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 25. 도하나(Hana)(1) >
도하나는 뒤쪽의 소란을 무시하면서 뛰었다.
다 계획된 일이었다.
김산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지금 일행 중 가장 강한 파괴력을 낼 수 있는 것은 도하나였다.
순간 화력은 넘쳐나지만 유지력이 부족한 김산을 다른 하오문도들이 보조해주는 사이, 도하나는 단독으로 동굴 내부에 깊숙이 진입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곳에 정확히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인공 영물 실험을 하는 곳?'
동굴 곳곳에 짐승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앓는 듯 끙끙대고 있었다.
전극. 주사기. 정체 모를 약물들.
익숙한 광경이었다.
도하나는 눈으로 훑으며 계속 달렸다. 경공을 멈추지는 않았다.
한쪽 구석에는 쓰레기처럼 봉투 안에 담긴 동물 사체들도 있었다. 냄새가 역겨웠다.
'머리 아파.'
먼지는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그 곁에는 먼지를 제압할 만한 무언가도 있을 것이다.
그 무언가를 파괴하거나 죽이거나 어떻게든 처리하는 것이 도하나의 임무였다.
인공적으로 넓힌 동굴이라지만 크기가 아주 클 수는 없었다. 초절정 고수의 경공으로 끝에 도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커다란 방.
덩치에 맞게 거대한 케이지 안에 먼지가 잠들어 있었다.
온 몸에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구들을 잔뜩 달아둔 채였다.
도하나의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앞에 서서 벽면의 스크린과 먼지를 번갈아 보고 있는 한 사내 때문이었다.
"과연. 이게 영물의 기경맥 도해인가. 인간과는 기공을 다루는 원리가 아예 다르군. 다만 돌연변이라 그런 건지 다른 영물들도 이런 건지 확신할 수가 없으니, 원."
"……너."
"뭐야. 손님이 왔나?"
사내는 이제야 도하나의 기척을 알아챈 듯 느긋하게 뒤돌아보았다.
키가 컸으나 크게 단련하지 않은 몸을 가졌다. 일류쯤이나 될까. 무인으로서는 도하나에게 일초지적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울 수준.
그러나 저 눈.
무생물 같은 눈으로 도하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도하나는 근육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부터 각인된 공포는 초절정 고수에게마저 영향을 미쳤다.
"기억난다, 너. 백두산 실험에 있었지. 한국-1호.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구나."
"난 1호가 아니야. 도하나야."
"어차피 같은 뜻 아닌가? 아무튼 반갑군. 성공한 실험체가 나란히 있는 걸 보고 있으니…… 썩 보람차고 좋은데."
'죽일 거야.'
도하나는 등 뒤에서 대도를 꺼내 들었다.
그때 하지 못한 일을 할 것이다.
"날 죽이려고?"
"그래."
"넌 못 해."
사내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훈련됐잖아. 여기 있는 귀여운 개처럼. '닥터를 공격하지 말 것'. 기억나지?"
사내는 먼지와 도하나를 차례로 가리켰다.
"그러지 말고 내 실험이나 도와달라고. 인간과 영물의 기경맥의 차이점을 분석해보고 싶은데 말이야. 마침 같은 실험의 결과로 나온 초절정이로군."
"끄응……."
먼지가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반쯤 눈을 떴다.
도하나는 먼지와 눈을 마주쳤다. 먼지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같은 실험.'
같은 실험의 결과물인가.
그 지옥 같은 곳에서 기어코 살아남은 이 사내는 이번엔 동물을 가지고 실험을 했던 건가.
아니면 그전에도 후에도 몇 번이고 반복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도하나는 웃었다. 늘 그랬듯이.
그 나날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
도하나가 도하나가 되기 전, 아직 소녀였던 시절이었다.
밥을 주겠다는 말에 따라간 곳에는 소녀와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말이 통하는 쪽으로 모였다.
처음엔 천국으로 온 줄 알았다.
고아로 떠돌아다닐 때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주었다. 끼니마다 고기가 있었다.
밥을 먹고는 운동과 교육을 했다. 글과 말을 배웠다. 무공을 익혔다. 몇 가지 규칙을 들었다.
'담당자의 말을 잘 들을 것.'
'닥터를 공격하지 말 것.'
규칙을 어기면 벌이 주어졌다. 전기 충격이었다. 따끔하고 아팠다.
다행히도 도하나의 담당자는 좋은 사람이었다.
담당자는 자신이 백두의선의 제자라고 했다. 허여멀건 낯빛에 선한 눈매를 가진 남자였다.
담장자는 늘 소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소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녀에게 이렇게 잘해주면서 왜 미안하다고 하는 걸까.
맛있는 밥을 먹고, 운동을 배웠다.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소녀는 운동을 이것저것 다 잘하는 편이었다.
칼이면 칼, 주먹이면 주먹.
뭐든 잘 썼다.
남자 아이들도 소녀에게는 쩔쩔매고는 했다.
근력 자체는 모자랐지만 피하고 때리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운동 시합에서 이기곤 온 날이면 담당자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그런 날조차, 담당자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늘 미안하다고 했다.
소녀는 슬펐다. 내가 좀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걸까.
소녀가 첫 하혈을 하였을 즘부터 아이들은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알약도 먹었다.
맛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담장자가 하라면 하는 것.
그게 규칙이었으니까.
어쨌든 아이들은 몸이 건장해지고 성장이 빨라졌다.
소녀는 여전히 운동을 잘했다.
어느날 소녀는 이름을 받았다.
"이 아이가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낫군."
"1호로 합시다."
"중국 쪽에 비해선 많이 모자랍니다."
"어쩔 수 없지 않나. 가진 자원으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소녀가 1호가 된 그해 겨울.
"죽여라."
운동 시합에서 상대를 죽이라는 명령을 들었다.
1호는 화들짝 놀라서 담당자를 쳐다보았다.
담당자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말을 뒤집지는 않았다.
"네가 살려면, 죽여야 한다……."
1호도 따라서 눈물을 흘렸다.
"싫어요……."
그러나 그날 시합 상대를 죽였다.
언제부턴가 닥터와 담당자들은 운동을 무공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시합이 있는 날이면 둘 중 하나는 죽었다.
그래야만 했다.
규칙을 어긴 아이들은 어딘가로 끌려갔다.
돌아올 때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대개는 다음 시합에서 죽었다.
1호는 열여섯이 되었다.
확실하지는 않았다.
그냥 처음 왔던 때의 모습과 첫 하혈을 기준으로 나이를 정한 것뿐이었다.
열여섯.
1호는 초절정이 되었다.
한국의 닥터들은 흥분했다.
"이 아이가 한국의 미래요!"
"어떻게 한 거요, 하하! 비결이 뭐요. 최 닥터!"
"그냥…… 잘 돌봐주었을 뿐입니다."
"농담도!"
1호의 담당자를 제외한 나머지 닥터는 담당하는 아이들을 대부분 잃은 시점이었다.
시설 전체에 남은 아이가 2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중국 측은 열댓 명이 남았고, 일본은 세 명이었다. 한국은 고작 하나가 남았다.
1호의 이름은 하나가 되었다.
가장 자신 있는 무기로 도를 골랐기에 도하나라는 이름을 받았다.
장법을 골랐으면 장하나가 되었을 것이고, 권법이었으면 권하나였겠지. 검이었으면 어쨌을까?
도하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어느새부턴가 감정을 잃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늘 웃었다. 그편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죽일까요?"
"죽여라."
죽였다.
"죽여요?"
"그래."
죽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오!"
"소년화경도 아니고 어찌!"
타국의 닥터들이 클레임을 걸었다.
도하나가 초절정인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거였다.
고독 시설의 다른 아이들을 벌레처럼 찢어 죽였다.
약관도 안 되는 아이들.
그 나이에 절정이 된 인재들을.
"애초에 소년화경의 레플리카를 만들자고 했던 거였잖소. 인제 와서 이러면 곤란하지."
소년화경 김산이 등장하기 이전, 강호는 어린 고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무공, 신체, 내공, 깨달음 네 개의 조화가 필수적이다.
어린 아이가 설령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도, 어른의 신체와 내공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런데 반례가 나타났다.
화산검선의 마지막 제자는 그걸 극복해냈다.
동북아시아의 정부와 무학자들은 생각했다.
'저게 저자에게만 가능한 일일까?'
삼국은 공동으로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동자고수 프로젝트]
각국의 근골이 뛰어난 고아들을 모아 수술과 영약, 약물을 통해 신체와 내공을 펌핑시키고, 고독에서의 경쟁을 통해 극한의 환경에서 실전 무공을 수련하게 하자는 계획이었다.
당연히 목표 지점은 인공적인 소년화경의 재현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중국 측은 조바심이 났다. 굳이 프로젝트를 계속할 유인이 없었다.
약관도 안 되는 나이에 절정 경지에 오른 고수를 열댓명 확보했다. 그것도 정신적으로 충분히 세뇌가 끝난.
굳이 당장 화경이 되지 않아도 좋았다. 이들 자체만으로도 프로젝트는 성공이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한국의 초절정 여자아이 하나에 매일 자국의 동량들이 찢겨 죽어가고 있었다.
한국은 프로젝트를 끝까지 하기를 원했다. 정말 소년화경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득 품고.
어느날 밤.
중국과 일본 측의 아이들은 합심하여 도하나를 죽이려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담당자의 명령. 그게 규칙이었으니까.
"어떡해요?"
"죽여라!"
한국의 닥터 하나가 소리쳤다. 중국과 일본의 닥터에게 죽어가며.
도하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담당자만 쳐다보았다.
"하나야."
도하나는 물끄러미 보았다.
"살아남아라."
그게 담당자의 마지막 명령이었다.
직후 도하나의 담당자는 칼에 찔렸다.
그 순간 도하나는 깨달았다.
닥터도 죽는구나. 닥터들은 아이들과 다른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어쨌든 명령은 명령이었다.
살아남아라.
규칙은 지켜야 했다.
─네가 살려면, 죽여야 한다.
예전에 담당자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그날.
도하나는 아이 20명과 닥터 50여 명을 죽였다.
자신을 죽이려 드는 자는 다 죽였으나 도망치는 자는 굳이 쫓지 않았다. 그건 사는 것과 상관없는 문제였으니까.
온몸을 피 칠갑한 채.
도하나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새로운 명령이 없었으니까.
지킬 규칙과 어길 규칙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하나는 그 자리에서 말라죽어 갔다.
그대로 이 주일 정도가 흘렀고 도하나의 사고 자체가 거의 멎었을 무렵.
쾅─.
"암매화(暗梅花)다. 지금부터 현장은 화산이 주도한다. 모두 움직이지 말……."
몇 사람이 시설을 부수며 진입했다.
도하나는 반쯤 뜬 눈으로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을 인식했다.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닥터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 늘 연구하며 입에 담았다.
"소년화경……."
"생존자가 있군. 보호해라."
도하나는 꿈틀거리며 도를 쥐었다.
날 어떡하려는 거지. 죽이려는 건가?
소년화경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도하나에게 다가왔다.
"왜 죽여볼 테냐? 여기 있는 자들도 네가 죽인 거냐?"
주변을 훑어보더니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다들 도상으로 죽었으니.
도하나는 손을 벌벌 떨었다. 오랫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근육은 운동을 거부했다.
"아서라. 살고 싶으면."
도하나는 담당자의 유언을 떠올렸다.
─살아남아라.
그게 규칙이었다.
"……살고 싶어."
"그럼 얌전히 따라와."
소년화경은 도하나의 수혈을 짚었다.
간만의 잠. 아득해지는 정신으로 도하나는 얼핏 어떤 혼잣말을 들었다.
"스승님이 천살성을 거두었을 때 이런 심정이었을까. 어린 살인광이라니."
뭐래.
"집에 가자."
그런 거 없어.
도하나에게 집 같은 곳은 없었다. 그나마 집에 가까운 곳이 여기었으나, 이제는 그마저 무너졌다. 그녀가 스스로 무너트렸다.
하지만.
왠지 안심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