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 31. 수련회(Membership training)(2) >
"김 형이라면 어떻게 할 거요?"
소걸이 광어회 두 점을 집어 상추쌈에 얹으며 물었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소맥(Soju bomb)을 입에 털어 넣고 다시 허겁지겁 회를 몇 점 집었다.
모든 동작이 신속했고 수법과 수법 사이에 빈틈이 없는 것이, 쾌(快)의 정석이라 할 만했다.
궁금해서 물은 건지 회를 많이 처먹고 싶어서 내 입을 막으려고 물은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내가 어떻게 했는지 봤을 텐데."
"……맞군. 살벌했지."
우리 애들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후기지수들이다.
지금까지는 지역구 혹은 문파 내에서나 이름을 날리는 정도였겠지만 앞으로 훨씬 더 유명해질 것이다.
작게는 나라 규모로, 나아간다면 세계구급으로 이름을 알릴 수도 있다.
마냥 좋지만은 않은 일이다.
누군가는 좋아해 주겠지만 누군가는 싫어할 것이다. 애호와 존경과 질시와 증오를 한몸에 받을 것이다.
현대에서 후기지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친구와 적을 보통의 무인보다 몇 배로 가지는 삶.
본인이 선하다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괜히 우습게 보고 이용하려는 자까지 생긴다.
내 경우도 그랬다.
나는 같은 기수에 비해 나이가 훨씬 어렸던 만큼 정도가 더 심했던 것 같다.
소위 천재라는 족속들은 승리욕이 강하고 본인에 대한 자신감이 과해 괜히 나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나도 착하고 유순한 아이였던 만큼 부드럽게 나갔다.
상황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 패버렸다.
처음엔 동년배였는데 경지가 올라가고 유명세를 타면서 나이 많은 자들도 덤벼왔다.
화산파의 사질부터.
삼재종합공계의 유망주.
소문파의 젊은 문주.
경력 좀 쌓인 낭인.
천마신교의 청년 집사.
구파일방의 후기지수.
칠대세가의 소가주들.
끝내 용봉(龍鳳)까지.
내 자리를 뺏고 싶은 자.
명성을 얻고 싶은 자.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자.
그냥 강자와 싸우고 싶은 자.
온갖 부류가 덤볐고 나는 가리지 않고 다 패버렸다.
공통점은 대개 젊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이 좀 먹은 양반들은 잘 덤비지 않았다.
깝죽대는 취견자를 흠씬 패버렸을 즈음부터였던 거 같다.
원래 덤비는 것도 얻을 것과 잃을 것을 계산해가며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풋내기들이나 간간이 덤볐다.
그리고 화경이 된 후에는 그 흐름마저 끊겼다.
"내 방법이 정답이라는 건 아니다."
"……나는 확실하게 오답이라고 생각하오만. 김 형이 소년화경이 못 이루었으면 언젠가 칼침을 맞았을 것이오. 세상에서 가장 오만했던 후기지수로 역사에 남았겠지."
"그랬을 수도 있고."
하긴 언제나 강자일 수는 없다.
폭력으로 해결하는 방식은 자신이 계속해서 우위를 가져갈 수 있을 때만 쓸만한 방법이다.
엎치락뒤치락하는 후기지수 아무나 해도 되는 방식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정이삭이 언제까지나 원지혜보다 앞선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후기지수란 대나무처럼 쑥쑥 자라기 마련이고 얼핏 커 보이는 격차도 몇 년 안 본 새 뒤집혀 있기도 하다.
나는 회를 몇 점 집어먹었다. 어느새 반밖에 안 남았다. 거지놈도 거지놈인데 도하나의 저법(箸法)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도 난 이 경우라면 패버릴 것 같군."
"동의하오."
"죽여요?"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다."
폭력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무인으로 살아가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결국 무인이라는 것은 직업 폭력배다.
써야할 때는 쓰는 것도 중요하다.
미리 누가 강자인지 확실하게 각인시킴으로써 후에 쓸데없이 피가 흐르는 일을 막을 수도 있다.
"그리고 죽이지만 말라니! 그게 교수가 할 소리야? 앙?"
"……."
그 뒤로도 이신과 투닥거리던 타과 놈이 나를 보고 삿대질을 했다.
저 새끼는 왜 갑자기 나한테 시비야? 그럼 뭐 내가 이신한테 제 놈에게 사과라도 하게 할 줄 알았나?
"김 형. 참으시오."
"죽일까요?"
"알겠으니까 놔라. 하나는 그냥 회나 열심히 먹고."
아무리 어이가 없어도 학생들 술 먹고 나대는 것 두고 손을 쓸 생각은 없었다. 죽일 생각은 더더욱 없었고.
다만 이신이 저 녀석을 좀 아프게 제압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왜 교수님한테까지 시비를 거시는 겁니까? 당신은 선배 대우를 명목으로 여기 온 거 아니었습니까? 본인부터 예의를 지키시지요."
"엉? 아니, 이 자식들이~. 교수가 제대로 안 가르치니까 후배가 선배도 몰라보는 거 아냐~."
이신이 논리적 허점을 짚었으나 통하지 않았다. 술이 무섭다.
"야야, 그만해. 취했다."
"아나, 나 하나도 안 취했어. 놔봐. 놔보라니깐?"
미친 놈이 나까지 건드리기 시작하자 같은 과 학생들도 말리기 시작했다.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였다. 하긴 저들도 쟤가 교수한테까지 시비를 걸 줄은 예상하지 못했겠지.
근데 저놈은 말리는 학생들마저 뿌리치며 몸을 흔들거렸다.
취권이라도 익혔나? 아니면 저 용기가 말이 안 되는데.
대단한 깡이었다. 저 나이대의 취견자도 내게 저렇게 굴지는 못했을 것인데.
"과하게 취하신 거 같은데 돌아가시죠. 교수님, 그냥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했을 텐데."
"누구 마음대로 나를 보내? 니가 그렇게 잘났어? 니가 말하면 내가 다 들어야 돼?"
마침내 이신의 표정이 굳었다.
"선배가 선배다워야 선배지. 학교 일찍 들어온 철부지한테도 선배 대우를 해줘야 돼? 나이 많은 게 벼슬이야?"
원지혜가 옆에서 불을 붙였다.
취한 놈을 말리던 다른 애들도 표정이 약간 굳었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옆에서 구경하던 애들도 이신과 취한 놈 뒤로 붙었다.
"김 형. 저러다 패싸움이라도 하면 어떡하오."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이겨야지."
"……그렇긴 한데. 가만히 보면 김 형도 정상은 아니오. 하긴 무무문도들이 대개 그렇지."
"갑자기 사문을 욕해? 오랜만에 좀 맞고 싶은 건가? 비무 대련 한번 해?"
"……그러니까 정상이 아니고, 특별히 위대하다. 뭐 이런 뜻이었소. 내 항상 무무문을 존중하는 거 잘 알지 않소? 진짜 내가 후개만 아니었어도 화산에 입문하고 싶을 정도요."
"말은."
"으르렁."
밥을 다 먹었는지 먼지도 일어섰다.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자율무공학과 뒤편에 섰다. 하여튼 짐승도 밥 주는 사람은 알아보는 법이다.
북극곰을 본 다른 과 학생들의 얼굴이 하얘졌다.
저건 좀 무리지.
"먼지. 이쪽으로 와라."
"낑?"
"얼른."
"헥헥."
"잘했어, 먼지야!"
내가 부르자 먼지가 옆쪽에 와서 앉았다. 도하나가 근처에 있던 생고기를 더 부어줬다.
하나야. 하루에 대체 몇 끼를 먹이는 거냐. 그러다 걔 돼지가 되겠다.
"싸우게 두려는 생각이군."
"그래. 지금 한 번 밟고 가는 편이 낫다. 내심 저렇게 생각하는 놈이 학교에 한둘이겠나. 그놈들 시비 거는 거 일일이 다 받아주다간 수련할 시간도 없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키우는 게 낫지."
이제는 평행하여 대치하는 상황.
저쪽 학생은 오십 명이 넘었으나 앞장선 것은 선배 무리로 보이는 열댓 명이었다. 나머지는 뒤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걱정을 하는 애들도 있었고 신나서 웃으며 떠드는 놈들도 있었다.
나와있는 애들보다 나이 많아 보이고 경지가 높은 놈들도 있었는데 말릴 생각은 없는 듯했다. 어쩌면 저놈들이 부추겼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얜 또 뭐야? 니 여자친구냐? 이젠 계집애 뒤에 숨는 거냐?"
"아직 여자친구 아닙니다."
"……아직?"
원지혜가 팔꿈치로 이신을 툭 찔렀다.
"왜?"
"……그냥."
"……뭐하자는 짓거리냐? 아, 그래. 좋다. 그놈은 됐고 이 오빠랑 사귀는 건 어떠냐?"
"뭐래. 너같이 생기다 만 거랑은 생일마다 공청석유를 들고 와도 안 만나."
"이런 미친년이……."
"그만하시죠."
이신이 원지혜 앞에 섰다. 원지혜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세상 말세였다. 약관 나부랭이들이 꽁냥거리기나 하고. 나 때는 연애는 꿈도 못 꾸고 수련만 했는데 말이다. 어디 화경도 아닌 것들이 벌써부터.
"더 이상은 참지 않겠습니다."
"안 참으면 어쩔 건데. 나 치려고? 쳐봐. 앙? 쳐보라고~."
"필요하다면."
이신이 손등으로 취한 놈의 가슴을 툭 건드렸다.
털썩.
그 자리에서 놈이 기절했다.
"어?"
"장원이가 쓰러졌다!"
"그냥 잠재운 것뿐입니다. 데려가시죠."
"우리도 교수님 데려와!"
"쳐라!"
아니, 내가 뭐 했다고 너희도 교수 데려오래?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저들도 나름대로 수준 높은 이신의 수법을 알아봤을지도 모른다.
격산타우(隔山打牛).
산을 때려 소를 친다는 뜻이다.
공간을 격해 목표 지점에 힘을 가하는 내공 수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신은 가슴을 가격하는 순간 상대의 몸통을 매질로 하여 목 뒤의 수혈을 짚었다.
상대가 술에 취한 무방비 상태였고 발경에 대한 저항력이 몹시 낮았기에 가능한 기교였다.
그런 만큼 큰 동작 없이 수준 격차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수법이었다.
이신은 상황을 여기서 정리하기 위해 격의 차이를 보이려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술에 취한 하수들에게는 그게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비겁하게 기습을 하다니!"
"아니. 지가 쳐보랬잖아!"
타과 학생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술에 취해 분별력을 잃은 듯했다.
어쩔 수 없이 자율무공학과 학생들도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양쪽이 엉켜서 주먹질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무기는 들지 않았다.
대부분은 숙소에 둔 상태였고 몇몇은 식탁 옆에 두기는 했지만 무기를 쓰지 않을 정도의 정신은 남아있는 것 같았다.
개중 가장 빛나는 것은 의외로 당수련이었다.
권각술을 제대로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흡수가 빠른 녀석이었다.
다들 무기를 두고 싸우는 환경.
권사만 홀로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격이었다.
상대 고학년들은 대체로 일류. 당수련도 마찬가지로 일류였다.
무위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기술의 우위가 두드러졌다.
퍽! 퍽!
타과 학생들이 하나둘씩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율무공학과 측은 가장 수준이 뒤처지는 최수아마저 일격도 허용하지 않은 상황.
돌아가는 꼴을 보고 뒤에서 구경하던 놈들도 덤비기 시작했다.
간간히 있는 절정의 고학년들은 이신과 정이삭, 원지혜가 어렵지 않게 상대했다.
기왕이면 이신은 절정을 상대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정이삭과 원지혜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일 테니까.
딱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수련회는 이래야지. 수련도 좀 하고, 싸움도 좀 하고.
내일은 해수욕장에서 다퉈주면 안 되나. 수중 전투는 경험이 중요한데. 안 되겠지? 하긴 오늘 저렇게 맞고 내일 또 덤비지는 않겠지. 아쉽다.
타과 학생들이 절반쯤 쓰러졌을 무렵.
"뭣들 하는 게냐!"
저쪽 교수가 나왔다. 어디서 본 얼굴이었다.
교수는 멈칫했다.
뚝. 뚝. 뚝.
나를 보고 한번.
도하나를 보고 한번.
먼지를 보고 한번.
그리고 상황을 보고 한번.
그때 먼지한테 한번 맞고 도하나에게 또 맞은 박 교수였다.
"이, 무슨."
"오랜만이오. 최 교수."
박 교수가 있으니 내 기억이 맞다면 저쪽은 아마 검과일 것이다.
상황은 그야말로 개판.
쓰러져 있는 것은 온통 검과의 학생이었고 자율무공학과 학생은 다들 멀쩡한 모습으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우리 애들도 스스로 이룬 결과에 놀란 듯했다.
"수련아. 너, 엄청 잘 싸우더라."
"어? 그, 그래. 헤헤. 고마워."
"왜 이렇게 쉽지?"
입학한지 한 달도 안 된 시점.
실력 상승을 처음 체감한 모양이다.
고학년인 비슷한 경지를 상대했기에 더욱 와 닿는 것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검과 학생들이 무기를 쓰지 않았다고 하나 그건 당수련을 제외하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삼재종합공의 분석과 반복 학습만으로 이뤄낸 성과.
무공을 겨루는데 경지가 전부가 아니다.
기술과 심리전, 수법의 다양성과 무공의 전개에 따라 얼마든지 승패가 달라질 수 있다.
삼재종합공은 기본기다.
모두가 접하기에 오히려 완벽하게 통달하는 자가 적은 중요한 기본기.
기본기에 소홀한 자는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기본기가 충실하면 술을 마시고도 싸울 수 있다.
그 차이는 아주 크다.
언제나 최선의 컨디션에서 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