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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협객의 사회-72화 (72/120)

< 72 : 71. 천마재림(The second coming of the chosen one)(5) >

독괴와 철두철미의 합류로 일월신교와 전력의 균형을 맞췄다.

"그럼 그쪽 무명소졸 대협이 이 딴따라를 맡아주시오."

"그러지. 그 유명한 악절과 개인 팬 미팅이라니 영광이군."

"헤이, 버디. 딴따라라니. 난 보통 딴따라가 아니고 존나 아티스트라고. 그리고 사내놈이랑 단독 팬 미팅은 질색이야."

악절이 뭐라 말을 걸었지만 무시했다. 내가 신경 써야 할 자는 따로 있었다. 파천신공의 강기를 온몸에 두른 일월신마 쪽이었다. 이미 전투태세였다.

악절은 독괴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 부른 화경이었다.

독괴는 손을 풀며 악절 쪽으로 걸었다. 수술 직전의 의사처럼 새하얀 장갑을 한 번씩 당겼다.

"그러게 얌전히 자기 나라에서 좋아하는 아트나 하지 그랬소. 왜 이역만리에 와서 사이비나 돕고 있는 거요?"

"이런 일인 줄 몰랐지. 알았으면……, 그래도 하긴 했겠지만. 지미의 기타는 가져야지."

"하."

악절이 씨익 웃었다. 독괴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악절에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피워올린 독강의 륜을 양손에 두른 채였다.

악절은 손가락을 튕겨 음탄(音彈)으로 맞섰다. 악절의 설명절기였다. 지법(指法)과 음공의 조합. 위력은 특별히 강하지는 않았으나 기척이 은밀했다.

악절은 타격 지점에 시선을 둔 채 뒤로 물러났다.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쓋, 그거 독강이야? 당신 당문 출신이구나. 어쩐지 다들 알아보더라. 혹시 유명인?"

"그냥 무명소졸이오."

"암왕에게 밉보이고 쫓겨난 독수가 있다는 얘기는 나도 얼마 전에 들었지. 이거 오늘 득보다 실이 많겠는걸."

"득실을 따지는 성격이었소? 꽤 자산가라고 들었소만."

"흐, 아무것도 모르는군. 득실을 따지는 성격이라서 내가 자산가가 된 거야. 꼰대."

"……본인도 사업가로서 그 점은 동의하오."

독괴는 한쪽 눈만 꿈틀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나도 독괴의 난 당시 성질 긁으면서 몇 번 본 습관이었다. 하여튼 저 세대 칠룡칠봉은 다들 싸가지가 없었다.

"……헌데 한국말이 능숙한 것에 비해 그에 걸맞은 예절까지는 배우지 못한 모양이군. 혹시 유언을 남기게 된다면 내 잘 전해주겠소."

"내 유언은 열여섯 마디(Sixteen bar)는 될 텐데 그 나이에 제대로 기억은 하겠어?"

"……먼저 듣고 난 후 어떨지 말해주지."

독괴는 짧게 대답하며 악절을 향해 화살촉 모양의 독강을 날렸다. 소음이 말소리에 묻힐 정도로 조용했다. 일종의 암기술을 가미한 강기공이었다.

악절은 몸을 옆으로 꺾으며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어렵지 않게 피했다. 간극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음공과 독공은 공통점이 많았다.

병기로 상대하는 것이 까다롭고 다수의 하수에게 우위를 가진다는 점이 그러했다. 공격 범위가 넓고 불명확하다는 특징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둘 다 박투보다는 중거리 싸움에 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독괴와 악절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대치했다.

서로 원거리에서 기공을 몇 차례 주고받으며 세밀하게 거리를 조절했다.

드넓은 강호에서도 흔히 나오는 그림이 아니었다. 사천당가 덕분에 독공의 고수는 꽤 있었으나 음공의 고수는 몹시 드물었다.

둘의 구도는 명확한 편이었다.

그나마 독강으로 병기를 형상화할 수 있는 독괴가 근접전에 능했다.

반면 원거리에서는 악절이 유리했다. 음공은 사거리가 독공보다도 훨씬 길었다. 타고난 특질 덕이었다.

강기를 이룬 독은 음속에도 뒤처지지 않았으나 위력이 유지되는 거리가 소리와 비교하면 비교적 짧았다.

따라서 간극이 더 벌어지면 악절이 유리했고, 지금보다 가까워지면 독괴가 유리했다.

지금 그들이 만들고 있는 간극은 일종의 교합 지점이었다. 둘 중 누구 하나가 딱히 유리하지 않은 거리. 무언의 합의를 거친 결과였다.

앞으로 둘의 교전은 거리를 좁히고 넓히기 위한 양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서로를 견제하는 수법만으로도 주변이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헤이, 천마 브로. 잘 버티고 있으라고. 내 백지 수표 간수 잘하고 말이야. 금방 갈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요."

독괴가 독강의 륜을 무더기로 날렸다. 소음과 함께 무대가 터져나갔다.

화경 간의 교전이 일어나자 일월신교 장로를 포함한 주변인들은 화들짝 놀라 거리를 벌렸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었다.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가 주변을 파괴하는 모습은 그들의 눈에는 신비로 다가올 것이었다.

무대 주변엔 이제 아무도 없었다.

물론 독괴와 악절의 무공 특색을 생각하면 그조차도 안전거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영향을 넓게 미칠 수 있는 무공들이니. 이 좁은 오디토리엄 전체가 그들의 사정거리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교도들은 오디토리엄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이미 출입구를 철두철미가 장악한 상태였다.

전투 능력이 없는 대부분의 교도는 숫자는 많았으나 철두철미의 고수들을 위협할 능력이 없었다. 철두철미도 굳이 그런 자들을 향해 무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다만 상황을 통제할 뿐이었다. 그들이 봐야 할 광경을 온전히 볼 수 있도록.

"우리도 어서 할 일을 하자꾸나, 마군아."

"제기랄, 갑자기 독괴라니 이 무슨……."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있느냐."

나는 낮게 읊조렸다. 여전히 목소리를 장내에 퍼트리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홀린 듯 나를 향했다.

무대가 마련되었다.

사실 악절과 독괴의 대결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독괴가 이겨서 나쁠 것은 없겠지만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중요한 것은 나와 일월마군의 승부였다. 사실상 대장전이었다. 이기는 쪽이 진짜 재림천마였다.

진짜 재림천마라니. 재림천마 자체가 가짜인 이상 좀 우스운 표현이었다.

"명문 정파의 도사라는 작자가 어찌 이런 비열한 짓을……."

"그 말은 실로 자가당착이구나."

피차 종교인으로서의 도리를 이미 저버린 것은 비슷했다. 천마를 연기하는 도사나 사이비 종교의 교주나 떳떳할 자격은 없었다.

이건 일개 무인 간의 승부일 뿐이었다. 이젠 악절 같은 방해물도 없었다.

모든 말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오로지 싸움과 그 결과만이 남을 뿐.

나는 삼재보를 밟으며 다가가 중(重)의 묘리를 담고 주먹을 아래로 내려쳤다.

파지지지지직─!

뇌기가 공기를 태우는 소리를 내며 몸을 둘러싼 먹구름에서 뻗어나왔다. 벼락처럼 공간을 접으며 일월마군에게 도달했다.

콰앙─!

일월마군도 주먹으로 맞섰다. 부딪혔다.

파천신공 대 파천신공.

일월마군의 파천신공은 흐렸으나 약하지 않았다.

무거웠다.

일수(一手)에 느껴졌다.

설령 실전에서 도망간 지 오래인 데다가 사이비 종교 교주로 세월을 보냈다 한들 일월마군이 이룬 모든 것이 가짜는 아니었다.

진작에 화경을 이룬 무위에 더해 찬양과 신앙으로 쌓아올린 업과 격은 일월마군을 천마 엇비슷한 무언가로 만들고 있었다. 그에 더해 영약으로 부풀려진 압도적인 양의 내공도 있었다.

가짜였다. 그럼에도 천마였다. 가짜 천마 나름의 격이 있었다.

내가 일월마군으로부터 빼앗아야 할 격이었다.

이 자리에서 자하신검을 꺼내들고 일월마군을 단숨에 베어 넘긴다 한들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증명해야 하는 대상이 세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월마군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일월신교의 교도들에게 내가 그들의 진짜 천마임을 보여줘야 하는 자리였다.

불신자에게 손수 기적을 선보이는 선지자처럼, 일월신교의 교도들이 믿는 천마의 모습대로 일월마군을 제압해야 했다.

파천신공.

뇌기와 음기를 다스리는 무공. 천마의 상징이었다.

내공을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하더라도 사용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일월신교의 교리에도 적혀 있기 때문이다. 천마는 천둥과 먹구름을 제 의지대로 다스린다. 우레로 불신자를 벌한다. 교리대로 해야 했다.

쾅쾅쾅쾅쾅─!

화경 간의 초근접 박투.

주먹이 부딪힐 때마다 반동에 오디토리엄 전체가 떨렸다.

권강이 부딪혔고 번개가 터져나갔다.

일월마군과 나는 일절의 회피 없이 주먹을 주고받았다. 공격했고, 상대가 공격하면 그 공격을 공격했다. 공격일변도였다.

지고의 위치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였다. 요란하고 옹졸한 움직임은 삼가야 했다. 도망치는 것은 절대자의 행동이 아니었다.

땅이 지진난 듯 흔들리고 부딪힌 뇌기가 튀어 주변을 박살 냈으나 우리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실 내게는 그다지 유리한 방식이 아니었다. 고작 28년의 내공을 끊임없이 회복해서 사용해야 하는 내게 쉴 틈 없는 초근접 박투는 큰 부담이었다.

일월마군은 박투에 능한 자였다. 마군이라는 별호를 날로 먹은 것이 아니었다. 천마신교 시절 장법의 대가로 이름을 날린 무인이었다.

녹슨 감각으로도 어떻게든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내공과 격의 우위를 이용해 겨우 따라오던 것이 어느덧 동수에 가까울 정도였다.

점점 수법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잠들어있던 무인으로서의 일월마군이 깨어나고 있었다.

화경이란 누구나 그런 존재였다. 무재를 타고난 초인들. 세월에 녹슬었다 해도 복구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역시 첫수에 제압하는 것이 가장 편한 길이었다.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시간을 끌수록 내게 득이 될 것이 없었다.

일월신교의 전력이 이게 전부라는 보장도 없었다.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현장에서 끝내야 했다.

게다가 일월마군의 몇몇 주요 능력치 자체가 나보다 뛰어났다. 내공의 양, 사이비 천마의 격. 드러난 것만으로도 그랬다.

무공 측면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권법이 장법과 같은 무공은 아니었으나 검법보다는 그 둘이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삼재권을 대가의 경지까지 익히고 화산파의 공수검(空手劍)도 대성에 가깝게 익힌 무인이었다. 권이 주공이 아니라 한들 배움이 얕지 않았다.

일월마군에게 밀리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크게 앞선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남은 내공은 어느덧 절반가량.

강기공을 몇 번 주고받은 결과였다. 초접전에서 강기의 경파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호신강기까지 얇게나마 둘러야 했다. 천마신공은 그 경파마저 위협적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말라 죽는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러면 상대를 물러나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순간 틈을 만들었다. 오른손으로 일월마군의 왼손을 잡는 금나수.

일월마군이 역방향으로 꺾는 순간 나도 그쪽으로 힘을 돌렸다. 구속은 채 1초도 유지되지 않았으나 반대 손으로 기공을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천마신공의 뇌강(雷罡)을 크게 부풀렸다. 왼팔 전체가 하얗게 물들었다. 남은 내공 대부분을 담은 강기공이었다.

쾅!

번개처럼 일순에 닿았다. 짧고 큰 소리가 났다. 움직임이 가벼웠다. 순간적으로 손을 모은 일월마군이 쌍장으로 뇌강을 받아내었다. 일월마군이 뒤로 죽 밀려났다.

우당탕탕!

일월마군은 의자를 십수 개 박살 내며 겨우 자세를 잡았다.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건……!"

이게 뭔데. 천마 펀치?

일월마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해해주면 고마운 일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패도적인 기운이었다.

나는 저릿한 왼손을 슬쩍 바라보았다. 일방적으로 공격하고도 반탄력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할 정도였다. 손맛은 확실하네.

뇌기는 본래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파괴력은 무척 강하지만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빠르고 빛나고 화려하고 시끄러웠다. 파천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기운이었다.

내가 아는 파천신공은 뇌기와 음기를 만들고 제어하는 전반부가 전부였다.

이것을 섬세하게 다루고 응용하는 중후반부는 접할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뇌가와 음기 자체를 상식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음기를 호신강기처럼 두르고 뇌기로 공격하는 방식.

이게 파천신공의 전반부만 익힌 내가 생각한 파천신공 사용법이었다.

뇌강을 무작정 두르고 때리는 것은 그 공격방식의 극한이었다.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행히 그 자체로 충분히 강력했다.

어쨌든 큰 한 수로 일월마군을 물렸다. 버티다 나가떨어진 것은 일월마군이었다. 모든 교도들이 보았다.

나는 짧게나마 숨 돌릴 시간을 벌었다. 오연함을 가장했다. 오른손은 뒷짐까지 지었다.

"오라."

천마의 태도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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