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은 협객의 사회-24화 (24/120)

< 24 : 23. 먼지를 찾아서(Finding Dust)(2) >

"언니!"

"언니 아닙니다. 목화입니다."

"언니 맞잖아요!"

"맞는데……. 여기서는 목화예요."

목화, 당초아는 피우던 시가를 내려놓았다.

나는 작게 턱짓했다.

"그래서 뭡니까? 이사장님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당가 내의 입지 문제가 있었어요. 당가에 충성하는 사람은 있었는데 내게 충성하는 사람이 없었죠. 직계고 뭐고 제가 당가를 물려받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까놓고 말하면 당초아는 직속 비서에게마저 뒤통수를 맞을 정도였다. 그전에도 징조는 있었을 것이다.

가주의 후계가 아닌 종중 직계. 위기감을 느낄 만한 위치이긴 했다. 괜히 충심을 보이고 싶은 자에게는 좋은 먹잇감이기도 할 테니까.

"그래서 외부에 자리를 잡았다는 겁니까?"

"아니요. 전 당가를 가지고 싶어요. 그걸 위해서 하오문이 필요했던 거죠."

당초아는 눈웃음을 쳤다.

분위기가 묘하게 밖에서랑 달랐다. 좀 더 솔직한 느낌이었다.

무공도 대단치 않고, 그냥 요구르트 유니폼을 취미로나 입고 다니는 부잣집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야망이 큰 여자였다.

"저는 당가 외부에서의 지지 기반과 눈이 필요했고, 하오문는 사천시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부장을 찾은 거죠."

서로 노리는 바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인가.

하긴 사천당가 자체 정보기관과 비견할 만한 집단은 개방 아니면 하오문이 전부일 텐데, 당가 직계가 차마 거지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근데 마피아라고 해서 딱히 엄청 나은 것 아니지 않나? 물론 하오문도 중에는 소국의 독재자도 있다만.

하오문 입장에서도 당가 직계보다 적합한 인물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차피 이 땅은 당가의 땅이니까. 아무리 당가주의 후예가 아니라 한들 당초아는 사천당가의 중심에 있는 여자다. 외부인과는 접근성이 다르다.

혹시라도 당초아가 당가주가 된다면 하오문 입장에서는 대박인 거고.

"그래서 제가 하오문 사천지부장이 됐죠. 또 사천지부가 한국에선 힘이 괜찮은 편이거든요."

"그건 그럴 만하군요. 아무래도 사천이니까."

도하나는 옆에서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 하나, 네가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겠니. 무림에도 정치 역학이 있다는 것을.

그냥 건강하게 자라서 칼만 잘 휘둘러다오.

도하나는 이내 물었다.

"그래서…… 언니가 맞는 거죠?"

"그……. 네."

"언니!"

아무튼 당초아의 설명은 도하나에게 전혀 듣지 않았다. 왜냐면 도하나는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사장님이 하오문 지부장인 것은 소걸도 모르는 사실 같은데. 맞나요?"

"그렇죠. 하지만 개방은 머잖아 알게 되겠죠. 제가 지부장이 된 건 몇 개월 안 된 일이거든요. 지부장 되고는 내부를 정비하느라 바빴죠."

어쩐지 여기저기 빨빨 돌아다니긴 하더라.

"제일 먼저 김 교수님한테 알려 드리는 거예요."

"왜 저죠?"

"1년에서 2년은 한 팀이잖아요? 제게 가장 가까운 화경 고수이기도 하고 말이에요. 좀 더 친밀하게 지내자는 의미죠."

나는 뭐 딱히 한 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계약 내용대로만 일하는 건데.

하지만 상대가 굳이 좋게 생각하는 것을 정정해주지는 않았다.

또 당초아는 하오문과 당가의 정보기관을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는 창구이기도 했으니 팀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한국에 있는 동안은 말이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네, 저도요."

"저도요, 언니!"

"네, 도 소저. 잘 부탁해요."

분위기가 참 화기애애했다. 이러려고 하오문을 찾아온 것은 아니었는데.

하긴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날 줄 알았나.

도하나를 통한 기세 싸움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초아 덕분에 딱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사장님? 목 지부장? 뭐라고 부르면 되죠?"

"편하신 대로 부르세요. 어차피 하나 양도 있는 걸요."

"그럼 목 지부장. 먼지 쪽은 소식이 아직 없나요?"

"아, 애초에 그것 때문에 오신 거였죠."

당초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나머지는 이동하면서 얘기하죠. 자세한 설명은 차에서 할게요."

우리는 하오문도의 안내에 따라 수상쩍은 검은색 SUV에 올라탔다. 아주 짙은 선팅이 되어있어 밖에서는 안쪽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와 도하나, 당초아를 제외하면 초절정 하오문도 두 명과 절정 두 명이 추가로 탑승했다.

"같이 가시는 겁니까?"

"제 일이기도 하니까요."

"하긴."

뒤통수 맞은 당사자가 끼겠다는데 뭐라 할 수 없다.

차 안에 들어가자 당초아가 태블릿을 꺼냈다. 이윽고 자동차 시트마다 있는 스크린과 미러링 해 화면을 공유했다. 차는 곧장 출발했다.

"일단 경찰 CCTV 분석 결과에 의하면 처음 영물을 태웠던 트럭은 교체된 거 같아요. 사천시 외곽 지하주차장에서 발견됐는데 첫 트럭은 애초에 대포 차량이었고요. 갈아탄 트럭은 지리산 쪽으로 이동한 것 같아요. 확실하진 않지만 흰 트럭으로 예상되고요. 그쪽은 사천시 경찰 권한 밖이라 CCTV로는 추적하기가 힘들다더군요."

지리산.

정이삭의 고향인 걸로 알고 있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 이제 가르치기 시작한 햇병아리를 데리고 가기엔 위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신이라면 모를까. 절정으로는 무리였다.

경찰의 도움은 받기 힘든 상황.

그래도 지리산이라면 개방과 당가, 하오문 모두의 눈이 미치는 곳일 것이다. 사천시에서 가깝기도 하고 대한민국의 대표적 영산이었으니까.

"그래서요?"

"지리산은 포메라니안 영물을 태울 정도의 큰 트럭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은 아니에요. 그래서 지리산 근처에 있는 서민계급 지원기구의 회원들에게 목격 정보를 요청해 흔적들을 정리했죠."

당초아가 태블릿을 넘겼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빨간 점이 오십여 개 찍혀있었다.

하오문도들은 어디에도 많은 만큼 차량을 목격한 횟수가 꽤 많은 것 같았다.

다만 저 모든 것이 우리가 찾는 차량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너무 많은데요?"

"여기에 목격 시간과 방향 정보를 조합하면."

빨간 점들 옆에 시간이 표시되더니 천천히 연결되기 시작했다.

여덟 개의 정도의 선이 남았다.

그 중 사천시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사천 쪽으로 들어오는 것은 다 쳐낸다.

세 개가 남았다.

하나는 지리산을 그대로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남하하는 동선. 경북이나 충남에서 내려오는 듯했다. 제거.

남은 건 두 개.

"하나는 지리산 안쪽으로 들어가서 목격 정보가 끊겼어요. 물론 목격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자리에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죠. 다른 한 대는 하동군의 한 마을에 세워져 있다고 하더군요."

두 군데. 여기서 더 줄일 수는 없다. 남은 건 눈으로 확인한다.

"지금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하동 쪽을 거쳐서 아니라면 중심부로 이동할 거예요. 그게 동선이 깔끔하거든요."

"그렇게 하시죠."

차안에서 나는 소걸에게 전화해 추가적인 정보는 없는지 물었다. 개방 정보와 하오문 정보의 교차 검증을 위해서이기도 했고, 소걸에게의 정보 공유 목적도 있었다.

개방은 특별한 정보가 없다고 했다. 하긴 지리산에 거지가 얼마나 있겠나.

─지리산?

"그래. 두 군데로 좁혀졌다. 위치를 보내지."

─일단 근방의 방도들을 보내겠소. 다만 지리산 쪽에 있는 방도 중 무위가 높은 방도들은 대개 폐관 수련 중이라 연락이 안 될 가능성이 높소.

"일단 눈 자체를 늘리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부탁한다."

우리는 북사천 IC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하동 쪽으로 이동했다. 얼마 걸리지 않았다.

녹림(綠林, Green forest)에서 관리하는 사설 고속도로는 깔끔하고 쾌적하기로 유명하다. 가격이 좀 비싸기는 하다만.

근데 얘들은 언제까지 저놈의 호피무늬를 고집할지 모르겠다. 무슨 자동차도 호피무늬고 안내원도 호피무늬를 입고 있고.

아무튼 하동에 도착한 것은 7시를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흰 색 거대한 트럭이 보이는 곳에 주차하고 걸어서 다가갔다.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트럭 주인은 차를 이곳에 세워두고 어디론가 간 것 같았다.

트레일러는 당연히 잠겨 있었다. 나는 손톱 끝에 강기를 모아 살짝 긁었다. 잠금장치가 두부처럼 갈라졌다.

트레일러 안에는 톱밥과 폐목재만 가득 차 있었다.

"여긴 아닌 것 같군."

화물이 꽉 차 먼지가 탈 공간도 없어 보였다. 먼지가 내리고 나서 급하게 채운 거면 몰라.

나는 자물쇠 값으로 5만 원짜리 지폐를 몇 장 넣어두고 트레일러의 문을 닫았다.

"다음으로 가지."

그때 소걸에게 연락이 왔다.

─지리산 입구 폐 휴게소 쪽이오. 문도들이 트럭 근처에서 개털과 무거운 것이 이동한 흔적을 발견했다더군. 산에 진입하고는 추적하기가 어려운 것 같소. 일단 위치 보내주겠소.

"일단 그쪽으로 가지."

소걸이 다른 한쪽이 정답이라는 소식을 보내왔다.

그렇게 크고 무거운 개를 흔적도 없이 이동시킬 수는 없다.

일단 먼지가 차에서 내렸다면 나는 추적할 자신이 있었다.

털, 발자국, 이동하면서 밟은 풀, 부러트린 나뭇가지까지. 모든 게 추적의 힌트가 된다.

나는 그런 정보를 읽는데 익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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