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은 협객의 사회-58화 (58/120)

< 58 : 57. 칼보다 강한(Mightier than the sword)(2) >

오전에 촬영을 시작한 기자와 방송국 직원들은 하늘의 색이 서서히 물들고서야 학교를 떠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잘 부탁할게요."

"물론이죠! 저희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신 것을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좋은 결과물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자와 당초아가 짧게 악수했다.

인터뷰라고 했지만 사실관계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차라리 기자 회견을 열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와 당수련, 당초아를 위주로 업적을 부풀리고 띄워 주는 선전 방송에 가까웠다.

대중의 관심이 폭발하고 있었으니 방송국 입장에서는 그런 형식조차도 기꺼웠던 모양이다.

성공이 보장된 아이템이랬다.

사천당문의 입장을 발표한 기자 회견은 이미 있었지만, 그곳에는 내가 없었기에 느낌이 다르다는 모양이었다.

당초아와 당수련, 그리고 나까지. 사건의 최중요 인물 3명이 사천공대를 중심으로 묶인 관계였으니 흥미가 생길 만은 했다.

덩달아 사천공대 자율무공학부에 대한 관심도 치솟았다.

일종의 덤에 가까웠지만 학생들과 조교들 역시 짧게나마 인터뷰에 출현할 기회가 있었다.

방송국은 세상 누구보다 스스로의 능력과 역할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었다.

언론의 힘을 알고 있지만 마냥 오만할 수 없었다. 주제 파악도 확실히 했다.

칼 한 자루를 차고 빌딩 사이를 질주하는 무인들을 카메라 앞에 얌전히 앉혀놓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다.

때로는 카메라가 칼보다 강할 수 있지만 아무튼 카메라로 칼을 막기는 힘들었다.

인터뷰는 잘 끝났다.

카메라 앞에서 몇 마디 떠든 것에 불과했지만 어쩐지 정신적으로 좀 피로한 느낌이었다. 나 역시 이런 촬영은 오랜만이었다.

경험이 적은 학생들은 나보다 훨씬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기자와 방송국 직원들이 떠나고는 퍼져 있었다.

"차라리 같은 시간 동안 연무장에서 구르는 게 편하겠다."

"그래? 뭐 딱히 힘들 게 있었어?"

최수아만 유독 말짱한 상태였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만큼 오히려 장기간 촬영에 익숙한 여파인 듯했다.

"왕왕!"

그리고 천재 스타견 먼지 역시 비슷한 활기차게 짖었다. 성공적인 지상파 데뷔를 노리는 짐승 같은, 아니 짐승의 갈망이 느껴졌다.

과연 여기서도 배울 것이 있었다. 뭐든 대체로 하는 만큼 는다는 것이다. 개가 사람보다 카메라에 익숙한 기묘한 광경이었다.

"아무튼 인터뷰도 잘 끝났으니 내일부터는 정상적인 계절학기 강의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인터뷰는 하루 이틀쯤 짧은 편집을 하고서야 방송될 것이라고 했다. '독괴의 난'을 정리하는 특집 프로그램의 일부로 편성되었다.

"정리하고 이만 해산하도록."

"네, 교수님!"

밖을 보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오늘 수업을 더 하기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인터뷰가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 몰랐다.

그날 하교하고는 인터뷰에 대한 생각은 아예 잊고 살았다.

이제는 내 손을 떠난 처지였으니 말이다. 방송국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방송인도 아니고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독괴의 난도 지금으로서는 지난 일에 불과했으니.

다음날부터 학생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학교에 나와 충실하게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

"……뭔데."

인터뷰의 파급력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

독괴의 난 바로 다음날의 은근한 시선과는 달랐다. 관심이 아주 직접적이었다.

일상 생활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극히 많아지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사인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날엔 조그만 목검을 찬 꼬마가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다가와 말하기도 했다.

"아저씨 화산검룡 맞죠?"

"……뭐. 왜."

"제 장래희망이에요."

"……뭐가? 무인 말이냐? 아니면 검룡이?"

"그냥 화산검룡이요!"

"……꼬마야."

"네?"

나는 꼬마가 입고 있는 도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너 무당파잖냐."

헐렁한 청색 도복에는 무당파(武當派, Wutang clan)라는 문자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무당파는 화산검룡 못 되는 거예요?"

"……좀 어렵지?"

"그럼 안 되는데. 엄마 보고 도관 바꿔달라고 해야겠어요. 역시 아저씨를 만난 건 기연이었어요! 오늘날의 가르침을 잊지 않을게요."

내가 너한테 뭘 가르쳤는데.

도관을 바꾼다고 얘가 화산검룡이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얌전히 아이의 등짝에 사인을 해주었다. 굳이 화산파 재정에 도움을 주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었다.

무당파 도복에 '꼭 화산검룡이 되길! 화산검룡이.'이라고 사인하는 기분은 아주 오묘했다.

바로 옆에 무당귀검 같은 작자가 있었으면 칼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그 인간이라면 분명 찌르려고 했을 거다.

근데 잘 생각해보니 나도 옆에서 무당귀검이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으면 칼을 뽑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방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최근 조사에서 10대가 존경하는 무인 1위가 김 형이 되었다고 하오."

"……아무리 그래도 1위는 아니어야 하지 않나? 암왕 영감님도 있는데."

"김 형. 암왕께서 아무리 강하시다고 한들 어린아이들 눈에는 검이 만병지왕인 법이오. 입문 병기로 암기를 고르는 자들은 당씨가 아니면 없소."

"……아, 그러냐."

"그래서 암왕께서는 원래도 1위가 아니었소. 오랫동안 1위는 '해왕(海王)' 이순신 장군님이셨지. 암왕은 이제 3등이시오."

"현직만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었구나……."

소걸은 20대부터는 여전히 해왕이 1등이라고 덧붙였다. 애초에 내가 뭘 했다고 국가의 위인과 존경 순위를 다투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 떨떠름할 따름이었다.

"참고로 랭킹 13위에는 '항룡소개'가 있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하오."

"축하한다."

"축하할 것까지야. 유행이 지나고 나면 휩쓸릴 것에 불과한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소걸은 입꼬리는 슬쩍 올라가 있었다.

너 그 별호 마음에 들었구나.

애초에 후개라는 명예로운 별칭 자체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 테고, 아마 항룡이라는 수식어가 마음을 들뜨게 했던 모양이다.

항룡장은 소걸이 아주 오랜 세월 공부하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무리해서 쏟아내기는 했으나 실전에서 한계를 경험하면서 막혔던 공부에 어느 정도 진전을 얻고 있는 듯했다.

소걸의 내공을 다루는 조작 능력이 근래에 크게 발전하고 있었다. 기막에서부터 세밀함의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도하나의 경지에 가까워진 듯했다. 초절정으로서의 무위가 완숙해졌다는 것이다.

"성취가 있었구나. 그걸 축하하는 것이다."

"알아챘소? 역시 '화산검룡' 김 형을 속일 수는 없군. 작은 성취일 뿐이오. 나아갈 길이 조금 보인 것뿐."

소걸은 작게 포권했다.

"자소곡차부터 시작해 이번 '독괴의 난'도 좋은 경험이 되었소. 다 '화산검룡' 김 형이 덕분이지. 감사하오."

"그래. 그동안 수고 많았다. 이제 떠나도 좋다."

"그게 무슨 소리요? '화산검룡' 김 형."

"……떠나는 것 아니었냐? 원래 이번 일을 마치면 떠나기로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소걸은 턱짓했다. 뭔가 부족하다는 듯이.

"……'항룡소개'."

소걸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식 이거 그냥 이 별호가 마음에 들었던 거 아니냐 싶기도 했다.

"이 '항룡소개'가 어찌 사천무공대학을 버리고 떠날 수 있단 말이오. 현재 한국 내에서 개방의 인지도가 폭발적으로 오르고 있는바 당분간 남아 있기로 했소."

화산파 다음으로 인지도의 상승률이 높은 문파가 개방이라고 했다.

향후 한국 내에서 하오문의 지배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바 현재의 인기를 살려 당초아가 더 크기 전에 정보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듯했다.

"다음 학기부터 정교수요. 당분간 잘 부탁드리오."

"아하. 정교수가 되었군. 축하한다, 소 교수."

다음 학기부터라.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소걸이 정교수가 된다면 안심이었다.

소걸만큼 행정 처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현재 학사에 없기도 했고, 혹시 내가 사천공대를 떠나도 학생들을 잘 이끌 만한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숨 돌린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 말은 커피 심부름을 시킬 수 있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군. 지금 커피 좀 부탁하지."

"……."

"물론 콜드브루로 말이다. '항룡소개.'"

소걸은 찝찝한 표정으로 있더니 개방 특유의 엇박자의 보법을 밟아 사라졌다. 돌아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녁에는 백무강 화산코리아 문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근 일주일 사이에 화산파 등록 수련생의 숫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웃음소리가 실로 호탕한 것이 재정적으로 유의미한 수치의 성과를 얻은 듯했다.

"……사형, 그때 뭐 문주직 때려치우셨다고 안 했습니까?"

─아, 그랬지. 그런데 적임자가 없어서 복귀해달라는 요청이 너무 많더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대의를 위해 수락한 참이다.

"만일 독괴가 이겼으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어쩌긴 어째. 진짜 때려치우는 거지. 문파에 피해를 줄 수는 없지 않나.

"잘 해결되어서 다행입니다만, 사형도 역시 정상은 아닙니다."

─이제 알았느냐? 내가 화산에 어릴 때 입문했으면 무무문으로 갔을 거다.

"마치 무무문도의 성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저런. 설마 아직 모르고 있었던 거냐. 구파일방에서 가장 패도적인 집단 아니냐.

구파일방에서 가장 패도적인 집단.

나는 잠깐 반박을 생각해내려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아미파에 비슷한 것이 있긴 한데, 그나마를 붙이는 시점에서 이미 진 느낌이었다.

─할 말 없으면 이만 끊으마. 아무튼 이번 일이 화산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시간이 나며 차나 한 잔 마시러 오너라. 이 '설중매(雪中梅)' 백무강이 직접 차를 내려주마.

사형도 새로 얻은 별호가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고무림에도 나에 대한 언급이 폭발적으로 많아졌다.

<돌아온 화산검룡 vs 타임지 시절 소년화경 누가 이기냐?>

ㄴ<돌아온 화산검룡이 우습냐? 그때는 미숙이고 지금은 완숙인데.>

ㄴ<본인이 분석해봤는데 소년화경은 현재 검룡에게 십초지적이라는 결과가 나왔음.>

ㄴ<니가 뭔데?>

ㄴ<나 한국무림 갤러리 경력 12년. 나를 '원로'라고 불러줄래?>

<화산검룡이 독괴 안 막았을시 생겼을 일.txt>

<'독괴의 난'은 당가 내부 경쟁력을 파괴하면서까지 권력을 쥐려고 한 독괴의 쿠데타에 가깝다. 이는 다큐멘터리에도 잘 나와 있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당가에 의존하는 정도를 생각해보면 독괴가 초창기에 화산검룡한테 안 막히고 당가 아가씨들이랑 장기전으로 갔을 시 당가 주가부터 폭락하고 연쇄적으로 국내 경제 망가졌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화산검룡이 우리나라 경제를 살린 거나 다름없다는 거다.>

ㄴ<화산검룡을 국회로.>

ㄴ<화산검룡을 청와대로.>

ㄴ<화산검룡을 당가 데릴사위로.>

ㄴ<이게 제일 좋은듯?>

<사천당가 독재 체제의 유일한 대항마 화산검룡에 대하여>

이쯤 되니 나도 인터뷰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나를 어떻게 띄우고 당천갈을 얼마나 쓰레기로 만들었길래 이런 여론이 형성되었던 걸까?

그리고 얼마나 멋들어지게 연출을 했길래 다들 저렇게 열광하는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나는 집으로 가서 도하나와 함께 인터뷰를 시청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터뷰와 독괴의 난 특집 자체에 특별한 무언가는 없었다.

멋들어지게, 중요한 일은 한 것처럼 나왔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비슷한 논조의 방송이 너무나도 많았다.

언론부터 시작해 이번 일의 성과를 확대재생산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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