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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협객의 사회-50화 (50/120)

< 50 : 49. 생일잔치(Birthday party)(7) >

조교와 수석이 나누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당무기는 표정이 굳었다.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시종일관 냉철하던 표정이 일그러졌다. 미간이 꿈틀거리고 눈동자에 노기가 일렁였다.

"마치…… 네가 나를 상대로…… 봐주기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들리는데."

이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당무기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긍지 높은 당가 대공자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철공자라는 별호가 무색하게 평정을 잃었다.

"그렇단 말이지."

당무기의 눈이 독기를 품었다.

보는 눈이 많은 연회장이었다.

이대로 자존심을 구긴 채로는 당수련을 제거한다고 해도 이득이 아니었다.

천하칠대세가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투는 싸움이다.

매력과 권력과 위엄이 없는 자는 가질 수 없는 자리였다.

약관쯤 되어 보이는 애송이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밀리는 당가의 대공자.

그따위 수식어가 붙는 순간 당무기의 후계 경쟁은 끝이었다.

"그럼 증명해라."

무위의 고하를 증명하는 데에는 별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언제나 살아남는 쪽이 강자였다.

당무기는 살기를 가득 품고 이신을 바라보았다. 오히려 표정이 자연스러워졌다. 철공자는 삽시간에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신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시선을 마주했다.

살의와 살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새로운 감각이었다.

연회장 한구석에서는 고수들이 냉정한 시선으로 상황을 평론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당가의 후계자가 결정 나면 그쪽에는 고개를 숙이겠지만 아직 그 자리에 도달하지 못한 자까지 존경할 생각은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약관 애송이에게 밀리는 대공자? 말할 것도 없었다.

당무기는 그 건방진 시선들은 마주 노려보았다.

증명해야 할 시간이었다.

잔치에서 후기지수를 죽임으로써 얻게 될 불명예보다 칠대세가의 일원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중요했다.

당무기는 당문의 절기를 쏟아낼 준비를 했다. 가장 자신 있는 암기술도 단시간에 끝낼 생각이었다.

죽이고, 가진다. 그게 전부였다.

그 순간 당무기를 마주하고 있는 이신의 내면은 몹시 고요했다.

연회장에 가득한 소음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비명, 폭발음, 연기 새는 소리, 병장기들이 부딪히는 파열음, 뭔가가 날아가고 부서지는 소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천갈과 도하나, 소걸, 백무강이 얽혀 부딪히는 장면도 잠깐 눈에 들어오더니 시야 저편으로 사라졌다.

세상에 오직 당무기와 이신만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무를 하는 감각이었다.

상대는 나를 죽이려고 하고, 나는 상대를 상처입히려고 한다.

'이게 진짜 강호.'

이신은 검 손잡이를 느슨하게 잡았다. 언제든지 간격을 조절할 수 있도록.

청룡검법 특유의 몹시 자유로운 간격을 손끝으로 세밀하게 느끼고 있었다.

날이 좋았다. 몸 상태도.

전신의 근육들이 가닥가닥 명확하게 구별되는 듯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회전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피가 빠르게 돌았다. 뜨거웠다. 첫 결투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순간이었다.

검을 휘둘렀다.

당무기가 품속에서 암기를 꺼내 던지려는 순간이었다. 십수 개의 암기가 이미 당무기의 양손에 있었다.

당무기의 손가락 끝이 극도로 수축하였다. 탄력이 철로 된 암기를 구부릴 정도였다.

출수 직전.

스걱─.

이신의 검이 당무기의 팔을 잘랐다.

"어, 떻게……?"

그 속도가 화살과 같았다.

당무기의 왼팔이 핏물을 뿌리며 날아가 펄떡거렸다. 몸뚱이 잃은 손에 잡혀 있었던 암기들이 촤르륵 떨어져 바닥에 흩어졌다.

덕수이가의 쾌속한 보법을 밟으며 긴 장검을 밀어내듯이 찔러낸 결과물이었다.

긴 손잡이를 타고 미끄러지듯 뻗은 장검은 당무기의 시선에는 마치 검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호오."

초절정 셋을 상대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은 당천갈이 그 장면을 슬쩍 보고 감탄을 흘렸다.

"기묘한 손기술이로군."

그 모습을 보고 슬쩍 고개를 뒤로 돌린 소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금방 끝났군. 이제 숨 좀 돌릴 수 있겠소. 셋보다는 넷이 낫겠지."

"과연 그럴까. 당문의 독심을 우습게 보는군."

당천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승부는 끝났……."

양손으로 암기를 던지면서도 이신을 제압할 수 없었던 당무기다. 왼팔을 잃은 이상 승패는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는의 싸움은 무의미했다.

그것은 그저 이신의 생각일 뿐이었다.

당무기의 생각은 달랐다.

왼팔이 잘린 고통에 이를 악물면서도 오른손에 들고 있던 암기들을 끝내 던졌다.

순간적으로 멈칫하고 좌우의 균형을 잃어 최적의 궤적을 그리지는 못했으나 방심하고 있던 이신에게는 위협적이었다.

팔 하나.

후기지수를 얕본 대가로는 너무나 컸지만.

그대로 승부를 인정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권력을 얻기 위해 가문의 여동생마저 제 손으로 찢어 죽이고자 했던 철공자였다. 욕심이 많은 만큼 의지도 강했다.

잃은 것은 이미 잃은 것이고 얻을 것은 얻어야 했다.

예상치 못한 속도에 순간 당황했으니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행동을 이어갔다.

애송이는 승리를 확신하고 방심하고 있었다.

팔은 이미 날아간 것이니 당무기는 손실에 대한 계산은 일단 접어두고 승부를 취하고자 했다.

비겁? 그런 것이 어디 있는가.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쒜에엑─.

채챙!

그러나 허무하게도 당무기의 마지막 공격마저 이신이 급하게 보법을 뒤로 밟으며 휘둘러댄 검에 가볍게 튕겨 나가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피어오른 검화가 잔상처럼 사라졌다.

그 암기들이 채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당무기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 기습마저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면 더 이상은 진짜로 겨룰 필요가 없었다.

약관의 무인에게 패배한 외팔이 암수.

고무림 블랙의 살수 시장에서나 볼 법한 싸구려 수식이었다.

멀리서 흥미롭게 비무를 지켜보던 관객 몇몇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철공자도 끝이군."

"안 하느니만 못한 짓을 했어."

"차라리 패배를 곱게 받아들였다면 다른 기회라도 있었을지도 모르건만. 후계 구도에서 탈락이군."

"당무선에 이어 당무기까지. 그럼 당수련이, 아니 수련 아가씨가 소가주가 되는 것인가?"

"아직은 당천갈 장로의 행보를 좀 더 지켜봐야겠지요."

"당문제철의 주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겠소? 그래도 당무기가 부사장이었는데 말이오."

"나사 하나가 바뀐다고 장치의 가격이 변하던가? 애초에 실력으로 자리를 얻은 자가 아닌데 뭐 중요하겠나."

"그나저나 저 청년이 누구인지 아는 분 계시오? 검 솜씨가 예사롭지 않던데."

"내가 아오. 덕수이가 출신의 후기지수요. 전국체전에서 봤었는데. 그때 봤던 실력이 아니군."

이신은 당황한 표정으로 호흡을 골랐다. 숨이 가빴다. 머리가 하앴다. 순식간에 다가오던 죽음이 선연했다.

마지막 암기는 정말로 겨우 막아냈다. 급하게 뽑아낸 검화 때문에 전신 기혈이 지끈거렸다.

진짜 강호라고 생각하던 것도 진짜가 아니었다.

진짜는 좀 더 이렇게 너저분하고, 더럽고, 질척거리는 것이었다.

덕수이가는 우습게 볼 만한 천하칠대세가의 대공자마저 발버둥치며 기어코 승리를 갈취하려고 들었다. 상대의 자비를 빈틈으로 알고 집어삼키려 했다.

그곳에 명예롭게 가진 무를 온전히 견주는 과정 따위는 없었다.

살초와 살초.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했다.

협객이 없는 시대였다.

이신은 화가 난 듯 눈썹을 일그러트렸으나 이윽고 표정을 차분하게 정돈했다.

그리고 당무기에게 다가가 김산에게 배운 대로 점혈했다. 팔다리 세 군데와 입까지 틀어막았다.

더 이상 방심하지 않았다. 마음을 차갑게 가다듬었다.

이신이 현대 무림의 무인으로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후우."

이신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방금 느낀 것들을 갈무리하고자 하였다.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했다. 귀중한 것이었다.

"이신."

그러나 멀리서 절박한 목소리가 명상을 끝냈다.

"와서 좀 도와라! 이러다 나 진짜 죽겠다!"

얼굴이 벌게진 소걸이 독괴의 공격을 겨우 넘기며 소리쳤다. 소걸은 이제 한계였다. 더 이상 내공을 사용하려면 진원진기라도 갈아내야 할 상황이었다.

이신 역시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당무기의 마지막 공격을 받아내기 위해 검화를 무리하게 끌어낸 탓이었다.

그러나 애타게 자신을 찾는 조교들을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신은 제압한 당무기를 연회장 구석 한편에 내려놓았다. 손님들이 시선이 닿는 자리였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당무기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뻐근한 몸을 이끌고 걸어가는 이신에게 소걸이 슬쩍 붙어서 물었다.

"검화를 몇 번 정도 사용할 수 있겠나?"

"전력을 기울이면 한 번. 힘을 남기면 두 번입니다."

"제대로 한 번 해라. 우습게 볼 만한 양반이 아니다."

"그걸 내게 들리게 말해도 되는 건가?"

당천갈이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렇소."

소걸은 독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세 명에게 전음을 날렸다.

─어차피 이제 다들 여력도 없지 않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다들 화기를 극한에 가깝게 뽑아낸 상황이었다.

몇 분 싸운 게 전부였으나 초절정이 모여 독괴를 상대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껏 버틴 것도 용한 수준이었다.

─마지막으로 동시에 한 방 갈기고 튑시다.

─튀자고?

그나마 여유가 있는 백무강은 전음으로 답신했으나 나머지는 그럴 겨를도 없었다. 그냥 고개만 갸웃거렸다.

─어차피 여기서 더 버티는 건 무립니다. 이 정도 시간을 끌었으면 당수련도 갈 만큼 가지 않았겠습니까? 아니라도 차라리 당수련에게 합류하면 합류했지 여기서는 무립니다.

─하긴 철공자로 쓰러트린 형편이니 나쁘지 않군.

─제가 신호하겠습니다.

"공기 떨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당천갈이 전음을 주고받는 것을 파악했다.

"당 장로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한 합격진입니다. 각오하십시오."

"제법 기대되는구나."

─지금!

네 방향을 점하고 초절정들이 일제히 독괴에게 달려들었다.

검 두 자루와 도, 봉에 각각 실린 경파가 바람을 가르며 독괴의 몸을 노렸다.

당천갈은 양손에 두른 독강을 원반의 형태로 가공한 후 회전시켰다.

콰아아아아!

거대한 폭음이 연회장을 울렸다.

"……이런."

연회장 한편에 서 있던 고수들마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격전의 중심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기와 초절정들의 병기가 충돌하는 순간 초절정들은 일제히 몸에 힘을 빼고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당가의 연회장 벽에 네 개의 구멍이 더해졌다. 독강의 반탄력을 그대로 활용하여 몸으로 뚫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낌새라도 보였으면 당천갈 역시 힘 조절을 하였을 텐데 초절정 넷은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와 당천갈의 강한 반격을 유도한 것이었다.

벽을 몸으로 뚫고 나갈 정도의 위력이었으니 근골이 성치는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화경과 거리를 벌리기에는 분명 합당한 방법이었다.

독괴는 휑한 연회장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 제대로 미친놈들이로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초절정들이 이 정도 시간을 끈 것 자체가 그들의 승리였다.

애초에 화경은 비대칭전력이었으니 어떻게든 저울추를 맞춘 것 자체가 용한 것이었다.

당수련이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하나 당천갈이 세운 계획대로 상황이 풀리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당천갈은 내공을 순환시키며 상태를 가늠했다. 대충 2할 정도의 내공을 소모한 상황이었다. 휴대용 독극물은 5할 정도 사용했다.

검룡을 누를 수 있다 자신할 수 있을 만큼의 만전은 아니었으나,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바로 움직여야 했다.

파앗─.

당가 비전의 경공을 시전해 연회장을 떠났다. 본가가 있는 쪽이었다. 일단은 당수련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가주가 연회장에 도착하기로 한 시간까지 차 마실 시간도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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