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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협객의 사회-25화 (25/120)

< 25 : 24. 먼지를 찾아서(Finding Dust)(3) >

소걸이 찍어준 위치까지 이동하는 데는 20분 남짓이 걸렸다.

꽤 높은 곳에 있는 폐 휴게소였는데 해발고도가 800m가 넘는다고 했다.

이 정도면 등산해도 거의 산 중턱에서 시작하는 느낌 아니야?

원래 바로 앞에 등산로 시작 지점이 있었는데, 일대가 생태 보호 명목으로 출입 불가 지역이 되면서 휴게소도 같이 망한 모양이다.

직업 악인들이 쓰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도착하니 개방도들이 몇 보였다. 대체로 이결에서 삼결 매듭을 달고 있었다.

"김 대협. 이쪽입니다."

"반갑소."

흰색 대형 트럭 뒤편에 하얀 개털이 몇 개 뭉쳐 있었다. 나는 한 움큼 들고 냄새를 맡아봤다.

그냥 개 냄새만 났다.

바로 도하나에게 털을 넘겼다.

"맞아?"

"네, 사형! 먼지 맞아요!"

도하나가 맞는 것이라고 하면 맞는 것이다.

트레일러 문은 잠겨 있었다.

나는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손끝에 강기를 둘러 문을 땄다.

크고 튼튼한 잠금장치였으나 강기 앞엔 얄짤 없었다.

착─.

문을 여니 빈 케이지가 보였다.

"확실하군."

이곳이 맞다.

주목할 만한 점은 먼지를 가뒀던 케이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먼지를 케이지에서 꺼내서 어딘가로 이동시켰다.

범인들에게 먼지를 제압할 만한 수단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게 고수든 약물이든.

"발자국과 흔적들이 등산로 입구까지는 이어져 있습니다."

"일단 가기 전에 휴게소를 짧게 둘러보고 가죠."

"알겠습니다."

나는 개방이 확보한 증거를 짧게 보고는 일단 폐 휴게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혹시 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휴게소는 텅 비어 있었다. 특별한 물건도 보이지 않았다. 인적이 드나든 흔적 자체가 거의 없었다.

다만 테이블 하나에 술과 커피, 과자 따위가 몇 개 놓여있었다. 말라붙은 흔적을 봤을 때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이거 방도 분들이 드신 겁니까?"

"아, 아뇨. 저희는 휴게소 쪽으로는 오지도 않았습니다."

일단은 혹시 몰라서 도하나에게 냄새를 맡게 했다.

"갑시다."

바로 등산로 입구 쪽으로 갔다.

"방도 분들은 여기서 대기해주십시오. 무슨 일이 있다면 신호를 보내주시고요."

"예, 김 대협. 무운을 빕니다."

방도들이 대답하며 포권했기에 나도 그들에게 마주 포권했다.

이, 삼결 수준의 방도들은 상황이 발생하면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컸고 문제가 생기면 지켜주기도 힘들었다. 그냥 여기 두고 가는 것이 나았다.

나는 등산로를 쭉 한 번 훑어보며 가늠했다.

나무 사이사이에 걸린 흰색 털. 트럭 뒤에서 본 것과 같은 개털이었다.

개 발자국. 끌려간 흔적은 없었다. 뛰었다.

사람 발자국 여러 개. 정확한 수를 가늠하기는 힘들었다. 열을 넘지는 않았다.

부러진 나뭇가지. 패인 나무 껍질. 경공.

발자국의 깊이. 무게 분포가 골랐다. 발자국의 간격. 1보 반. 전체적으로 균일했다. 아마 삼재보.

"이제부터 상황이 끝날 때까지 존대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시죠."

당초아가 끄덕였다.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부턴 경공으로 이동하겠다."

화경 하나에 초절정 셋, 절정 셋.

화경에 하자가 좀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전력이면 한국 내에서는 사천당가 말고는 어디서도 꿇리지 않는다.

전속력으로 경공을 밟으면 절정이 낙오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급하게 뛰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일단 내공 소모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기도 했고, 실시간으로 흔적을 살피면서 가야 했기에 애초에 아주 빠른 속도로 갈 수는 없었다.

슬슬 해가 저문 시각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우거진 야산.

차가운 공기 아래, 영산 특유의 밀도 높은 기가 흐르고 있었다.

팟─.

경공을 밟자 곧 따라오는 기척들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등산로를 따라 이동했지만 어느 순간 아래쪽으로 빠졌다.

해발 800m에서 시작해서 오히려 아래로 내려간다. 거기다 국립공원의 특별보호구역이다. 인적을 피하려는 의도가 보였다.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일다경 정도 이동했을 무렵.

─정지.

착.

나는 손을 들며 여섯 명에게 전음을 보냈다. 여럿이 큰 소리 없이 멈춰 섰다.

멀리 작은 동굴이 보였다.

입구 안쪽에 불빛이 어른거렸다. 사람의 흔적이었다.

나는 기감을 집중했다.

동굴 입구 양쪽.

안에서 흘러나오는 빛 때문에 오히려 그림자가 진 부분.

나름대로 기감을 감추고 있는 사내 둘이 있었다. 위장을 한 채 납작 엎드려 있었다.

하긴 우리가 경찰에 개방, 하오문까지 동원하며 이렇게 시끄럽게 쫓아왔는데 추적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저들도 귀가 있을 테니. 어쩌면 당문 내부 세력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주겨어?

도하나가 짧게 전음으로 물었다. 소리도 어눌했다. 도하나는 전음이 서툴렀다.

전음은 원래 익히기가 어려운 기술이다.

내공으로 음성을 담아 전달하는 것은 내기를 조절하는 섬세함을 기본으로 진동, 파동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다.

어지간히 숙련된 초절정고수도 전음을 자유로이 다루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나는 잠깐 상황을 생각했다.

깊은 산.

야밤의 작전.

당가의 배신자.

정체를 알 수 없는 납치범들.

먼지를 제압할 만한 초절정 고수가 있을 가능성.

그런 자가 있다면 도하나보다 못하다는 보장이 없다. 하나라는 보장도 없고.

내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다. 혈도와 기맥이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금제를 해제하면 그대로 피 토하고 송장이 될 거다.

리스크를 줄이는 게 맞았다.

칼밥 먹는 것은 그런 것이다.

죽여야 할 때는 죽여야 한다.

애초에 무인은 사람을 죽이는 날붙이를 든 자들이다.

나는 결정하고 전음을 보냈다.

─죽인다.

***

원거리 제압에 익숙한 자가 따로 없었기에 도하나와 내가 하기로 했다.

하긴 뭐 하오문 애들이 가까이서 칼빵 놓을 줄이나 알지 이런 섬세한 기술이 있겠냐?

나는 품에서 비수를 세 개 꺼냈다.

턱짓하자 도하나가 보법을 한번 밟아 바닥과 거의 수평에 가깝게 소리 없이 날아갔다.

보초들 역시 엎드려 있었기에 낮은 위치에서 도전하는 도하나에 대한 발견이 늦었다.

"여……헉!"

도하나가 보초 하나를 찔렀다. 폐였다. 헛숨 빠지는 소리만 들렸다. 쓰러지기도 전에 도하나가 목을 다시 베었다.

그 사이 나는 급하게 몸을 반쯤 일으킨 반대쪽 보초에게 비수를 던졌다. 가슴에 둘, 목에 하나였다. 그는 그냥 그렇게 죽었다.

나는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는 하오문도 넷에게 말했다.

"가지."

***

동굴 안은 생각보다 깊었다. 그리고 컸다. 아무리 봐도 자연적인 동굴은 아니었다.

인위적인 공사의 흔적이 보였다. 기둥을 세우고 천장을 보강했다.

진행하며 보초 둘을 추가로 죽였다. 이번에는 깨끗하게 죽여 옷을 훔쳐 입었다.

천천히 발소리를 줄이고 계속 이동하자 곧 말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시간을……"

"그럴 여유 없소. 조만간 이곳이 발각될 거요. 그럼 모두 끝이오!"

"여기 있는 자료를 그냥 버리란 말이오? 그럼 지금까지 한 고생은 뭐가 되오?"

"제기랄. 나는 당가를 배신했단 말이오! 거기다 그 괴물까지. 어서 이 나라를 떠야 하오."

"조금만 시간을 주시오. 애초에 그게 계약이지 않소. 거의 성공한 실험체도 있는데 버릴 수는 없소."

나와 하오문도 하나가 열려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실험실 같은 곳이었다.

각종 동물이 케이지나 수조 안에 있었고 대부분 온몸에 전극이 연결된 상태였다. 대체로 덩치가 컸는데 얼핏 보기엔 먼지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외부에 수상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곳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수상한 자?"

"예. 곧 이곳으로 올 것 같습니다."

"자네 선에서 처리하게. 말이 안 통하면 죽여도 되네."

"알겠습니다."

"그!"

나와 눈이 마주친 놈이 소리를 질렀다. 당초아의 비서였다. 여기 있었군.

"그놈이요! 저자가!"

놈이라니 이놈아. 나이 차이가 얼만데. 내가 너보다 먹은 벽곡단 개수가 어? 몇백 개는 많아.

그나저나 옷을 갈아입은 보람이 없었다.

물론 내 얼굴을 알아보고 놀란다는 것 자체가 뭔가 찔릴 일을 했다는 거겠지.

"그놈?"

"소년화경 말이오!"

"아직 소년이라고 불러주면 부끄럽지. 내가 동안인 건 인정하는 바이다만."

"저, 저자가 화산검룡이라고?"

"그렇다니깐!"

비서 앞에 있던 늙은이의 핏기가 하얘졌다.

"그러니까 내 곧 온다고 하지 않았나."

─가라.

획─.

전음을 날리자 도하나가 빠르게 진입했다. 일단 먼지를 확보하는 것이 도하나의 임무였다. 이후에는 다른 퇴로를 차단하는 것.

여기 비슷한 동물 실험체들이 꽤 있는데도 굳이 먼지를 납치했다는 것은 먼지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겠지.

하긴 인공적으로 초절정 영물을 만든 것 그 자체가 성공이라 해도 좋을 일이다.

도하나에게는 채 반응하지 못했으나 곧 전투원으로 보이는 자들이 입구 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하여튼 수상쩍은 놈들은 우르르 몰려다닌다니까."

물론 나도 여기까지 오면서 수상쩍은 SUV에 우르르 타서 움직이긴 했지만.

나는 무공 수위를 가늠했다.

숫자가 꽤 많았다. 인간 초절정만 대여섯.

게다가 늙은이가 뭔 짓을 하자 눈동자가 시뻘건 동물들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늑대, 개, 고양이, 사슴, 고라니, 곰까지.

"으르르……."

"우우……."

영물을 조종하는 건가? 왜 우리한테만 으르렁거리는데. 가까이 맛있어 보이는 거 많잖아. 뷔페가 따로 없구만. 혹시 화경 고기가 취향이니?

아무튼 그럭저럭 훌륭한 전력이었다.

과연 인적 드문 곳에서 수상한 실험이나 하는 놈들다웠다. 모종의 성과를 거두기는 한 것 같았다. 기반 세력도 덩치가 좀 있는 듯했고.

하지만 그중에 화경은 없었다.

초절정이 몇이든, 짐승이 몇이든.

그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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