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외전 : 부활(4)
내가 저딴 문화가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꼬장꼬장한 외국인 원칙주의자 흉내는 냈지만, 내가 화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꽌시라는 게 뭔지, 저들이 어떤 행동원리에서 저런 움직임이 나오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물론 딱히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저런 꽌시는 과거에는 좋은 방식이었을지 모르되 지금은 연고주의로 발전하여 부패를 가속화할 뿐이다.
하지만 내가 진짜 혐오하는 건, 조국도 망한 지 오래인 중국인들이 동화되기는커녕 아직도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그 삶의 방식으로 인해 세계대전이 발발했는데도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싱가포르의 치안당국을 적대시하는 것도 감수했다.
어차피 더 상위 기관이 우리편이니까.
싱가포르 치안당국은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내 보고서에 꼭지가 돌 로스엔젤레스 조약기구와 인도네시아 감찰국이 자기들을 부패사범 혐의로 조지지나 않을까 고민해야 할 판이다.
뭐, 백번 양보해서 인도네시아 감찰국이 현지의 특수성이 어쩌고 하며 눈감아준다고 해도 로스엔젤레스 조약기구는 절대 그딴 식으로 유들유들하게 넘어가지 못한다.
당장 테러와 연관된 사안이니까.
로스엔젤레스 조약기구의 창설 원인이 뭐였는지 한 번만 생각해도 치안당국의 부패와 무능으로 테러를 저지하는 게 불가능했다는 소리가 나온 순간 인도네시아 정부에게 내리갈굼을 시전할 게 뻔하다.
나는 수신호를 보냈다.
‘3, 2, 1.’
보통 지휘를 후방에서 해야 할 짬밥이지만, 싱가포르 치안 당국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우리끼리만 움직이는 게 나았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자동화기 사격이 귓전을 울렸다.
-회피!
나는 급히 명령을 내렸고, 나무로 된 문짝은 순식간에 걸레짝이 되어 누웠다.
-방 내부에 안드로이드형 전투로봇 ‘리퍼’ 2기 확인!
“젠장.”
나는 중얼거리고는 곧장 시스템을 조작했다.
-슬레이브 서킷 시스템 접속, 해킹 툴 가동.
해킹 자체는 직접 할 필요 없다. 간단한 AI만으로도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다.
이곳에 있는 요원들 상당수는 사이보그였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보유해 아무런 추가 장비 없이도 해킹을 시도하는 능력을 보유한 이들, 물론 기본적인 읽기 전용으로 설정되어 그 자신도 건드릴 수 없는 핵심 권한 상의 문제로 그 반대는 절대 불가능하지만, 위험한 기술이기는 했다.
이들 중 몇몇은 문자 그대로 뇌와 몇몇 체내의 생체조직 외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죄다 기계로 대체되어 있는 이들도 있었다.
덕분에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 오고 얼마간은 기술 발달이 적응이 안 되었다.
내가 기술발전을 한 30년씩 앞당기기는 했지만 이건 영락없이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근미래 배경 창작물 같잖은가.
뭐, 몸에 한 군데씩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몸을 기계로 갈아치우는 게 훨씬 낫다는 건 모두가 동의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서버가 뚫리자, 안쪽에서 총성이 들렸다.
“리퍼는 이제 내 명령을 따른다. 진입해!”
순간, 리퍼 한 기가 터져나갔다.
“아 젠장, 또 뭐야!”
-대구경 화기 사격! 사격 위치는 건물 바깥입니다!
-이 날씨에 쏘긴 뭘 쏴? 인간은 아니지?
-호크아이 타입입니다!
‘망할, 걸려도 제일 골치아픈 게 걸려서는.’
나는 빠르게 미끄러져서 안드로이드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쳤다.
해골을 연상시키는 골격과 방탄판을 둘둘 두르고, 모서리가 둥근 사각기둥 형태의 머리에 단안 형태의 카메라가 박혀 있는 전고 3m짜리 암녹색 이족보행 로봇은 충분히 내 방패가 되어주었다.
그 직후 다리가 박살났지만.
‘이 정도 바람이면 불나방들을 사출해봐야 쓸려나가겠고, 저놈은 나름 자율형이라 해킹이 제법 걸릴 텐데.’
“부장님, 불나방들을 터트리시죠!”
“이 날씨에?”
“불나방들이 자폭만 합니까? 호크아이 타입은 적외선.......”
“언제 적 얘기 하는데? 요즘 다 업그레이드돼서 EOTS나 소형 레이더는 다 달고 나오거든?”
불나방은 사이보그들의 무장으로, 자폭 기능이 내장되어 있는 초소형 드론들이다.
필요에 따라 섬광탄처럼 쓸 수도 있고, 공간을 폭발시키는 열압력탄처럼 쓸 수도 있다.
“망할, 바람만 좀 약했으면 날려버렸을 텐데!”
하지만, 곤충과 비슷하게 강풍이 부는 공간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타겟 거리 측정 완료! 470m!”
“사격!”
유탄이 날아가더니, 공중에서 폭발했다.
“타겟 명중!”
“아냐!”
어느 정도 파편에 내성을 가진 드론이 머리 위에서 유탄 한 방 터져서 파편을 뒤집어썼다고 무력화되었으리라 가정하는 건 너무 형편 좋은 판단이다.
인간이라면야 죽었겠지만, 상대는 피와 살이 아닌, 강철과 유압으로 이루어진 감정 없고 생명 없는 존재다.
“젠장, 놈이 도망칩니다!”
“사격유도해!”
20mm 탄 한 발이 벽을 뚫어버린 직후, 나는 상대가 재조준하기 전에 그대로 창문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조준하는 데 평균 0.7초, 명중률 95%에 달하는 호크아이 타입의 최악의 단점은......
-파앙!
연사력이 느릴 뿐 아니라 사격 범위가 제한된다는 거다.
초음속으로 날아드는 탄환의 소닉붐이 청각 모듈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나는 빠르게 벽을 타면서 아슬아슬하게 호크아이의 사격범위에서 벗어났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한 손으로 불펍식 돌격소총을 내 쪽으로 난사하는 걸 본 나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젠장, 저놈도 팔 한 쪽은 의수인데?”
-해킹하실 수 있겠습니까?
“넌 구식 전자시계 해킹한다는 소리 들어봤냐? 의수는 네트워크 연결점이 없이 신경을 통해서만 연결되거든?”
물론 신경이 죽어버렸거나 한 사람들은 뇌에 임플란트를 심어 뇌신호를 읽어들인 임플란트에서 내보내는 암호화 신호를 따라 동작하는 의수나 의족을 달기도 한다.
그러나 범용적인 종류는 아니고,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젠장, 저 새끼 존나 빠르네!”
“저거 다리도 의족 같습니다! 유의하십시오!”
나는 가타부타 답하지 않고 손톱을 점검했다.
강화손톱은 어지간한 칼날보다도 날카로운 클로를 의수 사용자에게 제공해준다.
일반인은 절대 시술해주지 않지만, 간혹 마지막 보험, 혹은 자결용이라는 느낌으로 치아에 신경독을 분출하는 독니를 박아놓는 요원들도 있는 판에-당연히 포로로 잡히는 등의 상황에서나 풀어두고, 평시에는 안전장치를 걸어둔다-의수 내에 칼날 숨겨놓는 건 반쯤은 제식장비다.
어차피 의안에 사격통제장치라도 연동해놓지 않은 이상 이 속도로 양쪽 다 뛰어다니면서 탄을 뿌려대는 상황에서 맞을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낮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쏜다고 해도 상대가 몸을 틀면 재수없으면 치명적인 곳에 맞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뛰어가서, 잡는다.
순식간에 가건물들의 지붕 위로 뛰어올라 슬레이트로 된 지붕을 밟고 뛰는 남자를 추격한 나는 벽을 타고 뛰어올랐다.
“젠장, 오지게 빠르네.”
그렇게 내뱉은 나는 빠르게 지붕 위로 발을 딛었다.
차라리 다리에 달린 추진기와 완충장치를 믿고 지붕과 지붕 사이를 뛰어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손상이 좀 가도 수리 맡기면 되겠지!
그런 작정으로 달린 나는 폭풍을 뚫고 달린 끝에 몸을 날렸다.
그대로 상대의 뒷덜미를 낚아채면서 4층 높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나는 곧장 바닥에 추락한 남자를 돌려눕혔다.
“박희래!”
나는 남자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
“폭탄은 어디 있지? 그리고 네놈들 두목은 어디 있나!”
“.....크흐.”
낄낄대고 웃은 노인은 입에 고인 피를 내게 뱉었다.
그제서야 나는 노인의 내장이 파열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젠장......”
너무 늦었다.
“네놈들은 결코 중화민족을 압제하지 못한다.”
“........”
늙은이는 낄낄대며 말했다. 이미 다발성 장기부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중화는 영원하다. 영원해야만 한다. 네놈들의 꿍꿍이는, 중화를 말살하고자 하는 뜻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거다.”
“닥치고 폭탄의 위치를 말해, 네놈들은 네놈들의 동포들도 다 죽여버릴 작정이더냐!”
“인민은 언제든 다시 자라나는 법. 너희 족속들 1억을 죽이고, 중화민족이 5억이 죽더라도.... 그것은 감당할 만한 손실이지, 하지만 너희에게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투쟁하는 한, 중화민족은 사라지지 않아, 내일, 모든 게 바뀐다.”
“이 개새끼들이....”
“중화가 사라지는 날은, 인류의 마지막 날이어야만 한다.”
나는 그의 면상에 침을 뱉었다.
“네놈들은 성공하지 못해. 그거 아냐? 나는 네놈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왔다.”
내가 움켜쥔 그의 가슴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놈들은 살인자고, 압제자고, 독재자고, 전쟁광이고, 전범이다. 네놈들은 권력을 위해 뭐든 하는 놈들이지, 네놈들 때문에 우리 민족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전부, 네놈들, 때문에.”
나는 죽어가는 노인에게 말을 이었다.
“내가 평생토록 후회했던 일은, 내 손으로 너희 족속들을 찢어죽이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네놈들이 천수를 누리고 뒈졌다는 거였다.”
“..........”
“네놈은 시작일 뿐이다, 네놈 족속들을 하나하나 네가 마땅히 갈 곳 곁으로, 지옥의 가장 깊은 무저갱으로 보내주마.”
우드득 하는 소리가 들리고, 노인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들의 후안무치함에 분노한 나머지 손에 힘조절을 하지 못했다.
목뼈를 분질러버린 손을 놓은 나는 무전을 보냈다.
“놈이 뒈졌다. 마지막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
-알겠습니다.
“놈들 핵심 간부들이 이곳에 있는 건 확실해, 마오주의자의 수뇌부가 이곳에 왔다.”
수뇌부가 직접 움직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 놈들의 팔다리가 계속 토막났으니까.
계속된 섬멸전으로 적들의 고급 인력들은 이제 몇몇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총알받이나 자폭테러용으로 써먹을 얼간이들이야 많이 있을 거다.
다만, 그들을 이용해서 이번 테러를 노리기는 어려울 터.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한 테러는 신중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시작하기도 전에 끝날 테니까.’
그러니 이 노인도 늙은 몸을 이끌고 여기 나왔을 거다.
물론 늙은 것 치고는 몸 상당부분을 기계로 대체한 탓에 뛰어다니는 것만 보면 운동이 취미인 20대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고, 얼굴도 잘 쳐줘야 50대였지만 엄연히 일흔이 넘은 자였다.
오늘 운이 다했다지만 수십 년간 로스엔젤레스 조약기구 전체가 자기들을 잡아죽이려고 쫓아다니는 걸 따돌려온 자였다.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전 세계가 저자를 잡아죽이려고 하는데도 저들이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건 한족 수억이 그들을 숨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진짜 거물은 낚아올리지 못했다.
‘습근평.’
마오주의 테러단체의 수장이자, 남미의 테러범과 연계한 국제 테러리스트.
이 세계의 아부 바르크 알 바그다디 같은 놈.
놈은 싱가포르에 있다.
그놈을 찾아야 한다.
찾아서, 죽여버릴 것이다.
전생에 하지 못한 일을 끝낼 것이다.
내 손으로.
‘지옥을 갈 땐 가더라도, 그 새끼들만큼은 반드시 길동무로 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