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 33. 수련회(Membership training)(4) >
다음 날 아침 원지혜가 대표로 애들이 수련하고 싶어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김산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래? 알았다. 나중에 하자. 래쉬가드 다들 챙겼지? 아침 먹고 나서 갈아입고 해변에 가서 놀고 있으라고 전달해라."
원지혜가 교수의 대답을 전달하자 최수아는 내심 신 났다.
'아싸. 논다. 먼지랑 수영하는 거나 찍어야지.'
최수아는 부랴부랴 래쉬가드로 갈아입고 삼각대를 챙겼다.
다른 학생들도 내심 기분 좋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제는 분위기 타서 수련하고 싶다, 열심히 하자, 선언하긴 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굳이 MT 기간에는 안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놀라고 등을 떠밀어도 놀기 싫다는 수련중독자는 없었다.
"그래. 놀 때는 놀고 돌아가서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자고로 무공을 익히는 데 있어 휴식도 중요한 법이랬어."
"교수님도 그걸 고려해서 우리보고 해수욕이나 하라고 한 거겠지. 역시 교수님이야."
"하긴 수영복을 챙겨오라고 한 것도 우리 교수잖아."
학생들은 신나서 아침을 먹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걸어갔다.
"와. 원지혜 몸매 뭐냐?"
"뭐래. 최수아, 니가 젤 예쁜데. 너 선이 왤케 가늘어? 외공 안해?"
"하지. 외공을 어떻게 안해. 하는데 너만큼 펌핑이 안 된 거지."
"아씨. 그럼 그냥 타고난 거야? 개부럽다."
"아냐. 내가 들었는데, 남자들은 지혜 너처럼 건강미 있는 몸을 더 좋아한대."
"아, 그래? 진짜? 어디서 들었는데?"
"……고무림?"
해변으로 가는 길. 서로 칭찬이 난무했다. 다들 기분이 좋아서 오는 말 가는 말이 모두 고왔다.
어차피 다들 직업 무인을 목표로 하는 후기지수.
극도로 단련된 육신은 방향의 차이가 있을 뿐 남녀랄 것 없이 다들 완벽에 가까웠다.
발끝부터 목까지 근육 한 줄기 한 줄기가 단단하고 탄력 있었다. 고도의 육체미와 기능미를 이룩하고 있었다.
"와, 바다다!"
첨벙!
바다가 눈에 들어오자 몇몇은 준비운동도 안 하고 내공으로 몸을 데운 후 그대로 입수했다.
"쟤들 왜 그렇게 좋아해? 야야야야, 뭐해. 던지지 마! 잠만! 미쳤나 봐!"
괜히 삼각대를 설치하면서 꼼지락거리고 있던 최수아를 여자애들이 합심해서 던졌다.
인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풍덩!
"야, 니들 일루와봐."
파앙!
촤르륵!
물에 젖은 최수아가 손바닥에 내공을 실어 수면을 쳤다. 자신을 던진 여자애들 쪽으로 물줄기가 여럿 날아갔다.
"꺄아아악! 도망가자!"
"어딜 도망가!"
먼지는 삼각대에 카메라가 잘 설치된 걸 확인하고는 잘 찍히는 쪽에서 바닷가로 갔다. 햇볕의 방향을 고려한 움직임이었다.
할짝.
"으르르!"
영물 포메라니안은 바다를 한 번 맛본 후 으르렁거리며 물러났다. 괜히 짜증이 났는지 수면을 한 대 쳤다.
팡!
초절정의 내공이 담긴 앞발에 물결이 거세게 일어났다.
높이 오른 물가루가 햇빛에 비쳐 반짝였다. 떨어지는 물방울 사이로 작고 희미한 무지개가 떴다.
"오, 저거 봐. 이쁘다……."
"역시 우리 먼지야. 벌써 하나 건졌고."
평화로운 오전이었다.
그렇게 밥 먹은 후 두 시간가량을 신 나게 놀았을 즈음.
김산이 도착했다.
알로하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상태였다. 큰 키에 고도로 압축된 근육이 도드라졌다.
뒤따라온 도하나와 소걸은 학생들처럼 래쉬가드를 입고 있었다.
"어, 교수님!"
교수를 발견한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잘 놀고 있었나?"
"예!"
"바다 좋아요, 교수님! 물 색깔 보세요!"
"그렇군. 투명하고 좋네. 마음에 든다. 다들 입수."
"……예?"
"입수."
"입수!"
학생들이 복면 복창하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지금부터 수중전 연습을 시작한다."
"……수중전?"
원지혜는 아침에 들었던 김산의 대답을 떠올렸다.
?그래? 알았다. 나중에 하자.
'그 나중이…… 2시간이였냐?'
최수아가 괜히 원망스러운 눈으로 원지혜를 바라봤지만 원지혜도 할 말이 있었다.
원지혜라고 교수가 말하는 나중이 지금일 줄 알았겠는가. 그냥 본인이 이해한 대로 전했을 뿐이다.
"간단하게 로테이션으로 진행하겠다. 조를 두 개로 나눠 안 붙어본 사람끼리 돌아가면서 비무한다."
도하나가 태블릿을 들어 조를 공지했다. 멀리서 태블릿을 들고 있으니 글자가 작아 보였으나 그 정도를 못 볼 수준의 학생은 없었다.
"규칙은 간단하다. 바다로 몸을 던지는 즉시 시작. 항복하거나 전투를 이어나갈 수 없는 쪽이 진다. 전투 불능 여부는 내가 판단한다. 잠수 30초부터는 모래사장으로 올라오는 것을 허락한다."
물에 빠지며 시작되는 수중전을 고려하되, 배나 육지로 올라올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한 조건이었다.
수중전의 대가라 한들 물 안에서 영원히 싸울 수는 없다. 잠수 전투는 한계가 있다.
자신이 있다면 수중에 잡아두는 것도 능력, 할 수 있다면 먼저 뭍으로 올라가는 것도 능력이다.
"내기가 없으면 심심하지. 승수가 많은 조에게는 본 교수가 특별히 화산에서 공수해온 영약주를 증정하겠다. 마신다고 내공이 몇 년씩 늘거나 하지는 않겠으나 며칠간 운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내공은 별개로 해도 영약주는 그냥 맛있다. 좋은 재료에 장인의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내기를 약간 북돋아 주는 것은 덤에 불과했다.
이 좋은 날 굳이 수련해야 하는 거라면 달콤한 보상이라도 얻는 게 좋지 않겠는가.
'화산의 영약주라면 매화곡차?'
화산파의 영약주 중에 가장 대중적인 물건이었다. 대중적이라 한들 한 병에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개중에는 잘 사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쉽게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숙련된 조교들의 시범이 있겠다."
"……진짜 하오?"
"내가 언제 가짜로 시킨 거 봤나?"
"……도 소저, 잘 부탁하오."
"저도요!"
소걸과 도하나가 마주 포권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바다로 몸을 날렸다.
첫 판단부터 갈렸다.
도하나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바다로 잠수했고 소걸은 수면을 밟았다.
해상비(海上飛). 바다 위를 걸었다.
물론 제자리에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끊임없이 움직여 몸을 튕겼다.
설령 서 있을 수 있다 한들 깊이 잠수해 움직이는 도하나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움직여야 했다.
"와."
"개방 후개……."
그렇다 한들 학생들 수준에는 불가능한 기교였다.
경공으로 유명한 개방의 후계자에게도 마냥 쉽지는 않았다. 도하나는 할 수도 없었다.
몸을 가벼이 하고 뛰어가던 도중 소걸이 손바닥에 내기를 담아 수면을 후려쳤다.
선공이 아니라 반격이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하얀 도기가 반짝이며 솟구쳤다.
타격 순간 소걸은 그대로 수면 밑으로 쑥 빠졌다. 기습적으로 수상비를 끝낸 후 수중에서 교전을 이어나갔다.
팡! 팡! 파앙!
바다 속에서 폭음들이 들리며 물줄기가 연신 높이 솟구쳤다.
그 이후부터는 학생들에겐 잘 보이지 않았다.
시끄러운 파열음과 함께 화려하게 부딪히고 깨지는 물기둥만 보일 뿐이었다. 이신만 동공을 크게 한 채 초고수들의 접전을 눈에 담고 있었다.
"숙련된 조교랍시고 모셨더니 학생들에게 보여줄 생각은 안 하고 본인들 좋을 대로 놀고 있군. 그만!"
더 이상은 의미가 없었다.
한 번 강한 타격음이 들리더니 소걸과 도하나가 폭음의 중심지에서 먼 곳에서 불쑥 솟아올랐다.
"고생했소, 도 소저."
"소 조교님도 고생하셨어요!"
"대충 이런 식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여러분이 바다를 밟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학생들은 입을 다물고 손뼉이나 쳤다.
"근데 과대는 왜 비키니를 입고 있나? 내가 래쉬가드 준비하라고 했을 텐데."
"……그게 그거인 줄 알고."
원지혜도 할 말은 있었다.
래쉬가드 챙기라길래 바닷가에서 물장구나 칠 줄 알았지 바다 안에서 펑펑거리며 격하게 싸우게 될 줄 알았겠는가?
'벗겨지면 어떡하지?'
"내 거 입어."
그때 이신이 자켓형 래쉬가드를 벗어서 원지혜에게 걸쳐주었다. 원지혜도 키가 큰 편이었으나 이신의 옷을 입으니 한참 오버핏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고마워."
"그럼 해결됐고. 바로 조별로 실시한다. 각자 멀찍이 떨어져서 안전에 유의하면서 비무할 수 있도록. 익사에 주의하고."
참으로 의욕 떨어지는 경고를 들으며 학생들은 차례대로 수중 비무를 실시했다.
이신은 전승을 했다. 수상비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2초 이상 떠 있는 것은 무리였다.
나머지는 대충 반반의 성적을 거뒀다. 의외로 하위권과 상위권의 격차가 크지 않았다.
물 안에서는 힘과 속도 모두 뭍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물속에서 놀았는데 전투를 치르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무위의 차이보다 적응력의 차이에 승패가 갈렸다.
그러나 비무가 후반으로 갈수록 서열대로 결정 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게 여러 바퀴를 돌아 저녁 시간이 되었다.
학생들은 지친 지 오래였는데 그조차 김산이 의도한 바였다.
수중전의 진가는 지친 몸으로 물 안에 갔을 때 있다. 그 환경을 경험했는지 안 했는지에 따라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전혀 다른 퍼포먼스가 나온다.
수중전의 전문가가 되려면 한 달을 여기 살아도 모자라겠지만 김산은 일단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고생했다."
김산은 말하며 천천히 물 위를 걸었다. 극도로 얇은 기막을 발아래에 넓게 깔아 바다 위에 흔들림 없이 섰다.
소걸마저 경이로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김산은 피곤해서 물 속에서 나올 생각도 못하고 늘어져 있던 학생들을 하나하나 건져 뭍으로 집어 던졌다. 도하나와 소걸이 받았다.
그 장면은 최수아가 삼각대에 걸어둔 카메라에 찍혔고 <우리 교수 MT에서 기적 일으킨 썰>로 고무림 사천공대 갤러리에 올라갔다.
***
"다들 열심히 한 만큼 승패와 관계없이 조마다 영약주를 한 병씩 주겠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학생들을 모아두고 말했다. 저녁 식사 도중이었다.
애초에 이신이 있는 이상 불공평한 내기였다. 처음부터 양쪽 모두에 영약을 뿌릴 생각이었다.
"와아!"
"역시 우리 교수님이야! 믿고 있었다구!"
피곤에 절어 있던 학생들이 술 준다는 소리에 신나서 소리쳤다.
지쳤나 싶다가도 계기만 있으면 부활할 수 있는 스무 살이었다.
나도 말이야. 저 때는 어마어마했지. 막 화경이 됐다. 아주 활기가 넘쳤다.
"자. 한 병씩 받아가라."
"감사합니……! ……에에엑! 자소곡차?"
화산파의 최상위 브랜드 영약주 자소곡차였다. '자소'라는 명칭은 그 자체로 화산을 대표할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한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민간에서는 구하고 싶다고 구할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실제로 자소단이 들어가거나 그런 물건은 아니다. 그러나 상당한 양의 양기를 품어 운기 효율을 한동안 증폭시킬 수 있는 있을 것이었다. 물론 나한테는 아무 효과가 없었다.
이번에 한국으로 오면서 몇 병 쟁여놨던 건데 두 병쯤은 학생들에게 줘도 상관없었다.
남기는 거야 당가의 큰 영감님이랑 마실 몇 병만 있으면 되니까 말이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됐다. 가서 공평하게 나눠마셔라. 원샷하고 바로 운기해라."
절을 하는 놈까지 있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한 달을 부대끼다 보니 알게 모르게 꽤 친해진 상태였다.
이놈들은 내가 자소곡차를 주는 게 앞으로 더 빡세게 굴리려는 준비과정임을 알까?
하긴 알면 뭐하고 모르면 어쩌겠는가. 받아들여야 할 것인데.
좋다고 웃으며 술을 나누는 병아리들을 보며 나도 조교들과 한 잔씩 마셨다.
"아, 소걸."
"이 귀한걸……. 이 소 모를 왜 찾으시오, 김 대협."
"이거 한 잔 마실 때마다 한 달씩 더하는 거다."
"뭘."
소걸은 얼빠진 얼굴로 술잔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 이거랑 조교 생활 말이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걸은 눈동자를 잠시 굴렸다. 이것저것 계산해보는 듯했다. 자율무공학과의 환경, 사천시의 상황, 자소곡차의 가치.
결과는 예상하는 대로였다.
"에라이, 한 잔 주시오."
이후로도 소걸은 '한 잔 더'를 몇 번 반복했다. 하긴 자소곡차가 맛깔나긴 한다.
이걸로 소걸은 3개월을 더 함께하기로 했다.
"많이 마셔. 그래. 몸에 좋은 술이야."
"캬아. 김 형. 맛이 아주 죽이오."
그래. 맛이 죽이겠지. 많이 마셔라. 맘껏 좋아해라. 당천갈이랑 싸우기 전에 네가 튀면 나도 곤란하거든.
원래 무림에서 좋은 술 사주는 놈은 다 속셈이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