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은 협객의 사회-10화 (10/120)

< 10 : 9. 자정의 부산(Midnight in Busan)(1) >

시작은 뉴스였다.

[최근 부산ㆍ경남 지방을 중심으로 실종 사건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자정 무렵에 일어난 것을 밝혀져, 경찰 당국은 주민들에게 이른 귀가를 권장하며 빠른 시일 안에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실종?"

"아, 사형!"

나는 허공섭물을 통해 도하나가 보던 태블릿을 낚아챘다.

날붙이 들고 돌아다니는 인간이 워낙 많다 보니 실종자가 드물지 않은 세상이었다.

실종 사건이 뉴스에 나올 정도라면 동일 범행이 의심될 정도로 패턴이 있거나 규모가 크다고 봐야 했다.

[실종 피해자 규모는 근 2개월 내 약 30여 명으로 추정되는 중이며…….]

서른이라니. 참 흉흉한 세상이구만.

부산ㆍ경남이면 그리 멀지도 않았다. 대한민국은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나란데 별일이다.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내놔요!"

"가져가라, 그래."

바둥거리는 도하나에게 태블릿을 던져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실종이라.

***

두 번째는 학생이었다.

"교수님. 저, 휴학해야 될 거 같아요."

"……갑자기?"

그녀의 이름은 김지원.

자율무공학부 내부에서는 실력이 중하위권 정도 되는 학생이었다.

개강한지 일주일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예, 뭐,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서……."

"너희는 어차피 전액 장학금이잖아. 금전적인 문제는 아닐 거고.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도와주마."

"음……."

잠깐 고민하던 김지원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교수님.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돌아올 수 있으면 돌아올게요."

김지원은 영 불안한 멘트를 뱉으며 교수 연구실을 나갔다.

김지원도 어른이다.

어른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도움을 요청했다면 도와줬겠지만, 부탁하지 않은 일을 멋대로 도와주는 것도 민폐일 뿐이다.

다만 찝찝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마음으로 김지원의 학적 변경 요청 서류를 올렸다.

고작 일주일 본 학생인데 괜히 마음이 쓰이는군.

나는 커피를 털어 넣은 후 다시 무서를 읽었다.

"에잉."

입맛이 썼다.

***

세 번째는 소걸이었다.

똑똑-.

한밤중에 숙소 창문을 두드렸다.

"……멀쩡한 대문과 초인종을 두고 왜 창문에서 그러고 있냐."

"아, 깜빡했군. 습관이라. 알다시피 내가 직접 움직이는 곳은 대개 대문 경비가 철저하지 않소? 김 형이 특별한 경우라 그렇소."

"그래, 들어와라."

손가락을 튕겨 허공섭물로 창문을 열어주자 검은색 정장을 쫙 빼입은 소걸이 소리 없이 들어왔다. 거지 주제에 멋들어졌다.

커피를 타기는 귀찮고 나는 물이나 한 잔 내어주며 말했다.

"무슨 일인데?"

"김 형이 찾던 것. 확실하지는 않지만 정황상 관련이 있는 것은 확실하오."

소걸은 장난기 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무심해졌다. 감정을 흔들려는 트리거가 있을 때 오히려 냉정해지는 것이다. 직업병이다.

"어느 쪽?"

"핵폭단 쪽. 서류 가져왔소. 받으시오. 간단히 설명해 주겠소. 요새 일어나는 실종 사건에 대해 들어봤소?"

"그래."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절맥을 앓고 있었다더군. 건강에 크게 지장이 없는 일, 이맥부터 칠음까지 있었다고 하오."

절맥이라.

불치병에 가깝지만 요즘같이 의료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는, 치료만 제때 받으면 심하지 않은 절맥의 경우엔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절맥을 치료해 주겠다고 접근한 무리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소. 절맥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조제했다며 임상 실험에 지원하라 했다더군."

"그 약이 핵폭단이다?"

"확실하진 않소. 하지만 의심은 되는군."

세상에 절맥을 치료할 수 있는 약 같은 것은 없다.

만년설삼 같은 게 실제로 존재한다면 모르겠지만 최소한 공장에서 찍어낼 수 있는 약은 아직까지 세상에 없다.

핵폭단이라면?

진원진기를 녹여 막대한 가용 내공을 형성하는 핵폭단이라면 단기적으로는 절맥을 치유'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근본적인 치유법이 될 수 없다.

핵폭단은 진원진기의 분해를 원리로 한다.

핵폭단의 치사율은 99.99%가 넘는다.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100%다.

당장은 절맥을 극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진원진기 고갈로 죽을 것이다.

"고려해 볼 만하군."

나는 문득 김지원이 떠올랐다.

왜일까? 김지원이 아무 상관이 없는데.

어쩌면 개방된 상단전에 의해 발달한 감일 지도 몰랐다.

소걸에게 들은 정보는 실종이랑 연관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근데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인가?

핵폭단에 관련된 게 아니라면 나에게는 헛수고에 불과하다.

내가 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내가 무슨 경찰도 아닌데 굳이 찾아서 정의로운 일을 해야 하는가?

정답은 그렇다다.

아무 이득도 없음에도 선을 행하는 사람.

세상은 그런 사람을 병신, 혹은 협객이라고 부른다.

시대의 마지막 협객이라고 불리던 스승님이 돌아가신 이후, 그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되었다.

죽은 협객의 사회(Dead chivalry's society)는 온전히 내 책임이다.

협객이 못 될 거면 병신이라도 되어야 했다.

"착수하도록 하지."

척.

소걸이 포권했다.

"개방을 대표해 감사를 표하도록 하겠소."

하긴, 나 혼자만 선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개방 역시 아무 이득 없이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개방은 늘 그런 곳이었다.

자본에 구속되지 않은 유일한 대방파.

정작 중요한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는 나도 개방도 서로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물론 자잘한 일에는 알뜰살뜰하게 챙길 거 다 챙겼지만.

아무튼.

세상에 거대한 방파들이 그렇게 많은데, 거지들이 모인 곳이 가장 정의롭다는 것은 조금 씁쓸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놈들은 실종자들이 절맥이라는 정보는 어디서 얻었을까?"

"물론 조사해뒀소. 실종자들의 행적과 생활 반경을 조사해 보니 중심에 대학 병원 하나가 있더군."

"병원. 거기부터 족치면 되겠군."

"……어떻게? 나도 생각을 해봤지만 방법이 없지 않소. 다짜고짜 병원을 테러할 수도 없고."

"명문정파라는 놈이 입에 담는 게 고작 테러라니. 내일 봐라. 내 고상한 방법을 알려주마."

***

다음날.

"그래서 저보고 절맥 행세를 하라고요?"

도하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래. 이사장님한테 산공독도 받아뒀다. 그리고 점혈로 맥 좀 흩어놓으면 의원들은 충분히 절맥으로 판단할 거다."

"아하."

"오호라!"

소걸도 옆에서 감탄했다.

"이런 방법이 있을 줄이야. 생각도 못 했군. 역시 김 형, 아니, 김 대협이오. 내 믿고 있었소."

"뭘 이런 거 가지고. 기본이지. 하하하!"

도하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신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근데 그걸 제가 왜?"

"……응?"

"그게 무슨 소리요, 도 소저. 이건 대의를 위한 일이오! 크게 부담될 것도 없지 않소."

"그래, 그놈들이 내공이 묶였을 때 널 공격할까 봐 걱정이냐? 걱정 마라. 내가 널 지켜주마."

"그게 아니고 사형이 하면 되잖아요."

"응?"

"으흠?"

내가?

"아니, 나는 그래도, 그, 타임지 선정 칠룡칠봉이고……. 그것도 무려 검룡……. 나름 명성도 있는데……. 갑자기 절맥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하나, 너는 무명이니까 들킬 걱정이 없잖아."

"그러니 더 좋죠. 사형, 주화입마로 엄청 유명하잖아요. 절맥 생겼다고 하면 누가 의심이나 하겠어요?"

"……."

"……."

"걱정 마세요! 누가 납치하려고 하면 제가 구해드릴게요! 저 믿죠?"

싫어. 산공독 먹기 싫어. 그거 맛없어…….

"자, 얼른 가요! 부산까지 가야 되는데 늦장 부리다 병원 문 닫으면 어떡해요. 출발!"

***

부산장산대학교 병원.

"그러니까 증상이 어떻게 되신다고?"

노의사가 외알 안경을 톡톡 두드리면서 말했다.

가슴 주머니에는 대침이 가득했다. 제발 저 큰 침을 놓겠다고는 안 했으면 좋겠다.

"그, 내공의 흐름이 막 뚝뚝 끊기고요. 몸도 으슬으슬하고, 몸살도 잦아지고요. 콜록콜록. 아, 기침도 나고……."

맛없는 산공독을 한껏 먹은 터라 초췌한 표정 연기도 잘할 수 있었다.

나도 독에 대한 내성이 엥간히 있는지라 일류 기준으로는 치사량에 가까운 분량을 먹어야 했다.

"요즘 들어 괜히 막 슬프고 그래요……. 다들 나 무시하는 거 같고. 일도 잘 안 풀리고. 갱년기인가요?"

"허허, 젊을 적 고수였던 양반 아니오. 나도 옛적에 기사 보고 그랬소. 그, 뭐라, 오룡삼봉(五龍三鳳)이랬나? 아직 젊구먼, 갱년기는 무슨. 맥이나 한 번 재봅시다."

오룡삼봉은 30년 전에나 쓰던 기준이다. 젊은 고수들이 많아지고 남녀평등 트렌드에 맞추며 호칭이 칠룡칠봉이 된 지 10년이 넘었다.

의사 영감님. 멀쩡한 거 맞죠……? 나 말고 영감님이 걱정인데요.

영감님은 눈을 감고 맥을 한 1분가량 잡더니 탄식을 내뱉었다.

"에헤이."

"왜 그러시죠……? 설마 죽을 병인가요?"

"이,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참. 그 보호자분이 따로 없다고 했나. 참. 고수였던 양반이 왜 이렇게 됐나 했더니. 절맥이오. 그것도 구음절맥. 아직까지 살아있는 게 용한 수준이구먼. 어허이."

그래요? 그런 걸로 합시다.

나는 여생은 집에서 보내겠다고 쓸쓸한 표정으로 말한 후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 영감님은 힘내라는 듯 어깨와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나는 1층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사 병원 산책로 벤치에 앉아 세상 잃은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까. 하다 하다 절맥 연기를 하게 될 줄이야. 안 그래도 내공 못 쓰는 것도 서러운데.

나는 30분쯤 앉은 자리에서 한숨도 뻑뻑 쉬고 땅바닥도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놈들이 병원 안으로는 안 들어오나 생각할 무렵, 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생글생글 웃는 것이 얼핏 인상이 좋아 보였으나 실제로는 사이코패스일 것처럼 생긴 놈이었다. 선입견인가?

나는 한번 튕겼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아~"

"하하,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이거 받으시죠."

남자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명함을 건넸다. 경계심을 푸는데 효과적으로 보이는 호감상이었다.

[대한민국절맥연구소&장산제약코퍼레이션 연구과장 정한수]

절맥 연구소가 뭔데.

이딴 사이비 단체 같은 네이밍에 속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이상한 사람 아니라며. 누가 봐도 이상한 사람이잖아.

"절맥. 저희가 치료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요?"

"네.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신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증인 절맥이라면,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보다는 뭔가를 해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음."

나는 고민하는 척을 했다.

내가 진짜 죽기 직전인 절맥이었다면, 이놈들이 내가 절맥인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는 신경 쓰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죽기 직전에 내려온 동아줄처럼 보였을 테니까.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오늘 밤 자정, 이 병원 앞에서 만나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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