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은 협객의 사회-60화 (60/120)

< 60 : 59. 일월신교(Lunisolarism)(2) >

"장로가 되신다고 해서 특별히 어떤 일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제 무림 평화 컨퍼런스에만 참석해 축사 정만 해주시면 됩니다."

"국제 무림 평화? 댁들이 그런 걸 하오?"

"이래 봬도 종교니까요. 평화를 기원하고 복을 구하는 것이 그 본질이지 않습니까?"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국제라는 건?"

"천마님께서는 해외 진출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두고 있고요."

주교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더니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제 장로님도 있으니 이건 다시 만들어야겠군요."

[국제 무림 평화 컨퍼런스 초대장]

받아보니 이름부터 해괴한 회의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보면서 놀랐던 것은 축사를 맡게 된 사람 중 꽤 저명한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군자검?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아마 맞을 겁니다. 무림맹의 1군사를 역임하셨던 분이죠."

그 외에도 미국 헥사곤(The hexagon)의 전 장관, 무림맹의 전 간부, 천마신교의 장로, 심지어는 약소국이기는 했으나 한 나라의 대통령도 몇 포함되어 있었다.

현역인 자들은 거의 없었으나 주요 기관에 간부로 있었던 자들마저 컨퍼런스에 참석해 축사를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째서 이런 자들이 이런 곳에서 축사나 하는 것이지."

"얼굴 한 번 빌려주는 것으로 받는 것이 많으니까요. 장로님께서도 그러신 것처럼 말입니다."

"……."

"저희가 돈은 많거든요. 하하."

그렇다. 나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똑같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이비와 협력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나나 군자검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내가 일월신교의 장로로서 어떤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누군가는 나를 믿고 이 사이비 종교에 귀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걸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었다.

일단은 일월신교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는 방향이 있긴 했다.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피해를 본다면,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나았다.

"내가 언제까지 장로 노릇을 하면 되는 것이지?"

"정확하게 시기를 정할까요? 저희는 길면 길수록 좋습니다. 검룡패를 받고 장로가 되셨다고 해도 장로로서 받을 보상을 안 드리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정말 쏠쏠하실 겁니다. 하하."

"쏠쏠하다라."

나는 등을 천천히 뒤로 기울였다. 소파에 몸을 푹 뉘이고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일월신교의 장로는 어떤 일을 하나?"

"교도를 다스리고 가르침을 주는 거죠. 위대하신 천마님을 보필하며 말입니다."

"그게 전부인가?"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좋다. 그렇다면 기간은 따로 정하지 말지. 괜찮다면 계속 장로를 할 생각도 있다."

"정말이십니까? 저희야 환영하는 바입니다."

주교는 웃으며 옆에 있는 자를 툭 쳤다. 일월교도의 복장을 한 그자는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다.

"작은 선물입니다. 부담 갖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앞으로 장로로서 얻게 되실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니까요."

종이 가방에 들어있던 것은 각종 영약이었다.

제갈세가의 옥쇄단, 무림맹의 칠전영웅단, 천마신교의 혼원단 등이 있었다.

적어도 수천만 원어치는 되어 보이는 양이었다.

"이게 조족지혈이라는 말이지."

"물론입니다."

주교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웃었다.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돈은 땅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저명한 인사들을 초대하는 경제 규모.

물론 어느 정도 사업 수완도 있겠으나 애초에 그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면 굳이 사이비 종교의 길을 택하지도 않았겠지.

사이비 종교 단체가 이렇게 큰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갈취를 당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딘가에 무지몽매한 신도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생(生)을 갈아 사이비 종교에 모든 것을 바치는.

그것도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성이 있는 자들은 그런 자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속은 쪽이 멍청한 거라고 욕을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미련하고 불쌍한 자들.

나는 그런 자들을 위한 장로가 될 것이다.

설령 그것이 그들의 의사에 반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 순간 나는 확실하게 결정을 내렸다.

모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알고도 모르는 척을 할 수는 없었다.

일월신교에 대해 알게 된 이상 나는 확실하게 개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저희야말로 잘 부탁 드립니다. 곧 있을 올해 컨퍼런스에서 축사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러지. 썩 마음에 들 것이다."

나는 주교와 다시 한번 악수했다.

***

처리해야 할 것이 꽤 많았다.

먼저 소걸과 당초아에게 부탁해 일월신교에 대한 정보를 계속 모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일월신교의 장로가 되기로 했다는 것이오?"

"그래."

"흠. 김 형이라면 생각이 있겠소만, 그간 쌓아온 명성이 흔들릴 수 있소. 지금은 국민 영웅에 가까운 위치잖소. 뭔가를 얻어가는 것이 대중들에게 알려진다면 그때부터는 김 형을 증오하는 자들도 생길 것이오."

"그런 건 익숙하다. 피해자 규모에 대해서나 확실하게 조사해주기를 바란다. 그 수법에 대해서도."

"그 부분은 확실하게 하겠소."

소걸도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화산파의 도사가 일월신교의 장로가 되었다니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우스운 일이었다.

그나마 그간 쌓아온 신뢰가 있어서 내게 뭔가 생각이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제가 장로가 되는 것이 당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합니까?"

"글쎄요. 아무리 그래도 제약과 제철 쪽에는 영향이 없겠죠. 다만 당가가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업은 흔들릴 수 있겠네요."

당초아는 잠깐 턱을 잡고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김 교수님의 현재 위상을 생각해보면, 복지나 교육 사업 쪽일까요? 굳이 당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긍정적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것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고요."

"흔들면 좋지만 아니라도 그만이다?"

"들어보니 자산 규모가 생각보다 더 큰 것 같은데요? 김 교수님을 가진 이미지를 활용해서 발을 걸칠 수 있는 사업이 꽤 많을 거예요."

"그러기 위해 계속 그쪽 언론은 나를 띄우겠군요."

"아마 그렇게 되겠죠."

"그쪽 사업에 대해 한 번 알아봐주시요."

"자세히 알아볼게요. 설마 대단할 것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사이비 종교 뒤에 이런 재력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당문 후계자로서도 좋은 공부가 되겠네요."

당초아는 이제 당문 내부의 정보집단과 하오문을 동시에 다스리는 위치가 되었다.

적어도 비즈니스와 고위층에 관한 정보는 아마 개방보다도 빠르고 정확할 것이다.

"근데 교수님 드시고 있는 거 그때 그거예요?"

"맞아요."

나는 최근까지도 꾸준히 무형지독을 복용하고 있었다. 암왕 영감님의 조언에 따라 3일마다 한 주전자씩 마셨다.

처음에는 한 주전자를 다 마시자 속이 뜨끈하던 것이 이제는 별 반응도 없었다.

몸이 무형지독에 익숙해지고 있는 과정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무형지독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절대적인 만독불침은 아니었다.

일정 수준 이하의 독은 자연스럽게 해독하는 몸이 되었으나 최고급 독까지도 그럴 수는 없었다.

예를 들어 암왕 영감님의 피를 생각해보자. 그건 극독 중의 극독이다. 무형지독의 주요 재료 중의 하나일 정도.

그 피를 깡으로 마시면 아마 진작 천독불침을 이룬 나조차 골로 갈 것이다.

그러나 무형지독에 익숙해지며 독을 감지하는 능력이 극단적으로 향상되기는 했다.

당초아에게 당가의 고급 독을 받아 실험해봤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구분이 자연스러워졌다.

독을 먹기 전에 미세한 향만 맡아도 거부감이 생길 정도였다.

무색무취의 독을 일상적으로 복용하다보니 생긴 반작용이었다.

어느 정도 수준의 독까지는 자연 해독하고, 극독은 미리 감지한다.

이게 현실적인 만독불침이었다.

"혹시 저도 좀 얻어먹을 수 있나 해서……."

"그게……."

"물론 어려운 일이겠죠?"

"예, 좀."

"아무래도 그렇겠죠."

사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만독불침이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아마 더는 무형지독을 복용해도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할 것이다.

문제는 이게 무형지독이었다는 것이고 천하제일독의 오피셜로 화경 미만에게는 잠독(潛毒) 효과가 있을 거라는 점이다.

쌓이면 만독불침이 되는 게 아니라 죽는다.

옆을 보니 소걸도 은근한 기색으로 날 보고 있었다.

뭐 좋은 거라고 그런 눈빛을 하는 거냐.

이미 무형지독을 한 잔 마신 당초아에게 잠독을 쌓는 것과, 개방의 후계자가 중독되게 하는 것 모두 아무리 봐도 옳은 일이 아니었다. 암왕 영감님은 좋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두 사람 다 화경이 되면 들리겠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전에 다 드실 거잖아요."

"그렇긴 하죠."

"치사하오."

"그럼 다 먹기 전에 화경 되시든가."

"……."

***

다음에는 도하나를 불러 호법을 부탁했다.

검룡패를 인식하고 진원진기를 해금했다.

다스릴 수 있는 내공이 7년 치 추가로 늘어났다. 총 28년분이었다.

이후에는 기맥의 통행속도와 통행량을 조절했다. 기의 흐름이 더 빠르고 많아졌다.

극단적인 동공 체계.

당천갈과의 싸움에서 확실히 체감했다.

어차피 내공 총량으로는 동격의 고수를 상대하기 힘들었다. 쏟아내고 먼저 회복하는 식의 전술이 필요했다.

물론 내공의 금제를 한시적으로 해제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그건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었다.

진원진기가 그때보다 해금된 지금 금제를 억지로 뒤트는 것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공의 총량이 늘어났으나 7년에서 21년 치가 될 때만큼 극적이지는 않았다.

거대기공을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심히 부족한 양이었다.

이건 도무지 어찌 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패를 모두 모아도 49년 치에 불과할 것이다. 한 갑자도 되지 않는 양이다.

모조리 해금한다고 해도 잠들어 있는 내공이 많았다. 49년 치를 제외해도 두 갑자가 넘는 양이다. 이 내공은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패를 얻는 것 외에 다른 수단이 있을지도 몰랐다.

몸을 조율하는 시간이 과거에 비해 훨씬 짧아졌다. 채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저번에는 30시간을 내리 앉아 있었는데.

운기를 마치고 눈을 뜨니 앞에서 도하나가 나를 보고 서 있었다.

"넌 왜 나를 보고 있냐? 호법을 서면 반대편을 봐야지."

"방금 봤어요."

도하나는 싱글생글 웃었다.

"근데 왜 그렇게 웃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냐?"

"네. 사형이 일찍 눈을 뜨셨잖아요."

"그게 왜?"

"저 배고파요."

"네가 그럼 그렇지."

나는 허공섭물로 암막 커튼을 치우고 창문을 열어 환기했다. 저녁이었다.

기가 멀리 닿는 느낌이 이전보다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내공을 되찾는 것뿐만이 다가 아니었다.

취견자와 독괴, 검괴 등을 상대하면서 무공 자체도 느릿하게나마 성장하고 있었다.

나아가고 있었다. 이 방향이 맞는지는 몰라도.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네, 사형."

일단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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