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은 협객의 사회-61화 (61/120)

< 61 : 60. 일월신교(Lunisolarism)(3) >

일월신교는 내가 교의 장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특별히 홍보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에 하던 대로 영웅 만들기에 치중할 뿐이었다. 일단은 내 이미지를 더 확고하게 만들려는 모양이다.

내 이미지가 좋은 쪽으로 굳어지고, 국제 무림 평화 컨퍼런스에서 축사를 하고 나서야 슬그머니 노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론전의 전문가다운 판단이었다.

오히려 일월신교의 후원을 받지 않는 쪽의 언론에서 소식을 접했는지 기사를 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부분은 크게 노출되지 못하고 묻혔다.

내 생각은 그렇다.

적의 의도를 알고 있다면 일단 흔들어 보는 것은 대개 옳다.

"……그러니까 김 형 쪽에서 먼저 알리겠다?"

"그래."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아직 이미지가 굳어지기 전인 지금 그런 소식이 공개하면 반발이 클 거에요."

"그건 상관없습니다."

내가 정보 노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만한 상대는 뻔했다.

소걸과 당초아였다. 업계의 전문가들.

"이 작자들이 내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 누구에게 어필하려는 것일까요?"

"누구에게……요? 그거야 당연히 대중들이겠죠."

"그렇습니다. 대중들. 그러나 모두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자기네들 손아귀 바깥에 있는 외부인을 목표로 하는 거겠죠. 일월신교에 대하여 부정적이나 중립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지금에 와서 내가 장로라는 것을 알리는 게 시기상조이겠지요."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충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화산검룡이 일월신교의 장로다. 그걸 당장 기뻐할 만한 사람들이요."

"……일월신교의 신도들이겠군."

"그래. 지금 내가 일월신교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면 충분히 좋아할 만한 사람들이지."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일월신교의 컨퍼런스가 지나고 나면 오히려 늦습니다. 지금부터 내부인들에게 이미지 관리를 해야죠."

"이미지 관리라니. 대체 무슨 짓을 할 생각이오?"

소걸이 물었다.

"글쎄. 아마 지금까지 도적(道籍)에 이름을 올린 도사는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을 일?"

"대충 감이 오는 게 몇 개 있긴 한데. 그게 맞나 싶군."

"이게 진짜 맞나…… 싶은 생각이 들면 그건 것 같기도 하네."

이 둘에게는 내 생각을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도움을 주는 자들은 내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편이 방향 잡기가 편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분간 비밀이다."

나는 전음으로 둘에게 알려주었다.

그건 아마 도가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발언이었을 것이다.

"……네에에?!"

"역시. 김 형은 멋지게 미친 사나이요."

당초아는 당최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괴음을 질렀고, 소걸은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은 김 형에게 협력하겠소."

옆에 있던 당초아도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문도 물론 도울 거에요. 잘은 모르겠지만……. 어렵지 않은 일이긴 해요. 엠바고(Embargo) 없이 매체에 정보를 흘리면 빠르게 퍼질 일이죠. 당가 쪽에서도 기사화되는 걸 제재하지 않을 거고요."

"그렇게 해주세요. 가능한 한 빨리요."

***

다음날부터 주요 언론에 정보가 풀렸다.

<속보)'독괴의 난'의 주역 '화산검룡', 일월신교의 장로로 밝혀져>

<도사인가, 사이비인가? '국대'급 고수의 의중을 알 수 없는 행보>

그에 따라 인터넷 언론과 고무림 등에도 후속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월신교는 어떤 종교인가? 고무림 특집 분석>

<화산검룡은 '만들어진 가짜 영웅'인가?>

반응은 상당히 격렬한 편이었다. 나를 지지하는 쪽과 의문을 가지게 된 쪽이 편을 갈라 싸우고 있었다.

<근데 애초에 화산검룡이 일월신교인 게 뭐가 중요함? 사이비 장로면 독괴랑 검괴 바른 사실이 사라짐? 애초에 검룡이 실력으로 떴지 다른 걸로 떴나?>

ㄴ<일월신교 피해자 인터뷰 링크>

ㄴ<아직도 이런 사이비 빠는 고무림도가 있다?>

ㄴ<검룡이 그 화산검선의 제자라서 당연히 인성도 개쩌는 협객이라는 말 많았죠? 근데 사이비 종교의 장로라는 사실로 그게 부정된 거임>

ㄴ<일월신교는 사이비가 아닙니다. 평화와 사랑을 전도하는 종교일 뿐입니다. 핍박하지 말아 주세요 ㅠㅜ>

ㄴ<사이비 검거 완료>

***

다음날 등교하자 학생들의 반응도 조금 떨떠름했다.

"교수님, 어제 기사 봤어요……."

"그래."

"맞아요?"

"그래."

나는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사실이었으니까.

"교수님이 왜요? 거기 사이비 아니에요?"

"맞다."

"아시면서 왜……?"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수업과 관계없는 이야기다."

학생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원지혜가 한 차례 더 물었지만 나는 더는 관련된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수업이 시작되었다.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이 몇몇 있었고, 개중엔 실망하는 표정으로 보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일단 강의가 시작되자 침착함을 되찾고 가르침을 소화했다. 체화된 학습 분위기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오전 강의를 마치고 휴대폰을 보자 연락이 와 있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으며 전화를 받았다.

"김산이오."

─장로님. 언론에 알리신 거, 장로님이 하신 일이십니까?

익숙한 목소리였다. 일월신교 사천 교구의 주교였다.

"아, 우리 주교 양반이로군. 그렇소만. 무슨 문제라도 있소?"

─문제, 까지는 아닙니다만. 어째서 그런 일을 하신 겁니까?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그저 뭐 어차피 알려질 일. 숨겨봐야 뭐하겠냐는 생각이었소.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지 않소?"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저희가 노출 시기를 생각하던 중에 공개되어서 당황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왜. 언론에 알려져서 안 좋은 거라도 있소?"

─아뇨. 장로님의 이미지가 더 좋아지기 전에 조급하게 공개된 것 같아 조금 아쉬울 따름입니다. 컨퍼런스 축사는 준비하고 계십니까?

"기가 막히게 준비하고 있소. 아마 들으면 깜짝 놀랄 거요."

─하하, 기대하지요.

주교는 당황하긴 했지만 별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내게 특별한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나는 대가를 받고 일월신교에 반강제로 입단한 사람인데 그 사실을 공개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주교는 다음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연락을 끊었다.

이후 주중 수업을 큰 소란 없이 마쳤다.

주말에는 가볼 곳이 있었다.

***

교외에 있는 달동네.

주말에 시간을 내어서 왔다.

최근에 운전을 배우는 도하나의 옆자리에 앉아서였다. 당초아로부터 스포츠카를 하나 받더니 좋다고 끌고 다녔다.

무인답게 운전이 좀 난폭하긴 했는데, 초절정의 무인답게 사고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달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스포츠카를 한적한 공터에 주차했다.

행인 하나를 마주쳤는데 순간 얼굴에 의아함과 탐욕이 번뜩였으나 이내 두려움으로 차올랐다. 우리가 차고 있는 무기를 본 듯했다.

이런 곳에서 무인들은 대개 악마로 여겨진다. 빌려준 자 아니면 뺏으러 온 자이기 때문이다.

행인은 이내 고개를 숙이고는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슬럼가 특유의 악취가 동네 전체에 배어 있었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에는 늘 힘이 없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그중에서도 구석에 있는 어느 집이었다.

안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사형, 여기 맞아요?"

"그래."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장이 난 듯했다.

똑똑.

문을 두드렸다.

안이 너무 시끄러워 들리지 않는 듯했다.

"실례하겠소."

내공을 실은 목소리가 집안으로 퍼졌다.

집안이 문득 조용해졌다.

"누구세요?"

끼익거리는 녹슨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것은 열댓 살이나 되었을 법한 여자애였다. 교복을 입고 나왔다.

충분한 양의 식사를 하지 못했는지 몸이 몹시 말랐다. 무공을 익힐 수도 없을 정도의 영양 상태였다.

"교에서 왔다."

"교요? 이 꼴이 됐는데도 우리한테 뭘 받아갈 생각이에요? ……앗, 아저씨는?"

"날 아나?"

"신문에서 봤어요!"

"신문."

"네네, 학교에서 받아보는 공짜 신문이 있거든요. 헐. 저 가방에 있는데 보실래요?"

누군가는 인터넷이나 영상 매체를 통해 내 소식을 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릴 때만 해도 당연한 일이었는데 이 순간 나는 그게 몹시 낯설었다.

"일단 들어가지."

"아, 그쵸. 내 정신 좀 봐. 들어오세요!"

작은 방 한편에 꼬마들 여럿이 놀고 있었다. 우리는 소녀를 따라 계속 들어갔다.

그나마 안방이라고 할 만한 공간에 이 아이들의 부부가 있었다. 언성을 높이던 자들인 듯했다.

"누구시오?"

"교의 장로요."

"……장로 말씀이시오?"

"네, 아빠. 아까 신문 보여 드렸잖아요. 엄청난 고수가 일월신교의 장로였다고요."

"아아. 그분! 정말 그분이십니까!"

남자의 얼굴은 순간 환희로 가득 찼다. 그러고는 소리를 질렀다. 참으로 목청은 큰 사람이었다.

"이 여편네야, 봐라! 내 뭐라 했나! 내가 여태 헌금을 낸 것이 언젠가 다 보상받을 거라 하지 않았나! 아이고! 어서 앉으시지요! 이 누추한 곳에!"

아내로 보이는 자는 입을 다물고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저 여자의 생각은 옳았다.

일월신교는 단물 다 뽑아먹은 교도에게 어떤 대우를 해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여길 찾아온 것은 개방의 정보를 듣고서였다. 가까운 곳에 피해자가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야기를 듣고자 왔소. 어떻게 교에 입교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교에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버려졌는지.

당신의 선택 탓에 가족들은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굳이 거기까지 말하진 않았다. 굳이 듣지 않아도 보였으니까.

번듯한 중산층의 일원이었던 시기.

병으로 고생하며 직장을 잃고 방황하던 일.

일월신교의 도움을 받아 병이 나은 것.

그리고 지금까지 낸 막대한 헌금.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헌금은 가족 숫자만큼 낸다고 하는데 그건 아이들의 몫도 포함이라 했다.

헌금을 내기 위해 빚까지 지고 이곳에 있지만 남자는 전혀 후회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제가 낸 헌금이 천마님께 도움이 되었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장로님, 저도 내세에는 신선의 세계로 갈 수 있겠지요?"

선계라는 게 있다 한들 당신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재림천마님의 옆자리로 갈 수 있을 것이오."

나는 다만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이만 가보겠소."

"아, 바쁘신 분을 잡아두고 계셨군요! 이 누추한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림천마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수신제가(修身齊家)하지 않고 피폐하게 살면서 종교에 감사함을 표하는 모습에 나는 일종의 섬뜩함마저 느꼈다.

"가자."

"네, 사형."

나는 집을 빠져나왔다.

소녀가 현관까지 따라왔다.

"저기, 혹시 지원금 같은 건 없나요?"

멋쩍은 미소로 소녀가 물었다.

"교에서 오랜만에 왔다길래요. 아저씨, 아니, 장로님 같은 대단한 분이 오시기도 했고요."

"아, 잊었군."

나는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현금이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몇십만 원 정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있는 대로 집어 소녀에게 주웠다.

소녀는 집을 돌아보더니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 돈을 제 아버지에게 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문득 시선을 마주한 소녀가 소박하게 웃었다.

"동생들 밥은 먹여야죠."

"아버지를 원망하나?"

"네."

소녀는 당돌하게 대답했다.

화경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기세를 드러내지 않았다 한들 쉽지 않았을 일일 텐데.

"하지만 멍청한 우리 아버지를 속이고 이렇게까지 만든 교를 더 원망해요."

순해 보이는 소녀의 눈 깊숙한 곳에는 독기가 있었다. 바닥에서 쥐어짜 낸 목소리였다.

"아저씨라서 말한 거예요. 아저씨는 교의 다른 사람들이랑 다른 것 같아서요."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소녀는 무얼 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일까.

소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몸을 돌려 시끄럽고 좁은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소걸과 당초아에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결심이 더욱더 확고해졌다.

전음으로 그들에게만 알려줬던 내 의도.

「나, 천마가 되어볼까 한다.」

그들은 검룡패를 주며 내게 사이비 종교의 장로가 되어달라 했다.

확인.

업과 계약으로 묶인 이상 빠져나갈 수는 없다.

뭐 됐다. 장로를 그만두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놈의 재림천마.

내가 해먹으면 되는 일 아닌가.

나는 일월신교를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가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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