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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협객의 사회-73화 (73/120)

< 73 : 72. 뇌정벽력(Thunderer)(1) >

"오라."

허장성세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짜 바로 전투를 재개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뇌강을 쏟아낸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한 수였다. 최소한 투자한 만큼의 내공은 회복해야 수지 타산이 맞았다.

교전의 재개가 느리길 원했다. 혹여 교전이 시작되더라도 최소한 강기 사용은 피하고 싶었다.

내공 회복을 위해 뇌강의 타격 순간부터 대주천의 속도를 빠르게 상승시켰다.

순간적으로 대응 능력까지 포기한 채 내공 순환에 집중했다.

뇌강을 모은 수법의 효과를 확신했기에 그럴 수 있었다.

자연지기가 전신 혈도를 질주한 후 단전에 내기로 스며들었다.

기혈이 뜨끈했다. 몸 전체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한계치에 가까운 내공이 통행한 결과였다.

순수한 내공을 음기와 뇌기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또 약간의 손실이 있었다.

그쪽에 특화된 내공심법을 익힌 게 아니라 그랬다. 일종의 이중과세였다.

뇌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음기를 소모해 먹구름은 유지해야 했다. 그래야 교전 시 즉각 대응할 수 있었다.

하나 확실한 건 파천신공이 내공이 부족한 사람에게 적합한 무공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효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패도적이고 과시적인 무공이었다.

초대 천마가 만든 무공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내공의 부족을 생각해본 양반은 아니었겠지.

다행히도 일월마군은 바로 다가오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있었다.

일월마군은 굳은 표정으로 일어나 천천히 몸을 털었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 수법."

의복이 상했을 뿐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다. 호흡이 골랐다. 큰 타격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물론 기대도 안 했다.

"어디서 배운 거냐?"

"무슨 수법?"

"모르는 척이냐? 뇌정벽력(雷霆霹靂, Thunderer) 말이다. 그 규모는 작다 하나 분명……."

규모가 작다니. 이쪽은 나름대로 전력을 쏟은 건데 섭섭한 소리였다.

아마 파천신공에 원래 비슷한 수법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뇌기를 사용하는 무공에서 뇌기를 응축하고 모아 방출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용법이 아닌가.

실제로 일월마군도 나와의 교전에서 비슷한 수법을 여러 번 사용했다.

"딱히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다."

"개소리……!"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행했을 뿐이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생각나는 용법에 따라 파천신공의 기운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뇌기로 강기를 형성하고 닥치는 대로 두르고 휘두른 게 전부였다.

뇌기를 사용하는 무공이니까 뇌기를 다루었고.

강기를 형성할 수 있었으니 뇌강이 되었을 뿐.

그러나 어쩐지 일월마군은 진심으로 그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파천신공 비급의 유출이라도 의심하는 모양. 기색이 아주 진지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하긴 뇌강을 형성하는 것이 어렵긴 했다. 늘 다루던 기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 검(劍)이란 단지 검이 아니었다.

모든 날카로운 것이었다.

파천신공의 뇌기마저 상대를 찌르기 위한 날이었다.

그것이 강기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나를 노려보던 일월마군은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됐다. 말로 해도 의미 없겠지. 어차피 네놈을 족쳐야 하는 것은 같다. 순순히 털어놓지 않는다면 초주검으로 만들고 다시 묻겠다."

"마구니야. 할 수 있으면 해보아라."

팡!

일월마군은 보법을 밟으며 달려들었다. 발에 닿은 땅이 굉음을 내며 구겨졌다.

짧은 순간 이후 눈앞에 도달해 주먹을 뻗고 있는 일월마군의 모습이 보였다.

빨랐다.

확실했다. 아까보다 빨라졌다.

녹슨 감각을 온전히 끌어올린 것 같았다.

짧은 교전 동안 본인의 기량을 확실히 파악하고 내외공의 균형을 조정한 것으로 보였다.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시간이 더 절실한 쪽은 나였다.

대화 몇 마디를 나누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어느 정도 내기를 회복한 상태였다.

만족스러웠다.

일월마군이 두른 먹구름에서 뇌기가 가닥가닥 뻗어나왔다.

얇지만 파괴적인 벼락들은 보이자마자 거의 직선에 가까운 형태로 순식간에 내게 닿았다.

파지지직!

음.

이상했다.

일월마군의 벼락은 내 파천신공으로 이룬 호신강기에 녹아 사라졌다.

그 느낌이 기묘했다.

그러나 공격은 벼락 줄기들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딴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곧바로 권강이 절묘하고 위협적인 궤적으로 이어졌다. 파천신공과 이름 모를 상승 권법의 자유로운 전환이었다.

나는 먹구름으로부터 뇌강을 뽑아내어 맞섰다. 한 줄기로 충분했다. 순간 속도는 이쪽이 훨씬 빨랐다.

쾅!

일월마군의 회색 권강과 내가 뿌린 백색의 뇌강이 부딪치며 큰 폭음을 일으켰다.

무거운 반동이 몸을 흔들었다. 동시에 분쇄된 강기의 경파가 시야를 가렸다.

나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다만 기파에 감지되는 대로 손을 움직였을 뿐이다.

쾅! 쾅! 쾅! 쾅!

일월마군의 연격.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나는 양손에 뇌강을 하나씩 두르고 일월마군의 주먹을 하나하나 쳐냈다.

매 순간 우레와 같은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그럼에도 화경의 질긴 고막은 일체의 손상도 없이 소리를 감지해내었다.

시끄러운 폭발음 사이로 아주 미세하게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았으나 암기가 있었다.

악절의 음탄이었다.

"거기 무명소졸 대협. 제대로 좀 하지? 그쪽 몫이 여기 흐르는군."

"쉽지 않군. 알아서 잘 막아보시오. 아무래도 난 칠룡에게 좀 약한가 보오. 그래서 지금 무명소졸인 것 같소."

아무래도 독괴가 악절에게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신 독괴도 일월마군에게 비수와 독병 따위를 몇 차례 날리기는 했다.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제어하지는 못하는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먹구름으로부터 뇌기를 뽑아내어 음탄을 쳐내는 동시에 뇌강을 두른 발로 일월마군의 하단을 노렸다. 초식의 형은 삼재각법에서 따왔다. 삼재각 암압.

일월마군은 몸을 낮게 띄우며 뇌기를 줄기줄기 뽑아 쏘아댔다. 나는 날아오는 뇌기를 먹구름으로 받아내었다.

아까의 이상한 감각.

다시 느꼈다.

이번에는 확실했다.

먹구름에 닿은 뇌기가 호신강기에 막혀서 소멸하는 것이 아니었다.

뇌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먹구름을 떠돌았다.

흡수였다.

그 뇌기를 다스려 다시 일월마군에게 벼락의 형태로 날렸다.

시험 삼아 해본 것인데 가능했다. 명확하게 내 조종하에 있었다.

일월마군은 내가 발출한 벼락을 권강으로 쳐내었다. 튕겨 나간 벼락이 천장을 박살냈다.

외부에서 쏘아져 온 뇌기를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호신강기라니. 정녕 먹구름이라도 된 것마냥 자연스러웠다. 신비에 가까웠다.

파천신공의 묘리인 듯했다.

과연 신공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한 영묘함이었다.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특질이었다.

허나 그렇다면 왜 일월마군은 내 뇌기를 흡수하지 않고 쳐낸 것일까?

답은 뻔했다.

모종의 이유로 일월마군은 뇌기를 흡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나보다 파천신공에 대해 깊이 알면 알았지 더 얕게 알지는 않았을 일월마군이 뇌기를 흡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시에 일월마군이 뇌정벽력이라는 수법을 언급하며 놀랐던 것이 머릿속을 다시 스쳤다.

"……설마."

일월마군과의 교전을 다시 머릿속에 그렸다. 악절을 배제한 후의 첫수부터 차례대로 복기했다.

일순(一巡)하는데 몇 초 걸리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일월마군이 뇌기를 나만큼 제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수일수(一手一手)에 집중하느라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점이었다.

일월마군은 단 한 번도 뇌강을 응용하지 않았다.

전투 내내 파천신공의 뇌기를 자유롭게 다룬 것과는 달리 뇌강은 단편적으로 사용할 뿐이었다.

주요한 순간에 사용한 강기는 늘 권강이었다.

뇌강을 다루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다루지 못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뇌기를 다스리는 것은 마냥 쉽지 않았다.

이 뇌기라는 놈은 한시라도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기운이었다. 쉬지 않고 날뛰었다. 그 위력에 걸맞은 난이도를 요구했다.

뇌강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한낱 인간이 천둥벼락의 강기를 제어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여러 줄기의 뇌강을 복합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더욱 그랬다.

날뛰는 기운의 흐름이 통일되지 않아 가닥가닥의 움직임을 따로 잡아줘야 했다. 반발력도 강했다. 팔에 반동이 남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월마군에게 뇌강을 응용할 능력이 일절 없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어려운 일이었으나 일월마군은 해야 했다.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했다.

파천신공은 천마의 성명절기였기 때문이다.

그건, 이를테면 적성과 자질의 문제였다.

극한에 이른 패도 무공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기질.

뇌기와 음기를 다루는 재능.

일월마군은 부족했다.

"파천신공에 대한 소질이 없는 자가…… 천마를 자칭했던 것이냐?"

"……."

일월마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 말이 조용한 오디토리엄 전체에 퍼져 나갔다. 어느새 장내 모두가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에게 눈을 뗄 수 없는 독괴와 악절을 제외하면 말이다.

일월마군은 파천신공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건 어떤 면에서 비참하기까지 한 일이었다.

일월마군.

천마신교 사천대교구의 대주교였던 사나이.

그 거대한 천마신교에서도 최소 서열 10위 안에 꼽히는 자였다. 어쩌면 다섯 손가락 안일지도.

구파일방이나 칠대세가의 최고위 간부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위치였다.

그러나 일월마군은 그렇게 사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천마 아래의 수많은 원로 중 하나보단, 그냥 스스로 유일한 절대자가 되기를 원했다.

재림천마를 자칭했다.

일월신교를 만들었다.

천마신교의 추상적인 교리를 멋대로 해석하고 성전(聖典)에다가 재림천마의 일화를 더했다.

인간이 감히 다스릴 수 없어야 하는 천둥번개를 수족처럼 사용하는 파천신공을 그 증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일월마군에게는 파천신공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

오직 외형과 성질에만 집중한 적명신공을 급하게 익힌 나보다도, 제대로 된 파천신공을 오랫동안 익힌 일월마군이 모자랐다.

뇌기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파천신공의 묘리를 온전히 소화하지 못했다.

물론 달리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파천신공을 완전히 익혔으면 일월마군이 굳이 사이비 재림천마를 주장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니.

적통의 피를 잇지 못해 당대의 천마가 되지는 못했겠지만 만일의 사태에 교주를 대신할 부교주쯤은 되었겠지.

그게 아니라 일월신교를 만들었더라도 파천신공을 욕심내는 화경 몇 명이 일월마군을 따라왔을 것이다.

그러니 일월마군이 파천신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점들을 감안하고서도 성취가 너무나 부족했다.

물론 재림천마에 도전하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면 무관했을 일이었다.

애초에 남과 파천신공의 성취를 비교할 일이 없었을 테니 그 모자람이 드러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굳이 파천신공이 아니라도 화경의 무인으로서 경천동지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범인의 시선으로는 충분했겠지.

그러나 우연과 운명이 겹쳤다.

일월신교가 내 명성을 이용하기 위해 나를 불렀고 나는 일월신교를 뒤집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재림천마를 주장하는 미친놈이 세상에 하나 더 나타났다. 천둥번개를 보다 자유롭게 다루며.

파천신공.

화경.

어떤 측면에서도 나는 일월마군을 대체할 수 있었다.

이제 사이비 교주가 본인을 재림천마라고 자칭하는 근거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뇌정벽력은."

잠시 말없이 있던 일월마군이 쇳소리를 내며 물었다.

"어떻게 사용한 거지?"

"어떻게라니? 뭘?"

"뇌강을 동시에 다루는 비술 말이다. 파천신공의 전승자를 찾은 건가? 교에서 파악하지 못한 은거자가 있었나? 그럴 리가. 이미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

일월마군은 정신이 나간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숫제 나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혼잣말을 하는 느낌이었다.

"마군아.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그냥 하면 되잖나."

"그냥."

일월마군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멈췄다. 음산한 눈빛에 순간적으로 증오가 깃들었다.

"천지를 향해 뻗어 나가고자 하는 번개를 '그냥' 아무 요령도 없이 다스렸다는 것이냐? 그 모든 뇌강을 일일이? 그렇게 팔에 모을 수 있었다는 말이냐?"

"그래. 그것이 파천신공의 당연한 용법 아니냐."

"……그래, 그렇군."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일월마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시선이 비스듬히 천장으로 향했다. 눈동자의 끝이 허공 어딘가를 맴돌았다.

과거를 회상하는 모양새였다. 나를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한 용법이라. 그게…… 정말 가능한 거였군. 못 믿었는데. 그게 가능했구나. 거짓말이 아니었어."

이윽고 일월마군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다시금 마주한 얼굴은 몹시도 평온했다.

일체의 악감정에서 해방된 표정이었다. 진짜 종교인 같았다.

"그래도, 내가 진짜 천마다."

"파천신공의 뇌강 하나 제대로 못 다루면서 말이냐?"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월마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다."

끼어드는 목소리. 익숙했다.

철두철미가 장악한 객석 출입구 쪽이 아니었다.

무대 뒤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대는 천마다. 진짜 천마가 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

나른한 표정으로 작게 웃으면서 걸어 나오는 사내가 있었다.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마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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