은 커뮤니티의 반응은 더 폭발했다.

그렇게 용봉 선정으로부터 시작된 인기는 당사자들을 넘어 종합적, 연속적, 다발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건 주말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그 인기를 누리겠답시고 광대가 될 생각이 없었다.

전화기를 끄고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채 조용히 비행기에 올라탔다.

옆에는 선글라스를 낀 도하나가 자리했다.

복장은 처음 사천특별시로 왔을 때처럼 단출했다. 대신 비행기는 퍼스트 클래스였다.

그때와는 달리 알아볼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괜한 소란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천마신교에서 운영하는 항공사를 이용했다. 교도로 구성된 직원들은 필요한 질문만 하고 조용히 나를 일등석으로 안내했다.

"오랜만이네요."

"그래."

"긴장되세요?"

"아니. 전혀."

"그래요? 전 긴장되고 설레는데."

"난 아니다. 집에 갈 때 긴장하는 사람도 있나?"

"없어요?"

"없겠지."

"그렇군요."

"그렇다."

목적지는 산시성(陝西省).

시안시 셴양 국제공항이었다.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150km 정도 가면 산시에서 가장 유명한 산이 있다.

나의 집. 마음의 고향.

화산이었다.

***

항공사에서는 화산까지 리무진도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아직은 천마신교의 성인이 된 걸 문파에 알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괜히 뭐라고 한 소리 들을 거 같기도 했고.

공개는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룰 생각이었다. 적어도 내가 먼저 대놓고 알릴 생각은 없었다.

리무진 대신 나는 택시를 탔다.

인상 좋은 기사 아저씨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화산파로 가신다고요? 혹시 화산의 무인이십니까?"

"뭐, 그렇죠."

"오. 화산의 무인을 모실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제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부탁합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이 동네는 명실상부 화산파의 세력권이었다.

평범하게 생업에 종사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화산파의 입김이 닿았다.

문파는 자체 생산 능력이 0에 가까운 소비 집단이라서 그렇다.

무력을 팔아서 쉽게 떼돈을 버는 것 같지만, 고수는 그 유지비만 해도 상당했다. 식비, 무기값, 치료비, 영약값, 건물 임대료, 교통비. 그 과정에서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금액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화산파 무인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다른 나라 분타에서 오셨습니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죠."

분타는 아니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역시 그렇군요! 사실 제가 여기서 운전한 지가 꽤 오래되어 화산의 웬만한 젊은 협객분들 얼굴은 다 알고 있는데 두 분은 처음 보는 거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시군요."

"하하. 본문에 오셨으니 기분이 무척 좋으시겠습니다! 화산은 분타도 훌륭하겠지만 모름지기 본문이 제일 아니겠습니까!"

"……분타라고 해서 실력이 막 뒤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물론 최고수는 본문에 있겠지만요."

"하하! 그렇군요! 물론 분타도 대단하겠지요! 화산이니까요!"

택시 기사 아저씨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우리를 화산파 본문에 처음 온 분타 출신 무림 초년생쯤으로 보는 거 같은데.

아예 틀렸다. 나는 성장기 대부분을 화산파에서 보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귀찮아서 딱히 해명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한번 보고 말 사이에 오해가 생겨도 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그 이후 몇십 분가량을 조용히 가다가 택시 기사 아저씨가 다시 말을 걸었다.

"조금 돌아가는 국도가 있고, 빠르고 쾌적한 녹림 유료도로가 있는데 어느 쪽으로 가시겠습니까?"

"녹림로를 타시죠."

"알겠습니다."

내가 알기로 녹림로를 타는 쪽이 30분 정도 빨랐다. 돈은 넘쳐났기 때문에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택시에는 하이패스가 없었다. 중국은 아직 한국만큼 하이패스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호피 무늬 유니폼을 입은 녹림 안내원에게 통행권을 구매해 녹림로를 질주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화산 초입에 있는 도시, 화인 시에 들어섰다.

산에는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없기에 진입 직전 평지에 번화가가 크게 들어서 있었다.

화산파 문도부터 속가 제자, 문도의 가족, 화산파에 입문하고 싶은 낭인과 무학원 학생, 졸업생, 그들에게 물건을 파는 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원, 아무리 없애도 안 없애지는 뒷골목 깡패, 동네 백수, 길거리 거지 따위로 구성된 사람 많은 도시였다.

밤에 화산에서 이곳을 내려다보면 화려한 야경이 보였다. 늦은 시간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불야성이었다.

택시는 화인시를 지나서 화산 쪽으로 향했다.

중원 오악 중 서악이라 불리는 해발 2,160m의 크고 높은 산.

화산이 우뚝 서 있었다.

여러 봉우리가 칼처럼 날카롭게 하늘로 솟아 있었다.

가을 단풍이 하얀 돌 봉우리 사이에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디까지 들어갈까요?"

"입구까지 들어가 주시죠."

"입구요? 산문(山門) 말씀이십니까? 그, 소협. 여기서 내려 걸어 올라가는 게 어떻습니까?"

"그냥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기사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분타 문도가 그러면 눈치 보일 텐데……."

나는 기사 아저씨의 잡소리를 한 귀로 흘린 후 다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마음속으로 익숙한 화산의 풍경을 그렸다. 스승님이 살아계시던 그 시절.

화산은 내게 모든 것을 주었다. 살게 해줬고, 칼을 줬고, 살아갈 방향을 주었다..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가 봅니다."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눈을 뜨자 산문이 보였다.

산문 주변에는 검을 찬 젊은 무인들이 가득했다. 모두 화산의 무복을 입고 있었다.

번을 서는 최소한의 인력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중에서 가장 앞에 익숙한 사람이 있었다. 그를 알아보는 순간, 저들이 무슨 일로 이 자리에 있는지를 바로 깨달았다.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그, 지금 분위기가 별로인데 나중에 내리시죠.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누가 온다거나……."

기사 아저씨가 끝까지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

그래도 우리를 걱정하는 마음이었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통상의 택시비를 훨씬 넘는 지폐를 기사 아저씨에게 건네곤 택시에서 내렸다.

문 밖으로 내리는 순간 문도의 선두에 서 있는 자가 나를 발견했다.

나와 또래인 초절정 끝자락의 검수였다.

그는 화산파 연화문의 소문주, 암매화 1호, 그리고 내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사람이었다.

만매난검(萬梅亂劍, Full blossom slasher)  류텐위(刘天宇).

류텐위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일동! 발검──!"

"히이이이익!"

화산의 문도들이 일제히 검을 뽑자 택시 기사 아저씨가 뒤에서 기겁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무문주님을 향해 예를 표하라!"

척!

수십의 젊은 검수들이 동시에 나를 향해 검을 세우고 손바닥으로 받쳤다. 검례(劍禮)였다.

"화산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뭘 이런 걸까지."

"그러게 자주 좀 오지."

"바빴다."

"네 자리를 억지로 메꾸고 있는 내가 더 바쁘겠나, 자유롭게 산문 밖을 돌아다니는 네가 더 바쁘겠나."

"소문주. 바로 들지. 내 어서 장문인을 뵙고 인사부터 올려야겠네."

"……."

나는 입을 닫은 류텐위를 지나쳐 태연하게 산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도하나가 내 뒤를 졸졸 따랐다.

뒤를 흘낏 보니 택시 기사 아저씨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화산검룡……!"

뒤늦게 나를 향해 소리치다가 문도들이 인상을 쓰자 말을 덧붙였다.

"……대협!"

그제야 문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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