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은 협객의 사회-2화 (2/120)

< 2 : 1. 수신호위(Bodyguard) >

현대에 들어 무공을 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록 매체와 인쇄가 발달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무인만이 무공을 독점하기는 점차 어려워졌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사회운동가이자 무학자이며 당대의 현경이었던 삼재검신(三才劍神, Sancai swordmaster)이 삼재종합공(三才綜合功, Mixed Sancai martial arts)을 발표한 시점에서, 무공의 독점은 아주 끝장이 났다.

삼재검만 죽어라 익히다 세계에서 손꼽을 만한 고수가 된 삼재검신은 1차 서계대전(WWW1, West World War I)쯤부터 제자들을 기르고, 전쟁에서 겪은 다양한 무공들을 기반으로 종합공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46년.

전후 혼란한 시기.

삼재검신은 삼재종합공을 정리해 발표하고 이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세계 최초로 비급을 완전히 공개한 무학당이자 무학원이며, 추후 무공대학교의 시초가 되는 '빈 무학원'을 설립한다.

삼재종합공이 온 강호에 뒤집어놓았다.

그게 가능했던 가장 큰 요인은 삼재종합공이 기깔났다는 것이다.

현경의 무인이 다른 무공에서 자신이 보기에 괜찮은 것만 가져오고 단점들을 지워낸 후, 검법에 보법, 안법, 권법, 각법, 고법, 경공법, 발경법 등을 기가 막히게 버무려낸 삼재종합공은 웬만한 대문파의 상승무공에도 밀리지 않았다.

입문도 쉬웠으며 계속 배우고 익히기에도 깊이가 충분했다.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고 재능이 있는 분야에 집중할 수도 있었다.

삼재검신이 운이 좋았느니 어쨌느니 하는 말들도 많지만 그가 대종사의 자질을 가졌음은 확실했다.

그리하여, 삼재검신이 이 삼재종합공을 교재로 쓰겠다며 대중들에게 뿌려버린 순간.

무인들만 무공을 익히는 시대는 끝이 났다.

이후 무공이란 절묘한 기예와 굳은 신념이 남아있는 초상승의 무공과, 독특하고 기이한 용법이 있는 독문무공, 그리고 삼재종합공으로 정리가 가능하게 된다.

심지어 대문파에서도 입문 무공으로는 삼재종합공을 쓰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절정 이후에야 문파를 대표하는 상승무공을 익히는 게 현실이었다.

2022년 현시점에 와서는 전 세계인의 9할 이상이 삼재종합공을 접해봤을 정도다.

아무튼 삼재종합공 이후 무학원이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했다.

무의 재능을 겨루기에도, 모여서 수련을 하기에도 적합한 종합공이 있었으며 무공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대문파 입장에서도 삼재종합공의 숙련자를 입문시키는 것은 기꺼운 일이었다.

무공에 대한 재능과, 안목, 노력, 대처 능력을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시간이 흐르며 무학원은 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무인들이 늘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듯, 무공을 가르치는 학교에도 순위를 매기곤 했다.

그 중 대한민국 사천특별시 삼천포에 있는 사천무공대학은 세계삼대무학원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근데 교수가 없으시다?"

"그렇게 됐네요."

당초아가 요구르트를 홀짝이며 어설프게 웃었다.

"정확히 말하면 특설반 학생들을 가르칠 만한 교수가 없는 거죠."

당초아의 말은 이랬다.

세계삼대무학원이라 해봐야 무공대학을 입학하는 나이는 대개 약관 근처다.

국내 최고의 무공대학이긴 하지만 입학생 중  대부분은 이류에서 일류 수준.

그 정도 하수를 가르칠 만한 교수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개중에 특별한 학생들이 있다.

사천무공대학 자율무공학부.

당초아가 사천공대의 이사장이 된 후 경쟁력을 도모하기 위해서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신설한 학과였다.

당초아의 약속이 나름 먹혔는지, 무학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필드로 나가도 될 만한 수준의 인재들도 입학했고 그 중엔 절정에 달한 무인도 몇 있다 한다.

대성공이었다.

문제는 일주일 전에 발생했다.

개강을 고작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무공이든, 연구든, 강의든, 실력 있는 자율무공학부의 교수들이 죄다 전입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왜지?"

"죄다 서울대, 북경대, 동경대로 갔는데, 뻔하지 않겠어요?"

그런 것이다.

탐냈던 인재들이 죄다 사천공대에 몰리자 배알이 꼴렸든 어쨌든, 그들은 사천공대의 명교수를 죄다 데려갔다.

"그래서 의뢰 내용이?"

"네."

당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진지한 눈빛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학교의 수위가 되어주세요."

"……뭐요?"

교수가 되어달라는 그런 말을 할 타이밍 아니었나? 공대에서 일하는 계약이라길래 당연히 그런 줄 알았는데?

"아."

당초아가 얼빠진 내 표정을 보고 덧붙였다.

"정확히는 교수 역할까지 부탁하는 게 맞아요. 물론 임금은 둘 모두를 합산해서 지급할 거고요. 근데 당분간은 김 대협이 수위로 학교에 들어올 필요가 있어요."

첫째, 계약을 비틀어서 수위로 등록함으로써 사천공대를 견제하는 다른 대학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둘째, 야간에도 학교에 머물러 있을 명분을 주기 위해.

셋째, 사천공대에 현재 수위가 비어있으니까.

"수위라는 명칭이 정 그러시면 수신호위라는 이름으로 계약할 수도 있어요."

"……마음대로 하시오."

"아니면 학교의 수호신? 뒷배? 해결사?"

"……그냥 수위로 갑시다."

하긴 명칭이 뭐 중요하겠나. 나는 정해진 일을 하고 약속한 대가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

당초아는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과 함께 떠났다.

그리고 당초아가 멀어지자 주변에 있던 기척들 역시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힘없는 당가 직계라지만 호위들이 아예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사천공대 같은 그럴듯한 학교도 물려받았으니 영 힘이 없지는 않은 듯했다.

나와 도하나는 사천역 앞 광장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사형, 이제 뭐해요?"

"일단 한 바퀴 돌자."

"네?"

사천특별시 사천역 광장은 아주 크다.

유동 인구도 많고 이상한 놈, 수상한 놈, 목적이 있어 보이는 놈, 진짜 목적이 있는 놈도 많다.

나는 오랜만에 대한민국에 온 이상 다시 일종의 커넥션을 연결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기에 사천스퀘어는 가깝고 유용한 장소였다.

물론 필요 이상으로 시끄럽고 혼잡하기는 했지만.

[천마천국 불신지옥]

"천마신교를 믿읍시다~!"

흔히 있는 천마신교의 신도였다.

저런 사람들의 특징은 실제로 교리를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왜 저렇게 열심인지 의문이었다. 그 시간에 무공을 수련하는 걸 천마가 더 좋아하지 않을까.

어쨌든 내가 찾는 사람은 아니었다.

[일월신교 천마재림 장막성전]

"일월신교를 믿읍시다~!"

수상쩍은 피켓을 들고 비슷한 말을 외쳐대는 사람도 보였다.

척 봐도 사이비였다.

천마재림이 대체 무슨 뜻인데…….

그 외 각종 행상인, 잡상인, 포장마차들을 지나쳐 나는 마침내 찾고 있던 사람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고고하게 앉아있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적막이 흘러 시끄러운 사천스퀘어와 기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낡은 옷.

태연자약한 행색.

세태에 신경 쓰지 않는 듯 초연하고 담담한 눈빛.

그리고 왼쪽에 있는 초록색 병과 작은 종이컵.

홀짝.

"……사형, 이 사람 찾아온 거 맞아요?"

"맞다. 굳이 이 자일 필요까지는 없었다만."

"그치만 이 사람 그냥 거지인데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확실히 이 자는 이른 대낮부터 광장 구석에서 앉았는지 누웠는지 모를 자세로 소주나 홀짝이는 거지였다.

하지만 그냥 거지는 아니었다.

허리춤에는 매듭이 있다.

매듭은 고작 하나.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거지 주제에 반지를 끼고 있다는 사실과 그 밋밋하고 낡은 구리 가락지가 뜻하는 바가 중요했다.

"네가 왜 여기 있느냐?"

"바늘 가는데 실 따라가고 김 대협 가는 길에 내가 있는 거 아니겠소?"

"개뿔."

"대협이라는 말이 개뿔이라는 거요, 아니면 내 말이 개뿔이라는 거요?"

"둘 다다."

나는 대협이 아니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저놈은 의리 같은 것을 아는 놈이 아니다. 아무 데나 아무 때나 아무 놈이나 따라다닐 놈도 아니고.

"소걸, 무슨 냄새를 맡은 거냐?"

"거지가 뭔 냄새를 맡겠소. 구수한 향이 있으면 혹시나 해서 쫓아가는 거지."

얼굴엔 먼지가 거멓게 눌어붙었으나 눈빛은 맑게 빛났다.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모양은 유연함과 부드러움을 증명했고, 몸에 힘이 빠진 것 같으나 주변 경계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루에 대방파의 직계를 두 명이나 보는군."

"하하, 거지 놈들에게 족보가 어딨소. 김 형."

왼손 약지에 끼고 있는 더러운 가락지는 개방의 용결(龍結).

그가 천만개방의 소방주임을 뜻한다.

개방 소방주.

후개(後?). 소걸(小乞).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놈이니 뭔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 때문에 온 것인지 다른 게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일단 한국의 정보에 어두운 나로서는 아는 얼굴이 있다는 것 자체가 반갑긴 했다.

"필요한 건 대충 준비해뒀소."

"아직 말도 안 했다만."

"어허, 우리 사이 아니오."

소걸은 내게 USB를 하나 던졌다. 나는 받아 바로 품에 넣었다.

받긴 받았다만. 우리 사이가 뭔데. 어떤 사인데?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은 삼가주지 않을래?

"추가로 필요한 건 어느 역에든 연락 주시면 되오. 참 이 나라는 좋다니까. 분타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어. 아, 참고로 이 부근에서는 사천역 분타가 가장 크고 따뜻하니 급한 일이 있으면 이쪽으로 오시오."

"따뜻한 건 내가 알 바 아니다."

소걸이 소리 없이 웃었다.

실없어 보이지만 일 하나는 잘하는 놈이다. 저래 봬도 개방의 후개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간다."

"잠깐."

뒤돌아보니 소걸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뭐냐."

"결제는 하고 가셔야지."

"……."

맞는 말이지만 거지한테 들으니 좀 어색했다.

"……카드 되나?"

"물론이오. 오늘도 개방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하오. 평안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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