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외전 : 마지막 이야기(1)
국제연맹 안전보장이사회는 지구 전체를 통제한다는 그 위엄과는 정반대로 그야말로 시장판 도떼기 수준의 분위기였다.
“애초에 중국계를 받아들인 것 자체가 실수입니다!”
싱가포르 사태는 진압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망한 비 중국계 인구만 해도 수천에 달했다.
물론 독가스와, 공습과 포격을 동반한 조약군의 무차별적인 진압 등으로 사망한 화교들은 그보다 훨씬 많았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싱가포르 지역의 화교들은 오랫동안 동남아시아에서 살아온 이들도 있었지만, 아닌 겨우도 있었다.
오래 전 고향을 사고나 테러로 잃은 중국계 난민들을 국제연맹의 결의에 따라 수용해준 게 싱가포르 자치주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횡액을 당한 인도네시아 연방은 밀리던 싸움에서 주인 본 강아지마냥 기가 살 수밖에 없었다.
국제사회 앞에서 개지랄을 해도 아무도 뭐라 못할 명분이 넙죽 주어진 꼴이었으니까.
국제사회의 부탁을 받아들여 희생했는데 그 대가로 수천 명의 무고한 생명이 죽었다.
즉, 국제사회는 인도네시아에게 그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만큼의 빚을 진 셈.
인도네시아는 당연히 거기에 걸맞는 보상을 뜯어낼 것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라자루스 그룹의 테러로 규정할 것이 아닙니다. 중국인들은 라자루스 그룹을 적극적으로 보호했으며, 부패한 현지 치안당국 역시 그러했습니다. 오메가 그룹의 분전으로 라자루스 그룹의 주요 인사들을 소탕했으나, 이들이 기회를 잡자 바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단 한 가지를 의미합니다. 이는 중국인들은 지금까지도 위험사상에 물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잠재적 위협을 국내에 방치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난민기구는 현재 해외 거주 중국인들 상당수를 난민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이들이 위험한 사상에 물든 잠재적 반란군 혹은 테러리스트로써 반국가 활동을 할 여지가 매우 높으므로, 국제난민협약 229조에 의거, 이들에 대한 난민 승인을 취소해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바입니다.”
난민협약 229조는 인구가 많은 국가가 난민이랍시고 인구를 내보내 타 국가를 전복시키는 행위를 막기 위해 만든 규정으로, 명백히 반국가적 행동을 해 주재국에 위험을 끼칠 여지가 있거나 그러한 사상을 신봉해 내란을 선동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은 난민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불법체류자로써 추방 절차를 밟게 된다.
게다가 국제연맹 차원에서 229조를 발동할 경우,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에서도 추방 절차가 강제 진행된다.
문제는, 무국적자일 경우 추방을 할 위치가 애매해진다.
보통 미국인이면 미국으로, 유럽인이면 유럽으로 추방을 할 대상지가 있는데, 국적이 없으면 ‘어디로’ 추방을 하느냐의 문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합의된 사안이 하나도 없었다.
“저희 대인도네시아 연맹은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에게 227조를 발동할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
남미, 상파울루.
-콰아앙!
폭발이 일어났다.
플라스틱 폭약에 베어링과 나사못 등을 마구 박아 급조한 IED는 한 방향으로 파편을 지향시켰다.
그리고 그 파편을 뒤집어쓴 자들의 피와 살과 뼈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양키들을 죽여라!”
은신해 있던 게릴라들이 일제히 떨쳐 일어난다.
파벨라 곳곳에 매복해 있던 게릴라들이 로켓포를 쏘고 소총을 난사했고, 아래에 있는 미군 병사들은 부랴부랴 엄폐했다.
“슈퍼 64! 슈퍼 64! 현재 파벨라에서 집중사격을 당하고 있다!”
“로켓!”
외침과 함께 대폭발이 일었다.
“의무병! 의무병! 젠장! 윌슨이 맞았어!”
“복부에 로켓을 맞았다! 젠장! 이걸 어떻게......”
“빼지 마! 빼면 출혈로 쇼크사할 거다!”
“그럼 불발탄을 배에 그냥 꽃아두란 거야?”
“꽃아 놔! 뽑으면 100% 죽지만 안 뽑으면 살 수도 있다고!”
“저 빌어먹을 코카인쟁이 놈들!”
마약 카르텔들과 민병대들 가운데 미군을 적대하지 않는 세력이 없었다.
수백 대의 헬기를 투입하고 수천 대의 장갑차를 투입하고 수만 발의 폭탄을 떨어트려도, 적들을 도저히 소탕할 수가 없었다.
사실 애초에 마약은 군벌들에게 막대한 수입을 안겨주는 사업이었고, 그들에게 있어서 군비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 마약의 최대 수입국은 미국이었다.
결국 미국은 미국인들의 돈으로 무장한 남미의 반군들과 또 자국민의 세금으로 편성된 군사비를 지출하면서 싸우고 있는 셈이었다.
동남아시아의 마약 생산은 강력한 단속과 상품성 있는 대체 작물의 재배, 조직의 소탕 등으로 거의 근절되었지만, 아프리카와 남미, 이 두 곳만은 도저히 근절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특히 요하네스버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대대적인 마약 거래는 국제연맹도 아프리카발 상선과 항공기를 철저히 검역해 바깥으로 퍼지지 못하게 하는 선에서 포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남미는 수많은 군벌들이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막대한 양의 코카인을 재배해 판매하며 마약 카르텔로 변질된 상태였다.
한 줌 있는 친미 민병대든 아니면 반미 세력이든 간에 사이좋게 마약을 재배해대는 꼴이었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문자 그대로 수렁에 빠진 꼴이었다.
무기 생산과 공급을 끊어버리려고 해도 워낙 이들의 주무기들이 생산성이 좋아 위성으로도 잡기 힘든 소규모 공방 등에서도 그럭저럭 성능이 나오는 장비가 생산되기 때문에 무기 공급을 차단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원한이 뼈에 사무친 이들이 워낙 많았기에, 실질적으로 남미에 사는 이들 거의 전체를 적으로 돌린 마당이었다.
그저 미군의 피와, 남미인들의 피가 서로의 피 위에 뿌려질 뿐이었다.
미국인들은 복수를 원했고, 남미인들도 복수를 원했다.
미군이 폭탄을 떨어트리면 거기에 희생된 이들의 가족은 복수심을 품는다.
남미 게릴라들이 미국에 폭탄테러를 가하면 희생자들의 가족은 전쟁 지지에 표를 던진다.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었다.
미국이 완전히 포기하고 물러나거나, 남미인들이 굴복하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결코 끝나지 않을 싸움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
유럽연방, 파리.
나폴레옹 6세의 사망.
이는 유럽 정계에 막대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새로 즉위한 나폴레옹 7세의 아내는 네덜란드의 왕위 주장자였지만, 이미 유럽연방이 수십 년간 경제적, 정치적으로 한데 묶여서 쉽사리 서로 분리될 수 없게 융합된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오히려, 다른 쪽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나폴레옹 6세는 유럽 연방의 창설 명분이었으며, 동시에 마지막 세계대전이었던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장본인이었으며, 나폴레옹 4세에서 6세까지 이어지는 유럽의 황금세대의 일원이었다.
나폴레옹 4세는 16세의 나이에 북독의 침공에 맞서 파리에서 항전을 이끄는 것으로 시작해 프랑스의 황금기를 이끈 황제였고, 나폴레옹 5세는 재위 기간이 짧긴 했지만 1차대전 때에도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의무를 수행했으며 2차대전 기간에는 노쇠한 부친이 맡아야 할 실무 중 상당 부분을 직접 처리했다. 사생활이야 조금 구설수에 오르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 넘길 만한 수준이었다.
나폴레옹 6세는 2차 세계대전기에 네덜란드에서 단신으로 30여 명의 적을 사살하고 나머지 적 1개 중대를 통째로 포로로 잡았으며 네덜란드 왕실, 민간인, 중앙은행의 금 등을 무사히 파리로 대피시키기까지 성공했으며, 유럽연합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전장에서 직접 뛰면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공적을 세워 가며 지배 계급의 의무를 철저하게 실천해왔던 보나파르트 왕조의 마지막 일원인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폴레옹 6세 이후로 최전선에 나간 계승권자가 또 있지는 않았으니까.
테러 등에 의도치 않게 휘말린 경우는 있더라도 국민들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한 명의 시민으로써 총을 들고 전선에 선 사례는 없었다.
황족들이 의무복무를 한다지만 여러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라도 무공훈장을 받을 정도로 최전선에서 구르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유럽연방이 여러 차례의 위기에 봉착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유럽연방이 해체되지도, 분열되지도 않고 계속해서 유지되어왔던 것은 나폴레옹 6세의 탁월한 정치감각과 리더십 덕분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7세는 그 모든 전쟁이 끝나고 유럽연합이 안정권에 들어선 뒤에나 태어났다.
프랑스의 삼색기가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휘날리지 않게 된 뒤에야 태어났다.
따라서 나폴레옹 7세는 개인의 인품이나 성품 문제가 아니라 단지 뒷세대였기에, 황제부터 시민까지 모두가 조국의 승리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대 프랑스’의 유산을 이어받을 수 없었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그가 태어난 곳은 삼색기 아래가 아닌 푸른 바탕에 황금색 별들이 수놓아진 유럽연방기의 아래였으니까.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유럽연방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애초에 프랑스 제3제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럽연방은 그동안 프랑스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컸다.
당연하지만 네덜란드,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는 이에 대해 좋아하지 않았다.
독일의 경우 일단 민주적인 절차로 집권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 합법적인 방식으로 연방에 가입한 것이었기에 탈퇴할 마땅한 명분은 없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경우는 그냥 반항할 힘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분리독립 여론이 나와서 간간이 독립투표를 시도하고, 아슬아슬하게 부결되고는 했다.
하지만 나폴레옹 7세는 모친이 네덜란드계에, 네덜란드 전 왕실의 후계자와 결혼하는 등 네덜란드의 지지를 받을 여지가 많았고, 또한 유년기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내는 등 독일인들의 지지를 받을 여지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즉 프랑스 내에서는 증조부, 조부와 부친보다는 지지를 받지 못할지언정 유럽연방이라는 큰 틀에서는 더욱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여러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면서, 나폴레옹 7세의 즉위가 다가오고 있엇다.
“선왕께서는 네가 무사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뻐하셨다. 널 보기 전에는 떠나실 수 없다면서 의지만으로 버티시고 계시더구나.”
나폴레옹 7세의 말에, 실비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그녀의 부친이 조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급히 달려오는 와중에, 한 남자가 황제의 곁에 서 있었다.
“늙었구나.”
“.........”
“늙었구나, 조제프.”
“...... 할아버님.”
“알아보는구나.”
“그 눈빛....... 직접 본 자들 중 누가 잊겠습니까. 모습은 바뀌어도, 눈빛만 보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눈은 영혼의 창이니..... 어떻게 돌아오셨습니까.”
“그 빌어먹을 년이 한 번의 삶으로는 내가 죗값을 다 치른 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거든.”
나는 조제프의, 내 손자의 곁에 서서 나직이 말했다.
“수많은 이들을 죽인 학살자, 공포를 이용한 독재자, 죽음의 황제, 피의 군주, 그게 내 실체다. 위인이 아니라 학살자지.”
“.......... 할아버님은.”
“내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준 것, 정말 고맙다.”
나는 씁쓸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세계 질서가 무너지게 놔둘 수 없다. 네가 닦아준 손에 다시 피를 묻히더라도, 더 많은 피가 흐르게 될 테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네게 결국 헛고생을 시킨 셈이지.”
“누가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내가.”
구원을 스스로 내던지고 무덤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나라는 죄인이.
“네 손녀도 만났다. 참한 아이더구나.”
“큭큭......”
웃던 조제프는, 나폴레옹 6세는 기침을 콜록거렸다.
“아들놈이 8살밖에 안 되었는데 갓난아기와 결혼하라고 약혼시킨 게 평생의 한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툭하면 부부싸움을 하고, 며느리가 두 번이나 유산을 겪는 걸 보고는 더더욱 미안했죠. 신께서 도우셔서 손녀 하나는 건졌지만요. 그래서 그 아이는 조금 자유롭게 살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네게 줄 선물을 구하러 갔다가 테러에 휘말렸다더군, 그 선물도 지금 들고 오고 있을 테니 그 아이가 도착할 때까지는 버텨야지.”
“그럴 겁니다. 그 아이를 제 눈으로 보기 전에는 안심할 수가 없으니까요, 아들놈은 제 앞가림은 잘 할 테니..... 그 아이를 잘 부탁합니다. 할아버님.”
“가봐야겠구나, 다 왔군.”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걸 느낀 나는 그대로 뛰어올라 천장에 붙었다.
“가보겠다.”
“살펴가십시오.”
내가 몸을 숨긴 직후, 병실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