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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협객의 사회-75화 (75/120)

< 75 : 74. 뇌정벽력(Thunderer)(3) >

오디토리엄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 상황이었다.

먼저 관객 출입구부터 객석 중앙까지의 바깥 구역.

일월신교의 교도들과 철두철미 및 개방의 일반 병력이 대치하는 구간이었다.

바깥 구역은 이미 전투를 중단한 채 사실상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애초에 전투의 결과가 대세와는 크게 연관이 없는 구역이었다.

대개는 오늘의 일을 증거할 목격자에 가까운 자들이 있었다.

개중 자율무공학부의 학생들과 커다란 카메라로 이쪽을 찍고 있는 기자가 눈에 띄었다.

고무림 기자는 그렇다 치고 우리 애들은 여기 왜 온 건지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린 애들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두번째는 무대 구역이었다.

실질적으로 전투 인원이 가장 많은 쪽이었다. 그만큼 소란스럽고 복잡했다.

"천마님을 위하여!"

"이단을 벌하라!"

"정신 나간 것들. 13반, 즉각 광신도들을 제압한다! 당이검진(唐二劍陳) 구축! 개진!"

"모든 방도들은 소타구진(小打狗陳)을 펼쳐라! 미친개 잡는 데는 매가 약이지!"

일월신교의 이단 사냥꾼들과 철두철미 및 개방의 정예들이 대치하고 있는 구역이었다.

절정 및 초절정 고수들이 숫자를 대략 맞춰 대치하고 있었다.

철두철미와 개방이 각기 검진을 구성해 이단 사냥꾼들에게 맞섰다.

제압하면 좋은 일이겠지만 일단은 시간을 끄는 것이 목표였다. 광신도들과 달리 우리 측에서는 손을 함부로 쓰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교주나 간부 한둘이라면 몰라도 일반 교도를 상대로 한 대량 살인은 추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물론 당가의 힘을 빌리면 어떻게 해결이야 할 수 있겠으나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구역은 오디토리엄의 중심이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앞부분 객석은 진작 기공 경파의 영향으로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포장재가 뜯겨나간 바닥은 이미 평지에 가까웠다.

화경이라는 재해(災害)와 직접 맞닿은 결과였다.

한쪽 구석에서는 라면 좋아하는 일월신교의 장로들이 다투는 척 이쪽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김 장로 제법이요! 한 단계 성취를 이루셨구려!"

"그러는 최 장로도 손속이 몹시 매섭소!"

……박쥐 같은 것들.

말과 동작만 화려할 뿐 주고받는 수법이 치명적이지 않았다. 열에 가까운 장로들이 엉켜 다투는데 단 한 명도 중상을 입은 자가 없었다.

큰 기대는 하기 힘들었으나 우리 박쥐들이 상대 박쥐를 묶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편 구석에서는 마선을 상대로 독괴와 우리 쪽 초절정 고수들이 합공을 하고 있었다.

"왕왕!"

"이건 인공 영물인가?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신체와 기맥 구조의 설계는 가히 천재적이군. 한번 뜯어보고 싶을 정도다."

"깨갱……."

"……뭘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이냐. 영물이라는 것이. 당당하게 맞서라."

"으르르르."

"왜 내게 이를 드러내는 것이냐. 적은 내가 아니라 저 약쟁이다. 미물이라 그런지 몹시 멍청하군."

"……독, 아니, 무명소졸 대협. 그런 표현은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소. 그 개는 말귀를 알아듣소."

"마선이나 본인이나 같은 화경인데 미물이 나를 무시하고 있지 않나. 마선에게는 기도 펴지 못하면서 말이다."

"무시하는 게 아니라 아마 증오하는 걸 거요. 실험의 주체를 알고 있을 정도로 영리한 녀석이니 말이오."

끄덕끄덕.

먼지가 몇 차례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동의의 표시였다.

"미물이 과거사에 집착한다는 말이냐? 합리적이지 않군."

"으르르르─."

"아저씨 우리 먼지 그만 괴롭히고 저 의사 쌤이나 어떻게 해봐요."

"……아저씨? 설마 본인을 지칭하는 말인가?"

미친 인간들이 나누는 대화에 나조차 귀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입이 수다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풍기는 기세는 살벌했다. 독강을 필두로 다양한 병장기로부터 기공이 난무했다.

그럼에도 마선은 아직 치명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압박은 하고 있었으나 그게 전부였다. 우리 쪽 일행의 소란스러움은 오히려 여유가 많지 않음을 방증하는 태도였다.

아무래도 마선이 사용하는 침(鍼)과 독이 그만큼 위협적인 모양이었다.

독괴를 제외한 나머지 초절정들은 섣불리 접근하기도 힘든 수준.

그나마 독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먼지와 도하나를 선봉으로 하여 여러 방면에서 압박하고 있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둬야 했다.

그 영향이 적지는 않을 것이었다. 대치가 길어질수록 유의미했다.

어차피 승부의 결정은 독괴와 마선이 내는 것이었다.

초절정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마선의 선택지를 줄이고 다음 행동을 까다롭게 만드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위협이다. 초절정 다수를 마선에게 붙인 이유였다.

검화를 뽑아낼 수 있는 초절정은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냥 날파리 취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경에게 초절정은 이를테면 장수말벌 같은 존재였다. 하찮으나 신경을 끄기엔 너무나도 불안하고 치명적인.

언젠가는 틈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틈은 일대다 상황에서는 더욱 치명적이었다.

어떤 무인도 영원히 완벽할 수는 없었다.

전방위에서 들어오는 압박이 지속되면 한 번은 삐끗하게 된다.

즉, 시간이 독이었다.

마선은 반드시 무너진다.

그러니 저쪽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나였다.

일대다 상황의 시한폭탄은 마선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같은 상황에 부닥쳐있었다.

마선과 일월마군을 모두 잡기 위한 승부수였다.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깨트려서 파국을 기다리는 것.

내가 오래 버티느냐, 마선이 오래 버티느냐의 승부였다.

어느새 오래된 기타를 꺼내 든 악절이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턱을 까딱였다.

악기를 꺼내 들었다는 것은 음공을 좀 더 본격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의미였다.

대응하기 위해 기를 귓가로 보내어 이혈(耳穴)을 자극하고 기막을 둘렀다. 청력을 민감하게 돋우는 것과 동시에 기의 침범에 대해서는 보호했다.

악절이 맨손인 것과 악기를 쓰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그나마 릴 드레이크 밴드(Lil drake band)가 이곳에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자신의 악단과 함께하는 음공의 고수는 재앙에 가깝다. 특히 이런 밀폐된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버디. 진심이야? 혼자서 나와 이 '천마' 브로를 한꺼번에 상대하겠다고? 조금 자존심 상하는데."

"나도 천마 자리에 입후보했다는 소식 못 들었나? 가짜는 버리고 어서 이쪽으로 전향하는 건 어떤가? 밴드를 끌고 오면 내 성가대에 꽂아주도록 하지."

"그게 코리아에서 유행하는 조크인가? 천마가 뭐 이렇게 많은 거야? 이러다가 본인이 지저스(Jesus)라는 사람도 나오겠어."

"나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이 나라에 몇 명 있긴 하더군."

"뭐가? 자칭 선택받은 자? 아니면 지저스?"

"둘 다."

이건 진짜다. 조사 결과 일월신교만큼 규모를 갖추지는 못했으나 시답잖은 사이비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악절도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이 작은 나라가 성인(聖人, Saint)들의 격전지였다니. 미국은 내 생각보다 건전한 편이었군."

"거기도 찾아보면 다를걸."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버디. 모르는 게 때론 축복이라고."

"시답잖은 만담은 그쯤 하지."

시간 잘 끌고 있었는데 훼방을 놓은 것은 일월마군이었다.

기수식을 취하며 악절보다 두어 걸음 앞으로 나왔다. 반장 자세를 풀고 팔을 움직여 좌우로 펼쳤다. 손바닥에 하얀 강기를 두른  채였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났다.

양 손바닥 모두 강기의 색이 하얬으나 미묘하게 소리와 질감이 달랐다. 하나는 뜨거웠고 하나는 차가웠다. 뜨거운 쪽이 진동의 간격이 더 짧았다.

"이건 시간 싸움이다, 악절. 마선이 제압되기 전에 우리가 검룡을 처치하지 못하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나?"

"진지? 그걸 지금 고민이라고 하는 거야? 천마 브로?"

악절이 진심으로 못 참겠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검룡이라지만 내공을 잃은 화경 하나가 무서워? 내가 보기에는 천마 브로 하나 상대하는 것도 벅차 보이던데? 강기 좀 쏟아내면 못 받아낼걸?"

"진지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한다. 악절. 약속한 대가를 받고 싶다면 명령에 응해라."

"좋아, 좋아. 브로. 그럼 한 번 해보자고. 재산 거하게 털릴 각오는 하고 말이야."

"그깟 돈이야 얼마든 주지."

"예스, 보스. 버디보단 돈이지(Gold is my best friend)."

말끝과 동시에 악절이 기타 줄을 튕겼다.

띠리링!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음탄 세례. 정확히 음속이었다. 당연한 거지만.

그건 음공의 한계이자 장점이었다.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음파는 음속이었다. 구체적인 조건에 따라 빠르고 느려지기는 하지만 늘 그 언저리였다.

절대적으로 느리지는 않았으나.

화경을 기준으로 삼으면 충분히 빠르지 못한 속도였다.

쿠릉!

나는 여유롭게 뇌강 한 줄기를 날려 받아쳤다. 미처 강기를 형성하지 못한 음탄은 뇌강에 차례대로 부서져 흩날렸다.

뇌강은 힘을 잃지 않고 그대로 날아갔다.

쾅!

순식간에 반대편에 도달한 뇌강은 파천신군이 오른손으로 받았다. 양기를 담은 쪽이었다. 번개와 불꽃이 부딪쳤다.

그 순간 뇌강을 몇 줄기 더 날렸다. 일월마군은 오른팔로 원을 그리며 뇌강들을 받아내었다.

퉁!

몸이 뒤로 밀려나기는 했으나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뇌강의 충격을 몸을 날려 흡수한 느낌이었다.

순간 뜨거운 공기가 연회장에 훅 퍼졌다. 고열의 강기공끼리 상쇄된 결과였다. 얼굴이 후끈했다.

"흡."

무대 구역에서 교전 중인 무인 중에서도 경지가 낮은 자는 순간적으로 호흡이 곤란해질 정도였다.

아지랑이가 보일 지경.

쟝쟝쟝쟝!

그 사이로 기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끊임없이 이어졌다.

날아오는 음탄이 느껴졌다. 아까랑 다르게 전방위를 점하고 있었다.

피하거나 받아치는 것이 의미가 없는 정도의 숫자였다.

적명신공의 호신강기로 받아내었다. 먹구름이 소리를 삼켰다.

그러나 음탄 세례가 끝이 아니었다. 날카롭게 다가오는 음강(音罡) 한 조각이 있었다.

시작은 소리였으나 마침내 별빛에 이른 기예였다. 거의 투명했으나 공기를 찢는 궤적이 눈에 보였다.

뇌강으로 받아쳤다.

"……버디. 이제 보니 감각이…… 상당히 늘었군. 그 순식간에 반짝 나타나고 번쩍 사라지는 것이 다 강기였나?"

"기본기지."

순식간에 명멸하는 뇌강은 기본적으로 소모되는 내기의 양이 상당하기는 했지만 다루는 방식이 의외로 나와 잘 맞았다.

검강을 순간적으로 얇게 피워내던 방식의 연장선에 있었다.

뇌기라는 낯선 성질의 기운을 다스리는 것만 제외하면 유사한 점이 많았다.

내공 7년을 귀하게 다루던 세월이 그대로 양분이 되었다.

"받아치는 것으론 답이 없다. 쏟아내겠다. 보조하도록."

"옛설(Yes, sir)."

일월마군이 달려들었다. 양손을 번갈아 휘둘렀다. 궤적 하나하나에 오묘함이 깃들어 있었다.

뇌기에는 재능이 없었으나 양기와 음기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데에는 도가 튼 장사(掌士)였다.

쾅쾅쾅쾅!

양강은 뇌강으로 받아쳤고 음강은 먹구름으로 받아내었다.

차갑고 뜨거운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실내가 습해지며 점점 더워졌다.

일월신장의 간격 사이에는 음강과 음탄이 쏟아졌다.

차분하게 받아내고 있었으나 내공이 말라가고 있었다.

아무리 내공을 효율적으로 써도 절대적인 부족함을 극복하기는 힘들었다.

주변시로 얼핏 마선 쪽을 보니 그쪽도 교착 상황이었다.

위태로운 균형. 어느 쪽이 먼저 무너질지 몰랐다.

그 균형을 깨트릴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을 저울추 하나면 충분했다.

허공을 날아 중앙 구역으로 들어오는 인영 하나가 있었다.

시선이 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드디어 장로 쪽이 합류한 건가? 하긴 초절정이 더 많은데 진작 왔어야 할 일이었다.

"합류하겠습니다."

"이신이냐."

고개를 돌려 보니 박쥐들은 여전히 연기중이었다.

어찌 되었건, 우리 쪽 저울에 초절정 하나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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