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93화 (193/200)

193화 외전 : 부활(5)

호텔에 단 두 개 있는 최상층 스위트룸 중 하나를 빌린 요원들은 간단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안구에 직접 투사되는 홀로그램 영사기가 빠르게 모든 자료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보았을 때 논리적으로 가능한 병기는 단 하나, 화학병기입니다. 이들이 대량의 화학무기를 백화점 가운데 하나에 은닉해놓은 게 아닌가 추정하는 중입니다.”

“예상되는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싱가포르에는 600만 명이 산다, 그리고 도난당한 화학무기의 양과에 여러 기후 조건들을 생각하면 약 20만 명 정도의 사망자를 낼 수 있어. 다시 말하지만 사망자다, 부상자는 그 세 배는 되겠지.”

“그리고, 얼마 전 싱가포르의 리츠 칼튼 호텔에서 있었던 대규모 경매 때문에 정계와 재계의 고위직들이 아직 싱가포르에 많이 머물고 있다. 슈퍼태풍의 영향권에서 싱가포르가 벗어나 민항기나 선박의 이륙 혹은 출항 허가가 나려면 내일모레는 되어야 하니, 이들 중 폭풍이 오기 전에 벗어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전원이 위협에 노출된 셈이다.”

“예측대로 시가지 중심부에서 폭발하면 제법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겁니다.”

“예상되는 시간도 있다. 내일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에 폭풍이 잠시 잦아드는 시점이 있다. 폭풍의 눈이 싱가포르를 통과하는 시점이다.”

“구름벽이 둘러싸고 있으니 항공기의 이착륙 및 선박의 입출항은 불가능하겠지만, 바람은 전혀 불지 않을 겁니다. 북풍이 예보되어 있지만, 시 외곽에 있는 대부분의 빈민가는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낮습니다. 폭풍이 다시 들이닥치면 빠르게 비와 바람으로 인해 흩어질 테니까요.”

“도심만 쓸어버리고 빠지는 거지. 물론 화교 희생자가 발생한다고 해도 놈들은 개의치 않겠지만.”

“전 세계 각국의 정재계 인사들 여럿을 몰살시키면 지난 런던 G20 공습사건, 평양 핵안보회의 폭탄 테러 미수 사건, 로마 탄저균 테러 미수 사건에 이은 초대형 테러로 기록될 겁니다.”

“쯧, 이쯤 되면 지난 경매 자체도 놈들이 일정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생각될 수준이군.”

“이번 경매 주관은 크리스티 사에서 진행했습니다. 테러범들과 결탁한 게 알려지면 회사가 그대로 박살날 텐데 그 정도 회사가 모험을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모든 범죄의 원인은 이익, 원한, 신념의 세 가지 중 하나로 압축되지.”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무기를 점검했다.

“현재 싱가포르 시내에 머물고 있는 인사 중에 우리가 주지할 수준의 인사가 있나?”

“뭐 여러 기업의 회장이나 이사급 등은 꽤 많고....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상대는 유럽연방의 필리프 황태자의 외동딸이자 계승 서열 2위인......”

“실비아 대공녀.”

“예, 그리고 바로 옆방에 있습니다.”

“........?”

“이 호텔의 다른 스위트룸에 머물고 있습니다.”

“유사시에는 그녀라도 탈출시켜야 한다.”

“지금 말을 전해놓을까요?”

“아니, 어차피 지금 상황이 상황이라서 기자들이 잔뜩 있을 텐데 괜히 불안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다, 정 위험해지면 헬리패드까지 끌고 가기만 하면 되니까 상관없어, 해명은 나중에 하지.”

그나저나 실비아 대공녀라. ‘내’ 증..... 아니, 현손이구나. 손자의 손녀니까.

내가 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다 이러면 미친놈 취급받을 거라는 망상에까지 생각이 미쳤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유사시에는 일단 비행기까지만 태워서 자카르타나 인근 함대까지만 보내면 되니 일단은 경호에 신경쓰되, 놈들 추적을 최우선으로 해.”

“백화점이라는 키워드로 찾았습니다만.... 후보 지역이 좀 많습니다. 게다가 건물들의 수색도 어렵고요.”

“시내 중심가 중심으로, 아무리 가스가 액화되어 있다고 해도 그 양 자체는 상당히 많을 거다. 불가능한 것을 전부 지우면 남는 곳은 상대적으로 적겠지.”

“알겠습니다.”

“화교들은 어떻게 합니까? 폭동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싱가포르 내 치안병력을 신뢰할 수 없어, LAA SAD(Los Angeles Accord Special Activities Division : 로스엔젤레스 협정 특수활동부) 예하 SOG(Special Operation Group) 요원들을 제외하고는 신뢰할 수 있는 병력 자원은 없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럼.......”

“부대를 둘로 나눈다, 한 팀은 가스가 숨겨진 곳을 찾고, 나머지는 놈들을 참수하기 위해 외부 빈민가를 뒤진다. 백화점으로는 내가 지휘.....”

“부장님, 안 가시는 게 좋습니다.”

“무슨 말이지?”

“부장님의 의족에서 피로파괴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즉시 교체해야 합니다. 격렬한 움직임을 하기에는 무리입니다.”

“얼마나 가는데.”

“작전 중 현장에서의 응급조치로는 복구 및 기능 발휘가 불가능한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50%는 됩니다.”

“.........”

20%만 됐어도 나갔겠지만, 50% 확률로 절름발이가 된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작전이 끝난 후에 손상된다면 교체하면 그만이지만, 작전 중에 다리가 부러진다면 부하들에게 괜한 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몸을 자주 쓰는 편인 나로써는 더더욱.

“좋아, 난 여기서 대원 둘과 함께 예비대로 대기하면서 모니터링하겠다, 드론의 운용과 통신, 새로 생긴 정황에 대한 상황공유 등은 내가 담당하겠다, 남을 녀석 중 하나는 기술병과로 해둬, 예비 부품이 좀 있을 테니 그걸로 손 좀 보라고.”

“알겠습니다.”

주요 작동 부품은 여벌을 한 세트 가지고 왔다, 그리고 여분 동력장치 하나에 나노로봇 재충전 장비도 여러 개 가지고 왔다.

그런 걸 가지고 오지 않았더라도 상당히 오랜 시간 단독활동이 가능하지만, 언제든 유비무환이라는 생각으로 가지고 다녔고, 효과를 지금 발휘하고 있었다.

“부품 교체든 수리든 필요한 건 즉시 수행하라. 우린 지금 사이보그 하나를 놀려 둘 여유가 없어.”

“알겠습니다.”

나는 윙윙거리는 내 의수와 의족을 보았다.

기계로 갈아치울 곳도 몇 군데 안 남은 몸이지만, 뭐, 전생의 몸을 그대로 가지고 실패자가 되는 것보다는 뇌와 세포조직 약간을 제외하고는 전부 기계가 되더라도 전생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

결국 이를 통해서 나 자신도, 그리고 국가도 불구가 되지 않으니까.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

싱가포르 외곽에는 불법 증축된 다수의 건축물이 있다.

성채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한 이 불법 건축물들은 싱가포르의 빈민들의 발버둥이었다.

슈퍼스톰에 툭하면 쓸려나가다 보니 빈민들은 살기 위해서 빈민가, 슬럼으로 대충 방치해놓은 싱가포르 주 경찰들이 타협삼아 있는 듯 없는 듯 굴던 우범지대이자 낙후된 공터 지역에 집을 지었다.

거기에 더해 경제위기 속에서 버려진 건물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판자촌, 버려진 고층건물들, 불법 증축한 건물들까지.

그러나 돈이 없어서 하수구 물로 콘크리트를 반죽하고 비율을 제대로 맞추지 않고 제대로 된 기술도 없이 어거지로 만들다 보니 짓다가 무너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고, 결국 닭장과도 같은 빽빽한 아파트와 미로와도 같은 길, 제대로 된 마감이 되지 않아 배관과 전선들이 얼기설기 늘어졌으며 해도 들지 않는 음산하고 어두운 환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건물은 지을 수밖에 없었는데, 인구밀도도 인구밀도였거니와 홍수가 한 번 나면 저층에 사는 이들은 보통 죽어나가기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빈민가 대책은 마련하지 못했고, 슬럼가의 확장을 막고 부촌과 슬럼을 확실하게 경계를 그어 구분하고 넘어오지 못하게 저지하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아무튼, 그런 만큼 누군가가 숨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다.

그 자리에 요원들이 강습했다.

-타타타타타타타!

7.92mm 탄이 사방으로 날아가 무장하고 있던 이들을 쓰러트렸다.

“꺄아아아악!”

곳곳에서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주민들과 문을 걸어잠그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요원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총 들고 있거나 적대행위하는 놈들은 다 쏴버려! 놈들은 분명히 이 근처 어디에 있다!”

“예!”

선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선을 넘어서 싸운다.

그것이 바로 우리였다.

“가스! 가스입니다!”

“뭐?”

“신경가스 경보! 팀 2에서 저놈들이 화학 수류탄, 화학 수류탄 사용한답니다!”

“미친 새끼들.”

“어쩝니까?”

“해당 거점을 우회한다! 화생방 방호복을 갖춘 요원들은 강행돌파하고, 나머지 조는 우회로를 찾아!”

“여기는 에코 커맨더. 전 에코 통사 응답하라.”

“여기는 에코 3-1, 통신상태 양호. 말씀하십시오.”

“목표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는 새로운 경로 확인, HUD에 경로를 표시하겠다. 주의하라, 공간이 상당히 협소한 관계로 화력형 사이보그들은 통과하는 데 있어 난조를 보일 것으로 추측된다. 경량형 사이보그와 기본형만 투입하라.”

팀이 보유한 사이보그들은 기본형 외에 3가지 바리에이션이 있다. 경량형은 장갑이 얇고 고속기동을 돕는 여러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화력형은 기관포나 대전차미사일을 포함한 이런저런 중화기들을 필요에 따라 장비하고 장갑판을 증설해 키가 기본이 2m에 몸무게는 수백 킬로그램에 육박할 정도로 육중하다. 저격형은 기본형과 큰 차이는 없지만 각종 전자장비와 고성능 사격통제장치를 탑재해 저격소총의 높은 명중률을 자랑한다.

“지시 입감하였음, 지시대로 부대 분리.”

어차피 나눠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출력과 무게 제한이 넉넉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여러 장비를 상시 휴대하고 다니는 편인 화력형 사이보그 외에는 NBC 방호장비를 장착하고 있는 인원이 없었던 것이다.

NBC 대응장비는 대부분의 사이보그에게 기본장비가 아니다.

‘나처럼 처음부터 내장된 예외도 있지만.’

사실 사이보그 자체가 대량생산하는 물건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몇 퍼센트 정도, 어느 부위를 갈아끼우는지에 따라 기계화 수준이 결정된다. 아예 컴퓨터와 유기적 인터페이스로 연결된 뇌만 남기고 싹 갈아치우는 경우부터 의수나 의족 하나씩 단 경우까지.

방금 통신한 에코 3-1의 경우는 블랙 옵스 작전 도중 상황이 심각하게 꼬이는 바람에 탈출을 포기하고 폭발에 휘말렸으며, 당시 입은 부상의 처치와 후송 작업이 늦어지는 바람에 썩어들어가던 양팔과 양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두 눈도 파편에 맞고 그 상처가 감염되는 바람에 실명했다.

그러나 절단 대수술 이후로 인간의 팔다리보다 훨씬 강력한 성능을 가진 기계 의수와 의족을 지급받고, 인조 안구와 신경 인터페이스를 이식받아 사이보그 요원이 되었다.

사실 그런 거 다 이식받을 것도 없이 팔에 의수 하나 달아도 사이보그의 사전적 의미는 충족하고.

일단, 뇌만 갈아치우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써의 정의는 충족한다.

그렇다면 뇌와 컴퓨터가 연동된다면 어떨까.

유리병 안에 들어 있는 뇌수 한 방울이 되어도, 전자 회로만이 마침내 남게 되어도, 그게 과연 나 그대로의 나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