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외전 : 마지막 이야기(4)
‘전범국’ 중화민국은 갈가리 찢어졌다.
이는 중화사상을 공산주의 이상의 ‘위험사상’으로 분류한 연합국의 결정이었다.
국민들을 단체로 자살하게 하는 광적인 사상.
죽음 숭배, 자살 미화 등.
도저히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세뇌.
물론 이 다양한 요인들을 ‘중화사상’이라는 한 카테고리에 대충 퉁쳐넣은 연합국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중화사상’이 이들을 세뇌해 인간이 아니게 만들었다.
그런고로 중화사상을 영구히 금지해야 한다.
그리고 중화사상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중국을 절단내고 통합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중국은 산산조각났다.
그러나, 여러 합병작업이 이뤄져 160개로 재조합된 중국은 이미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방사성 낙진이 원인으로 규명된 괴질이나 전쟁 당시 사망자들, 각종 자연재해 등이 있기는 했지만, 중국의 베이비붐을 꺾을 수준은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진짜 이유는 다름아닌 이민이었다.
모든 생활 인프라가 초토화당하고, 도저히 희망이 없다 판단한 이들이 탈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경을 맞댄 고려연방으로.
고려연방에서 추방당하자 인도와 동남아로.
거기도 어려워지자 아예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물론 그건 죄라고 할 수 없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 도망치는 것은 인간의 습성이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어떤 곳은 막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어 그들이 공통적으로 선택한 곳이 아프리카 지역이었다.
일단 국민 소득 수준도 어느 정도 되고, 그들이 국경을 넘지도 못하게 하고 발견되는 족족 쫓아버리지도 않고, 전쟁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간단히 말해 난민들도 동네 따져 가면서 들어간다는 의미다.
그리고 애초에 중국과는 별 감정이 없었던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들의 망명을 받아주었다.
사실 여기에는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그들에게 중국인들은 그래도 한때 서구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당당하게 싸웠던 상대니까.
그리고 한 방 먹여주기까지 한 상대였으니까.
문제는 받아주다 보니 끝도 없이 몰려왔다는 것이다.
슈퍼태풍이 불기 시작한 뒤로는 산업기반마저도 철저하게 파괴된 각지에서는 탈출 행렬이 줄을 이었고, 이들은 대다수가 바다 건너 아프리카로 떠났다.
바다 정반대에서 벌어진 두 번째 아일랜드 대기근에 이은 대탈출이나 다름없는 사태였다.
그리고, 슬슬 불만이 늘어갔다.
중국인들이 워낙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다 보니 아프리카인들은 자연스럽게 실직하게 되었고, 중국인들 가운데 재산을 축적한 이들도 생기다 보니 슬슬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자신들보다 부유해진 중국인들에 분노한 저소득층은 반중 시위를 벌이고, 더 나아가 폭동까지 일으켰다.
거기에 싱가포르 사태가 벌어졌다.
싱가포르 사태로 인해 여러 사건이 벌어졌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중국인들이 순식간에 위험분자 취급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마치 원 역사에서 진주만 공습 직후의 일본인, 혹은 9.11 직후의 아랍인과 같이 잠재적 위험분자로 분류된 중국인들에 대한 배척은 순식간에 지지자들을 모았고, 거기에 하필 그 즈음에 시작된 아프리카의 경제침체는 국민들의 분노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눈앞에 너무나 명확한 분노의 대상이 있었다.
이건 다 저들의 짓이 분명했다.
거기에 정부 관료들과 고위층까지 이를 부채질했다.
경제 정책의 실패는 그들이 책임을 져야 할 판이니, 자기들 대신 욕을 먹어줄 총알받이로 욕먹기 쉬운 이방인을 선택한 것이었다.
결국, 희망이 없는 고향을 떠나 신천지를 찾으려 했던 난민들은 이해할 수 없는 분노와 마주했다.
일반적으로 상대의 폭력에 대응하는 더 쉬운 방법은 대화가 아니다.
똑같은 폭력이다.
그렇게, 아프리카 전쟁이 발발했다.
***
회담장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구닥다리 알비온제 쌍발 프로펠러 경폭격기와 대전기에 썼을 법한 미국제 함재기들이 주기되어 있었고, 미국제 중전차와 앵글로노르드제 중형전차가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난민.... 엄밀히 말해서는 난민이 아닌 그냥 반군이지만, 흔히 난민군이라고 사용하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난민군에는 어떤 국가도 무기를 공급하지 않습니다.”
벨라루스의 니시무라 외무장관이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저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지.”
“그것도 막대한 양의 무기입니다. 이 가운데에는 대전기에나 썼을 정도, 혹은 그 이전 시대 수준으로 낡아빠진 고철들도 많지만 최신 무기들도 있습니다. 저 밖에 있는 무기들은 수준이 낮아보이고, 여길 경호하는 병사들도 낡아빠진 볼트액션 소총이나 사용하지만 전선에서는 전혀 상황이 다릅니다. 저들은 심지어 앵글로노르드제 전함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론 조성을 위한 고의적인 역 블러핑이죠.”
국가 단위에서 아무리 단속을 해도, 군수기업들의 일탈이 잦았다.
게다가 국가 차원에서 단속의 의지가 낮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고려연방이 심합니다. 특히. 고려연방의 경우, 일단 군수산업에 발을 들였다면 고려연방 내에 지사 하나쯤 세워놓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야 무기의 천국이니까.”
자국산 무기들만 쓰는 상당수의 국가들과는 다르게 고려연방은 자국산 장비들을 개발할 능력을 충분히 갖췄음에도 수입과 자체생산을 모두 한다.
이는 고려연방 특유의 안보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지형도, 기후도 없는 게 없다시피 한 대국이었고, 다양한 안보 상황에 노출되기 때문에 한 번 구매하면 어마어마한 자금력으로 막대한 양을 구매하고, 거기에 맞게 범용적인 무기부터 매우 특이한 무기들까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도입하기에 그야말로 군수기업들의 꿈의 시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강대국이기에 그 영향 아래에 있는 국가들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일단 한 번 군납을 뚫으면 탄탄대로이기에 군수기업들은 서울에 어떻게든 지사를 내두고 상당한 중요성을 둔다.
그리고 바로 그 고려연방이 아프리카에 무기가 뿌려지는 걸 방조하고 있다.
“막대한 무기들이 생산되고도 팔리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고, 거기에 연방에서는 오래된 무기들을 어지간해서는 퇴역시키지 않으니 그런 무기들도 있습니다. 그런 무기들이 아프리카에 넘어가는 겁니다.”
“왜지?”
“고려연방은 중국의 붕괴를 주도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지 중국인들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닌, 막대한 중국의 인구와 영토 때문에 우려한 것입니다. 마치 신성로마제국의 분열을 획책했던 리슐리외처럼 말이죠.”
“그런데?”
“하지만 중국이 충분히 약화되니, 생각이 바뀐 겁니다. 어차피 중국 민족주의를 중국인들의 뇌에서 뿌리뽑으려면 중국인들을 물리적으로 다 죽여버리지 않는 한 불가능하고, 그러니 자기들 주변에만 없으면 된다, 그리고 지금 위임통치령이라는 명분으로 통치하고 있는 지역과, 중국인들이 살고 있는 도시국가들에 대한 영토욕도 있고요.”
“중국인들이 전부 사라져서 텅 빈 무주지가 되면 통째로 먹어버리겠다는 거군.”
“히말라야 산맥이 가로막는 인더스나 울창한 밀림이 사이에 있는 인도차이나 연방보다는 쉬울 겁니다. 물론 중국인들이 정말 모조리 사라진다는 전제 하에 말입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아프리카에 나라를 세우면 대륙에 있는 중국인들을 모조리 데려갈 것이며, 그려면 자신들은 중국인 없는 대륙을 얻는 거라는 생각도 있는 모양입니다.”
“중간에 돈도 벌고 말이지.”
“돈도 벌고 말이죠, 엄연히 국제연맹 결의안 위반입니다.”
“증거는?”
“물증은 없고, 있다 해도 상임이사국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싸울 순 없습니다. 애초에 자기들이 책잡히지 않게 하는 데는 도가 튼 게 기업들이고, 정부 측에 제기해 봤자 기껏해야 관리소홀, 현장직의 도덕적 해이 등으로 둘러대고 넘어갈 겁니다.”
게다가 상임이사국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까지 합치면, 고려연방이 죽음의 상인 짓을 하든 디아스포라를 꿈꾸고 있든 간에 건드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현재 상황은?”
“우리는 창 장군이라는 사람을 만날 겁니다. 그는 가장 강력한 중국계 군벌인 창 군벌의 수장입니다. 이들을 제외한 타 중국계 군벌들은 복속되지 않았다면 전멸당했습니다.”
“아프리카 측은?”
“15개 세력입니다.”
조기에 망해버린 북아프리카를 제외하고 로미 공화국, 에티오피아 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마다가스카르, 나이지리아, 카메룬, 앙골라, 잠비아, 케냐, 탄자니아. 수단, 차드, 시에라리온, 가나, 말리.
이마저도 너덜너덜한 경우가 흔했다. 가나, 말리, 시에라리온, 나이지리아, 수단, 차드, 카메룬, 아예 국토 전역이 점령당해 군대와 정부만 도피해서 항전하는 판이었고, 에티오피아와 케냐, 로미, 탄자니아, 앙골라, 잠비아는 국토 대부분이 점령당하고 일부 지역들이 월경지 형태로 남아 항전하고 있는 판.
국력을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마다가스카르뿐이었다.
사실, 개전 직후에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아프리카의 전황 따위에 대해서는 관심을 끄고 있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인구수와 내부에서의 조직적인 반란으로 인해 개전 직후 등 뒤에서 공세를 당해 궤멸당하고, 지브롤터 해협과 동로마 공화국 국경을 넘어 밀수되는 무기들로 중무장한 화교들에 의해 예상 외의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지만.
“상당 부분은 창 장군의 공적이라고 봐도 될 겁니다. 아무리 아프리카 연합이 지리멸렬한 행보를 보였다지만 그럼에도 아프리카 연합이 지금까지도 진압에 실패할 것이라 예측했던 자는 아무도 없지 않았습니까.”
창 장군은 후방의 월경지들을 각개격파하고 있고, 자신의 주력 부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군대 및 마다가스카르군과 전면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실질적으로는 망명군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망명정부만 있다는 거지, 저들의 수명은 길어야 올해까지의 사실상 시한부 상황입니다. 군 병력 역시 소모가 크고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마다가스카르군이 이들을 고의적으로 위험한 전선에 몰아넣어 소모한다는 정황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나라도 그렇게 하겠네, 머리가 15개 있는 것보다는 2개로 압축하는 게 훨씬 편하거든. 별로 도움 안 되는 것들이 원하는 것만 많으니까.”
“그런 관계로 협상이 질질 끌릴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
국제연맹은 아프리카 전쟁을 중재하기 위해 상임이사국들에서 대표단을 뽑아 파견했다.
말이 말리는 거지 대놓고 아프리카 국가들을 편드는 행보였지만.
그 증거로, 내가 여기 있었다. 외교관 호위라는 명분으로 파견되었지만, 실제 목적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군사고문단 역할이었다.
“뭐, 나야 상관 없지만.”
손에 묻은 피를 또 다른 피로 씻어내려 하는 꼴이지만, 이게 내 죄에 대한 마땅한 대가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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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가급적 종결시키는 게 좋겠죠. 일단 휴전 협상이 1~2년 이상 끌릴 것도 대비해야 할 거에요.”
외교 사절로 온 내 현손녀, 실비아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총기를 점검했다.
그래도 내 후손을 언제나 보호할 수 있다는 것 하나는 다행인 것 같았다.
‘그래, 그걸로 충분하고도 남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