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은 협객의 사회-18화 (18/120)

< 18 : 17. 삼재종합공에 대하여(About mixed Sancai martial arts) >

다음날. 독접관 2층.

"다들 준비물은 잘 챙겨 왔겠지."

"네……."

학생들이 맥없이 대답했다.

각자 책상에 있는 거대한 책 세 권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삼재종합공.

초판과 63판. 그리고 최신판인 64판까지.

눈앞을 가득 채운다.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커다란 책상이 모자라 보일 지경이다.

어쩔 수 없다.

삼재검신이 본인이 생각하기에 쓸 만하고 삼재공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다 때려 넣은 무공서니까.

이쯤 되어야 기존의 무공 패러다임을 홀로 뒤집어엎을 수 있는 것이다.

거대하다.

두껍다.

무겁다.

저걸 그냥 읽기도 막막한데 저걸 채워나갔을 삼재검신을 생각하면 새삼 경이로울 지경이다.

아닌가? 최초의 무림대학원생들이 했으려나? 불쌍한 것들.

분량이 1500페이지가 넘는데 가로길이만 약 20cm에 세로 역시 거의 40cm에 육박한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판본이 지날수록 페이지도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최신판은 초판보다 2할은 두껍다.

처음 접하면 숨이 절로 막힌다. 그냥 펴고 싶지가 않다.

책을 실제로 펴보면 더 절망스럽다.

깨알 같은 글자가 가독성 떨어지는 조판에 꽉꽉 차 있다. 초식의 자세를 그려놓은 페이지를 보면 감사할 정도.

괜히 삼재종합공을 전문적으로 익히고 가르치는 삼재 대가가 어딜 가든 대우받는 것이 아니다.

삼재종합공은 아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결코 만만한 무공은 아니다.

누구나 익힐 수 있지만 평생 삼재종합공만 파더라도 대가가 되기는 쉽지 않다.

특히 가장 높은 등급인 1급 삼재 대가는 전 세계에 30명도 되지 않는 자격증이다. 숫자만 따지면 화경보다도 훨씬 적다.

전 세계 인구 대부분이 삼재종합공을 접했지만, 그중 삼재종합공을 깊이 익힌 사람은 몹시 드물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후기지수들 역시 삼재종합공을 온전히 1 회독 한 사람조차 없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는 안 된다.

후기지수일수록, 어릴수록, 향후 고수가 될 가능성이 클수록.

삼재종합공을 확실하게 익혀야 한다.

"왜?"

나는 학생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왜 삼재종합공을 익혀야 할까? 여러분들은 삼재종합공에 뒤지지 않는, 때로는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좋은 상승 무공을 충분히 접할 수 있는데 말이야."

나만 해도 그렇다.

삼재종합공이 뛰어나기는 하나 화산파의 무공들 역시 그에 뒤지지 않으며, 화산의 몇몇 신공은 삼재종합공으로는 따라가기 힘든 초상승의 무공이다.

그러나 나는 삼재공을 대가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익혔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긴 이유를 알았으면 알아서들 열심히 익혔겠지.

"과대?"

"……아, 교수님 왜 맨날 저만."

지그시.

나는 말없이 그냥 원지혜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원지혜가 움츠러들었다.

"아, 진짜 몰라요. 몰라. 좋으니까…… 배우겠죠."

"좋으니까? 지금 좋으니까, 라고 한 거냐?"

"…….."

나는 원지혜의 말을 따라 했다.

원지혜는 이제 아주 얼굴이 찌그러지는 중이었다. 너무 놀렸나? 아니, 그러니까 대답을 잘 좀 하지.

"틀린 말은 아니다."

"에?"

원지혜가 제일 놀란 듯했다. 나는 다시 학생들을 훑어보았다.

"물론 그냥 좋으니까, 로 끝나서는 안 된다. 뭐가, 어떤 점이, 누구에게 좋은지가 중요한 지점이다."

손가락을 하나 폈다.

"첫 번째 이유. 삼재종합공은 다양한 무공을 포함하고 있다."

삼재종합공은 종합공이다.

"모든 인간은 각자 다른 적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모든 무공이 모든 사람에게 맞을 수는 없다."

종합공이 다른 무공과 다른 점.

"그런데 삼재종합공은 기본이 되는 삼재검법과 삼재심공을 기반으로 보법, 경공, 권법, 각법, 장법, 기공, 진법, 고법, 조법, 도법, 창법, 지법 등등 다양한 무공을 다루고 있다."

굳이 적성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본인 상황과 적성에 맞는 것을 중심으로 누구나 유동적으로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필요한 부분을 익힐 수 있다. 그것이 삼재종합공의 첫 번째 장점이다.

손가락 두 개.

"두 번째, 삼재종합공은 접하기 쉽다. 삼재 재단이 삼재검신의 유지를 이어 무척 싸기도 하지."

나는 태블릿을 들어 화면을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흔들었다.

[삼재종합공 1판]

"그런데 E-북도 있는데 왜 다 실물 들고 와서 고생인지 모르겠군. 얼마 하지도 않는데 말이야."

"……."

학생들은 몹시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뭐. 내가 책 들고 오래? 그냥 삼재종합공 챙겨 오랬잖아.

"그러니 여러분들 중 몇몇처럼 상승 무공이나 비전 무공을 익힐 기회가 없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삼재종합공을 익히게 된다."

그러니까 삼재종합공은 누구에게나 좋다. 그런데 접하기도 쉽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삼재종합공을 익혀야 한다. 왜? 삼재종합공은 누구에게나 좋으니까. 너무 좋은 나머지."

나는 학생들 개개인과 눈을 마주쳤다.

"여러분들의 상대가 삼재종합공을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류든, 일류든, 절정이든, 초절정이든, 화경이든.

모두가 삼재종합공을 배우고 모두가 삼재종합공을 쓴다.

고수일수록 그 비중이 줄어들지만 그건 말 그대로 비중의 문제일 뿐이다.

"삼재종합공을 확실하게 익히는 것만으로도 여러분들은 살아가면서 마주할 대부분의 상대에게 정보 우위를 가져갈 수 있게 된다."

삼재종합공은 너도나도 익히는 무공이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익혀야 한다. 너보다 잘 알아야 한다.

"다행히도 여러분들은 삼재종합공을 익히기 아주 좋은 환경에 있다. 일단 여러분들 앞에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뛰어난 삼재 대가가 있다."

"감사합니다!"

김지원이 소리쳤다. 넌 왜 벌써 감사하고 그러니. 나 아직 뭐 안 했는데. 그, 사실 손에는 못 꼽을 수도 있어. 그냥 말해본 거야. 진성 삼리건 애들 무섭단 말야. 걔들은 진짜 밥 먹고 삼재종합공만 본다고.

나는 살짝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제각각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다른 적성을 가진 무인들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학생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원지혜가 대표로 물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프로젝터를 켰다.

위잉.

프로젝터가 켜지며 새로운 커다란 제목이 떠올랐다.

"여러분들이 이 대학 생활 내내 삼재종합공 하나만 건져가도 성공적인 4년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늘부터 4년 동안 계속될 과제를 하나 시작하겠다. 이름하야."

[자율무공학과 4개년 삼재 스터디 계획]

"……4개년."

"삼재……."

"……스터디?"

"여러분 같은 범재가 홀로 삼재종합공을 대성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여러분들의 재능과 적성은 각자 다르고 어느 한쪽으로 치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목을 한 번 축였다.

"따라서 여러분의 실력 테스트와 서열전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여러분이 집중해야 할 분야를 정해주겠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심득을 정리하여 다른 학생과 공유하여, 결과적으로 4년 후에는 여기 있는 12명 모두가 삼재종합공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대성, 혹은 그에 가까울 만큼 완숙해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생들의 적성이 제각각이다. 그러면 나눠서 익히고 합치면 되는 법. 삼재종합공을 익히기에 이렇게 좋은 환경은 드물다.

그야말로 무공대학에서만, 그것도 후기지수들만 모아놓은 소수 정예 학과이기에 가능한 것.

"이신. 삼재검법 및 다른 학생들에게 분배하고 남은 무공을 맡는다."

"옙."

"정이삭. 삼재기공과 삼재심공, 삼재보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과대. 삼재창법."

"네에네에~."

"대답 제대로."

"……네."

이후로도 척척 분배해 나갔다.

나와 소걸, 도하나가 토론한 결과 적성에 가장 맞는 쪽으로 정했기 때문에 반발은 없었다. 각자 분배받은 무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당수련."

"네."

"오늘부로 검은 버린다."

"……네?"

"네 검술은 형편없다. 솔직히 검술만 보면 이 독접관에 있을 수준이 못 된다. 기초 체력과 쌓아둔 내공이 준수해 버티고 있을 뿐이지. 이대로 가면 1년 안에 너는 낙오될 것이다."

"……."

당수련은 고개를 푹 숙였다.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검술에 재능이 없는 것쯤은.

왜 암기를 쓰지 않는지는 모르겠으나 암기를 버린다고 굳이 검을 들 필요는 없다.

"당수련. 너는 삼재권법, 삼재각법, 삼재장법, 삼재조법, 삼재지법 5개를 맡는다."

당수련은 고개를 쑥 들었다.

"……제가요?"

"그래."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었다.

"암기는 쓰든 말든 상관없다. 하지만 하나는 장담해줄 수 있다."

확신했다.

"4년 후에 너는 이 순간을 감사하게 될 것이다."

빠른 눈. 암기를 쓸 수 있는 가능성. 길고 큰 손.

당수련에게는 공수(空手)의 자질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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