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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협객의 사회-22화 (22/120)

< 22 : 21. 먼지(Dust)(4) >

쓰러진 박 교수는 동료 교수들이 챙겨갔다.

다른 교수들이 떠난 자리에 아까 박 교수를 말리던 젊은 여교수만 혼자 남아 있었다.

"저기……."

"뭐요."

곱슬머리에 안경을 낀 여교수를 우물쭈물했다.

"저……! 화산검룡님……! 팬이에요……!"

"……팬?"

"네! 그 타임지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팬이었어요! 이렇게 실제로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아, 그, 그렇소?"

팬이라는 작자는 너무 오랜만에 만나봐서 잠시 당황했다.

하긴 스무 살 즈음엔 어딜 가도 얼굴을 알아볼 정도였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젊은 고수의 상징이자 우상이었으니까.

물론 한참 은거를 한 이후인 지금에 와서는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소년화경 같은 별호는 여전히 꽤 유명하다.

"하긴 김 형은 차세대 천하제일인으로 꼽히던 사람이었으니 말이오."

"맞아요. 우리 나이대는 다 알 거에요. 요즘 어린애들은 잘 모른다고 하지만요."

그래? 요즘 애들은 잘 몰라? 별생각도 없었는데 들으니까 괜히 섭섭하네…….

"제자 분도 오늘 멋졌어요! 측면 회피 기동이 목적인 풍운유신을 그렇게 활용할 줄이야!"

나도 그럴 줄은 몰랐다.

교과서 같은 풍운유신과 풍신보의 상성을 녹화해 학생들에게 보여줄 예정이었는데.

끝나고 보니 휴대폰에 제대로 찍힌 것도 없어서 그냥 영상을 지웠다.

"제자 아니오."

"그래요! 제자 아니에요!"

"네? 그 특별반 학생 아니었어요?"

"내 사제요. 지금은 조교로서 나를 돕고 있지. 늦게 입문해 내가 가르친 것은 많지 않소."

"반갑습니다, 언니! 화산파 도하나예요!"

"아, 조교분이셨구나. 되게 동안이시다. 어쩐지 아무리 특별반 학생이라도 박 교수님을 한 수에 제압하는 건 너무하다 싶었어요! 그래도 학생과 교수잖아요!"

동안이 아니라 도하나는 실제로 어린 거고, 박 교수 정도는 한 수는 아니라도 이신이라면 충분히 붙어볼 만하겠지만 굳이 입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팬이라는 교수는 즐거워하는 기색으로 몇 마디를 나누더니 명함을 준 뒤, 차를 끌고 돌아갔다.

[사천무공대학 삼재과 교수 이정은]

─제2급 삼재 대가

─사천무공대학 무학박사

나는 차 안에서 고개를 숙이는 교수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2급 삼재 대가라. 거기에 내 팬이기도 하고. 자교 무학박사면 순혈 무학자이기도 하다. 당초아에게 부탁해 자율무공학과로 데려오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뭘요?"

뭐겠니. 네가 깔아뭉개고 있는 그 거대 포메라니안을 이야기하는 거란다, 하나야.

"소걸, 뭐 좋은 생각 없나?"

"개의 신병을 어떻게 할 생각인지부터 정해야 할 것 같군. 경찰 당국에 넘길 거요?"

"그럴까도 생각해봤는데 뒤에 구린 놈들이 있을 거 같다는 말이지. 어떻게 생각하나?"

"동의하오. 자연 발생한 영물은 아닐 확률이 높아 보이는군. 그럼 경찰 말고 다른 쪽?"

"아무튼 약물과 연단술, 영단, 영물 등을 연구하는 집단일 테니 당가와 아주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은 유의미한 분석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고."

"타당하오. 그 분야에 당가를 따라갈 수 있는 곳은 없지. 게다가 여기가 마침 사천땅이고 말이오."

"이사장님한테 연락을 해봐야겠군."

"좋은 생각이오."

"그건 그렇고. 일단, 데리고는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어떡하지?"

"……도 소저를 잘 따르는 것 같으니 일단 도 소저가 데리고 있으면 되지 않겠소?"

"전 좋아요!"

나는 잠깐 고민했다. 어차피 당초아를 통해서 연락할 것. 소재를 학교에 두는 것이 좋아 보였다.

야밤에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는 소걸보다는 차라리 도하나에게 맡기자. 둘이 쿵짝도 잘 맞고 말이지.

저 덩치가 숙소에는 안 들어갈 것 같지만. 사람 말도 알아듣는 것 같겠다. 경고를 해주는 걸로 충분해 보였다.

"그럼 내일까지 하나가 데리고 있어라."

"네, 사형!"

우리는 박살난 차를 뒤로하고 도로 위로 경공을 밟았다. 차가 없는 시간대는 이래서 좋다. 굳이 경공 전용도로를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들어가기 전 나는 먼지에게 경고했다.

"먼지야. 내일 내가 일어났는데 이 자리에 없으면, 다시 만났을 때는 살처분해버릴 거란다."

"헥헥헥헥─."

먼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

"그래서, 저게 그……."

"북극곰?"

"곰이 아니고 갠데?"

"귀엽다!"

다음 날 아침 수업. 연무장.

도하나가 수업에 왔으므로 먼지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학생들은 등교하자마자 도하나가 타고 있는 먼지를 보고는 입을 헤 벌렸다.

"조교 언니! 만져봐도 돼요?"

"네! 마음대로요!"

"와아!"

처음 커뮤니티에서 북극곰 관련 게시물이 올라오는 발견했던 최수아가 달려와 먼지를 껴안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화제의 북극곰이랑…… 사진 찍은 썰 푼다……."

최수아는 요상한 말을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최수아가 포즈를 바꿔가며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 뒤늦게 다른 학생들도 몇 다가왔다.

"흥. 가까이서 보니까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조교 언니! 엄청 귀여워요! 얘 안 물어요?"

"저야 모르죠!"

도하나가 해맑게 대답했다.

"……."

'마음대로 만지라며……!'

먼지의 턱 쪽에 앉아서 사진을 찍던 최수아가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멀어졌다.

"조교한테 낚여서…… 북극곰한테 죽을 뻔한 썰 푼다……."

"그래도 웬만하면 안 물 거에요! 사람 말 다 알아듣거든요! 먼지야! 너 사람 물면 혼나. 알겠지?"

"헥헥헥─."

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 신기해요!"

"보세요. 먼지야, 춤춰!"

먼지가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먼지 위에 타고 있던 도하나는 몸이 지면과 수평에 가깝게 기울어졌지만, 허벅지 힘만으로 중심을 잡고 버텼다.

"저도 해봐도 돼요?"

"물론이죠."

"머, 먼지야. 손!"

당수련이 용기를 내서 외치며 먼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먼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먼지야, 춤?"

"……."

먼지는 당수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내 턱까지 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그 장면을 보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 말을 알아들어도 모든 사람의 말을 따르는 건 아니라는 것을.

이 짐승은 여전히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고 있었다.

"먼지야?"

"왈?"

먼지가 고개를 획 돌려 도하나를 바라보았다.

'목 부러지겠다.'

"왜 수련 학생 말 안 들어?"

"헥헥─!"

먼지는 왼쪽 발을 슬쩍 당수련에게 내밀었다. 몸도 대충 흔들면서 춤 비슷한 것을 추며. 척 보기에도 정성이 달랐다.

"우리 학생들 말도 잘 들어야 해. 알겠지?"

"헥헥─!"

학생들은 도하나의 말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하지만 차가운 눈빛을 한 포메라니안 영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무리 조교와 교수 앞에서는 말을 잘 따른다고 해도, 목줄도 입마개도 없는 자동차만 한 개를 상대로 뭔가를 명령하고 싶은 생각은 싹 사라졌다.

***

나는 멀리서 학생들과 먼지와 도하나가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당초아와 통화하는 중이었다.

"예, 뭐, 학생들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오늘 중으로 본가에서 수의원 팀을 파견할 예정이에요. 일단 병이나 기생충, 고독 같은 문제가 있는지 확인한 후 정밀 검사를 통해 분석하기로 했어요.

"빠른 일 처리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김 교수님 일이 우리 사천공대의 일 아니겠어요? 아, 그리고, 이정은 교수님 같은 경우도 전과에 흔쾌히 동의하셔서 다음 주부터 자율무공학부로 가시기로 했어요

"그건 다행이네요. 슬슬 저 혼자 수업을 하는 게 벅찼거든요.

사실 전혀 그렇지는 않았다. 소걸이 오고는 거의 날로 먹는 수준이었다.

가르치는 데 있어서 나는 틀을 짜고 이론 수업을 할 뿐 몸으로 구르는 것은 대부분 조교 둘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걸은 이번 학기를 하면 떠날 몸. 그게 아니더라도 교수가 늘어나면 좋은 것은 당연했다.

특히 이정은 교수는 2급 삼재 대가인 만큼 면담을 통해 수준을 검증해본 후, 이 교수에게 이론 수업의 상당 부분을 맡길 생각도 있었다.

나는? 나도 명색이 화경인데 언제까지나 수업을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몇 주 하지도 않았다만.

미국 헥사곤 아카데미 총장이나 북경대 특설과 학장, 천마신교평화대학 천마인재학부(天魔人材學部) 학부장 정도 되어야 화경이 교수질을 하지, 이렇게 일선에서 수업을 뛰는 화경은 없다.

─최대한 빨리 교수진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에요. 이르면 다음 학기부터 몇몇 교수님들이 오기로 했으니 당분간 잘 부탁드릴게요.

"아무렴요."

어차피 1, 2년 남짓할 일이다. 당장 해야 할 일도 없고.

나머지 검룡패의 소재에 대해서는 지금도 개방을 통해 알아보는 중이지만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아직은 고무림 블랙 쪽에 매물로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팔자에 맞지 않는 교수 생활이 생각보다는 재미도 있었던 만큼 휴양 온 기분으로 즐기는 중이었다. 뭐 내 팔자라고 해봐야 사람 학살하는 팔자니 굳이 팔자에 맞게 살고 싶지도 않았다.

***

"안녕하십니까. 당가에서 왔습니다."

오후 시간이 되자 당가에서 사람들이 와 먼지를 데리고 갔다. 일곱 정도였는데 대부분이 의원으로 보였고 둘이 초절정 고수였다. 먼지를 컨트롤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을 보낸 거 같았다.

"아르르르."

먼지가 낯선 이들을 보고 으르렁거렸지만 도하나가 진정시켰다.

"먼지야. 말 잘 들어야지."

"낑……."

먼지는 낑낑거리면서 고개를 저었지만 도하나의 계속된 재촉에 겨우 당가 사람들이 가져온 케이지로 들어갔다.

창살은 만년한철이 섞인 합금으로 보였는데, 먼지가 마음 굳게 먹는다면 못 찢을 정도는 아닌 정도의 비율로 보였다.

"우리 먼지 잘 부탁해요!"

"네, 협조 감사드립니다."

언제 우리 먼지가 됐는지는 모르지만 도하나가 아쉬운 듯 먼지에게 손바닥을 흔들었다.

"먼지야, 건강해야 돼!"

"머, 먼지, 안녕."

먼지가 밖에 있을 때는 쫄아있던 학생들도 케이지에 들어가자 작별의 인사를 했다.

"자, 다시 수업 시작하겠다."

그리고 그날 오후 수업을 마칠 때쯤.

"안녕하세요. 당가에서 왔습니다. 김산 교수님 맞으시죠?"

진짜 당가에서 수의원들이 찾아왔다.

그럼 그 새끼들은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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