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은 협객의 사회-45화 (45/120)

< 45 : 44. 생일잔치(Birthday party)(2) >

학생들 역시 이미 출입구를 넘어온 상태였다.

"니들 초대장도 없을 텐데 어떻게 들어왔냐?"

"초대장이요? 그냥 동기라고 하고 학생증 보여주니까 들여보내 주던데요?"

원지혜가 대답했다.

하긴 자율무공학부의 학생들은 충분히 신분이 보장된 후기지수들이었다.

대한민국 명문 무가의 자제들만 여럿에 전국체전 등에서 입상한 아이들도 꽤 있었다. 관심 있는 사람이면 얼굴과 이름을 알 수도 있었다.

게다가 학생들이 다니는 학부 자체가 당가 직계의 장녀인 당초아가 심혈을 기울인 곳이었다.

더불어 당수련의 동기라는 점 역시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보장된 신분, 생일 당사자와 친구이며 직계 장녀의 학생이라는 친분 관계.

초대장이 없어도 넘어갈 만한 수준이었다. 여기가 당가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당가놈들이 그렇게 설렁설렁일 리가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출입구를 흘낏 보았는데 조금 이상했다. 초대장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닌 사람도 그냥 들어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애초에 굳이 초대장을 검사하지 않고 있었다. 들어오려는 자들은 다 들어오는 분위기였다.

"저자들은 어디 소속일까?"

"예? 당연히 당가 소속이겠죠."

내가 입구에 서 있는 문지기들을 가리키며 묻자 원지혜가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게 아니고. 당가 내에도 여러 그룹이 있잖나. 그 중 어디 소속이겠냐는 거다."

"저런 보안 경비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면 다 철두철미 아닐까요? 왜 있잖아요. 당문제철 산하의 보안업체."

"역시 그렇겠지?"

"네네. 저기 가슴에 휘장도 있네요."

그러고 보니 문지기들은 가슴에 은색뱀 모양의 휘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저게 철두철미의 상징인 모양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당천갈이 그 사천당가의 내부에서 어떻게 테러를 일으킬까 방법이 궁금했는데 애초에 초대인 규모 자체를 조작하려는 모양이었다.

보통 초대장이 없는 자들은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을 텐데 잠깐 보고 있으니 그 비율이 상당했다. 대충 보아하니 10명 중 1명꼴로 초대장이 없는 듯했다.

나는 초대장 없이 들어오는 자들의 얼굴을 최대한 기억해두었다. 정확히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당문제철 세력과 연이 있는 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몇 분 있으니 입구를 드나드는 자들이 뜸해졌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50분 경이었다.

"그건 그렇고 니들은 돌아가라."

"네? 왜요? 서프라이즈는 어떡하고요."

학생들이 여기 있으면 곤란했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생일 축하 따위의 사소한 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늘 여기서 큰일이 벌어질 거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요. 수련이 생일도 축하해줘야 하고."

"진지하게 말하는 거다. 여기 있으면 위험하다."

자세한 사정은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설명해서도 안 됐다.

나는 그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래를 보면서 칭얼거리던 원지혜가 눈을 마주치더니 화들짝 놀랐다.

"아, 알았어요, 교수님. 갈게요. 가면 되잖아요."

"지금 바로 출발해라."

"네, 네. 얘, 얘드라~ 가자~ 가래!"

원지혜를 과대 시키기 잘했다. 나름대로 리더십도 있고 본인 적성에도 맞는 모양이었다.

"응? 어디로? 벌써 안으로 들어가래? 나 아직 정원 촬영 덜 했는데."

"아니. 집에 돌아가자고."

"어? 여기까지 와놓고? 왜?"

"아, 몰라. 가라면 가. 아님 니가 교수님한테 이유 물어보든가."

그 말에 최수아가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나는 말없이 팔짱을 끼고 노려보았다. 최수아의 시선이 매끄럽게 위로 올라갔다. 원래 하늘을 보려던 것처럼.

"가, 가자. 응. 난 찬성. 그러고 보니 우리 먼지 저녁도 안 챙겨주고 나왔네."

아이들은 저들끼리 속닥거리더니 얌전히 몸을 돌렸다. 나름대로 원지혜의 말을 잘 따르는 것 같았다.

나는 학생들이 나가는 것까지만 볼 셈으로 그 자리에서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출입구 쪽으로 가던 학생들은 문지기와 잠깐 무슨 이야기를 하더니 다시 돌아왔다.

"왜 다시 오냐."

"그, 안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났다는데요?"

"사고?"

"네. 연회장에서 누가 쓰러졌대요. 범인 잡기 전까지 안에 들어온 사람은 아무도 못 나간대요."

"……쓰러졌다고."

"네. 그렇대요. 아니, 우리는 파티 근처로 가지도 못했는데 왜 우리보고 난리람. 어이없어."

원지혜의 말을 듣고 있는데 당가의 장원 철장 너머로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넓은 장원을 쭉 둘러 포위했다. 가슴에는 은색 뱀이 그려져 있었다. 철두철미였다.

상황을 잘 생각해보자.

누군가가 쓰러졌다. 그런데 범인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었다. 고의적인 범행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철두철미에 의한 포위. 쓰러진 자가 당가 내에서 꽤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무력대에 의한 포위가 자연스러우려면 마땅히 그래야 했다.

현재 장내에는 쓰러져서는 곤란한 인물이 몇 있었다. 당초아와 당수련이다.

얼른 연회장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가자."

"네, 교수님. 저희는 교수님 말 잘 들으려고 한 거 아시죠?"

"……너는 장원 바깥에 저런 험악한 분위기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에이. 명문 사천당문의 철두철미인데요. 저희를 공격하기야 하겠어요?"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경우에 따라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사천당가의 내부 사정을 얘기할 수도 없고.

"……모르는 일이니 조심해라."

보아하니 학생들이 밖으로 탈출시키기는 그른 것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확실하게 보호하는 편이 마음 편했다.

연회장에서도 누가 쓰러졌다 하니 예상하던 것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괜찮다. 판이 어지러워질수록 단독적으로 날뛰기 쉬웠다.

"하나야. 너는 학생들을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두도록 해라."

"네, 사형!"

"과대. 이신."

"네."

"둘은 도하나와 상의하여 유사시에 다른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라. 혹시 도하나가 없으면 원지혜가, 그다음 이신이 학생들을 이끌도록."

"……교수님. 진지한 거예요?"

"생존이 최우선이다. 고수로부터 도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이신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한 원지혜는 눈동자를 떨었다.

"진지한 상황인데 왜 제가……."

"네가 과대니까. 원지혜."

"……그러니까 그래요. 저 원지혜잖아요, 교수님. '그 원씨'잖아요."

"그 원씨가 뭔지 난 모른다. 그냥 내 안목을 믿고 내린 결정일 뿐이다."

개개인과 서슴없이 친해지는 친화력. 위아래를 두루 아우르는 포용력. 틱틱대면서도 마음 약한 모습에서 나오는 인간적인 리더십.

원지혜는 자율무공학부 22학번 12명의 연결고리였다.

후기지수들이 잘 어울리고 있는 것은 애들이 대체로 유순한 덕도 있지만 원지혜의 역할도 컸다. 자율무공학부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중심에 원지혜가 있어야 했다.

자존심 강한 무인 집단을 한 몸처럼 움직이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건 무공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매력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무슨 원씨? 몇백 년 전의 씨앗에 구속되어야 하는 사람 따윈 없다.

"저 자신없어요."

원지혜가 얼굴로 고개를 저었으나 내게는 확신이 있었다. 웬만해서는 도하나로부터 낙오될 일도 없겠지만 만일의 상황에서는 원지혜가 최선이었다.

"고수의 안목을 믿어라, 원지혜. 내가 항상 옳다. 너를 못 믿겠으면 내 자신감을 믿어라."

나는 대답하지 않는 원지혜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쳤다.

"조교가 없으면 네가 학생을 이끈다. 알겠나?"

"……네."

"좋다. 하나는 학생들을 이끌고 바로 연회장으로 향해라. 당초아나 당수련 중 한 명을 찾아 보호를 요청하도록."

"네, 사형."

"출발."

도하나는 학생들을 이끌고 연회장 쪽으로 향했다.

"소걸 자넨 연회장을 돌며 초대된 유력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도록. 가능한 많은 정보를 파악해라. 그러다 유사시에는 자발적으로 판단해서 행동하면 된다."

"나는 왜 명확한 지시가 없소?"

"자네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나. 현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한 채로 멍청한 지시를 할 바에는 알아서 하길 기대하는 것이 낫다."

"아주 사람을 제대로 부려 먹는군."

"아, 그때 취견자에게 맞은 갈비뼈가 갑자기……."

"외상은 있지도 않았잖소. 내상도 진작 다 나았고. 이번 일이 정말 마지막이오. 오늘로 자소곡차 값도 다 치른 거요."

"알았다."

소걸은 한숨을 쉬며 옷매무새를 다시 한 번 정돈했다. 반듯한 차림새에 올 빽 머리였다. 개방의 후개를 상징하는 용결 반지가 빛났다.

"김 형은 어쩔 생각이오."

"괜히 학생들을 먼저 보냈겠나."

"……뭐 특별한 이유가 있었소?"

"애들 정서 함양에 안 좋은 일을 하려고 하지."

"예를 들면?"

"고자질이라던가?"

나는 암왕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런 패도적인 방법을 떠올릴 줄이야. 과연 김 형은 내가 아는 화경 중에서 가장 남자다운 인물이오."

"나도 가끔 내 용기에 놀라고는 한다."

나는 씩 웃고는 연회장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사천당문 건물 본관이 있는 쪽이었다. 뒤로 소걸이 연회장을 향해 경공을 밟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곳에 처음 방문해본 것이 아니다. 나는 어릴 적 암왕 영감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강 어디쯤 머무는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본관 가장 높은 층. 그곳에서도 죽음의 냄새가 제일 짙은 곳이었다.

***

연회장 입구에는 문지기가 두 명 서 있었다. 체구가 크고 몸이 다부졌다. 역시 철두철미의 휘장을 가슴팍에 달고 있었다.

도하나와 학생들이 다가가자 문지기들이 말없이 문을 열었다. 커다랗고 무거운 문이 미끄럽게 열렸다.

연회장은 매우 시끄러웠다.

넓은 연회장. 끝이 멀었다.

곳곳에 원형 테이블이 수십 개 배치되어 있었다. 한 테이블 당 한국 무림계의 유명인들이 서넛씩 앉아 있었다. 단상에 가까울수록 고명한 인사들이 눈에 띄었다.

단상 바로 앞자리 연회장 끝에 인파가 몰려 있었다. 쓰러진 누군가를 둘러싼 듯했다.

도하나는 눈을 찌푸리고 안력을 집중했지만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서 있는 인파가 시선을 가려 쓰러진 자가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다.

대신 둘러싼 사람 중에서 찾아야 할 사람을 찾았다.

당초아와 당수련이었다. 그들은 같이 있었다. 크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가죠."

"네, 조교님."

도하나는 인생들의 선두에서 당씨 자매들을 향해 걸었다.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인파들의 시선은 앞쪽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이사장 언니."

"아, 오셨군요."

가까이서 보니 당수련의 표정은 더 심각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당초아는 그나마 나았다.

"괜찮아, 수련아? 무슨 일 있어? 몸이 안 좋아?"

"……어? 너희들이 여기 웬일……."

"우리 너 놀라게 해준다고 몰래 생일 축하해주러 온 건데…… 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네."

"응……."

대답하면서도 당수련의 시선은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주변의 다른 인파와 같은 곳이었다.

시선의 끝에 하얀 얼굴로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사내가 있었다. 주변에서 당가 장로들이 진료를 보고 있었다. 얼굴을 봐도 도하나와 학생들은 모르는 인물이었다.

"으음."

어느덧 일행의 뒤로 다가온 소걸이 침음을 흘렸다.

"왜 저자가……. 어떻게 된 거요?"

"저희도 모르는 일이에요."

당초아가 고개를 저었다. 태연한 척하고 있었으나 당초아 역시 안색이 평소보다 창백했다.

"아마 숙부의 계획이 저희 생각과는 다른 방향인 것 같군요."

당천갈의 독자.

당무선.

독괴 측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당천갈의 유일한 존속이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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