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은 협객의 사회-23화 (23/120)

< 23 : 22. 먼지를 찾아서(Finding Dust)(1) >

"모르시는 일이라고요?"

"네, 당가에서 파견한 인력은 저희가 전부입니다."

부탁.

당가 직계라 한들 당가의 인력을 마음대로 쓸 수는 없다. 필요한 경우 절차에 따라 요청해야 한다.

위세가 드높은 초국적 대문파들은 대부분 그렇다. 가문의 주인이라 할 만한 자가 아닌 이상 서로가 서로의 경쟁자인 까닭이다.

"이상한데."

"정보가 유출된 것 같소만."

우리라고 해서 정오에 찾아온 자들에게 그냥 먼지를 내어준 것은 아니었다.

일단 고수들은 손끝과 손가락 위주로 단련의 흔적이 있었다. 움직임이 대체로 자연스러운 편이었나 품이 넓은 의복 여기저기에 단단한 물건을 넣어둔 듯한 어색함이 가끔 느껴졌다. 암기를 다루는 자들이 분명했다.

수의원들은 녹색 의복 위로 흰색 의사 가운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 위로 당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표로 보이는 자에게 명함도 받았다. 당문제약 사천본사 수의원 6팀의 팀장이라는 자였다.

일단 당초아에게 연락을 넣어 명함에 대해 물어봤다.

─알아봤는데 당문제약에 그런 자는 없어요. 애초에 수의원 6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군요.

"……그렇습니까?"

그럼 그자들은 누구였을까.

일단 당문이 엮여있는 것은 확실했다.

우리가 먼지를 확보한 것을 아는 사람 자체가 어제 교수 몇몇과 나와 여기 있는 조교들, 그리고 당초아와 당초아의 명을 받는 자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문에게 요청해 먼지를 검사하고 분석하는 사실은 교수들은 모른다.

일단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당초아의 부탁 이후 당가 내부에서 정보가 빠져나간 경우로 보인다.

아니면.

"소걸, 개방에 먼지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나?"

"……물론 했소. 하지만 굳이 먼지를 당가에게 맡긴다는 것까지 전달하지는 않았소."

"그렇군.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그럴 수 있지. 개의치 않소."

짧은 문답.

이것만으로 소걸을 믿는다.

애초에 개방이 웬만해선 호작질을 할 리 없겠으나 만약이라는 것이 있기에 확인한 것 뿐이다.

개방까지 아니라면 당가 내부 유출이 가장 유력한, 현재로서는 유일한 가설이다.

"당가 내부에서 정보가 흐른 것 같습니다만."

─……역시 그런가요? 저도 한 번 알아볼게요. 그리고 경찰 쪽에도 협력을 요청하겠습니다. 포메라니안 영물이 탈출했다는 식으로. 김 비서. 이쪽에……. ……김 비서?

김 비서가 사라졌다.

옛날부터 한 번씩 수상쩍더라니. 생긴 것도 무슨 산적처럼 생겨서 말이야.

엄밀히 말하면 당가 내부의 정보 유출이 아니었다. 당초아 직속 비서 선에서 정보가 샌 것이다.

***

이미 가짜들이 먼지를 데려간 지 4시간 정도가 경과한 상황.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찾아 나서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일단 경찰 쪽에 CCTV 분석을 요구하기는 했어요.

승합차만한 개 영물을 눈에 띄지 않고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초절정 고수에 달하는 무력을 가진 영물이라면.

가짜들 역시 먼지를 케이지에 놔두고 25톤 트럭에 덤프트럭에 실어서 움직였다.

중간에 갈아탔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은 그 차를 쫓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었다.

나는 정문 출입관리소에 전화해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그 정보를 여기저기 돌렸다.

"개방에도 부탁하지."

"카드 결제하시겠소?"

"신성한 교육을 업으로 하는 자가 겸직이라니. 그래선 안 된다."

"……하고 싶어서 하는 교육자 생활은 아니오만. 그리고 거지도 겸직으로 치는 거요?"

"웬만한 부자보다 잘사는 거지는 직업이 맞다."

"……알겠소. 어찌 보면 이 역시 조교의 업무라고 할 수도 있겠지. 다만 알다시피 개방의 눈은 도시와 번화가 위주로 퍼져있소. 저들이 인적이 드문 지방으로 움직였다면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거요."

거지가 도시 위주로 움직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 지하철역과 사람과 돈이 있기 때문이다. 구걸도 정보도 몫이 중요한 법.

"알고 있다. 그러니 다른 창구로도 정보를 구해야겠지."

"……나는 거기 안 갈 거요."

"이해한다."

그들은 수백 년 전부터 개방의 경쟁자였으니까 말이다. 딱히 적대하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서로 등한시해왔다.

중원 정보집단의 양대산맥.

"그럼 소걸은 정보를 취합하도록."

"알았소. 새로운 소식이 들리면 연락하겠소."

"도하나는 나와 간다. 당가 분들은 수고스럽겠지만 일단 돌아가 주시고. 학생들은."

그리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학생들을 보았다. 몇몇이 특히 그랬다.

왜. 뭐.

뭘 기대하는데.

교수 없으면 집에 가려고? 놀고 싶어? 쉬고 싶어?

어림없지. 그렇게 쉬엄쉬엄 좋은 무인 될 수 있겠어? 나 때는 말이야. 어? 자다가도 칼을 휘두르고 그랬어. 암습 대비란 명목으로 사형제들이 칼침 놓으러 왔단 말이야.

"학생들은 남은 시간 자습. 별말 없으면 내일도 자습이다. 소걸이 출석은 확인하도록."

"알았소."

등 뒤로 '우리 과 교수 지독한 썰 푼다'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쟤는 썰을 맨날 어디다 푸는 건데?

***

서민계급 지원기구(Humble class Assistance Organization)라는 게 있다.

이름은 그럴듯한 국제기구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중국발 국제적 범죄조직이다.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마피아 집단으로, 그 이름처럼 다양한 서민계급을 구성원으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정보 시장의 주요 경쟁자이었던 개방이 도시와 번화가를 중심으로 복지 사업을 하는 방파로 거듭나는 동안, 서민계급 지원기구는 계속 본질에 충실해 서민 사업과 뒷골목 사업을 굴려왔다.

동양의 범죄조직 대부분을 아우르는 이 범국가적 마피아는 두문자만 따서 이렇게 불린다.

그것은 그들이 아주 오랫동안 불려 왔던 이름과 매우 흡사하다. 애초에 그걸 노리고 만든 거겠지만.

H.A.O.

그들을 찾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개방을 찾을 때 지하철역에서 거지를 찾는 것처럼.

하오문도를 찾을 때는.

무공깨나 익힌 요구르트 아줌마를 찾으면 된다.

***

"아는 요구르트 아가씨 한 명이 있긴 한데. 무공도 꽤 익혔고."

"이사장 언니요? 제가 전화해볼까요?"

"됐다. 그냥 새로 찾자. 어차피 한국에 몇 년 있는 이상 연결고리를 만들어놨어야 했다."

그 아가씨는 아무래도 그냥 좀 독특한 취향을 가진 것뿐일 것이다. 번듯한 학교의 이사장인 사천당가 직계가 하오문에 들어가서 얻을 이점이 없으니까.

"일단 사천 중심으로 가자. 그 뒤에 경공으로 돌면서 빠르게 찾는 게 낫겠다."

"네, 사형!"

우리는 택시를 타고 사천역으로 이동했다.

경공이 자동차보다 빠르지만 택시를 타는 이유는, 보통 사람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과 같다. 그냥 편하니까.

사천공대가 있는 삼천포 역시 엄밀히 보면 사천의 일부분이지만 사천역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여기서 내려주세요."

"감사합니다!"

택시에 내려서는 경공을 밟으며 사천시 번화가를 돌아다녔다.

"사형, 저기요!"

"맞군."

오늘따라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평범한 요구르트 아줌마들만 보였는데, 사천 구시가지 근처에서 절정 경지인 요구르트 아줌마 하나를 발견했다.

저 정도면 하오문내에서는 꽤 높은 수준 아닐까. 문도가 많은 대신 평균적인 무공 실력은 높지 않은 조직이었으니 말이다.

척.

경공도로를 빠르게 주파해 요구르트 아줌마 앞에 내려섰다.

도하나는 옆에서 두 호흡 정도 숨을 골랐다.

"찾는 게 있는데."

"안녕하세요, 손님! 어떤 거 찾으세요?"

"제일 비싼 걸로."

"아하! 그러시구나. 이번에 새로 나온 신제품이 있는데……."

"아아, 그거 말고."

"네?"

"본업으로 갑시다. 빠르게."

나는 요구르트 아줌마와 눈을 마주쳤다. 기세를 살짝 일으켜 내 수준을 파악하게 했다.

요즘 세상에 와서 마피아와 접촉하는데 암어니 뭐니 그런 건 필요하지 않다.

확실하게 공표하지 않았을 뿐 경찰도 알고 마피아도 알고 시민도 알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는 웨이트리스고, 어느 나라에서는 바리스타다. 하오문은 나라별로 대표 창구를 사실상 정해놓은 지 오래다. 그게 한국에서는 요구르트 아줌마일 뿐이다.

"그러시죠."

요구르트 아줌마는 카트에 올라탔다. 그리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따라오시죠.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하나에게 턱짓했다.

하오문이 고객에게 칼빵 놓을 확률은 높지 않았으나 당문 내부에도 끄나풀이 있는 상황이다. 확실할 수는 없었다.

문제가 생긴다면 아직 몸 상태가 온전치 못한 나 대신 도하나가 해결해줘야 한다.

***

도착한 곳은 술집 골목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요구르트 아줌마는 건물 뒤편에 카트를 세워두고 뒷문으로 들어갔다.

"들어오시죠."

내려가는 계단.

지하 1층 술집은 서늘한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주황빛 불빛이 실내를 너무 밝지 않게 비추는 펍이었다.

건물을 앞에서 볼 때는 번화한 핫플레이스였는데 뒤쪽은 아닌 모양이다.

매캐한 연기. 알코올 냄새.

다양한 사람들이 서넛씩 모여앉아 맥주나 요구르트 따위를 들이키고 있었다.

복장도 제각각이었다. 요구르트 아줌마 유니폼부터 형광 조끼를 껴입은 보안센터 유니폼, 양복, 교복에 등산복까지.

교복이랑 등산복은 뭔데. 그 얼굴에 교복이 통하긴 하니?

하오문답게 평균 무위는 낮은 편이었다. 대개 일류였고 절정 역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였다. 물론 지부 내에 초절정 몇은 있겠지만 지금은 없는 것 같았다.

우리를 이끄는 요구르트 아줌마는 그대로 바텐더에게 다가갔다.

바텐더는 대머리에 외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절정 고수였는데 이 중에서는 그나마 무위가 가장 높아 보였다.

"마티니. 보드카 베이스에 요구르트를 얹어서."

이 아줌마 요구르트를 얼마나 좋아하는 건데?

"등급은?"

"최고급으로."

"확실한가?"

"확인했다."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그냥 안내하지. 어차피 서로 알 거 다 아는 마당에."

이런 구시대적 농담 같은 허례허식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둘은 멈칫하더니 나를 보고 웃으며 변명했다.

"물론 그렇지만 절차는 절차라서 말입니다."

─됐어요. 그냥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제가 직접 얘기하겠습니다.

바텐더의 귀에 있는 이어폰으로부터 무전으로 소리가 들렸다. 도하나는 듣지 못한 듯했다. 작아서 긴가민가했는데,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 같았다.

"……지부장님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우리는 바를 넘어 바텐더 뒤에 있던 문으로 들어갔다.

방이 하나 나왔다. 서재 비슷한 방이었다. 서류와 책, 태블릿 따위가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었고 사내 하나가 컴퓨터를 하며 앉아 있었다.

사내는 고개를 숙이더니 자리를 비켰다. 자리 뒤에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원래는 지부장을 만나는 것이 아니면 여기서 상대하는 듯했다.

다시 좁은 복도.

좌우 벽 뒤에 고수들이 숨어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절정 여덟.

복도 끝에서 중문을 열기 전.

벽 너머를 가늠했다.

절정 하나에 초절정 둘.

앉아 있는 자가 절정이었다.

물론 지부장이라고 딱히 무위가 높을 필요는 없었다. 여기는 하오문이니까.

"들어오시죠."

대머리 바텐더가 문을 열었다.

문 너머.

지부장의 좌우로 기립해있는 초절정 고수 둘.

그 가운데 커다란 책상에 앉아 다리를 꼬고 시가를 피는 지부장이 있었다.

"웅?"

"반가워요."

익숙한 요구르트 아가씨였다.

"서민계급 지원기구 사천지부 지부장 목화입니다."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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