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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협객의 사회-66화 (66/120)

< 66 : 65. 내부자들(Insiders)(2) >

회의실을 나서자 입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도들의 시선이 몰렸다.

긴장한 몸짓이었다. 아마 이 중에는 독이 든 과자를 가져온 신도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보자 신도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쳐 걸었다.

도하나의 스포츠카를 타고 일월신교 사천 사원을 바로 빠져나왔다.

"정지."

"네?"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를 세웠다.

이후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미리 알아본 대로 주변에 높은 건물은 거의 없었다.

오늘 마선을 쫓을 생각이었다. 계획에 없었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얼굴 보기도 힘든 거물이었다. 일월신교의 국제 무림 평화 컨퍼런스에 참석할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마주친 것은 행운이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사원을 떠나는 척 기다렸다가 추적할 생각이었다.

화경 극한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의술에 특화된 화경 하나를 상대하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원래라면 까다로운 상대일 수 있었으나 만독불침을 이룬 지금에는 상성이 좋은 편이었다.

결국 약과 독은 한끝 차이다. 의선이라고 불리지만 그들이 싸우는 방식은 독인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독과 약을 쓰고, 암기와 침을 사용해 싸운다.

만독불침을 이룬 것만으로 신경 쓸 거리가 많이 줄어들었다.

내가 만독불침이라는 정보가 아예 없을 지금이 제격이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신호를 보내겠다."

"네, 사형."

도하나는 근처 도로에 대기시켜두고 나는 그나마 높은 건물로 들어갔다.

초고층 빌딩은 아니지만 사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대형 병원이었다.

딱히 출입을 막는 자들은 없었기에 비상계단으로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계단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적당한 높이까지 올랐다.

난관에 기대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원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사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입구 쪽과 주차장 쪽은 확실하게 보이는 각도였다. 높이도 적당했다.

밖은 더운 날씨였지만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한서불침의 경지를 이룬지 오래였다.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의 날씨였으나 나는 식은 마음으로 기다렸다.

마선은 오래된 악연이었다.

스승님의 오랜 친구인 백두의선과 같은 삼대의선으로 묶인 사내. 무림공적으로 지정되기 전에도 안면이 없지는 않았다.

처음 볼 때부터 내 몸을 연구하고 싶다는 욕심을 은연중에 드러낸 사내였다.

내가 당시 열셋의 나이로 초절정을 이뤘을 즘이었다.

도사로 길러지고 있는 천살성인데다가 무공 경지가 비정상적으로 높았으니 관심이 생긴 듯했다.

하긴 지금은 핵폭단을 연구하고 있을 정도였다. 내 성취의 신비가 그에 비견할 만하다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백두의선 영감님과 함께 내가 천독불침을 이룰 때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아무튼 나에게는 처음부터 꺼림칙한 인간이었다.

그 이후에 마주친 것은 무림맹의 의뢰를 받아서였다.

핵폭단 연구소를 파괴하고 자료를 모아달라는 의뢰.

그곳에서 나를 소룡이라고 부르는 마선을 마주쳤다. 몇 년 만이었다.

아무튼 그때는 힘들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날이었다.

오늘처럼 더운 날씨에 공기가 습했다.

동료 암매화들은 많이 다쳤고, 나에게도 여력이 없었다.

당시에는 화경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이었다.

핵폭단을 복용한 채 내공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전대의 고수를 상대하는 것이 힘이 부쳤다.

쓰러져 있는 화산의 후기지수들. 여전히 끊임없이 강기를 뽑아내는 전대 고수.

강기를 다루는 효율도 높지 않았던 시절.

화산의 미래를 걸고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문도들을 버리고 도망치느냐, 아니면…….

나는 결정을 내렸다.

전대 고수는 겨우 상대할 수 있었으나 그때는 이미 내 몸도 만신창이었다.

마선이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도망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보자. 소룡."

마선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 이후로는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이후 스승님의 목숨을 빌려 겨우 목숨만 건졌다.

마선은 불법 핵폭단 연구소장의 책임을 물어 무림공적이 되었다.

무림공적이 되었다는 것은 잘살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무림공적을 죽인 자가 자신의 성과를 숨길 일은 잘 없으니 말이다.

그날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내공, 스승님, 화산파에서의 위치까지.

마선을 원수라고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의 연구소를 파괴하러 간 입장이었고, 스승님이 천명하신 이유는 사실 나 때문이었으니까.

그러나 마선 역시 아주 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무림의 논리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림맹과 암매화가 그의 연구소에서 깽판을 친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해야 할 일을 한 것이었다.

서로가 어떤 것도 얻지 못하고 많은 것을 잃기만 했다. 남은 것은 원한뿐이었다.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었다. 신념과 신념의 대립이었고 무와 무의 대립이었다. 강호가 늘 그랬듯이.

무림맹의 남은 의뢰, 무림공적이라는 사실, 내 몸을 연구하려는 것, 인체실험을 불사하는 살인 의사라는 사실.

마선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스승님의 죽음에 관한 책임을 묻고자 하는 의도가 중요치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때 나는 약자였기에 마선에게 어떤 책임도 묻지 못했다.

오늘은 강자의 위치에 있을 것이다.

전대 고수의 비호도, 실험실 경비원들의 호위도 없는 일개 화경.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난관에 기대고 마선이 나오길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마선이 사원 밖으로 나왔다.

손깍지를 껴 얼굴을 대충 가리고 안력을 집중했다.

현재 내 위치는 불이 꺼진 비상계단이었다. 화경이라고 해도 이 거리에서 바로 알아차리기는 힘들 정도였다.

마선이 차를 타면 도하나를 시켜 추적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건물들 사이에서 경공을 밟으며 따라갈 계획이었는데.

순간.

마선과 눈이 마주쳤다.

착각인가? 싶었지만 아닌 것 같았다.

오랜 무림공적 생활을 했으니 당연히 높은 건물을 살피는 행동은 할 만했다.

마선이 돌아다닌 나라 중에는 총기 소지가 합법인 국가도 있었을 테니 저격에 대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들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리에서 나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옥상도 아니고 불 꺼진 비상계단 중간 지점에 있었으니 말이다.

누가 알려준 것이 아니라면.

마선은 웃었다. 확실했다. 놈과 눈이 마주친 거다.

마선은 차를 타지 않고 사원 뒤편 사각으로 이동했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방향.

도하나에게 연락하려는 순간 비상계단의 문이 열렸다.

"거기, 누구십니까!"

경비회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자들. 타이밍이 절묘했다.

나는 곧장 창문을 넘어 뛰어내렸다.

8층 높이였으나 개의치 않았다. 바람을 타고 활공했다. 몸 주위에 내공으로 된 막을 펼쳐 닿는 표면적이 몹시 넓어지게 했다. 두께는 얇게 넓이는 넓게.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몸이 가벼워졌다. 그러니 경공(輕功)이라 부르는 기예였다.

떨어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병원의 이름이 보였다. 평화제일병원.

"하."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멍청했다.

첫번째는 마교 출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평화'를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원 주변의 높은 건물, 게다가 병원을 일월신교 같은 사이비 종교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원래 자기네들이 지은 것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자기네들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까놓고 말해 현재 대한민국에서 내 얼굴을 모르는 자들이 많지 않았다. 세상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자들은 나를 알고 있다.

게다가 내가 직접 언론에 일월신교와의 커넥션을 퍼트린 이상 일월신교의 교도들이 나를 모를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병원은 일월신교 재단의 소유였을 것이고, 나를 막지 않았으나 입구에서 이미 보고가 올라갔을 것이다.

혹시 몰라 내려오며 도하나에게 연락을 해보았지만 도하나의 차량도 트럭에 의해 앞뒤가 포위당한 상태라고 했다.

못 나갈 것은 없겠지만 차를 쓰기는 무리였다.

─사형, 다 부수고 갈까요?

"아니. 그냥 둬라. 곧 빠질 거니까."

─앗! 정말이에요! 얘들 저한테 사과하고 어디로 가는데요? 쫓을까요?

"아니. 잔챙이들이다. 의미 없다. 그냥 사원 쪽으로 다시 와."

─얘들이 먹을 거 줬는데 이건 먹어도 돼요?

"……일단 먹지 말고 와봐."

나는 경공으로 밟았지만 사각으로 빠진 화경을 쫓기는 힘들었다. 사원 근처에 도달했을 즘엔 이미 마선은 보이지도 않았다.

과연 십여 년 동안 무림공적 생활을 하며 살아남아 온 저력이 엿보였다.

다음엔 그냥 앞뒤 가리지 않고 베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게 누구신가? 김 장로 아니요? 뭐 두고 간 물건이라도 있소?"

일월마군과 장로들이 근처로 다가와 웃음을 흘렸다.

"교도들이 하늘에서 뭔가가 번개처럼 떨어졌다길래 고수의 습격인가 했더니 김 장로였군."

"……주변 경관이 좋아서 산보 한 번 해봤소."

"과연! 명문 출신답게 산보로 밟는 경공마저 실로 쾌속하고 호탕한 것이 아주 보기 좋았소. 나는 누구를 쫓는 줄 알았지 뭐요!"

"하. 하."

이거라도 죽일까?

잠깐 그렇게 생각했으나 일월마군은 사이비 교주라도 화경 이상의 경지를 이룩한 자였다. 만전의 준비를 하지 않고 싸우는 것은 좋은 수가 아니었다. 어디 도망갈 자도 아니고 말이다. 게다가 그냥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구도를 만들어야 했다.

일월마군과의 싸움은 미루는 것이 맞았다.

대신 옆에서 실실 쪼개고 있는 장로들을 노려봐주었다.

곧 다시 보자. 다시 보게 될 거다.

***

며칠이 지나자 장로 몇이 죽고 몇은 폐인이 되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지도 별 볼 일 없는 양반들이 뭐 급하다고 그렇게 정종의 영약들을 구해서 드셨는지. 무슨 영양제 마냥 함부로 먹을 물건은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당가에게 밉보인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마선 교외장로님도 증상을 알 수 없다 하시고요. 그래서 혹시 당가와 연이 있는 김 장로님은 혹시 들으신 게 없는지 연락드렸습니다.

"아, 김 상배 주교. 그에 대해서라면 내가 확실히 알고 있소."

─저, 정말이십니까?

"그렇소. 그러니까 내가 마음이 여려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음."

─무슨 말씀이신지?

"살고 싶소?"

─살, 고 싶냐고요?

"그렇소."

나는 웃으며 말을 했다. 독을 쓰는 것은 처음이라 협박하는 것이 익숙지 않았다. 잘 통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살고 싶으면 오늘 교로 오시오. 아, 내가 말하는 교는 학교요."

─그 말씀은…….

"자세한 얘기는 와서 하지. 김 주교가 생각하기에 신심보다 개인의 영달이 중요한 장로들은 모두 부르시오."

그날 저녁. 나를 찾아온 장로들은 6명이었고, 그중엔 나에게 얼굴이 깨졌던 광명우사와, 사천 교구 주교마저 포함되어 있었다.

내공을 잃거나 죽은 장로를 제하면 남은 장로 중 2/3에 해당하는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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