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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협객의 사회-29화 (29/120)

< 29 : 28. 도하나(Hana)(4) >

"아는 놈인 것 같던데."

"네, 사형. 옛날에 시설에 있던 사람이에요."

"시설이라면, 백두산?"

"네."

6년 전쯤의 일이었다.

강기를 순간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을 익힌 후에는 화산에서 원래 하던 직무로 돌아갔었다.

화산파의 특수 임무 수행 무력 집단.

암매화칠수(暗梅花七手).

나는 암매화의 1호였다.

암매화로서 나는 고무림 블랙에서 수백억대 의뢰를 맡거나, 무림맹의 협조 요청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곤 했다.

대방파라면 어느 곳이나 이런 특수 무력 집단을 하나씩은 운용한다. 무당귀검이나, 당문의 철두철미, 내소림오계가 이에 해당한다.

어떻게 보면 대외적으로 문파의 꽃이라고 할 수도 있는 자리였다. 외부 세력이 돈만으로 고용할 수 있는 무력의 한계치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암매화 활동으로 얻는 수입이 화산파 재정 수입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대방파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내가 있을 당시 암매화는 고무림 블랙에서의 평가가 다른 경쟁 단체보다 압도적으로 좋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실력과 인품이 모두 출중했던 팀장이 앞에서 솔선수범하며 이끌어준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암매화 1호요? 내가 본 후기지수 중에서 최고였어요.

암매화 팀원들은 아직도 그때의 1호를 그리워한다는 풍문도 있다. 진짜다. 내가 들었다.

백두산 사건은 내가 암매화로 복귀하고 처음으로 맡은 임무였다.

백두산 험지 인근에서 불법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은데 조사해달라는 무림맹의 요청에 따라 움직인 건이었다.

개방의 협력을 받아 조사한 결과 근방으로 영약과 자원이 몇 년 동안 밑도 끝도 없이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핵폭단이라도 개발하는지 알았다.

한창 주변을 탐색하던 도중 커다란 진동에 이어 비명, 폭발음 등이 들리길래 위치를 특정해 습격했었다.

결국 핵폭단 제조 시설은 아니었지만 그곳에는 인의를 저버린 인간들이 있었다.

대다수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탈출한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탈출한 자들 역시 극히 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체포당했다.

그때 체포된 연구자들은 본인들이 동북아시아 삼국의 의뢰를 받아 인공 고수 실험을 했다고 주장했는데, 당연히 해당 국가들은 꼬리를 잘랐다.

아무리 무림맹이 국제기구라 한들 확증 없이 그런 무공 강국들을 추궁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건은 거기서 종결되었다.

이제와서 이석희란 자 하나가 추가된다 한들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증언은 그때도 충분했으니.

다만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

"정신이 드나?"

기혈을 집자 이석희는 눈을 크게 뜬 채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아. 실수."

퍽.

손날로 이석희의 아혈을 후려쳤다.

막힌 혈이 다시금 열리며 이석희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토해내었다.

"커헉……."

"쉽게 쉽게 가자고."

나는 이석희의 머리채를 거칠게 부여잡았다.

놈과 눈을 마주쳤다. 무기질적인 눈이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눈.

무인으로 살다 보면 많이 보게 되는 눈이었다.

"배후가 누구야?"

"……배후?"

"여기서 저지른 실험. 지원해준 놈이 누구냐고."

"말할 수…… 없다."

"그래?"

백두산에서 동료 연구자들에게 칼침 놓고 튄 놈팡이로 알고 있는데. 이럴 때는 또 의리가 있는 놈이다.

나는 의리 있는 사람을 항상 존중한다.

"끄…… 끄아아아아악!"

"그럼 말하지 마."

이석희의 하나 남은 팔을 잡고 내기를 흘려 넣었다.

분근착골을 시작했다.

손끝부터 올라가면서 근육을 한 줄기씩 찢었다. 뼈를 조각조각 뒤틀었다. 그 뼈들이 다시 근육을 찔렀다.

"마, 말할게! 아니, 말할게요!"

"아냐, 아냐. 말하지 마. 절대 말하지 마. 제발 말하지 마."

의리 있는 사람을 대할 때는 나도 항상 온 정성을 쏟아야 하는 법이다. 이른바 성심성의라는 것이다.

"제, 제발! 말하게 해주세요!"

나는 대답 없이 거덜 짝이 나버린 팔을 놓았다.

"헉……. 헉……."

이석희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대답을 바로 안 하는군. 생각이 많아."

"아, 아니오!"

고백할 때는 생각이 많으면 안 된다고. 어? 괜히 좋은 멘트 생각한다고 앞에서 머리 굴리고 있으면 그게 다 보인다니까? 그냥 속에서 나오는 진심을 뱉으라고.

나는 이석희가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았기 때문에 도와주기로 했다. 지금은 아직 진심이 안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석희의 다리를 잡았다.

오늘의 꿀 팁.

분근착골을 할 때는 심장에서 먼 곳부터 차근차근해야 제대로 오래 할 수 있다. 심장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다.

그래도 착한 어린아이들은 집에서 따라 하지 말기를 바란다.

"끅……."

양 다리를 다 갈아놓은 이후에야 이석희는 대답할 마음이 든 듯했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 분근착골 대상들은 대개 내 진심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왜 좋게좋게 두 다리로 집에 갈 수 있을 때 다 불지 않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보내줄 생각이 없기는 했지만.

"대답."

"사천……당가요."

"……당가?"

"……확실한가요?"

옆에서 심문을 구경하고 있던 당초아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애초에…… 당가의 눈을 피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소……."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어디 함경도 구석이나 강원도 구석이면 몰라, 지리산은 사천특별시에서 한 시간 거리도 안 되는 곳이다.

야산에서 실험하는데 연구원만 있으면 끝나는 게 아니다.

이런 큰 실험을 하려면 컴퓨터, 실험 도구, 동물, 독, 약재, 음식, 영약, 공사 자재 등 많은 자원의 이동이 필수적이다.

게다가 경호원도 있어야 하며 상당한 규모의 건설 작업도 거쳐야 한다. 전기를 쓰지 않을 수도 없다.

생활 반경 위주로 정보를 수집하는 하오문이나 개방은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국가나 초국적 문파인 사천당가에서 아예 모르기는 힘든 일이다.

사천당가가 공식적으로 모른다면 내부에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묻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당가의…… 누구냐?"

혹시라도 암왕의 이름이 나온다면 바로 손 뗄 생각이었다.

현경이 관련된 일이면 이미 발을 담갔어도 더 늦기 전에라도 빠지는 게 좋았다.

물론 만약 암왕이 배후였으면 이런 빈약한 시설에 초절정 나부랭이 따위로 경계를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당가 소유의 병원에서 실험해도 되고, 정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면 경호로 화경이라도 붙였겠지.

"당……."

챙!

갑자기 뒤에서 날아온 비수를 쳐냈다. 연구원 중 하나가 이석희에게 던진 것이었다.

하오문도 초절정 하나가 바로 다가가 그 연구원을 제압했다. 연구원은 즉시 눈을 까뒤집었다.

"나머지도 다 무릎 꿇고 손 뒤로 돌려!"

다른 연구원들은 화들짝 놀라 얼른 몸을 낮췄다.

하오문도들이 경호 인력만 제압하고 연구원들은 그냥 모아두기만 한 모양이다. 하여튼 기본기가 부족한 놈들이었다.

비수를 던진 연구원을 제압한 초절정이 상태를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죽었습니다. 독단을 삼킨 듯합니다."

나는 비수의 손잡이를 들고 확인했다. 날붙이 부분에 까만 액체가 묻어 있었다.

"독이 묻어있군."

"……당가에서 쓰는 독이 맞아요."

당초아가 옆에서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고급 독은 아니었으나 반송장인 일류를 골로 보내기엔 충분한 물건이었다.

나는 이석희의 멱살을 잡고 눈을 맞췄다. 이석희의 눈이 떨렸다.

"계속 말해라. 누구냐?"

"……당천갈."

"확실한가?"

"그렇다."

일이 커지고 있었다.

이름이 없는 자가 아니었다.

사천쌍괴의 일원.

당문제철 경호무력대 철두철미의 수장.

독괴(毒怪) 당천갈.

당초아의 숙부였다.

***

일단은 현장을 수습했다. 무인들은 단전을 폐했고 연구원들은 줄줄이 묶어놨다.

경찰에 연락은 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상대가 당가라면 자칫했다가는 죄를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소걸에게도 연락해 규모를 오히려 키웠다.

─사천독괴 말이오. 알아보도록 하겠소.

소걸이 침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사천당가라면 이미지가 마냥 곱지는 않으나 분류상 중도 정파다.

아무리 정사마(正邪魔)가 의미 없는 시대라지만 정파의 인물이 이렇게 대놓고 생체 실험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천쌍괴라고 불린다 한들 괴팍한 성정을 지녔을 뿐인 정파 장로들인 만큼 더더욱 사안이 심각하게 느껴졌다.

직계도 아니고 암왕의 후예도 아니었기에 사천당가의 권력 후계 구도에서 벗어난 당천갈이 배후여서 그 의도가 더욱 심상찮았다.

가문 내 정쟁을 준비하는 것이었나.

물론 초절정 영물 따위를 양산한다고 하더라도 감히 현경을 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후계 구도에 있는 다른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

아직은 확실한 것이 없었다.

정말 당천갈이 배후인지부터, 그 배후의 배후가 없는지까지.

일단은 상황을 좀 더 파악한 후에야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별 생각도 없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당가 후계 구도 정쟁에 엮인 느낌이었다.

주변에 당초아, 당수련, 당천갈이 있었으니.

일단은 현장 수습을 마무리하는 게 먼저였다.

동굴 내부의 시설들을 파괴하고 자료들을 모았다.

나는 이석희의 가방에 든 서류들을 읽고 불태웠다. 저장 장치는 일단 챙겼다.

이석희를 제외한 나머지는 동굴 밖으로 보냈다. 바깥에 도착한 개방도들과 하오문도들이 포로의 인도를 도왔다.

나머지가 다 빠져나간 공동은 조용하고 차가웠다.

나는 벌레처럼 주저앉아 있는 이석희를 보고 있었다.

이석희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를…… 어떻게 할 거냐?"

"대답을 해줬으니 살려주겠다."

"그냥 죽여다오."

"나는 원래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사람이 아니다. 잘 살아라."

"죽여! 그냥 죽여줘!"

시끄러워서 아혈을 짚었다. 혀를 씹지 말라는 배려도 있었다.

팔다리가 아작난 인간쓰레기를 뒤로 하고 나도 동굴을 빠져나왔다.

나머지 사람들이 동굴 입구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쿠쿵!

나는 검기를 넓게 펼쳐 한번 휘둘러 동굴 입구를 무너트렸다.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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