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외전 : 부활(7)
탈출은 늦었다.
실비아는 묵묵히 지상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블라인드를 걷고, 묵묵히 시내를 메운 가스를 본다.
위성 TV에서는 정신없이 보도를 내보내고 있었다.
<로스엔젤레스 조약군 대변인은 초기에 분사된 암모니아 가스 외에도 적어도 4~5곳의 새로운 위치에서 가스가 방출되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3종류에서 5종류의 독성 화학물질이 대량으로 살포되었으니.......>
<암모니아 유출과는 별개로 아직 정체가 파악되지 않은 가스가 있습니다, 노출되면 강력한 환각 증세가 발생하니 이러한 전조를 느꼈다면 즉시 가스 농도가 낮은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하고 인근의 의료진에게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자막 위로 빠르게 인터뷰 화면으로 전환하는 앵커의 모습도 보였다.
“로스엔젤레스 조약 정보사령부는 이 테러의 배후로 마오이스트 테러단체 ‘라자루스 그룹’을 지목했습니다. 현장 연결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사전에 조약기구는 생화학 테러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어떤 종류의 테러가 발생할지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싱가포르에서의 테러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대응하지 않았습니까?”
“인도네시아 정부에 해당 사안을 경고했으나 대응이 없었으며, 이에 오메가 그룹 예하 1개 팀을 바로 어제 싱가포르에 투입했었습니다. 해당 팀에서 현지 시각 어제 22시경에 올라온 보고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현지 치안병력이 라자루스 그룹에 매수되어 작전에 협조를 거부하고 정보를 유출시켰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제서야 왜 정보기관이 이렇게 전 세계 카메라 앞에서 브리핑을 하는지를 그녀는 깨달았다.
이번 사태의 사망자는 최소 수천, 작금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인수분해당하기 전에 이미 정보를 수집하자마자 조속히 대응했지만 싱가포르 현지 치안인력들이 부패하고 무능한 탓에 현지 타격팀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는 식으로 정치질을 할 작정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메가 팀은 라자루스 그룹 수뇌부에 대한 참수 작전을 강행할 것을 알렸습니다. 여러 정황상 이들의 습격에 위협을 받은 라자루스 그룹이 작전을 조기실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현재 판단하고 있습니다. 오메가 팀과의 교신은 완전 두절된 상태이기에.......”
정치질, 프레이밍, 남탓.
당장 로스엔젤레스 조약의 성립 명분을 생각해보면 이번 사태는 그야말로 조약의 존속을 위협할 수준이기에,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가입국이면서도 협조를 안 해 테러를 당한 국가가 있다. 앞으로 이 부분을 명시해둬서 현지 병력보다 조약기구 인사들의 지휘권을 우위에 놓도록 명문화하겠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당장의 문제를 넘길 뿐 아니라 권한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봤자 그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스는 지금 아래층을 가득 메우고, 천천히, 한 층 한 층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가 있는 위치가 워낙 고층인지라 아직 가스는 여기까지 차지 않았지만,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문자 그대로 불이 난 건물의 최상층에 갇힌 꼴, 지금 바깥 상황을 보면 어떻게 건물만 나간다고 해서 딱히 살 가능성도 없었고, 방독면도 없는데 가스가 피부로도 흡수된다고 하니 별 수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기다릴 뿐.
그때, 창문에서 소리가 들렸다.
-똑똑.
“?”
“학생, 길 좀 묻지.”
“?????”
여긴 100층인데?
***
잠깐 호버링 할매 흉내를 낸 나는 발을 딛었다.
‘할배 맞긴 하지, 할배의 할배니까.....’
하필 최상층은 벽을 싹 강화유리로 마감해놔서 발 딛을 곳이 별로 없었지만, 인조 피부를 도마뱀붙이 모양으로 변형시켜 딱 달라붙은 나는 한쪽 주먹을 들었다.
‘아 잠깐, 근데 강화유리는.......’
한 군데 깨지면 팥알마냥 조각나지 않던가?
나는 슬그머니 왼손과 두 다리를 다른 쪽 창문에 붙였다.
그리고 한 방!
충격과 함께 팍삭 소리를 내면서 유리가 깨져나갔다.
팥알마냥 조각난 강화유리 조각들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나는 창문을 넘어 방으로 들어갔다.
“쯧, 여길 나가지 말았어야 했나?”
“누, 누구시죠?”
“옆방 빌렸던 사람...... 겸 아까 전까지 TV에서 떠들던 오메가 팀의 최고지휘관.”
“그런데 어떻게 벽에 붙었.....”
그리고 내 손목이 빙빙 돌아가는 걸 보여주자 알아서 납득한 실비아는 입을 열었다.
“절 구출하러 오신 건가요?”
“뭐 그렇지.”
내 현손이기도 하고, 여기서 테러로 계승 서열 2위가 일을 당해버리면 문자 그대로 좆되거든.
가뜩이나 보나파르트 가문이 손이 귀해졌는데.
“그럼 탈출하지.”
“잠깐만요, 어떻게요? 여기 방독면도 없는데? 당신은 방독면 같은 거 필요없어도 전 아닌데....”
“아.”
난 간단히 위쪽을 가리켰다.
“수송기 불렀다.”
“폭풍 불지 않습니까?”
“일단 가스부터 피하고 봐야지, 그리고 내가 타고 온 물건이라 폭풍을 뚫고 날아올 이유도 없다.”
내가 가스를 뚫고 무슨 액션영화 찍듯이 공사용 크레인들 위를 건너다니면서 뛰어가겠냐. 몸이 기계라서 내가 아무리 탈인간에 가까워도 홀몸도 아닌 상황에선 무리다.
항공기가 없는 것도 아닌데 써먹어야지.
나는 그대로 몸을 날려 옥상의 헬리패드에 착지했다.
“체스터, 내 명령에 따라라.”
-라저.
“로미오 지점에 수송 지원 요망, VIP를 수송하고 있다. 반복한다, 현재 본 팀은 최우선 탈출 대상을 호위하고 있다. 즉시 이곳으로 와주기 바란다.”
-여기는 체스터, ETA 17분.
“17분?”
좀 늦는데.
나는 가스가 확산되는 속도를 보며 중얼거렸다. 위성에서 사용하는 기상 레이더에서도 큰 기상변화는 없으니 비가 쏟아져서 가스를 치워주려면 대충 몇 시간쯤 걸릴 터.
‘태풍의 눈의 지름은 99km, 전진 속도는 현재 시점에서 대략 시속 10km 내외(일반적인 폭풍의 전진 속도는 20~30km/h, 역대 가장 느린 속도는 4km/h, 가장 빠른 속도는 271km/h)고, 태풍의 눈에 진입한 지 8시간이 되었던가? 대략 2시간이면 폭풍의 눈에서 벗어나 바람이 가스를 흩어버리고 물이 가스를 녹여버릴 테니 이 사태도 종결이겠군.’
안 그래도 평균적으로 느려터진 편인 폭풍이 더 느려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폭탄이 터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잔류형 작용제를 쓴 것도 아니고 이 짧은 시간 동안 혼란을 주려 할 리가 없으니 역시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는 건가.’
-삐이이이이이이이이!
순간, 무전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곧장 연결을 끊은 나는 다른 대역 주파수들을 확인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주파수 도약 방식을 사용하는 군용 통신시스템을 교란하려면, 비슷한 수준이나 그 이상의 전자공학 능력을 보유하지 않은 한 대응책은 단 하나뿐이다.
모든 대역의 주파수에 대한 무차별적인 교란.
그 경우 본인들도 무선통신을 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기는 하지만, 저들이 계획적으로 폭동을 일으킬 계획이라면 큰 장애물은 되지 못한다. 어차피 흥분한 군중은 수로 밀어붙일 뿐 쉽사리 통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이미 지휘체계가 붕괴된 상황이라면 미리 계획을 짜두기라도 한 자기들이 더 유리할 거라고 판단할 것일 터.
물론 무선 통신만 마비시켜서는 딱히 재미 보기는 어렵다.
부대 단위로 백이면 백 유선 통신망을 갖췄으니, 거기에 대한 대응책도 생각을 해 뒀겠지.
순식간에 시뮬레이션을 통해 저들의 대응 수단이 윤곽을 드러냈다.
‘대부분의 싱가포르 내 유선 통신망은 싱가포르 중심가의 데이터 허브에 의존하고 있다. 몇몇 예외도 없지만은 않지만 통신이 과부하되면 줄줄이 손상될 터, 데이터 허브가 위치한 건물에 불이라도 지르면 통신망은 통째로 마비되겠군.’
물론 그만큼 철저한 방어가 있겠지만, 저들도 여기까지 상황을 몰고 왔으면 대응 수단은 있다고 봐야 했다.
마침 지척에 있기도 한 데이터 허브를 관찰한 결과, 아직 외관상으로는 허브가 위치한 건물에 큰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곧장 인근에 있던 금속제 케이블 박스를 뜯어내자 안의 케이블이 노출되었다.
호텔 내부 통신망에서 곧장 상급 시스템으로 올라가고, 방화벽 몇 개를 더 뚫어내어서 데이터 허브에 접속한 나는 곧장 여러 케이블 시스템에 접속했다.
CCTV를 비롯한 여러 유선 연결망에 연결된 시스템이 내게 데이터를 보내기 시작했지만, 곧장 문제가 생겼다.
‘다 무선이 끊겼는데 명령을 어떻게 하지.’
어떻게 유선연결망을 활용해 CCTV와 기타 여러 카메라, 각종 감지기 등을 이용해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그 상황을 파악하고 효율적인 대응책을 짜는 것까지는 어떻게 가능하다.
하지만 부하들에게 통신이 안 되면 말짱 헛거 아닌가. 혼자서 뛰어다닐 수도 없고.
현재 현장요원들은 각자 흩어져서 라자루스 그룹과 삼합회 등과 교전하거나, 개인 판단 하에 시민들을 대피시키거나 구호하는 모습이 여러 카메라를 통해 파악되었다.
파악‘만’ 되었다.
저놈들이 어떻게 케이블 네트워크에 연결해주지 않는 이상 내가 어떻게 저들에게 정보를 줄 방법이 없다. 명령도 물론 내릴 수 없다.
‘삐라를 뿌릴 수도 없...... 음?’
나는 곧장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물론 여러 상황이 비슷하게 맞아떨어져야 하지만, 일단 해볼 만 하지 않을까.
***
“아크엔젤, 그쪽에 적 보병 9명이다!”
아크엔젤이라고 불린 사이보그는 미니건을 완전자동으로 퍼부었다.
온몸을 방탄소재로 도배하고 데스 머신을 장착한 중장갑형 사이보그는 장갑차량을 보유하지 않은 상대에게는 그야말로 사신이나 다름없었다.
암습이나 기타 잠입, 대민 작전 등을 위해 인간과 전혀 구분이 안 되는 사이보그도 있지만 인간과 괴리감이 큰, 팔다리랑 머리가 달린 인간형만 유지한 휴머노이드형 사이보그들도 여럿 있었고, 이들은 화력팀으로 구성되어 그야말로 상대를 화력으로 찍어눌러야 할 때 투입된다.
그리고 그런 사이보그 2기가 사방팔방으로 탄환을 난사했다.
이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자신들을 잡아죽이려고 달려드는 상황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둘 중 하나가 이상을 발견했다.
“아크엔젤, 전광판이다.”
“응?”
“전광판에.......”
전광판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오메가 액츄얼에서 전 통사에게, 재머를 이용한 전파 교란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 통사는 즉시 인근 유선망에 연결한 뒤 새로운 지시를 받을 준비를 하라.>
본래 광고용이나 긴급 뉴스 방송용 등으로 사용하는 거대 전광판에 나타났다 사라진 문장들을 본 사이보그들은 인근 유선망을 찾기 시작했다.
오메가 팀 전원이 데이터 허브를 보호하기 위해 재배치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