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외전 : 부활(6)
오한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종소리가 울린 직후, 문이 부서졌다.
-탕! 탕탕!
소총 총성이 울렸다.
순식간에 두 자루의 권총이 소총을 들고 뛰어들어오는 적들의 머리에 한 방씩을 박아주었다.
“적 사살!”
“놈들의 흔적은 없습니다!”
“여기 있어야만 해!”
“확실한 정보다. 계속 움직여.”
이번에는 떨리는 휘파람 소리였다.
“죽여!”
‘휘파람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건가.’
벽 너머에서 달려드는 폭도들은 제대로 된 총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식칼 등의 냉병기만 들고 있었지만, 그게 죽이지 않을 이유는 되지 못했따.
“다음 생에는 착하게 살아라.”
그렇게 말한 사이보그 병사는 기관단총을 퍼부었다.
***
“동지, 피하셔야 합니다.”
“베일 너머의 이야기는 끝낼 때가 되었다.”
“동지?”
“사전에 준비하는 모든 일은 틀어지고, 직감 역시 틀어진다.”
작은 노래 하나 허락하지 않는 압제에 맞서 무기를 들었고, 바퀴에 연결된 기어처럼 무의미한 움직임만을 반복하는 삶을 끝내고자 했다.
하지만, 저들은 말한다.
그들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노라고.
중화사상도, 한족도, 사라져야만 한다고.
‘너희들을 죽이는 게 아니다. 너희들을 쫒아내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땅이 더 이상 너희들을 환영하지 않을 뿐이다.’
모든 생활 기반은 야금야금 빼앗긴다.
대규모 폭풍과 자연재해로 인해 농촌 사회는 붕괴되었다.
도시의 기반이 무너진다.
그 누구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미국, 유럽, 한국, 인도, 중동 등등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우리와 함께 살 권리가 없다.’
남미 등의 지옥이 펼쳐진 곳에서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도대체 누가 그런 곳으로 제발로 떠나겠는가.
결국 수많은 이들은 배삯을 구하는 대로 아프리카로 표표히 떠나갔다.
다행스럽게도 개간되어 초원이 된 사막은 그들이 살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처음 얼마간 이민을 받았던 아프리카 국가들은 슬슬 모양새가 이상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중국인 이민이 너무나도 쏟아져들어오자, 그들도 다른 나라들이 하는 식으로 자국민 남성과 결혼한 중국인 여성 본인‘만’ 국내 거주 허용을 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순식간에 경로가 고정되고, 중국-아프리카 밀항선들이 생겨났다.
이미 오래전부터 국경에 드론들까지 배치해 가면서 철저하게 경계하는 한국이나 유럽연방, 필리핀, 인도네시아, 히말라야 산맥과 밀림이라는 장애물이 기다리는 인도차이나와 인도보다는 그런 경계망을 깔아놓을 돈도 없고 부패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훨씬 잘 뚫렸다.
유럽이나 미국은 당연히 경계가 더 심하고 비잔티움과 페르시아, 남미는 끝이 보이지를 않는 전쟁 중이기에 쉽게 선택하기 어려웠다.
그는 생각했다. 왜 그들이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오로지 그 빌어먹을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그것 외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같은 민족의 여성들은 외국 남성과 결혼해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남자들은 어떻게든 밀항선에 올라탔다.
이 불합리하고 저주받을 체제는 무너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식량은 언제나 부족했고, 교육도, 의료시설도, 그 무엇도 부족하기 그지없었다.
이건 잘못되었다.
이건 명백히 잘못되었다.
그러니 바꿔야 한다.
말로? 웃기는 소리, 국제사회는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이상적인 환경에서야 이런 행위를 절차를 밟아 항의하고, 상대가 중단하고, 평화가 되돌아오겠지만, 현실에서 그럴 리가 있는가.
그들은 통상적인 저항의 수단을 빼앗겼기에, 테러는 정당화될 수 있었다.
압제자와 그 동조자들을 암살하고, 주요 시설에 폭탄을 터트렸다.
무관계한 대상을 공격하지 않고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관계한 대상을 공격하는 건 그들이 볼 때 정당했다.
그러나, 저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테러는 어떤 경우에도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이니, 민간인들을 너희들이 몇천 몇 만을 죽이든 너희는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없으리라고 선언했다.
그들은 더 이상 협상의 주체조차 아니었다.
그저 범죄자일 뿐.
그렇다면 그들도 전략적, 전술적 목표를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테러의 근본적인 이유는 정치적 목적이었다.
상대가 협상장에 나오게 하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자신들의 상태를 알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규모가 대의를 훼손하지 않도록 할 정도의 조절이 필요했다.
정치인이나 군인 등의 지정된 목표들만 노리거나, 민간인 피해를 줄이거나.
그러나 이제 그 입마저, 마지막 항의의 목소리마저 틀어막힌다면, 이제는 그들에게 남은 일은 복수뿐이었다.
“설치는 완료됐나?”
“예, 하지만 지금 터트리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 할 겁니다.”
그들이 준비한 가스는 암모니아였다.
암모니아 통을 폭파해 유독 가스를 만든다.
염소 가스나 그보다 성능이 더 좋은 독가스를 구할 수 없었던 이들의 한계였다.
그러나 암모니아는 물에 잘 녹는다, 이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화장실에 물을 뿌리는 것만으로도 냄새의 상당 부분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증명된다.
즉 이 비바람이 부는 가운데에서 폭탄을 터트려봐야 큰 효과는 없을 터.
목숨을 걸었으니, 그만한 효과는 봐야 한다.
“동지들, 탈출하게.”
“지도자 동지?”
“내가 놈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하겠네.”
***
운명은 암호와 같아 쉽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의 뜻밖의 상황에서 운명과 마주할 줄은 몰랐다.
“손, 들어.”
적이 분산해서 도주를 꾀한다는 말을 듣고 호텔에서 뛰어나온 게 조금 전이었는데.
월척을 잡아버렸다.
“..... 모르핀이 나쁜 점이 뭔지 아나?”
흔들의자에 걸터앉은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닥치고 손 들어.”
노인은 의자를 돌렸다.
“휴면 상태의 고통에서조차 자유로워지지, 적어도 약효가 도는 순간에는 모든 고통을 잊게 되는데, 그 백래시로 인해 약효가 끝난 뒤에는 땅을 딛고 설 때 발바닥이 짓눌리는 감각마저도 고통스럽네. 물론 그 모르핀마저도 내게 집착하듯 찾아오는 악몽만은 끊어내주지 못하지만.”
칠이 덜 된 벽은 마치 벽에 튄 피가 썩어버린 듯한 모습을 연상시켰다.
“신은 존재하는가, 이 세상은 또 무엇인가. 의식이 침잠한 뒤, 나는 보았다.”
“무엇을, 너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이 나를 나라고 규정하는가. 나는 너로써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충성한다. 그리고 헌신한다. 복종한다. 민족의 부름에. 민족은 곧 나를 나이게 하는 너이니. 그렇기에 나는 싸운다, 나를 지워버리려 하는 너희에 맞서서.”
“그래서, 네놈은 복종했다는 거냐?”
바람이 불어닥쳤다.
“너는 복종하지 않는가.”
내가 그토록 증오했던 한 인간은 초라한 노인이었다.
“내가 복종하는 것은 나의 도덕뿐이다.”
나의 죄로부터 비롯된, 나에 의해 규정지어지고, 나에 의해 심판받는 도덕.
“책임을 전가하는가? 하지만 결국 너의 삶은 네가 선택하는 것이고, 그 책임 역시 오롯이 네가 지는 것, 그저 민족의 개가 되겠다고 스스로 선택한 놈이 무슨 망언을 하는 것이냐, 지배받는 걸 선택한 건 너 자신이다. 그 책임은 너희 민족이 아닌, 오로지 너 스스로에게 있을 터. 네 혈관에 흐르는 너희 민족의 피를 거부할 수 없었다는 망발인가? 하지만 어떤 인간도 자신의 혈통보다, 민족보다, 종교보다 낮지 않다! 그 존엄을 포기한 너는 그저 개다.”
비가 내린다.
“개가 되기를 선택했다면, 개답게 뒈져라.”
미워하는 것보다 용서하는 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겁쟁이였다.
증오할지언정 용서하지 못하는 겁쟁이.
-타앙!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노인의 몸을 꿰뚫었다.
한때 습근평, 혹은 시진핑이라 불렸던 시체가 바닥을 굴렀다.
전생과 현생을 거친 수억에 달하는 이들의 죽음, 학살, 전쟁, 광기, 권력을 지키기 위한, 권력을 얻기 위한, 민족이라는 허상에 홀린 자들의 폭주와 광기는 그 대가를 치렀다.
그들의 수괴가, 그 스스로 14억 중화인민의 어버이라 자칭하던 자가 어둠 속에서 비참하게, 개처럼 죽으면서.
황혼을 안타까워하던 이는 가장 일찍 피어나는 꽃과 같이 다시 피어났고,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운명이 변했다.
그때, 나는 비가 그쳤다는 걸 깨달았다.
날짜도 바뀌어 있었다.
가벼운 바람만이, 주위를 감돌고 있었다.
모든 죄악을 물로 정화해버리겠다는 듯이 불어대던 폭풍의 눈에서.
그리고, 연속적인 폭발이 불꽃놀이처럼 어둠을 밝혔다.
***
곳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낮은 농도의 암모니아는 위협이 되지 않지만, 고농도의 암모니아 가스는 피부와 점마게 닿으면 수산화암모늄이 되어 세포막을 녹여버린다.
체액 안으로 들어올 경우 체액을 염기성으로 만들어 효소 활동을 저해해 몸의 대사를 망가트리고, 결국 에너지 생산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죽게 만든다.
중국과 인도는 21세기에 암모니아를 사형집행에도 사용했을 정도였다.
“크헉!”
암모니아를 흡입하는 바람에 폐가 타는 느낌을 받으며 한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의 코와 눈의 점막은 심각하게 손상되어 피눈물과 코피를 쏟아냈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문을 열어 달라며 한 가게의 문을 미친 듯이 두들기다가 죽어갔다.
그러나 문을 잠그고 버티던 가게 안의 사람들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문 틈으로 가스가 새어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고압축된 암모니아가 막대한 규모로 방출된 탓에 수 제곱킬로미터 단위의 지역이 뒤덮였고, 거기에 싱가포르의 인구밀도를 감안하면 못해도 수천 명이 이미 사형선고를 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가스를 뚫고 나는 달렸다.
어차피 몸에 노출될 점막이나 피부도, 오염될 피도 없다.
뇌를 포함해 몇 안 남은 생체부위 가운데 육체를 사실적으로 덮은 방탄 소재 인조피부와 막대한 힘을 내고 탄소섬유를 이용한 인조근육 등등의 집중적인 차폐를 받지 않는 부위는 없었고, 결과적으로 독가스 살포 지역이나 생물무기, 혹은 방사선 위험 지역도 너무 오래 노출되지 않고, 나중에 제독 작업을 받는다면 충분히 아무 신체적 이상 없이 통과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유기물을 손상 없이 소화 가능한 인공 위도, 방탄 플라스틱으로 덮이고 가시광선 외의 파장의 빛을 볼 수 있는 카메라로 구성된 눈도, 생명유지장치에 대한 EMP 차폐를 위한 패러데이 케이지 역할을 하는 두개골도, 그 외의 어떤 기능도 이 독성 구름 안에서 이상을 일으키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라는 직감이 계속 들었다.
‘마비.’
독가스는 비가 다시 내리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붕괴된 치안, 마비된 행정.
그리고 수적으로 다수를 차지한, 별개의 민족적 구성을 가지고 있는 빈민들.
모든 정황이 한 가지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폭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