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90화 (190/200)

190화 외전 : 부활(2)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주.

바람이 불고 있었다.

몰아치는 폭풍은 해안에 정박되어 있는 컨테이너선들까지도 뒤흔들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비싼 건물은 보통 침수를 막기 위해 고지대에 지어진 건물이고, 높은 층에 살수록 부유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고급 건물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비싼 건물의 꼭대기층에는 한 사람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최고급의 고층 건물이라고 해서 폭풍은 피해가지 않았다.

저 멀리에서 소름끼치는 종소리가 들려오고 창문 밖에서 휘파람 같은 소리가 휙휙 들렸다.

“항공기는 못 뜨겠지?”

“싱가포르 공항은 폐쇄되었습니다. 격납고까지 침수될 지경이라서 지금 대피령이 내려졌답니다.”

“헬기도 못 띄워?”

“추락할 겁니다. 풍속이 너무 빠릅니다.”

“그럼 어쩔 수 없겠네.”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하필 여기 오셨을 때 일이......”

“..... 며칠 전만 해도 멀쩡해 보이셨는데.”

한숨을 내쉬고, 말을 잇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섬만 아니었으면 육로로라도 갔을 거야.”

“섬 내에서도 도로와 철도가 봉쇄되고 있습니다. 사고 위험성이 너무 크답니다. 몇몇 지하역이 침수되었습니다. 인근 전체 해상에 출항금지령도 내렸습니다.”

그림자에 파묻힌 사람은 천천히 손 위에서 뭔가를 굴렸다.

자신이 여기까지 온 이유였다.

인공 엠버.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특별했다.

모기.

모기과에 속하는 모든 생명체는 전 세계적인 공조와 각종 생명공학적 연구를 이용해 자연 상태에서는 1977년 절멸이 선언되었다.

서식지의 파괴뿐 아니라 방역, 더 나아가 킬코드가 삽입된 유전자가 조작된 수컷 모기들을 대량으로 방생시켜 이들이 낳은 알들이 장구벌레 상태에서 100% 확률로 변태에 실패해 절멸하도록 만든 유전공학적 방제법을 이용한 범지구적인 방제가 시작되자 약 10년 만에 모기들의 출몰은 99.9% 이상 감소했고, 야생 멸절이 선언된 것이었다.

그리고 2011년, WHO의 권고에 따라 국제연맹 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의결에 따라 남겨두었던 연구용 개체들도 전부 처리하게 되어 모기는 사진과 표본 등으로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모기 개체를 보유하고 있던 고려연방의 고려대학교 부속 병원인 고려대학병원 부속연구실에서 보유한 모기 개체들을 살처분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3주 만에 행정상 오류로 별도로 사육되고 있던 흰줄숲모기 장구벌레 한 무리가 누락되었음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방치되어 먹이를 거의 공급받지 못한 탓에 이 가운데 암컷 한 개체만이 성충으로 우화했으며, 나머지는 모두 소각처분되었다,

이때 해당 개체는 모기과의 살아 있는 마지막 생명체이므로 국제연맹 의결에 따라 처분하되, 처분 후에도 특별한 방식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제안이 있었고, 이들의 제안에 따라 해당 개체는 인위적으로 자연에서 채취한 송진 사이에 산 채로 넣은 뒤, 그 송진을 특수처리한 인조 호박을 만들어 보관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조호박은 본래 박물관에 기증될 예정이었지만,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이곳,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주에서 열리는 경매에 올라왔다.

물론 보석으로써의 가치는 그저 잘 세공된 인조 호박 정도였기에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한 과에 속하는 생명체 중 최후의 생존자였다는 생물학적 기념품은 소장할 가치가 있었기에 직접 와서 경매에 참여한 끝에 낙찰받았지만, 덕분에 갑자기 진로를 틀어버린 슈퍼태풍에 휘말려 이 섬에 갇혀버렸다.

태풍이야 언젠가 지나가겠지만, 시간이 없었다.

“사흘이면 지나가고도 남겠지, 2년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할아버님이 사흘만 버텨 주셨으면.”

바람만 멎으면 헬기를 타고서 비행장이 침수되지 않은 지역으로라도 갈 수 있다. 그러면 바로 본국 복귀가 가능하지만, 문제는 폭풍이 잦아들기 전에, 비행기가 도착하기 전에 비보가 전해지지나 않을지.

그게 두려울 따름이었다.

“이 호박을 지팡이에 박아서 선물해드리고 싶었는데.”

이미 지팡이는 구해뒀다.

동양에서 건강과 장수의 상징이라는 레베다로 만든 지팡이, 그 손잡이 부분에 호박을 박으면 멋진 장식용 지팡이가 되었겠지만, 받을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

그리고,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고 한들 임종조차 지킬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

나는 천천히 폭풍우치는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세상은 더 나아지지 않는다.

하나의 저울추를 더하면, 반대쪽은 더욱 위쪽으로 올라간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나긴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가는 열차의 삯을 대신 지불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또 다른 이들의 생명이었다.

어쩌면, 오만이었을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건.

그 열차의 차장이 되어, 더 밝은 세상으로 그들을 이끌고, 열차가 서면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베일을 넘어서, 이야기를 끝내고자 했다.

하지만 목적지는 보이지를 않고 그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꽃히는 창과 같은 핏방울들만이 보일 뿐. 모순들을 쌓여나가기만 했고, 시대의 흐름은 모두의 어께에 짐을 더했다.

더 괜찮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믿고 나아가려고 해도, 좋은 방향으로 올곧게 나아가고자 길을 찾아도.

우리의 운명은 마치 암호와 같아 알 수 없었고,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알지 못하는 도시뿐이었다.

과연, 그녀는 이럴 걸 알고 있었기에 날 침묵의 세계로 돌려보내지 않은 건가.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아무것도 궁극적으로 바꾸지 못했다며 조롱하려고?

‘웃기는 소리.’

예언은 없다. 예언은 이야기 따위에서나 나오는 것.

결과론적으로라도 세상이 더 좋게 바뀌고 있다고 믿는다.

옳고 그름을 정하는 건 나다.

대륙을 넘나드는 내 책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직 더 나은 세상을 구성해 더 나은 삶을 더 많은 인간에게 줄 기회가 남아 있었다.

“도착해야만 한다. 속도를 더 올려.”

“하지만 부장님, 바람은......”

나는 내 손의 이탈리아제 라이노 제식 리볼버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답했다.

“우리가 제때 도착하지 않으면 폭탄들의 섬광이 불꽃놀이마냥 밤을 밝힐 거다.”

그래.

그날의 그 도시처럼.

수천 발의 포탄들이 잠에 빠진 불야성의 도시를 뒤덮고, 독가스가 수많은 시민들을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만든 그날의 모습을 기억한다.

피부 아래로 숨어버린 고통이 내 심장을 짓누르며 구속했고, 끈질긴 망령들, 과거의 메아리들이 내게 뒤엉켰고, 나는 항거할 수 없었다.

‘무슨 말로 포장하든, 어떤 방식으로 변명하려 하든, 한 가지는 변하지 않네 귀관, 아니, 귀하는 반역자네.’

차가운 내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내 귓전에 울렸다.

차가운 레일을 미끄러져 나아가는 강철로 된 뱀의 뱃속에라고 갇힌 느낌의 객차 안에서, 나는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남자는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다.

“김 부장,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이 나라를 구할 유일한 방법이네.”

“쿠데타를 일으키는 자들의 논리도 전혀 다르지 않네, 장군.”

기어에 맞물려 연속적으로 회전하는 바퀴들의 소음을 제외하고는 잔혹할 정도의 침묵이 우리 둘 사이에 있었다.

“국민의 뜻은, 조국은 그 무엇보다 신성하다. 원칙은 원칙이야, 그것을 폭력으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고!”

“원칙? 그 원칙이 썩어빠졌는데도 원칙을 찾는 건가? 조악한 비유지만, 중국집에서도 짜장면과 짬뽕의 선택지는 있네, 하지만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라고는 겉포장만 다른 똑같은 것들이야, 똑같다고, 이놈이나 저놈이나, 최악이냐 차악이냐 뿐이지.”

“민주주의란 원래 그런 정치체제네. 모든 국민들은 투표를 하지만, 그 투표는 누군가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닌, 누군가가 뽑히지 않게 만들기 위해 던지는 표라고.”

“그리고 민주주의는 정권에 대한 도전도 받아들여야지, 하지만 지금 이 나라가 그러고 있는가? 늙은이들은 젊은이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늙은이들은 그저 이용할 뿐이야, 이용하고, 이용하고, 이용하고! 끝없이 이용당하던 이 나라의 국민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저 죽어가는 꼴만은 보지 못하겠다는데, 그게 잘못되었나? 다시 말해 보게, 그게. 잘못, 되었느냐는 말이네. 나라가 필요할 때면 나라의 자식, 다치면 니들 자식, 죽으면 모르는 사람, 이게 제대로 된 국가인가? 제대로 된 국가냔 말이네.”

메아리는 내 심장에 이르러 그 박동을 멈추게 하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분명 총은 내가 들고 있음에도, 궁지에 몰린 듯한 기분이었다.

“가장 일찍 미래를 향해 피어난 꽃은 우리의 황혼이 왔을 때도 밝게 피어있겠지. 그 꽃은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고 있기에 그 꽃잎은 핏빛으로 물들겠지만, 이게 최선의 길일세.”

“그건 최선의 길이 아니야.”

총성이 울리고, 탄피가 배출되고, 탄이 재장전된다.

무엇을 위해 벽은 그렇게 붉게 물들었던가.

“당신의 방식으로는 아니야.”

오한이 들 정도로 차가운 종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내 손은 벌벌 떨려 심장 고동 소리마저도 떨리는 듯 했다.

빗발치듯 날아온 포격.

한 차례의 섬광과 함께 사라진 수많은 생명들.

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들의 절규를 무시하고, 그들 모두를 버리고 떠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지옥에 떨어져야 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공허한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 괜찮다는 말뿐이었다.

나는 보았다.

내가 지켜야 했던 이들의 고통을.

파괴된 세상을.

그때마다 나는 내게 물었다.

‘그 길이 옳았던 것일까.’

내가 제대로 된 길을 달려온 것인가. 다른 방도가 정녕 있었지만, 내가 망쳐버렸던 건 아닐까.

방관자는 그 죄에 걸맞는 고통 속에 던져졌다.

저들은 여전히 뜨겁게 울컥거리면서 피를 토해내는 상처를 부여잡아야 할 것이다.

거짓된 정의에 집착하던 경찰은 이제 영원히 부질없는 복수에 미쳐서 계속해서 싸우고, 그 상처는 아물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이들은 자신이 때린 것보다 자신이 맞은 것을 더 아프게 기억하며, 고통받은 이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복수와 응징을 더욱 달콤하게 여기는 것은 세상의 법칙, 저들은 눈에는 눈을 고집한 끝에 자신의 눈을 포함해 모든 이들의 눈을 멀어버리게 만들 것이다.

영원히, 서로의 눈을 찌를 것이다.

학살자는 불탔다.

나는 그들을 찢었고, 파묻었다.

그들은 영원히 하나의 국가를 이루지 못해야만 한다.

그들은 침략자다, 그들은 학살자다, 그들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이념을 남겨두는 것은 조국에 대한 반역이며 세계에 대한 죄악이다. 한 번 속은 것은 속인 놈 잘못이지만 두 번 속는 건 속은 놈 잘못인 법 아니던가.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금 이 순간까지도 치르고 있다.

패권을 바라던 학살자들이며 자신들이 근본적으로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 믿으며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온 세계를 불태우던 이들은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수억에 달하는 시체들의 더미 아래 깔려 죽어가면서.

하지만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

그들이 저지른 짓에 비해서는 그 무엇도 충분하지 않았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복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피해자가 도리어 가해자를 두려워하니, 두려워하게 만들어 주어야 했다.

그들이 저지른 짓을 고스란히 돌려주고자 했고,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어느 정도는.

배신자는 세계에서 지워졌다.

가해자이면서 도리어 피해자를 조롱하던 자들은 다시는 스스로의 이름을, 문화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저지른 짓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되어야 마땅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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