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은 협객의 사회-3화 (3/120)

< 3 : 2. 화경 7년산(S class 7 years) >

2. 화경 7년산(S class 7 years)

당초아는 전동 카트를 타고  도로를 달렸다. 인적이 드물어지는 도로에 이르자 옆으로 오토바이 하나가 따라붙었다.

당초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뭐가?"

"화산검룡이라 해봐야 10년 전에나 날리던 이름 아닙니까? 주화입마로 내공을 잃었다 들었습니다. 화경의 고수를 구하기 어렵다 하나 내공도 없는 검룡에게 매달리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다른 고수에게 접촉 해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당초아는 자신의 비서에게 고개를 돌렸다. 참으로 얕았다. 그러나 이런 얕은 사람을 곁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자신의 처지였다. 그러니 이렇게 계속 발버둥치는 것이기도 했고.

'설득해야 하나? 굳이?'

잠깐 고민하던 당초아는 그냥 말해주기로 했다. 딱히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 공개될 사실들이니까.

"일단 검룡이 내공을 거의 사용할 수 없다는 건 맞아. 알아본 바에 의하면 해외 이동시 내공 측정 검사 결과에서 고작 7년어치의 내공이 나왔다더군. 그때 업계에선 화경 7년산이라는 재밌는 별명이 붙었더랬지."

"7년……!"

비서는 놀라움과 실망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7년이라니. 무공의 길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되는 햇병아리들이나 가질 만한 내공 수준 아닌가. 까놓고 말해 나이 서른줄의 화경이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화산검룡과 동년배인 비서 본인도 무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일류 경지에 내공은 20여년에 달한다.

"근데 내공이 없는 화경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있니?"

"예?"

"육신이 본인이 길러온 무를 펼치기 위한 최선의 방향으로 재구성되어 환골탈태를 거쳐야 화경이야. 내공이 쥐꼬리만한들 화경의 신체는 빠르고 뜨겁고 무거워."

당초아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지금까지 이런 표본이 없기는 했지. 아무튼. 알아본 바에 의하면 내공이 없는데도 화산검룡의 움직임은 절정 경지의 무인을 상회해. 그냥 그 신체의 능력만으로도. 더 재밌는 건."

"……"

"화산검룡은 같은 화경마저 이겨낼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말이 안되는 것이 아닌지. 보통 화경 내공은 최소한 한 갑자 정도는 되지 않습니까? 7년분의 내공이면 강기 몇 호흡 뿜어내지도 못할 텐데 말입니다."

"몇 년 전 있었던 동유럽 내전. 꽤 컸지? 화경도 몇 낄 정도로."

"예? 그랬, 죠. 내전이 격화되며 양 진영에서 없는 돈 끌어모아 화경 고수를 몇 불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 며칠 고용하는 게 한계였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정부 측에서 소탕 작전에 화경 고수를 끌어들이자 반군쪽에서도 화경을 부르며 판이 커졌지."

"근데 그 얘기는 갑자기 왜…..?"

"그때 반군이 부른 화경 중에 천급 낭인이 있었어. 예명이 바스타드(bastard)였다더군. 후레자식이라는 뜻이지. 아주 이해 못할 작명은 아니야. 누구지 알겠어?"

"후레……? 설마?"

"그래, 화산검룡 김산이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검룡은 화경을 최소한 셋 이상 참살했다고 하더군."

"그럴 수가!"

"정확한 내용과 능력은 몰라. 하지만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 화경 7년산이고 화경 700년산이고 일만 잘하면 장땡이야. 내가 부를 수 있는 화경 중 가장 값싼 대가로 일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 말이야."

당초아가 타고 있던 전동카트는 어느새 인적이 드문 도로를 벗어나 다시 대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사천공대 1길, 사천무공대학의 정문쪽이었다.

"안 되면 그때 갈아치우도록 하지. 능력을 검증할 시간은 많으니까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넌 따로 와. 옆에서 그런 험한 인상 짓고 있으면 요구르트 안 팔린다."

"예……"

멍한 표정으로 오토바이를 멈춘 비서를 뒤로한 채 당초아는 카트를 운전해 사천공대 정문에 진입했다.

주변에 있던 그 누구도 당초아가  학교의 이사장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

소걸의 자료는 대한민국 무림계의 정세를 개략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이것저것 많았지만 내가 집중하는 부분은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부분이었다.

당가와 당초아의 상황.

애초에 '그 물건'이 어쩌다가 당초아의 손에까지 들어가게 됐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래도 후개가 당당하게 내민 물건답게 필요한 것은 거의 다 있었다.

[사천당가의 직계 문제]

[암왕이 당가의 가주가 되고 사천당가의 본가를 쓰촨성에서 대한민국 사천시로 옮긴 이후부터 당문 직계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암왕 당기백은 외당 객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당가주의 자리에 올랐으며 현경의 무인으로 긴 수명이 예상된다.

암왕 당기백이 차기 당가주의 자리를 본래의 당가 종중 적통에게 물려줄 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이며, 그동안 당기백의 파가 아닌 직계들이 권한을 유지하기는 요원할 것이다.

당기백은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상속권자들이 경쟁하여 능력을 증명하라 했다.]

[독접 당초아]

[사천당가의 직계의 독녀. 직계라고는 하나 힘이 없는 상태에서 다른 경쟁자들이 회사를 물려받을 때 사천무공대학 하나를 물려받았다. 사천무공대학도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당문제약, 당문제철 관련 회사들에 비하면 당연히 규모도 작고, 능력을 보여줄 여지도 거의 없다. 대신 독접은 당가주에게 요청하여 가문에 있는 '검룡패(劍龍牌)'를 추가로 상속받았다.]

그렇게 된 거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당가 직계인 독접은 방계가 잘 나가는 추세에서 끈 떨어지기 직전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학교와 패를 물려받았고 말이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어떻게든 경쟁 구도에 참여하려고 나라도 부른 모양이다.

그나저나 검룡패라니. 우스운 이름이었다. 그 물건은 검룡 어쩌고 따위로 묘사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세상이 몰라줄 수록 나는 좋은 일이었다.

"수위 및 교수 계약 1년에 대가가 패 한 조각이라. 거기다 쥐꼬리 만한 월봉……"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호로록 들이켰다.

"이렇게 수지타산이 맞아도 되는 걸까? 너무 날로 먹는 거 같은데."

"사형은 원래 날로 먹는 거 좋아하잖아요."

도하나가 뻔뻔하게 나를 비난했다. 제 앞에 쌓여있는 티라미슈고 허니 브레드고 하는 것들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왔는 건 잊었나보다.

아니, 그 전에 무인이 저렇게 달달한 걸 많이 먹어도 되는 건가?

"전 살 안 찌는 체질이라."

"……아직 뭐라고 안 했는데."

"눈빛이 불순했어요."

"불순? 야, 이 자식아. 니가 먹는 것들 다 누가 샀는지 알아? 내가 샀어."

"사형이 돈 관리하니까 당연한 거죠. 그럼 내 돈 나한테 줘요. 나도 조교라면서요. 그 전 것도 다 쳐줘. 옆에서 계속 도와줬잖아요."

"……어른 되면 줄게. 지금은 잠시 맡아두는 거야."

"저 전세계 어디를 가도 어른인 나이거든요? 줘. 얼른 줘."

이게 아이가 어른이 되는 걸 보는 부모의 심정인가? 애지중지 보살피며 길러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반항아로 커버리다니.

……그건 아닌가?

"그, 저녁 먹으러 갈까? 배 안 고파?"

"설탕덩어리를 돼지처럼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 배가 고프겠어요?"

응. 너 많이 처먹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참을성이 좋은 나는 웃으며 도하나를 살살 달랬다.

"배가 고프다고 먹나, 저녁 시간이 됐으니 먹는 거지. 간식은 간식이고 밥은 따로 먹어야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음, 초밥요? 아니면 육회? 날로 먹는 것이 땡기네요."

"……."

거리로 나오자 사람이 가득했다. 대학가라 그런가.

"일단 숙소로 가서 짐을 풀고 다시 나오자고. 귀찮으면 시켜먹어도 되고."

해외에서 온 거라 짐의 양이 장난 아니었다. 우리쯤 되는 무인에게 캐리어의 무게가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나 거치적 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택시? 나는 동선을 가늠했다. 그냥 뛰는 게 빠르겠군.

"숙소 어딘데요?"

"교직원 숙소. 학교 안에 있다."

"……뛰어 가요?"

"경공 배운 거 어디 쓸래?"

"캐리어 들고 이 복잡한 거리를 뛰겠다고요? 굳이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돼요?"

"그게 더 빨라. 그리고 거리가 복잡한 게 무슨 상관이야?"

골목길이랑 지붕을 밢으면서 가면 되는데 말이야.

"캐리어 안 열리게 관리 잘해라. 놓치지 말고 잘 따라와."

주의를 준 후 경공을 밟고 골목으로 진입한 순간.

칼침이 눈앞으로 날아왔다.

"……."

챙챙!

특별히 날 노린 건 아니었고 어디서 무공 잘못 배운 후레자식들이 술 먹고 취해서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취검이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기껏해야 이류? 대학가에서나 개폼 잡을 만한 병아리들이었다.

공격하는 대상은 비슷한 연배의 여자 하나. 수비하기에 급급해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다대일을 상대하는 만큼 다른 병아리들보다는 나아보인다.

보자, 내게 저치들을 말릴 자격이 있나? 말릴 이유는?

있지. 나 여기 수위잖아. 물론 지금 이곳이 학교 안은 아니지만 말이다. 게다가 어른이고. 저치들이 내 학생일 수도 있고 말이다.

나는 내 무기를 꺼내들었다.

"도하나."

"네, 사형."

"출발."

"......."

아무래도 내가 직접 하기엔 좀 뭐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