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은 협객의 사회-59화 (59/120)

< 59 : 58. 일월신교(Lunisolarism)(1) >

물론 모든 것이 조작은 아니었다. 나는 당초아와 소걸에게 조사를 부탁했다. 하오문과 개방이 의뢰를 받아들였다.

"사천당가는 대한민국 정점에 있는 무림세가요."

현경의 고수를 필두로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으며 가문에 속한 사업 기반도 탄탄하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한민국이 당가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

"그런 사천당가 내부에서 무력 분쟁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크게 이슈가 될 만한 사안은 맞지. 영향력이 큰 만큼 주시하는 눈도 많소."

당가의 내부 정쟁은 늘 국민의 좋은 안줏거리였다.

외부에 보이는 것은 전부가 아니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적당히 흥미로운 얘기가 되었다.

그런 사천당가의 무력 분쟁에 개입해 큰 영향을 미친 외부인. 그게 나였다.

"어떻게 보면 정쟁에서 예정된 탈락자라고 생각되었던 당초아를 주요 후계자로 만들었고, 또 다른 주요 후계자인 당수련의 담당 교수이기도 하지."

"거기다 사천특별시에서 유명세를 가지고 있었던 사천쌍괴를 모두 쓰러트린 것도 한몫했죠."

"젊은 나이, 나쁘지 않은 외모, 과거의 명성, 화경의 무위, 옛날에 잘 나갔다가 몰락했으나 결국 다시 성공했다는 스토리텔링까지. 대중들이 좋아할 만해요."

"더구나 당가 소속이 아닌 고수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희소하기도 하오. 설령 있다 한들 굳이 당가와 맞서려 들지는 않았고. 물론 김형은 당가와 맞선 게 아니고 독괴와 맞선 거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지. 슈퍼스타가 될 요인은 넘쳐나오."

나는 당초아와 소걸이 정리한 자료를 읽으며 설명을 들었다. 내 인기요인을 낱낱이 분석하고 있는 걸 듣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니까 아무 문제가 없다?"

"그게 그렇지는 않소. 스크린 좀 넘겨보시오. 그래, 거기."

나는 태블릿을 휙휙 그었다.

[화산검룡의 매체 노출 분석 자료]

"전체적으로 어디 자료든 김 형을 띄워 주는 것은 비슷하오. 배후가 어디든 말이오. 그런데 특정 후원단체를 끼고 있는 경우에는 독괴를 좀 더 악한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더군."

"저희도 파악한 사실이에요."

당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월일보, 사천타임즈 같은 신문 매체들부터 시작해서 SBC 같은 방송사. 심지어 인터넷 방송 채널도 있어요. 겉으로는 온건해 보이지만 실상은 종교의 후원을 받고 있는 곳이죠."

"종교?"

소걸이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항룡 어쩌고 하는 별호에 맛 들렸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종교라고 하면 종교겠지. 사이비라고 하면 사이비일 것이고."

"……무슨 사이비가 방송사에 신문까지 후원한다는 말이냐?"

"김 형은 잘 모르나 본데, 사이비는 원래 돈이 많소. 애초에 돈을 버는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자들인데 돈이 적을 리가 없지 않소."

"그것도 그렇군. 그래서 어딘데?"

"스크린을 넘겨보시오."

다음 장에는 커다란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이 종교의 상징인 듯했다. 팔을 좌우로 펼치고 있는 남자가 서 있는 모습. 남자의 뒤에는 후광까지 그려져 있었다. 문장의 아래에는 종교단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일월신교 재림천마 장막성전(日月神敎 再臨天魔 帳幕聖殿, The Lunisolarism temple of the tabernacle for second coming)

"……아주 난해한 이름이군. 뭐하는 작자들이지?"

"천마신교의 종파로 시작했던 곳이오. 교주를 천마라고 부르는 현행 천마신교의 제도는 거짓된 것이라 주장하며, 초대 천마만을 진정한 천마로 인정하는 곳이오."

"그런데 초대 천마가 반도 땅에 환생하여 태어났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가짜 천마에 현혹되지 말고 이 땅에 나타난 진정한 천마를 따르라는 것이 교리죠."

"……그런 걸 믿는 사람이 있나?"

"놀랍게도 꽤 많소."

그런 걸 믿는 사람이 왜 많은 걸까.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든 일이었다.

나는 어떤 꼬마가 내게 와서 스승님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상상해봤다.

아마 그 꼬마는 늦어도 열아홉에는 화경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한테 아주 많이 혼나게 될 거니까. 스승님이 나보다 늦을 리가 없다. 그것도 2회차라면.

죽은 사람은 살아날 수 없다. 시간은 되돌릴 수는 없다. 아무리 내공이 많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신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초대 천마쯤 되는 인물이라면 우화등선하였을 텐데 뭐가 아쉽다고 이런 세상에 다시 굴러들어온다는 말인가.

"그래서 그 재림천마라는 작자가 누군데?"

"들어는 봤을 거요. 일월마군(日月魔君)이라고 불렸었소. 지금은 일월신마나 2대 천마라고 자칭한다더군."

"기억에 있다. 일월마군. 나이 많은 화경이잖나. 별호에 신 자를 넣거나 초대 천마를 자칭할 정도는 아닐 텐데."

"일반인들이 현경과 화경의 능력을 구분할 수 있겠소? 현경의 무위가 공개 기록으로 남은 것은 소공자 때 영상이 전부요. 보통 사람들은 애초에 현경이 어떤 수준인지 모른다는 거요. 그 앞에서는 화경도 경천동지라 할 만한 능력으로 보일 테지."

초대 천마 같은 위인이 진짜 환생했으면 열두 살 쯤에 화경이 되지 않았을까? 아마 스무 살엔 소년현경으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천마는 지금처럼 무공의 기반이 탄탄하지 않을 때 맨바닥에서부터 무공을 완성한 대종사다. 지긋이 나이 먹도록 화경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자칭할 자는 아니었다.

일월신교와 일월마군이라.

"아무튼 수상한 자들이라는 거군."

"그렇소. 거기다 돈도 많고 말이오."

"그런데 그 수상하고 돈 많은 사이비가 왜 나를 띄워 주고 있을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관절 내가 국민 영웅이 된다고 그들이 이득 볼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김 교수님의 이미지를 이용하고 싶은 거 같아요."

"이미지요? 내 이미지가 어떤데요?"

"아까 다 말했던 것들이에요. 젊고, 강하고, 용맹하고. 거기다가 홀로 당가를 이긴 전적도 있고요. 그래서 언론을 통해 그런 이미지를 더 강화하고 있죠."

"그게 무슨 소용이죠? 그러면 내가 고마워하고 일월신교에 투신할까 봐? 그럴 리는 없잖아요."

당초아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렇지는 않겠죠. 일월신교의 주적이 누굴까요?"

"당연히 천마신교 아니겠어요? 아닌가? 그래도 같은 종교에서 나왔으니 다른 종교를 더 싫어하려나?"

"물론 천마신교를 좋아하진 않을 거지만 일월신교 입장에서 천마신교는 그리 껄끄러운 상대가 아니에요. 화경도 보유하지 못한 국내 천마신교의 위치는 일월신교에 미치지 못할 정도예요. 천마신교는 일월마군이 일월신교를 만들었을 때 교를 나가며 주요 인력을 함께 데려간 여파를 아직 복구하지 못한 채예요. 돈도 많다. 힘도 꽤 있다. 일월신교를 아래가 아닌 위를 보고 있을 거예요."

"설마."

당초아는 스스로를 가리켰다. 물론 일월신교가 당초아 개인을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초아의 소속. 즉 사천당가를 의미하는 몸짓이었다.

"맞아요. 일월신교의 주적은 우리예요. 나라의 일인자를 싫어하는 거요. 이길 수 없으니 덤비지는 않지만 흔들 기회를 놓치지는 않겠죠. 그러니 김 교수님이 사천당가 독재 체제의 대항마라는 이미지를 계속 주입하는 거고요."

어차피 대한민국의 지배자는 사천당가였다. 그게 문제였다.

일월신교는 영향력이 꽤 크고 재산도 상당하다. 가진 것을 좀 굴리고 싶지만 위에 당가라는 거대한 장애물이 있는 상황.

사파쪽 종교단체이니 당가와 손을 잡을 수도 없는데 싸우면 이길 수도 없다. 대놓고 시비를 걸 수는 없었다.

근데 당가에 일이 터졌다.

거기서 당가를 흔들고 뭐라도 얻어갈 게 있나 싶어 기웃거리다가 나를 주목했다.

"근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제 위상이 올라간다 한들 당가의 위상이 내려가거나 일월신교의 위상이 올라가지는 않을 텐데."

"그건 모르겠네요. 아마 김 교수님에게 곧 접촉하지 않을까요? 김 교수님이 가진 이미지를 이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써먹으려고요."

"내가 왜 천마를 자칭하는 자들과 손을 잡겠습니까? 저 도사입니다. 정사대전 정파 대표로도 출전한."

"그런 대의를 중요시하는 자들은 아니오. 애초에 종교적 신념을 장사 수단으로 이용하는 자들 아니오. 아마 돈으로 제안하지 않겠소? 돈. 아니면 더 많은 돈. 아니면 더 많은 돈. 그런 식으로 말이오."

"하, 그럼 내가 뭐 모델료 받고 일월신교 홍보모델이라도 되라는 말이냐? 내게 억만금을 줘도 그렇게는 안 한다. 돈을 위해 백성을 등쳐먹는 자들과 일하지 않는다."

"뭐 모를 일이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이후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 일월신교의 접촉 따위 없이 계절학기와 개인 수련에 충실했던 나날이었다.

어차피 사이비가 접촉한다고 해도 일을 같이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일월신교 사람들이 찾아왔다.

나는 삐딱한 자세로 그들을 맞이했다.

일부러 다리를 꼬고 손도 까딱하지 않고 커피를 마셨다.

"반갑습니다. 저는 일월신교 사천 교구를 맡은 주교 김상배입니다."

"반갑소. 난 다들 알 테니 굳이 소개하지 않겠소."

"하하, 물론이죠.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화산검룡 대협."

자신을 일월신교의 주교라고 소개한 자는 선한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저렇게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사이비나 하고 있다니. 역시 외모로는 사람을 알 수 없는 분이었다.

"긴 말 하지 않겠소. 난 당신들 같은 자들과 뭘 같이 할 생각이 없소. 일단은 손님으로 찾아와서 두고 있는 것이지만 다시는 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내 학생들이 당신네에게 귀의하기라도 하면 깽판 치러 갈 거요."

"하하. 저희도 검룡 대협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선 이것부터 좀 보시죠."

주교는 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뚜껑을 열었다.

"하. 거기 뭐 대단한 거라도 넣어두셨나? 대환단? 백지수표? 그 내용물이 얼마짜리이든 간에 내 마음을 흔들 수는 없……."

왜 저게 저기 있지?

"이 물건이 있으면 부탁을 들어주신다고 들었는데요."

주교가 든 보석함에는 작은 패 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걸 어디서 구했소?"

"천마신교 본단의 비고에서 찾은 거라고 하더군요. 저희도 이 물건을 가져오기 위해 상당한 이권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국내에서 천마신교의 편의를 봐주는 것은 물론이고요."

천마신교의 비고에 있었다면 스승님으로부터 패를 받았던 것이 천마라도 된다는 말인가?

하긴 암왕 영감님 같은 중도정파의 인물도 받았고 교주 역시 스승님의 장례식에도 참석할 정도의 교류는 있던 인물이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주교는 내게 패를 건넸다.

"확인해 보시죠."

매끄럽게 잘린 단면.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형태. 검(劍)이라는 한 자를 이루고 있었을 일부가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손끝에 낳는 느낌은 차가운 동시에 뜨거웠다.

단전이 꿈틀거렸다.

"……맞군."

"다행이군요.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요. 그럼 이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그러지."

"저희도 크게 어려운 일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도사님에게 다른 종교를 믿으라고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요. 저희 조건은 간단합니다. 명목상으로라도 일월신교의 명예 장로가 되어주십시오."

지금 화산파의 도사 보고 사이비 사파의 장로가 되라고 한 건가?

하지만 나는 손에 있는 물건을 외면할 수 없었다.

스승님은 애초에 왜 이 패를 천마신교에 주었을까? 비단 이자들이 아니라 한들 천마신교가 내게 협행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텐데.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눈을 감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이 패를 영원히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차올랐다. 그렇다면 영원히 내공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거절하는 게 정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커피가 식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주시오."

"반갑습니다. 김 장로님."

주교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내가 한 선택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월신교의 장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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