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은 협객의 사회-64화 (64/120)

< 64 : 63. 장로회의(Council of Elders)(3) >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사이 장로회의가 개최되었다.

사회를 보는 자는 사천 교구 주교였다.

앞서 말한 교주의 무인협회장 출마 건부터 시작해서 은밀하고 확실한 전도를 위한 계획, 수입 증가를 위한 사업 방안 등의 논제가 이어졌다.

미인계를 사용해 전도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통하겠냐?

그렇게 말하려고 했으나 바로 다음 순간에 주교가 보여주는 자료 화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보다시피 사천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실험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포교 활동에 유의미한 성과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쁜 여자랑 잘생긴 남자가 이성에게 포교 활동을 하는 게 효과가 있다 이 말이오?"

"그렇습니다. 저희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기존의 전도 방식보다 약 30% 이상 높은 전도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첫 예배 이후 이탈률도 낮은 편이며 특히 정식 교도 전환율도 높다는 것이 긍정적입니다."

"허허, 김 장로. 벌써 포교 활동에까지 관심을 두는 것이오? 역시 명문 출신답게 할 때는 제대로 하는 모양이군!"

일월마군이 만족한 듯 호탕하게 웃었다.

아니, 그냥 어이가 없어서 물어본 건데.

"혹시 그 사천시의 대학가라 함은?"

"사천시립대학교와 사천전문대학, 사천무공대학교 세 군데에서 시행한 결과입니다."

설마 했는데 사천공대도 끼어 있었다.

우리 학생들아. 무공만 익히지 말고 책도 읽고 생각도 하면서 살자. 나라의 후기지수라는 놈들이 벌써 미인계에 넘어가면 어쩌자는 것이냐.

근데 생각해보니 사천공대는 번호 안 준다고 칼부림까지 일어나기도 하는 곳이었다.

사천공대 학생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었다. 입시에서 정사마 소속 여부는 블라인드 사항이었으니 그런 부류도 있을 만했다.

"그러고 보니 김 장로의 뒤에도 어여쁜 계집이 하나 있구려. 포교 활동에 동원하는 것은 어떻겠소?"

이름 모를 장로 하나가 역겨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계집이라."

나는 자연스럽게 몸에 들어가는 힘을 뺐다. 도하나는 미동도 없이 여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누구를 일컫는 것이지? 내 뒤에는 화산의 어린 도사 하나가 있을 뿐일 것인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로는 눈이 마주치자 움찔하면서도 끝내 말을 이었다.

"아하. 저 계집이 도사였소? 그것참 각별한 맛이 있을 것 같소. 포교용으로는 아까운데 장로 전용으로 쓰는 것도 방법일 것 같소. 흐흐."

"하하. 박 장로. 농담이 참 짓궂으시오. 어찌 우리 김 장로님의 장난감에 손을 대려 하시오. 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하하!"

"에잉, 김 장로님이 혼내시면 혼나야지! 안 아프게 살살 해주시오!"

원탁의 늙은 장로들 대부분이 더러운 웃음을 흘리는 와중.

일월신교의 주요 장로 셋은 웃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판에 끼지 않겠다는 주장이었다.

마선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 교주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신고식 겸 서열정리였다.

일부러 긁어서 성질을 테스트하겠다는 것.

물론 더러운 언사에 어색함이 없는 것이 분명 늘 하던 말과 행동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 지저분한 일상을 나와 도하나를 향해 드러낸 것이 특이했을 뿐이었다.

화경의 무인이 자기네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테니.

검룡패로 묶인 계약에 임하는 나의 태도를 확인하는 것에 가까웠다.

"정신이 나갔구나."

바라던 바였다.

나는 기꺼이 응할 셈이었다.

기파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었다. 원탁 전체에 살기를 내뿜었다.

순식간에 장로들의 웃음이 멎었다.

28년 분량의 내공이 초고속으로 대주천하며 내뿜는 기파에 공기가 떨렸다.

원탁 위에 올려져 있는 다과와 찻잔이 흔들렸다.

쨍그랑!

이내 찻잔이 깨졌다.

그 소리에 장로들이 몸을 움츠렸다. 눈빛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한낱 화경을 재림천마로 모시는 무지렁이들.

보잘것없는 하수들이었다.

살의와 살의가 맞서는 제대로 된 싸움을 경험하지도 못한 주제에, 그저 약자만을 갈취하며 웃고 누리는 자들이었다.

태연하게 있는 것은 마선과 일월마군에 불과했다.

주교와 좌우호법들까지 식은땀을 흘리며 내 기파를 간신히 견디고 있었다.

"종교인이라는 작자들이 입을 함부로 놀리다니."

나는 그들의 떨리는 눈동자를 보며 가볍게 원탁을 찍었다. 손속에 사정을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미 조사한 바로는 죄다 인간쓰레기들이었다. 적지 않은 숫자의 인생을 망가지게 한 자들이었다.

내게 그들을 벌할 권한 따위는 없었으나 시비를 건다면 받아치는데 자비를 둘 생각은 없었다.

콰지직─.

무거운 대리석 원탁이 타격점으로부터 수십 조각으로 찢어지며 장로들의 무릎을 눌렀다.

"윽."

"그억!"

내부에 발경력이 담겨있었기에 그들이 감당하는 무게는 일반적인 돌덩이의 수준과는 다를 것이었다.

처음부터 명백하게 아래 방향을 노리는 발경이었다. 격산타우의 수법을 활용하여 허공섭물보다는 훨씬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절정의 무위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우드득.

"끄아악!"

여러 곳에서 관절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리를 못 쓰게 되지는 않을 테지만 당분간은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정도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에 비하면 그리 큰 고통도 아닐 것이다.

견딜 수 있는 자들은 극히 소수였다.

스윽.

투둑.

마선은 즉시 무너지는 원탁 조각을 손톱 칼로 가르고 좌우로 쳐냈다. 애초에 돌이 몸에 닿지도 않았다.

파삭!

팡!

좌우호법은 손으로 떨어지는 돌조각을 받으며 발경력을 필사적으로 흘렸다. 팔뚝과 허벅지 부분의 옷이 터져나가고 의사가 박살 났다. 그래도 반쯤 선 채로 버텼다.

그들 중 경지가 비교적 떨어지는 사천 주교는 무릎까지 꿇으며 발경력을 겨우 해소했다. 사제복이 찢어진 것은 물론이었다. 힘을 과하게 쏟았는지 그 상태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머지는 돌덩이에 그대로 깔려 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경지가 낮은 자는 허벅지 아래가 그대로 으깨진 자도 있었다.

"내 가르침을 주마."

서열 정리.

나도 원하는 바였다.

마선과 일월마군의 경지를 눈으로 확인한 지금 잡것들에게까지 신경을 쓰기가 힘들었다.

열화핵폭단 복용 가능성이 있는 이상 가능한 많은 숫자를 전력에서 이탈시키는 것도 부수적으로 의도했다.

"첫째, 화산파의 도사를 모욕하지 마라."

도하나는 태연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애초에 그쪽으로는 내 살기가 향하지도 않았다.

"둘째,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라."

일월신교의 주요 장로 셋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그렇게 말했다. 좌우호법이고 사천 교구 주교고 딱히 존중해줄 생각은 없었다.

서열정리 기회를 준다면 함께 밟아버리면 그만이다.

아랫것들과 서열을 두고 투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셋째, 더러운 것은 입에 담지도 생각하지도 마라."

다리가 망가진 장로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들은 나와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일월마군이 힘과 폭력으로 재림천마를 주장한다면.

나 역시 못할 것이 없었다.

짝. 짝. 짝.

교주가 느릿하게 손뼉을 쳤다.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채였다. 몸에 두르고 있는 옅은 회색빛의 기막이 눈에 띄었다. 색이 탁하지만 얇고 촘촘했다. 수준 높은 호신강기였다.

"역시 김 장로요. 명문 출신답게 화끈하구만. 특히 그 세 번째 가르침은 교리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겠소. 더러운 것은 눈으로 보지도 말라고 했던가? 참으로 감명 깊소."

"교주가 진정 무인협회의 장이 되길 원한다면 이런 쓰레기들은 다 쳐내야 할 거요."

"아, 그렇소? 내 참고하도록 하지."

물론 교주나 여기 장로들이나 비슷한 인간일 테니 교주가 그들을 쳐낼 일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딱히 기대하지도 않았다.

"헌데 그 원탁이 아주 비싼 물건이오. 유럽에서 비싸게 주고 수입한 물건이란 말이오. 어떡하면 좋지? 잘못한 것은 다른 장로들이나 물건을 부순 것은 김 장로이니 책임을 묻는 것이 고민이 되는군."

일월마군은 능청스럽게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 문제의 시발점이 된 저 여도사가 책임을 지는 것은 어떻소?"

"교주, 첫 번째 가르침 못 들었소?"

"아, 그 가르침이라는 것이 내게도 적용되는 것이던가?"

"그렇소."

"그렇군."

나와 일월마군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검룡패로 데려왔다 한들 내게 마냥 굽힐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교주는 씨익 웃을 뿐이었다. 그냥 넘어가겠다는 뜻.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나를 꺾지 않고 둔다는 것은 사냥이 끝나면 개를 삶겠다[兎死狗烹]는 뜻이었으니.

그렇다고 내 방침이 달라질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개라고 치면 주인을 물 생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뭐 돈이야 썩어 넘치는 것인데 책임 소재가 사실 뭐가 중요하겠소? 그냥 내가 하나 새로 나오리다. 이번엔 더 좋은 걸로 사와야겠군. 만년한철 같은 걸로 만들었으면 김 장로도 이렇게는 못 했겠지. 여봐라."

"네, 천마님."

"신도들에게 일러 새로운 원탁을 하나 가져오라고 해라. 차와 과자도. 다과는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천마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교주는 신도들을 불러 짧게 명했다.

곧 남신도들이 나무로 된 원탁을 어디서 들고 왔다. 여신도들은 차와 과자를 들고 와 원탁에 올렸다.

장로 하나마다 여신도 하나가 붙어 몸을 부축했다. 장로들은 부축을 받으며 여신도들의 몸을 더듬기도 했다. 저 팔까지 작살을 내어놨어야 하는 건데.

"잠깐."

"무슨 일이오, 김 장로. 아직도 뭐가 남았소?"

"잘 생각해보니 내 손속이 과했던 것 같소. 사과드리오."

"허, 과연. 명문 출신답게 참으로 호걸이오. 그래. 내 그 사과를 받아주겠소."

"내 사죄의 의미로 직접 가져온 차를 한 잔씩 돌리겠소."

"직접 가져온 차를?"

"그렇소."

나는 종이 가방에서 용정차를 꺼냈다. 암왕 핸드메이드 한정판이었다. 희귀함만 따지면 암왕 영감님의 독문암기 명왕봉(冥王棒)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인 물건.

나는 찻잎을 꺼내 교주에게 건네었다.

"마선."

"주시오."

교주는 직접 받지 않고 마선에게 물건을 건네었다.

마선은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고, 찻잎을 씹어보고, 물에 타서 확인하기도 했다.

"독은 없소. 최고급 용정이군.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쌀 물건이오."

"하하. 그렇군. 김 장로. 잘 받겠소."

"내 사죄의 의미로 선물한 것인데 참 서운하오."

난 그저 삼대의선도 속일 수 있는 독의 존재가 두려울 뿐이었다. 암왕 영감님은 대체 무슨 물건을 만든 것일까?

나는 이내 끓인 차를 한 잔씩 돌렸다.

"내 손속이 과했소. 이거 받고 풉시다. 이제 쌓인 건 없는 거요."

"괘, 괜찮소. 그렇게 합시다."

때린 놈이 차 한 잔 돌린다고 다리가 낫지는 않겠지만 장로들은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몸에 다른 게 쌓이기는 할 수도 있는데 그래. 우리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아닌 걸로 하자고.

한 잔씩 돌리고 동시에 차를 마셨다. 오늘따라 용정의 맛이 아주 좋았다.

"오, 맛이 일품이오."

"이 정도의 용정은 나조차 오랜만이다."

그때 뒤에 서 있던 도하나가 과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그 손등을 탁 쳤다.

"예의 없이. 얌전히 뒤에 서 있거라."

본인이 희롱당할 때도 웃고 있던 도하나의 표정이 퉁명스러워졌다.

그리고 내게 짧은 전음을 쳤다.

─사형. 먹을 걸로 그래. 서운.

못난 것아. 다 너 건강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나는 도하나의 전음을 흘려들으며 과자를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만독불침으로 감지되는 찌르르한 느낌. 코끝이 잠깐 따가웠다. 극독이었다. 그간 경험에 의하면 즉각적 해독이 어려운 수준. 과자 전체가 아니라 접시 표면 쪽에 발라져 있었다.

아마 이 자리에서 즉효가 있는 독을 먹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다른 물질과 접촉해야 효과를 발휘하는 합성독이나 몸에 쌓이는 잠독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렇단 말이지.

화산파의 도사와 일월신교의 교도들.

종교인들이 독으로 수작질을 부리고 있었다. 서로.

그들이 예상치 못했던 것은 이 말코 도사가 공수해온 독이 훨씬 고급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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