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외전 : 아나키즘(2)
“다수의 적 병력이 확인됩니다. 적 주력부대는 다수의 항공기지만, 그 외에도 다른 게 있습니다.”
“뭐지?”
“적 지상병력이 존재합니다. 무인 전차와 용병들입니다. 민간 항공기로 위장한 수송기에서 강하해왔습니다. 민항기 시그널을 내뿜는 바람에 방공사령부가 격추를 잠깐 망설이는 동안 강하해버려서......”
“수는?”
“다수입니다. 정확한 수는 불명입니다. 지상의 주요 도로 축선 다수가 장악당했습니다. G20 참석자들은 전원 벙커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20개국의 지도자들, 하나같이 강대국이나 지역강국의 지도자지, 이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지구 전체가 뒤집어질 거다.”
“이게 놈들의 계획이었습니다.”
“가장 가능성 높은 배후는 남미의 군벌, 신의 저항군의 수장 하비에 로드리게스입니다. 미합중국 대사관 폭파, USS 타이콘데로가 자폭 테러, 팬암 항공기 폭파 테러 등의 배후입니다. 마약 카르텔 보스이자 반서방 아나키스트죠.”
“유럽연방군이 항공사단 몇 개를 통째로 출격시켰고, 현재 도버 상공에서 공중전이 진행 중입니다!”
***
지대공미사일 다수가 하늘로 날아들어 적 무인기를 요격했다.
하늘에서도 전투기와 무인기들 간의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상은 지옥이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
무인전차의 20mm 기관포 사격에 런던 무장경찰들이 쓰러져나갔다.
“적 UGV 3기 확인!”
“젠장! 놈들이 더 몰려옵니다! 용병들이 지원을.....”
“현재 컨벤션 센터에서 적 보병들과 교전 중! 거리에 적 전차가 있다!”
“전투지역 인근에서 유럽연방 총리의 차량이 갇혀 있답니다!”
“총리 각하의 지시입니다. 이 상황에서 외국 지도자가 사망하게 놔두어서는 안 된답니다! 만일 외국 지도자가 사망할 경우, 그 여파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답니다.”
“무슨 소린지 알아들었다! 레이븐! 유럽연방 차량이 보이나?”
“호위부대가 전멸한 방탄차량 한 대가 런던 아이 인근에서 용병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 무인기 영상으로 보인다!”
“당장 거길 지원해!”
“알겠다.”
“여기는 그리즐리 2-1,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파괴되었다. 반복한다, 빅 벤, 웨스트민스터 구전,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모조라 초토화되었다. 웨스트민스터 교량은 완전 붕괴, 통행이 불가능하다. 저쪽....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에서 피커딜리, 소호까지의 모든 구역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30대 이상의 적 차량이 사우스워크로 이동 중이다!”
“대영박물관이 완파되었다. 반복한다. 대영박물관이 폭파된 걸로 보인다. 제기랄, 열압력탄이 사용된 듯 하다! 내부에 생존자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 통사에게 알린다, 민간인들이 전쟁박물관에 숨어 있다. 반복한다. 전쟁박물관에 민간인들이 있다. 적 전차 8대 가량이 HEAT탄 사격을 가하고 있다. 적 병력은 템스 강을 따라 그리니치 방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현재 이들을 저지할 병력이 부재한 상태다, 아무도 없는가?”
“여기는 스펙터 제로 나이너, 적이 시티오브런던을 공습하고 있다. 반복한다. 시티오브런던이 공습을 당하고 있다. 적이 장거리 사격을 가해오는 듯 하다. 우리는 3명밖에 안 남았다. 세인트폴에서 런던 탑까지 싹 초토화되었으며, 인근의 교량들은 모조리 파괴당했다.”
“총리 각하께서 유럽연방 대표단 호위부대와 합류했다. 반복한다, 총리 각하께서 유럽연방 대표단 호위부대와 합류했다.”
“다수의 적 헬기 확인! 빌어먹을, 크레인이 무너진다! 피해!”
“여기는 알파, VIP들 전원 안전하게 크리스탈 룸에 도달했다. 반복한다, VIP들은 무사하다. 진압 작전을 개시해 적 잔존 병력을 섬멸하라. 반복한다, VIP들이 안전구역에 도착했다.”
***
파리, 유럽연방.
“각 국가원수나 장관급 가운데에는 사망자는 없습니다. 다행히도요.”
“현재 세계 각국이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상황은 명백합니다. 미국은 반드시 남미로 출병할 겁니다.”
9월 11일 벌어진 미국 핵 테러와 런던 공습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주가가 폭삭 무너졌고 서킷브레이커가 줄줄이 걸렸다.
미국증시는 열릴 수조차 없었지만, 그 외의 모든 국가는 증시의 도미노 폭락을 면할 수 없었다.
“G20 회의에 참가했던 모든 국가의 정상들은 그 자리에서 테러에 대한 규탄과 테러 단체, 테러지원국에 대한 철저하고 무자비한 보복을 예고했습니다.”
“국제연맹에서는 평화유지군의 동원을 명령했습니다.”
어전회의는 황제가 주재했지만, 총리와 외무장관, 재무장관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에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그들의 자리를 채우고 사회자 역할을 하느라 황제도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해야 했다.
“황제 폐하! 지금 CNN에서...”
“켜 보게.”
곧장 회의실 한켠의 위성 TV가 켜졌다.
그란 콜롬비아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거리로 뛰쳐나온 군중들이 성조기를 불태우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 전 세계로 방송되고 있었다.
“이건.......”
“페루, 칠레, 브라질, 볼리비아,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남미 전역에서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끝났군.”
나폴레옹 6세는 싸늘하게 말했다.
“남미 출신 테러범이 저 짓을 했는데, 불난 집에 부채질까지 해 주는군.”
이제 한 가지는 명확하다.
남아메리카는 지옥이 될 것이다.
미합중국은 테러에 관련된 마지막 한 명까지 잡아죽이기 전에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아메리카는 불타리라.
불타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보였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지. 폭탄으로 벌레들을 소탕할 수는 없다고.’
질병을 총탄과 포탄으로 쏴죽일 수 없듯이, 강력한 정규군은 결코 게릴라전에서의 우위를 보장하지 않는다.
물론 국력이 강하면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원한을 품을 대로 품은 적대적인 주민과 적대적인 지역 자체에서의 전쟁이 가능할까?
아니, 그보다 전쟁의 목적이 무엇인가.
징벌인가? 일정 숫자만큼 적의 도시를 때려부수면 승리하는 건가?
아니면 고위 간부들의 척살인가?
대체 이 전쟁의 목적은 뭐고, 승리조건이라고 할 만한 조건은 뭔가.
이건 아무리 좋게 봐도 개념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 아닌가.
“....... 미국이 연합군 파견 요청을 하겠지, 승인하되, 많은 병력을 보낼 필요 없네.”
저 전쟁에는, 깊숙이 끌려들어가면 안 된다.
나폴레옹 6세의 본능은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
애국자법 통과.
FBI와 CIA, 기타 정보기관들을 한데 모은 국토안보부 창설.
테러와의 협상은 어떤 경우에도 없다는 테러와의 전쟁 선언.
미국은 뒤가 없다는 식으로 폭주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적극적으로 이를 지지했고, 서방 국가들도 미국의 모든 행동에 대해 면죄부를 부여했다.
복수심에 눈이 뒤집힌 저들을 막고 싶은 자들도, 막을 동기를 가진 국가들은 애초에 없었다.
애국자법이나 국토안보부는 미국 내의 사정이고, 남미 침공도 미국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리고 테러와의 협상 거부 선언은 오히려 이들에게 유리한 면이 있었다.
모든 테러는 악한 행위임으로,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이들의 협상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이는 저항권의 박탈이었다.
서방은 더 이상 비잔티움 공화국이 저지르는 학살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페르시아의 마르크스주의 정권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학살하는지도 신경쓰지 않는다.
미국이 남미에서 무슨 짓을 하든, 서방 국가들이 자국 내 불순분자들에게 무슨 짓을 하든,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알 바 아니다.
그들은 정의로운 항쟁을 벌이는 시민을 압제하는 게 아닌 범죄 단체를 소탕하는 것 뿐이었다.
물론 몇몇 이들은 우려를 표했다.
이렇게 되면 저항권 개념에 입각한 항쟁을 할 수 없게 된 테러리스트들은 암살이나 인질극 등 상대적으로 ‘온건한’ 방식이 아닌, 대량학살과 무차별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하지만 각국 정부는 냉소적으로 답했다.
-그래서 그들이 그동안 무차별 공격을 안 해서 뉴욕과 워싱턴, 시애틀을 파괴했나? 런던은 왜 불타올랐는가?
물론 저항하는 자들은 이렇게 답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했냐?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우리가 알 바냐? 우리가 보기에는 너희나 그들이나 똑같은 테러범들이다, 우리가 너희들 사정까지 봐주면서 대응해야 하나?
설령, 수천 명이 테러로 죽는다고 한들 그걸로 외교적 분쟁 없이 반항하는 놈들을 국제 질서에 합치되는 형태로 깔아뭉갤 수 있으면 이득이다.
저항하는 자들의 저항을 분쇄하는 데는 공포가 효율적이고, 비례보복원칙이 효과적이었다는 건 역사가 증명했다.
너희들의 테러행위로 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 100명을 처형한다.
너희들의 비열한 행동으로 한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면 50명을 처형한다.
정규군도 아닌 게릴라들 따위와는 어떤 타협도 없다. 굴복하거나 너희 가족과 친구들이 죽어가는 꼴을 계속 봐라.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내 저항군들을 붕괴시키는 데에 독일군의 제안으로 사용했던 전술이었다.
실제로 당시 거점을 기반으로 저항하던 중국 게릴라는 이 전술로 순식간에 활동 자체가 급감했다.
대량살상무기의 무제한적인 사용도 한 몫 했지만, 결국 모든 것은 공포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먹힐 게 틀림없었다.
당시는 대전쟁 중이었고, 비열한 짓은 적이 먼저 했다는 공감대 때문에 추축국을 상대로 한 강경책을 펴는 것 정도는 모두가 묵인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도 고맙게도, 테러리스트들이 먼저 명분을 주었다.
이제 그들은 우리도 피해자라며 뻔뻔하게 구는 불온분자 놈들이나, 아니면 양쪽 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중립병 말기 환자들인 인권운동가 놈들의 헛소리를 무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그들을 테러 동조자 혹은 불온분자 등으로 몰아 체포할 수 있고, 체제에 반역한 자들을 어떻게 처리해도 좋다는 백지수표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저들은 짐승새끼들이다, 말로 해도 못 알아쳐먹으니 짐승새끼나 다름없다.
세계는 안정되었다.
안정되어야만 한다.
테러리스트들은 안정된 시스템에 도전하려 한 반역자다. 그 시스템에, 한 번 구축된 서방 중심의 질서에 룰을 넘어 도전하려 한 반역자들.
짖는 개들은 무시해라, 룰을 파괴하는 자들에게는 룰 없이 대하는 것이 정의다.
이미 세계 질서는 국제연맹이라는 이름 하에 하나의 국가처럼 돌아가고 있기에, 이미 서열이 결정된 국가조차도 그 체제에 도전하면 테러지원국으로써, 반역자로써 두들겨맞아야 한다.
세상은, 항상 합리적인 방식으로만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