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 6. 개강(The opening) >
옛말에 정수불범하수(井水不犯河水)라 했다. 우물물은 강물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관무불가침(官武不可侵)의 관습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관부와 무림이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암묵적인 약속.
관부가 정부라 불리기 시작한 이후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이제 나라의 주인은 왕이나 황제가 아니고 국민이다. 그리고 그 국민에는 무인들도 포함된다.
좀 치는 무인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는 부지기수요, 문무를 겸비한 유학파 엘리트 출신 무인이 대통령을 해먹고 있는 나라도 있다.
게다가 무공이 민간에 널리 보급된 후, 무림의 크기가 전체 사회의 크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무인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무공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을 잘 때리는 기술인 만큼, 무인은 본질적으로 폭력배일 수밖에 없다.
높은 경지의 무인은 사람을 아주 잘 때리는 놈이다.
잘 때리는 놈은 보통 사고도 잘 친다. 그것도 크게 크게.
근데 심지어 그런 놈이 많고 점점 많아진다.
관무불가침을 계속해서 적용할 경우 세상이 개판이 될 위기였다.
사람들은 무인을 제재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에 대해선 무인들도 동의했다.
따라서 무인도 법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모든 경우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관의 질서 아래에 무림이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치안이 좋은 선진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다만 그 법이라는 것도 어차피 무인 출신들이 만든 만큼 엉성하고 자비롭다.
잘 때리는 놈들이 아무리 그래도 때리지 말라는 법을 만들지는 않을 것 아닌가.
꽤 길고 복잡한 조항들이 여럿 있지만, 그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간단하다.
'거 웬만하면 죽이지는 맙시다.'
그러니까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
딱히 죽일 생각도 없었지만.
"이 경우는 무인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특별법 제2조의1 1항 1호 정당비무방위라 할 수 있다 이 말이지."
나는 제압한 밤손님들을 무릎 꿇려놓고 나의 정당함을 설파하는 중이었다.
아닌 밤중에 야습을 당했는데, 심지어 다수가 협공까지 했다.
무특법상의 정당비무방위가 적용되어 내가 저들의 단전을 폐해도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근데 참, 그쪽들은 명색이 교수라는 양반들이……."
초절정 고수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들은 당초아의 직계가 보낸 히트맨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초아와 아예 초면인 사이도 아니었다.
사천무공대학에서 일하다가 한 달 전쯤 갑자기 다른 대학으로 전출한 교수들. 초절정 고수 둘은 그중 일부였다. 절정 고수는 휘하의 대학원생들이었고.
"원래 교수들이 대학원생 끌고 이런 양아치 짓을 하고 그렇습니까?"
"빈번한 일은 아니지만 아주 없는 일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학교에 수위가 필요한 거기도 하고요."
그새 정신을 좀 차린 당초아가 차가운 얼굴로 답했다. 좀 빡친 듯했다. 그럴 만하긴 했다.
"박 교수 님, 최 교수님. 정말 실망입니다. 갑자기 퇴직하고 다른 학교로 가는 것까지는 그간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지만, 이런 일로 다시 학교에 돌아오실 줄이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분명히 대응하겠습니다. 두 분 모두 각오하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교수들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세상이다.
법으로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있고, 도시에서 칼 좀 휘두른다고 죽을 위험도 별로 없지만,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는 없다. 팔다리 날아가는 것은 예사요, 패자는 민사상으로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현대의 무림이었다.
교수들은 길고 귀찮은 민사 소송과 폭탄 같은 배상액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교수들이 학교를 갑자기 떠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당초아는 이해했다. 다른 학교에 더 좋은 조건, 더 많은 기회가 있다면 그럴 수 있는 것이니까. 당초아에게 간접적으로 피해를 줄지언정 그건 교수들의 정당한 권리다.
그러나 그들의 떠난 자리를 메우기 위해 영입한 교수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건 사천공대와 당초아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 행위다.
당초아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서 그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했다.
이를 악무는 당초아의 표정은 좀 무서웠다.
교수 두 명이 단독적으로 내가 거슬려서 나를 공격하러 온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배후는 저들이 전임을 간 학교일 수도 있고 한꺼번에 학교를 나간 교수 모임일 수도 있다.
그들의 목적이 당초아라는 인물든 사천공대라는 학교든 후속 행동이 있긴 할 것이다.
그녀는 곧장 경찰과 변호사에게 연락하고 비서에게 일처리를 맡겼다.
연락을 받고 바로 도착한 순경들은 일류 수준이었기 때문에 내가 다시금 내공을 한시적으로 금제하는 조치를 해야 했다.
"감사합니다, 대협!"
순경들은 안심한 표정으로 교수 일당을 경찰차에 태워 사라졌다. 교수들은 순순히 끌려갔다.
"김 교수님. 오늘 일은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제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나 봐요."
"아니에요. 이해합니다. 저도 교수들이 저런다는 게 당황스러웠어요. 그리고 이런 일을 막으려고 수위가 있는 거잖아요. 정 미안하시면 수당이나 잘 챙겨주세요."
"그건 당연하죠. 기대하세요."
당초아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솔직히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칼부림이 별 건가. 칼부림을 두려워하는 무인은 밥 먹을 자격도 없다.
칼침 놓겠다고 찾아오는 사람 역시 너무 많이 봐서 무덤덤했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 칼침 놓으러 다닌 경험이 꽤 있다.
오히려 내가 열이 받았던 것은 상대가 너무 약해서였다. 내 몸뚱이에 바람구멍 내겠다고 찾아온 전력이 고작 초절정 두 명에 절정 나부랭이들이라니.
내가 화경에 오르고 검룡이라는 별호를 받은 시점은 물론, 사고 이후 낭인 일로 밥 벌어먹던 시절에도 이런 경험은 한 적이 없다.
다시 생각해도 열받는다. 사람을 내공으로 평가한다는 것 아닌가.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내공이 많다고 고수가 되는 거였으면 중동 지방의 산유국들에서 고수들이 아주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늦은 밤이었기에 너무 많은 이야기는 나누기는 힘들었다. 당초아와 비서를 보내고 나는 도하나와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교수들이 애초에 우리가 학교에서 술 마시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원래 미행하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나? 아니면…….
나는 비서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받은 만큼 정해진 만큼만 일하면 된다.
나는 도하나를 제 침대에 던져둔 뒤 나와서 낮에 미처 다 하지 못한 수련을 마저 했다.
***
마침내 개강일이 되었다.
나는 당초아와 소걸로부터 받은 학생들의 신상 명세를 쭉 읽었다.
학교로부터 받은 것보다 거지에게 받은 정보가 더 디테일하다는 것은 꽤 소름 끼치는 부분이었다.
사천무공대학 자율무공학부 1학년은 총 12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원이 일류에 오른지 이미 몇 년이 된 상태였고, 절정의 경지도 몇 있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약관에 절정이면 세계 어디를 가도 후기지수라고 불릴 만한 수준이다.
실물을 봐야 알겠지만 신상 명세만 봐도 기대가 되는 애들이 몇 있었다.
"도 조교."
"네, 사형!"
"……교수님이라고 부르라니까."
"아, 맞다! 교수님! 왜 부르셨어요?"
"시간 됐네. 자료 챙겨. 수업 간다."
8시 55분. 첫 수업까지 5분.
이제 아이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최대 2년까지 봐야 할지도 모르는 내 학생들.
***
사천공대 자율무공학부는 자기들끼리 교실과 연무장을 따로 사용했다. 아직 내부가 거의 비어있는 8층짜리 건물 하나에, 실내 연무장과 야외 연무장을 따로 갖추고 있었다. 과연 당초아가 힘줘서 밀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학생들은 아직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입학식과 OT를 거치며 통성명은 했지만 아직 친해지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아님 말고.
학생들이 꼭 친해져야 할 필요는 없다. 무인은 싸움만 잘하면 장땡이다.
"반갑다. 본인은 자율무공학부를 담당하게 된 학부장 겸 담당 교수 김산이다. 나를 아는 사람도 있을 테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테니 일단 짧게 소개를 하겠다."
나는 도하나에게 눈짓했다. 도하나는 얼른 컴퓨터를 조작해 스크린에 내 약력을 띄웠다.
[2008 기네스북 공인 최연소 화경]
[2008~2012 타임지(TIME) 선정 칠룡칠봉 중 검룡(劍龍)]
[2010 ESPN 선정 정사대전(Worldcup) 30대 고수]
[2010 정사대전 최우수검수]
[2010 정사대전 최우수 신인]
[2010 정사대전 최연소 우승]
[2006~2012 화산파 무무문 부문주]
[2012~ 화산파 무무문 문주]
[2014~ 삼재 재단 공인 1급 삼재 대가]
"자, 확인했다시피 나도 여러분들 나이대에 후기지수 중의 후기지수라고 불렸던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여러분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만 믿고 따라오면 화경까지는 약속할 수 없지만 여러분들을 모두 고수로 만들어주겠다."
나는 학생들 12명과 일일이 눈을 마주쳤다. 끈끈한 정이 통하는 듯했다.
그래,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남들보다 앞서나가면서 겪어왔던 고독이 이들의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첫날인 만큼 오늘은 각자 자기소개만 하고 간단하게 마치도록……"
"화산검룡? 퇴물 아니야?"
구석에 있던 놈이 옆자리 친구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문제는 그게 내 귀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어디 수업 시간에 잡담을. 해도 그딴 잡담을!
"……하지 않고, 여러분들의 실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실력 테스트까지만 하기로 하겠다."
넌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