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외전 : 마지막 이야기(2)
“왔느냐.”
나폴레옹 6세는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죽음이 임박한 모습에, 누구든 숨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
“조금 더 가까이 와 보거라.”
입을 연 나폴레옹 6세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든든하구나. 언제든 믿고 맡겨도 될 만큼.”
“이제 곧 좋아지실 거에요, 2년은 더 하실 수......”
그러자 껄껄대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나 스스로가 알게 되는 법이지, 의사도, 다른 이들도 다 좋아질 거라고 말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네, 때가 됐다는 걸. 주께서 날 데려가실 때가 되었다는 걸 말이네.”
“........”
“조금쯤은 아쉽더구나.”
늙은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권력이야 아쉽지 않지만, 이제 정말 끝이라는 생각에 아쉬웠다. 하지만 너를 기다리며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차고 넘치는 걸 받았더구나.”
“아버지.”
“할아버님의 손자로,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최고의 명예 아래 태어났고, 전쟁의 포화와 빗발치는 탄환, 셀 수 없이 많은 죽음 속에서도 신께서 보호해주셨다. 그리고 네 어미를 만나도록 도와주셨지.... 쿨럭!”
미친 듯이 기침을 해대던 황제는 간신히 진정한 뒤 다시 몸을 기댔다.
“힘드시면 말씀하지 마세요.”
“아니, 아니야, 이번이 아니면 말하고 갈 기회가 없을 게다. 네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성이었어, 용감했고, 아름다웠고, 선했지. 그녀와 같은 이를 나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었으니, 어찌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실비아, 너는 네 할머니를 정말 많이 닮았다.”
황제는 황후를 그리며 나직이 말했다.
“아들아. 난 언제나 네가 마음 쓰였다.”
“아버지.......”
“네가 태어나고 10세도 되기 전에 며늘아기와 약혼하도록 밀어붙였지, 네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걸 알았어도 너를 도와줄 수 없었다. 그게 참으로 미안하고 미안했다. 내가.... 내가 네게 큰 죄를 지었어, 너무나도 큰 죄를 지었다. 네게 너무 큰.....”
“괜찮습니다, 아버지, 전 정말.....”
“내가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실비아, 네게도 잘못했구나, 네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는지 알면서도 네게 도움이라고는 준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할아버지, 전 괜찮아요.”
“내가 괜찮지 않다. 쿨럭! 쿨럭!”
황제는 손을 떨며 말했다.
“내 말년의 축복, 아들아..... 그리고 실비아, 너희들이야말로 내 말년의 축복이었고, 내가 일생 중 얻은 행운 중 가장 큰 것이었단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말이 틀리지 않더구나. 너희가 없었더라면 내 삶이 어떠했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할 뿐이었다.”
“이 할애비의 소원이 있다면, 부디 너희는 나보다 훨씬, 할아버님에 못지 않게 오래 살려무나, 이 세상은 그저 눈을 돌리기만 해도 즐길 거리가 한가득이니.....”
“더 이상 어린아이도 아니고 다 큰 자식이 식사는 잘 챙겨 먹을지, 잠은 편하게 잘지, 편식은 하지 않을지, 친구는 많이 사귀는지, 공부는 열심히 할지도 걱정되는 게 부모의 심정이라지만, 그게 이렇게 아쉬울 줄은 몰랐다.”
“그러니 한 가지 부탁을 하마.”
황제는 나직이 말했다.
“내가 죽더라도 슬퍼하지 말거라,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오듯, 당연한 이치일 뿐이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뿐이니까, 난 그저 내 아들이, 손녀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되었다.”
“할아버님도 유언을 남기는 자리에서 말씀하셨지, 제국에 집착하느라 아버지와 나를 돌아보지 못한 것이 아쉽노라고. 그러니..... 제국 따위는 아무래도 좋단다. 너희가 행복하다면 말이다.”
“내가 행복했던 반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너희에게 되돌려주고 싶다마는.... 그리고 제국을, 연방을 안정화시키기 전에 내 아들에게 사랑 없는 결혼을 명령했던 이 자격미달의 아비가 하기에는 옳지 않은 말이겠지만, 그때는 내가 눈이 멀었었던 것 같단다.”
“그러니 너희만큼은 후회를 남기지 말거라, 너희는 행복하려무나,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무정한 시간과 운명이 너와 상대를 갈라놓기 전에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거라,”
“적어도 더 해주지 못해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연인이든, 아내든, 남편이든, 자식이든..... 그 누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신분도, 가문도 중요하지 않단다.”
“실비아, 만약 네가 누군가를 볼 때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네가 생각하기만 해도 배시시 웃게 되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굴은 붉어지고 행복감에 젖게 된다면, 주저하지 말거라, 넌 현명하니 분명 좋은 사람을 고르겠지.”
“하지만 모든 순간이 행복할 수는 없을 터, 서투름 탓에 실수를 저지르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상처를 받고, 손가락과 발가락에 박힌 가시처럼 마음이 아프게 되더라도. 주저앉지 말거라.”
“그 가시를 뽑아내고, 뒤로 던져버리거라, 그리고 나아가거라, 가시가 너무나도 아파서, 그리고 그 아픈 가시마저도 소중해서 도저히 버리지 못한다면 결국 주저앉을 뿐, 정체될 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단다.”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단다, 불세출의 위인이라고 칭송받는 할아버님조차도 마지막에는 후회를 하셨으니, 나도 후회를 하고 있으니, 너희만큼은 그런 후회를 하지 말렴. 그때 걸어갈걸 그랬다며 아쉬워하지 않도록 앞으로 나아가거라.”
한 번에 너무 많은 말을 했는지. 황제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아들아.”
“예, 아버지.”
“일어나 보거라, 네 모습을 보고 싶구나.”
황제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언제 보아도 든든한 모습이구나. 역시 내 아들이다. 너는 언제까지나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사실, 이미 나폴레옹 6세의 눈에는 거의 음영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볼 수 있었다.
지금의 모습이 아닌, 미래의 모습을.
“실비아, 아니, 손녀야.”
“...... 예, 할아버지.”
“정말로, 정말로 많이 사랑한단다. 평소에 자주 말해주지 못한 것 같아 너무나 미안하구나. 너는 자랑스러운 나의 손녀이자, 보나파르트 가문의 후계자이며, 신께서 내려주신 기적이다.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려무나.”
깐깐하기 그지없을 할아버님께서 도끼눈을 뜨고 계실 테니 어지간한 놈팽이들은 감히 다가가지도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웃은 나폴레옹 6세는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가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이.
그가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리워했던 이.
서로를 사랑한 것에 비해 불의의 사고로, 그날의 교통사고로 인해 너무나 일찍 헤어져야 했던 이.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으로, 그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황제는.
아니, 황제가 되기 전이었던 소년은 환하게 웃었다.
몸에 맞지 않는 제복도, 묵직하기만 한 소총도 벗어 던지고, 그대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대로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다시는 떨어지지 않도록.
행복하게.
“저도 많이 사랑해요.”
***
황제의 관이, 손자의 관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묵묵히 담배를 물었다.
원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사실 피운다고 해서 니코틴의 수혜를 입을 수 있는 몸도 아니다.
하지만, 그저 담배를 물고 싶은 기분이란 것도 있는 법이다.
과거에는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개소리냐.’고 쏘아붙이고는 했지만, 나와 같은 시대를 공유하던 이들은 전부 사라지고, 내 손자마저도 천수를 누리고 관에 실려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자, 참으로 착잡한 나머지 담배를 입에 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빨아들였다.
이렇게 피우는 게 맞는지 아닌지도 사실 모르긴 하지만, 뭐 어떤가, 타르가 쌓일 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뇌에 니코틴이 가는 것도 아닌데.
애초에 숨을 쉴 필요가 없는 몸이다. 필요량의 산소와 물은 연료전지의 작동 원리상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부산물들에서 얻고 있으니까.
식사를 해서 포도당, 지방, 단백질을 분해해 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다. 생체조직에 필요한 에너지는 별도로 자급자족하는 수단이 있으니까.
식사를 하는 것이 영양을 섭취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미각을 느낌으로써 정신을 고양하기 위한 것이라면, 담배를 피우는 건 니코틴을 공급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서....라고 변명하기는 했지만, 결국 피워본 적도 없고, 니코틴이 없기도 하니 그저 몇 번 억지로 빨아들여보니 짜증만 급증했고, 결국 나는 담배를 부러트려서 불 붙은 채로 아래로 던져버렸다.
“편히 쉬려무나.”
부디 나처럼 못된 년에게 걸려서 개고생하지는 말렴.
여러모로 생각해 봤지만, 그년이 생명의 편이네 뭐네 한 건 그냥 개랑 고양이가 사랑에 빠져서 개냥이 낳는 소리였다.
그녀가 날 과거로 집어던진 이유?
‘그냥.’
이거 외에는 도저히 뭘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감정이랄까, 사고랄까. 그런 게 있는지도 솔직하게 말하면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냥이다.
뭔가 이유가 있나? 목표가 있나?
그저, 할 수 있으니까?
인간의 개념에서 ‘할 수 있으니까 저지른다.’는 이유가 되기 어렵다.
이익, 신념, 원한으로 구분되는 것은 범죄의 동기만이 아니다. 선행조차도 이익, 혹은 신념이 그 동기가 되니까.
선행을 할 수 있으니까 했다? 듣기는 좋다. 하지만 과연 그 사람이 선행은 하는 것이 좋다,라는 교육이나 측은지심 등을 알지 못했다면 같은 상황에서 선행을 했을까?
같은 이유에서, 자신의 보호만이 프로그래밍된 로봇이 스스로 철길에 뛰어들어 플랫폼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어린아이를 구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생존본능을 이기고 희생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인간의 개념에서 ‘그것’을 이해하려 들기 어렵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는 뭔 개좆같은 이유로 내 손자놈을 과거로 날려버려서 나보다 안 좋은 환경에서 개고생시킬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쫓아가서 도와주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다.
원 역사의 세계가, 자신들의 존재가 지워지고 다른 존재로 대체될 때 나를 막으려고 저지하거나 다른 사람을 과거로 보내거나 기타 여러 행위들을 하기는커녕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아니, 자신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로 사라진 것처럼.
부모가 과거에서 죽어버리면 아이는 태어날 수 없다.
반대로, 누군가를 살인할 살인자가 과거에서 죽어버리면 살해당할 피해자는 자신이 죽음의 운명을 피했다는 건 전혀 모르는 채로 계속해서 삶을 구가할 것이다.
그렇기에, 얽히고섥힌 이 과거는 되돌리려 해도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되돌릴 생각도 없다.
그저 이 이상 뭔가 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역시, 나도 퍽 이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