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 56. 칼보다 강한(Mightier than the sword)(1) >
나는 메인 기사를 눌러보았다.
<독괴를 쓰러트린 젊은 고수는 누구? 그 정체는 돌아온 '화산검룡'>
내가 은거하기 전의 일화를 몇 개 소개한 후 이번 사태에서의 활약상을 다루고 있었다.
기사 내용 대부분은 독괴와의 결투에 관한 것이었다. 흐릿한 전투 영상도 있었다. 일부러 화질을 떨어트린 모양이었다.
전투 과정을 서술하는 부분이 상당히 정확했다. 눈이 좋은 사람이 쓴 듯했다. 현장에서 구경한 고수 중에 고무림 측 인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외 특별한 내용은 없었으나 조회 수가 상당히 높았다. 댓글도 엄청나게 많았다. 좀 살펴보았다.
ㄴ<화산검룡? 칠룡칠봉에 안 뽑힌 지 이제 10년인데 아직도 화산검룡이냐? 같은 시기 용봉들은 악절, 검후, 낭왕인데 아직도 검룡ㅋㅋㅋ>
ㄴ<ㄹㅇㅋㅋ. 무슨 화산검룡 ㅋㅋㅋㅋ. 언제적 퇴물인데 이제와서 언급함? 독괴가 밥으로 보이냐? 그냥 얻어걸려서 막타만 친 걸로 또 고무림식 억지 영웅 만들기 들어갔쥬? 뻔하쥬?>
ㄴ<어~ 아니야~ 내가 직접 봤어~ 화산검룡 짱짱 맞아~. 자하신검 휘두르니까 하늘에서 운석 떨어졌어~. 사천당가 절반 날아갔어~ 당가 연회 참석도 못한 인터넷 파락호들만 화산검룡 까죠?>
ㄴ<운석 같은 소리 하네. 검 한번 휘둘러서 당가 날리면 그게 운석검신이지 화산검룡이겠냐?>
ㄴ<내공 잃었다고 들었는데 저게 말이 되나? 내가 보기에 ㅎㅍㄷ 복용한 듯? 도핑 테스트 해봐야 한다고 본다.>
ㄴ<방구석 현경들 난리 났네 ㄹㅇ. 입터는 거만 보면 거의 정사대전 심사위원회임 ㅇㅇ.>
ㄴ<천마신교를 믿읍시다>
어우, 고무림 댓글은 여전히 개판이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보는 것은 오래간만에 봐도 신기한 느낌이었다.
그 동안은 고무림에 대놓고 언급될 일은 없었는데 오랜만에 기사 나오고 하니 옛날 생각도 났다.
맞는 말도 있었고 틀린 말도 있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별 의미 없고 자극적일수록 좋아요를 많이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운석 어쩌고는 내가 봐도 좀.
나머지 기사도 쭉 살펴봤다.
<당문의 향방은 어디로? 하루 만에 끝난 '독괴의 난'>
<사천쌍괴를 연달아 상대한 새로운 '반도제일검'. 정체는 사천공대의 교수>
<사천당가에 부는 여풍(女風)! 당문제철과 당문제약을 이끄는 차세대 지도자>
<파문! 사람들 앞에서 충격적인 행위를 하는 명문세가의 장녀!>
<'독괴의 난'을 막은 숨은 공신. 화경을 막은 4人의 초절정.>
대서특필된 것은 주로 나와 사천당가에 대한 기사였다. 그 외 도하나, 소걸, 백 사형, 이신에 관한 기사도 하나 있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사천당가가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 행보를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건의 주동자인 독괴는 물론 사천쌍괴를 상대한 내가 덩달아 시선을 끈 듯했다.
연회에 참석하고 사태를 눈으로 본 사람의 숫자만 해도 상당했고, '독괴의 난'의 진행 과정이 상당히 소란스러웠으니 벌어진 일 자체를 숨길 수는 없었다.
기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체적인 기사 논조는 당가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식이었다.
아무리 고무림이라 한들 사천당가와 사전 협의 없이 이런 기사를 내지는 못할 테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근데 당초아가 흡연하는 사진은 뭐 중요하다고 조회수가 높은 건데?
그 외에 학생들에 관한 기사도 꽤 있었다. 고무림 뉴스란이 아예 어제 일로 도배된 수준이었다.
<'철공자' 당무기를 무너뜨린 '해왕'의 후예.>
<사천무공대학의 자랑, '자율무공학부' 단독 인터뷰. "무공이 가장 쉬웠어요!">
<'철두철미'를 상대로 학생들을 이끈 '원주원가의 보석'>
학생들에겐 좋은 일이었다.
명성을 얻는 것은 현대 무림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너무 많은 무인이 존재하는 현재, 유명하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능력 지표처럼 쓰이기도 했다.
같은 수준의 무인이라도 별호가 있으면 좀 더 좋은 대우를 받고는 했다.
학생들에겐 사회로의 첫발을 조금 편하게 내디딜 수 있는 기회였다.
이번 사건을 겪으며 얻은 경험과 더불어 또 다른 보상을 받는 셈이다.
아직 굵직한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국내의 다른 후기지수에 비해 한발 앞서나가는 것이었다.
유명세에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보다는 득이 많은 편이었다.
내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검룡패 조각 두 개를 추가로 모으며 내공도 어느 정도 회복한 상태.
금제를 해제하지 않고도 화경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전성기만큼 방대한 내공은 사용할 수 없었지만 대신 보다 효율적인 운용법을 체화하고 투로도 섬세해졌다.
전투에 임하는 데 있어 생각할 것이 많았고 유지력도 부족했으나 전투력 자체는 검룡 시절에 밀릴 것이 없을 만큼 회복한 상태였다.
유명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내 몸값이 높아질수록 검룡패를 소유하고 있는 자가 나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재활이 끝난 이후에는 딱히 정체를 숨기고 다닌 적도 없었다.
전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던 스무살 때에 비해 활동 범위가 좁아졌을 뿐이었다.
동유럽 내전에서도 이미 이름을 날린 바 있었다. 화경 초입을 연달아 격살했으니. 그 소문이 아시아까지 널리 퍼지지는 않은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사천공대 자율무공학부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도 좋았다.
그럴수록 자율무공학부를 가르칠 만한 교수진을 영입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는가.
이대로 가면 2년을 꽉 채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대체로 만족하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바깥을 슬쩍 보니 여전히 사람들이 복작였다. 연무장은 쓰기 힘들어 보였다. 아무래도 연락해 당초아에게 조치를 취해달라고 해야겠다.
오늘 오전 수업은 실내 활동으로 전환.
"세상에서 무공이 가장 쉬운 최수아?"
"……네."
"뭐라 하는 게 아니고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그런 인터뷰를 한 이유가 뭐냐?"
"그, 먼튜브, 홍보도 할 겸."
"……그래서 효과가 있더냐?"
"넹. 하루 만에 조회수 20% 늘었어요."
"……잘 됐다니 다행이구나."
그러니까 아까 말했듯 유명세는 쓸 만한 것이다.
최수아처럼 인터넷 콘텐츠 제작자로 살아가는 것도 현대의 무인이 사는 방법의 하나다.
먼튜브가 무인으로서의 콘텐츠냐고 하면 잘 모르겠긴 하지만 말이다. 그냥 동물 영상 아닌가?
"아무튼 오늘은 연회장을 쓰기 힘들어서 논검 비무로 대체하겠다. 무공이 가장 쉬운 최수아를 나머지가 돌아가면서 상대한다."
"헐."
나는 옆에 앉아서 애들이 논검하는 것을 구경했다.
"그럼 거기서 반탄력을 타고 튕겨 나간 뒤 수상비."
"너 수상비 못하잖아."
"……무공이 가장 쉬운 최수아는 할 수 있어."
시가지, 폐허, 도로, 논밭, 숲, 산, 들, 호수, 자동차 안 등등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바꿔가면서 논검을 반복했다. 상상력을 기르는 훈련이었다.
웃긴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상상력은 싸움에서 꽤 중요한 부분이었다.
실전에서 다양한 변수가 있는 환경에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은 상상력과 연결되어 있다.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논검이 언뜻 유치해 보이지만 실제로 실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이유였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당초아에게 연락을 넣었다. 인파 때문에 연무장을 사용하기가 힘드니 출입을 제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아, 그 부분은 생각을 못 했군요. 저도 아직 정신이 없어서요. 즉시 조치를 취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김 교수님. 인터뷰를 하나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요청이 너무 많이 들어오는데 차라리 호기심을 해소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서요.
"인터뷰요?"
─네네. 사실 지금 학교에 찾아오신 분 중에 기자 분들도 꽤 있거든요. 자율무공학부 홍보에도 도움이 될 거 같고.
인터뷰라.
현재는 유명세를 얻어가는 시점. 물 들어오는 김에 노를 젓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야 인터뷰 한두 번에 유명세를 얻고 말고 하는 수준은 지났지만, 학생들이나 당초아의 입장에서는 꽤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제안서 보내주시면 괜찮은 걸로 골라보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뭘요."
사실 바쁘지도 않았다.
근래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독괴와의 일전은 끝낸 지금 나는 마음이 아주 편안했다.
딱히 몸조리가 필요한 외상도 없었다. 자잘한 타박상 정도가 전부였다.
마음의 걸림돌이라고는 고무림 블랙과 맺은 백지 고용 계약서 정도?
그리고 학생들이 독괴의 난에 개입하고 유명해지며 관리할 필요가 생겨 예정된 계절학기를 며칠 땡긴 것 정도였다.
오후 수업도 실내에서 끝내고 나는 당초아로부터 제안서를 전해 받았다.
개중에서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간 도와준 것이 많은 소걸도 그만두기 전에 이미지 만들고 뽕 뽑고 가라고 끼워주었다.
"그래서 이번에 다 같이 인터뷰하고자 한다."
"헐. 어디랑 하는데요?"
"무림맹 산하의 언론으로 골랐다. 아무래도 그쪽과는 연을 터둬서 나쁠 게 없으니 말이다."
"무, 무림맹이요? 너무 긴장되는데……."
"긴장할 것 없다. 같은 정파의 후기지수인데 사소한 실수쯤은 귀엽게 여길 거다."
말 한마디로 애들 긴장이 풀리지는 않았다. 적당히 긴장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너희 모두가 절대고수가 될 수는 없다. 본인이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무인이라면 언론을 이용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전 국민이 주목하는 이슈다. 다른 후기지수들은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기회이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하도록 해라."
"네, 교수님!"
"일정은 다음 주다. 그쪽에서 장비 챙겨서 학교로 오기로 했으니 옷만 말끔하게 입고 오면 될 거다. 촌스럽게 너무 힘주지 말고."
"네."
"그럼 오늘은 이만 해산. 연무장 외부인 출입 못하게 요청해 뒀으니 내일부터는 다시 연무장에서 수련한다."
"알겠습니다."
***
그다음 주 인터뷰 당일.
"안녕하세요! MBS 이하은 기자입니다!"
"반갑소."
"안녕하세요!"
젊은 여기자를 필두로 카메라 팀과 호위 등이 독접관으로 몰려왔다.
나와 학생들은 독접관의 방송실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런 게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니 당초아의 야망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우르르 고개를 숙이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 무슨 아이돌 매니저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김 대협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무인이신 거 아시죠? 인터뷰 어떻게 땄느냐고 경쟁사에서 난리예요! 저희를 골라주신 거 굉장히 영광입니다!"
"가장 좋은 그림이 나올 만한 곳을 골랐을 뿐이오."
"저희도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메이크업 받고 나면 시작하겠습니다! 저분은?"
기자는 널브러진 거지를 가리켰다. 낡은 옷을 입고 방송실 한쪽 구석에 옆으론 누워 있었다.
평소에 정장 잘 차려입고 다니던 게 왜 저래? 학교 건물 안에 그 꼴로 누워있으면 그건 거지가 아니라 괴한 아닐까?
"……개방의 후개요. 원래 저런 친구가 아닌데……."
"아아! 저분이 개방의 '항룡소개(降龍小?)' 소걸 대협이신가요?"
"……항, 뭐요?"
"항룡소개 대협요! 과연 듣던 것처럼 속세의 일에서 초탈한 여유로운 태도가 엿보이네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별호였다. 여기자는 그 외에도 학생들을 보며 연이어 감탄사를 내뱉었다.
"앗! 혹시 '해왕환생(海王還生)' 이신 소협?"
"이분은 '투희(鬪姬)' 당수련 소저?"
"'지리랑(智異狼)' 정이삭 소협이군요!"
"'남옥창(藍玉槍)' 원지혜 소저. 반갑습니다!"
나는 진지하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모든 애들에게 별호가 있다고 믿기는 힘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왜 난 그냥 김 대협인데?
"어, 그런 별호가 진짜 있는 거요? 아니면 지금 만들어내고 있는 거요?"
"반반인데요."
기자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방송이 나갈 때쯤엔 진짜가 될 거에요."
역시 언론은 무섭다. 때로는 칼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