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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협객의 사회-4화 (4/120)

< 4 : 3. 사천에서의 첫날밤(First night in Sacheon) >

3. 사천에서의 첫날밤(First night in Sacheon)

전세계 사람은 대개 어려서부터 무공을 배운다. 무인은 위험한 직업이긴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그만한 대가도 취할 수 있기에 어릴 때 무공을 한번쯤은 배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림선진국인 대한민국 같은 경우에는 도시마다 대문파의 분파도 있고 작은 동네에도 무학관 몇은 있기 마련이다.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고수는 되지 못하니까. 누군가는 무학관을 운영하게 되는 것이고, 어딜 가든 삼재종합공을 배우고 가르치니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어릴 때 무공에 입문한 아이들 중 재능이 있는 아이들만이 계속해서 무공을 수련한다.

무공에 특화된 중고등학교를 가고 관련대학에 진학하거나 대문파에 가고 직업무인이 되는 것이다.

약관 기준 무공을 12년 정도 배운 아이들. 그들 경지의 평균 일류에 해당한다.

중세 시절에야, 아니, 당장 100년 전만 해도 일류도 고수로 취급하고는 했었지만 현대에는 그렇지 않다.

삼재종합공이라는 걸출한 무공의 대중적 보급과, 무리(武理)와 내공에 대한 연구를 잇따라 거치며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나 절정의 경지에는 오를 수 있다.

일류.

이제 막 성인이 된 사람이 일류가 되는 것은 흠잡을 일은 아니지만 크게 대단할 것도 못 되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햇병아리들은 그 정도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무공대학인 사천무공대학에 입학하기는 충분하지만 딱히 장래에 엄청난 고수가 될 것은 기대되지 않는, 그냥 그저 그런 유망주.

반면 도하나의 경지는 초절정이다.

이런저런 굴곡과 사연이 있고 성격도 이상하고 사회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 능력만 따지면 문자 그대로 후기지수(後起之秀)가 분명하다.

상황에 따라서는 내공이 금제된 나보다 나은 퍼포먼스를 보일 수도 있다.

저런 풋사과들을 제압하는데는 몇 호흡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아직 지켜야 할 선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다.

"죽이면 안 된다."

"당연한 말씀을. 이제 저도 알아요. 한쪽만 자를게요."

"대체 뭐가 당연한데? 몸 성히 제압해."

그리고 한쪽은 뭔데. 어디 한쪽인데?

"그럼 위험하잖아요? 단전이라도 폐할까요?"

네가 여기서 제일 위험해, 이 자식아.

"사지 멀쩡히. 안팎 구분없이."

"예예."

"하나야."

"네."

"여긴 거기랑 달라."

"네."

도하나는 웃었다.

"알아요."

그녀에게 다른 표정은 없다. 도하나는 늘 웃는다.

싱글벙글 웃으며 칼부림의 현장으로 뛰어가는 도하나를 나는 마냥 웃는 모습으로 볼 수만은 없었다.

쾅!

도하나는 등 뒤에서 커다란 태도를 꺼내 땅바닥을 한번 후려찍는다.

"동작 그만."

시선이 주목된다.

수비에 치중하고 있던 생머리 여자와 그녀를 둘러싼 채 공격하던 남자 넷 모두 이게 뭔 일이냐는 표정으로 도하나를 쳐다본다.

"지금부터 움직이는 놈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맞는다."

저런 교양없는 말투는 어디서 배웠담. 대체 가정 교육을 누구한테 받았길래. ……난가?

"너 뭔데?"

흰 머리에 짧은 모히칸을 친 양아치 하나가 어이없다는 듯 묻는다. 요즘것들 머리 스타일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나?"

도하나는 늘 그렇듯이 웃는다.

"도하나."

"……누군데? 개소리 말고 꺼져라.  까불다가 다친다."

양아치는 도하나의 신상을 염려하는 인삿말과 함께 친절하게도 골목에서 나가는 방향으로 손까지 훠이훠이 저어주었다.

그러나 그런 예의바른 행동이 도하나에게는 먹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움직였네?"

"뭐?"

도하나는 도를 골목 벽에 기대두며 중얼거렸다.

"죽이면 안 되니까."

"뭐라고?"

퍼억!

다음 순간 도하나는 양아치의 배에 주먹을 꽂고 있었다.

그래도 패거리 중에서는 실력이 좀 괜찮아 보이던 양아치는 그대로 몸을 날려 벽에 부딪히고 쓰러졌다.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끄르륵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도를 들었든 안 들었든 그렇게 치는데 사람이 멀쩡하겠니, 하나야.

"민철아?"

"저 여자가 민철이 죽였어!"

"안 죽었어. 그냥 쓰러진 거야."

도하나가 억울하다는 듯 답했다.

"죽여!"

"민철이의 복수다!"

"다 같이 쳐! 고수다!"

그래도 제놈들보다 고수인 걸 알아볼 안목은 있는 모양이다. 하긴 주먹에 맞은 사람이 날아가 벽에 부딪히는데 그걸 모르면 눈이 아니라 장식품을 달고 사는 것일 것이다.

문제는 정확히 어느 정도의 고수인지를 파악할 능력은 없었다는 것. 물론 대개의 하수는 고수의 능력을 파악할 능력이 없으니 비단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잘못이라면.

"다 움직이네?"

강호에서는 늘 안목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고.

퍽! 퍽! 퍽!

고수는 본인이 상대보다 고수인 상황에서 대개 자기 말을 지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고수의 말을 경시한 것 자체가 그들의 잘못이다.

도하나는 망설임없이 움직이는 세 명을 각 일격에 때려눕혀버렸다.

"으으윽……."

"그러게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얼떨결에 구함을 받은 생머리 여자는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한 표정이었다. 하긴 저 여자도 다른 떨거지들과 비슷한 수준. 일류 중에 조금 나은 정도였다. 도하나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도하나가 상황에 개입한 이후로 몇 초가 흐르지도 않은 상황이었고. 상황파악이 안 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가, 감사합니…?"

퍽!

"……."

"……."

골목에는 적막만 맴돌았다. 마침내 도하나가 생머리 여자마저 때려눕혀버린 것이다.

"……왜 그랬니?"

"움직여서요."

"……."

"남녀노소 안 가린다고 했는데……."

그래, 뭐, 맞는 말이었다. 도하나의 행동은 공평했다. 생머리 여자 역시 다른 떨거지들과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 똑같은 대가를 치른 것 뿐.

근데, 어떡하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일단 칼부림만 멈추게 하려고 개입한 건데, 칼부림은 멈췄지만 상황의 당사자들이 모조리 기절해버렸다.

상황을 파악하기가 요원해졌다. 그렇다고 이것들을 여기다 다 버려두고 갈 수도 없고, 아무리 공격받는 측이었다지만 여자만 데려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 챙겨가기에는 귀찮고 부담된다.

"어쩔 수 없지."

"죽이게요? 증거 인멸? 제가 할까요?"

하나야……. 저지른 잘못보다 증거 인멸죄가 커지는 상황에선 죗값을 달게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나서기 귀찮아서 일처리를 어린 사매에게 맡겼다가 결국엔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됐다는 사실이 몹시 한심하고 더더욱 귀찮게 느껴왔다.

나는 손끝에 기를 모아 다섯 명의 수혈을 자극했다. 손끝이 스치는 정도로 충분했다. 한 획이었다.

점혈법은 딱히 내공을 크게 소모하는 수법이 아니지만 내공 소모를 최소화하는 것이 이미 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펼쳐졌다. 지난 8년간은 그렇게 살아와야 했으니 말이다.

"으음……"

"으윽, 배가 존나 아파……."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는 병아리들. 물론 기절 직후에 정신이 강제로 들게 한 거라 상황 파악이 잘 안되는 것 같기는 했다.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나는 얼른 숙소에 가서 저녁은 대충 배달 음식으로 해치운 뒤 한숨 때리고 싶다.

"주목."

누구세요? 그런 표정으로 병아리들이 나를 쳐다봤지만 방금 도하나의 차력 쇼에서 배운 것들이 있는 모양인지 누구도 입을 함부로 열지 않았다.

"너, 너. 상황에 대해 설명해라."

나는 여자와 짧은 흰 머리 모히칸을 가리켰다.

"가능하면 세 줄로. 길어도 1분 안에 끝내도록."

나는 그들의 사정을 아주 자세하게 알고 싶지는 않았다.

***

"그러니까 다들 사천공대 다니는데, 너네는 재학생이고 너는 신입생. 오늘 OT에서 만났는데 너네들은 장학생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얘를 혼내주고 싶었다?"

"예, 예, 정확합니다. 대협."

넌 갑자기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대협이래? 흰 머리 모히칸은 상당히 이상한 놈이었다.

"근데 거들먹거린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

"제가 저 사람들 번호 달라는 걸 거절했어요."

생머리 여자가 끼어들었다.

근데, 떨거지들이 반박하지 못했다.

"진짜냐……"

"아니, 그게 말입니다, 대협. 제가 막 흑심이 있어서 번호를 달라고 한 거는 아니고. 그 선후배끼리 소통?의 창구 같은 게 있으면 좋으니까 그런 거죠. 또 저 친구가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과라서 직속 선배도 없단 말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저희 같은 타과 선배가 도와주야 하는데 필요없다고 그러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 좋다. 얼마나 잘났는지 보자, 이런 심정에……."

"됐고."

왜 이렇게 구구절절 구질구질하니. 그 짧은 모히칸만큼 좀 단칼 같으면 안 될까?

"선배라는 것들이 합공을 하고도 제압을 못했으면 실제로 대단할 것도 없구만."

"……그건 그렇죠?"

"사라져."

"넵!"

모히칸은 부리나케 일어나서 떨거지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가기 전에 도하나를 향해 90도로 인사를 박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음에 이런 짓하다 또 걸리면 아프게 맞는다."

"명심하겠습니다, 대협. 그럼 이만."

저놈은 어째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군.

"감사합니다, 대협들."

생머리 여자도 고개 숙여 다시 한번 인사했다.

"저는……."

"됐고."

"예?"

"너도 사라져."

"예……."

자세히 알고 싶지 않다. 귀찮다. 별일도 아니었으니 상관없다. 저 정도 자존심 싸움이야 어디든 있는 일이고. 선배란 놈들이 쪼잔하긴 했지만 강호인이라면 언제 겪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생머리 여자는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지그시 바라보고 있으니 조용히 물러났다.

삼천포에서의 첫날 밤.

사천무공대학은 사소한 다툼도 날붙이를 꺼내서 다투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젊고 어린 것들은 오랜만에 봐서 참으로, 피곤했다.

"하나야. 가자."

"네, 사형."

우리는 다시 캐리어를 번쩍 들고 경공을 밟았다.

숙소에 도착하기까지는 채 2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 가까운 거리를.

나는 귀찮아져서 바로 짐을 대충 던지고 잠에 들었다. 옆호실에서 도하나가 밥 먹자고 문을 두드리고 고함을 질렀지만 그냥 무시했다.

고수라면 소음 무시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한다. 기감이 발달할수록 청력이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무시를 잘하는 것도 고수의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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