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외전 : 아나키즘(1)
미합중국, 워싱턴 D.C. 백악관.
“주 브라질 대사관의 자폭 테러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진척이 없소?”
“로드리게스가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동하는 건 확인했으나, 국제법 위반 우려가 너무 커서 암살 작전은 취소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 국제연맹에서 걸고 넘어지면 쉽게는 넘어가기 어려울 거라는 게 국무부 의견입니다.”
“신의 저항군인가 하는 그놈들, 벌써 세 번째 아니오, 주 브라질 대사관 폭탄 테러 전에도 항공기 폭파 테러가 한 번 있었고, 또 우리 호위함에 자폭 테러를 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맞소?”
“USS 타이콘데로가가 당시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것도 벌써 몇 년 전 일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마약을 팔아대는 조직이잖소, 코앞 남미에 들어앉아 있는 조직을 섬멸하지 못한 이유가 뭐요, 국장?”
“지난 정권 때는 셧다운이 터졌고, 셧다운이 끝나기가 무섭게 키로스 내전이 터졌습니다. 키로스 내전이 좀 조용해졌으니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라도 나오게 된 겁니다, 타이콘데로가 테러 사건, 팬암 폭탄테러 사건이 묻힌 이유기도 합니다. 거기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 그런데 신의 저항군은 뭐고 로드리게스는 누구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안보 보좌관 하나가 옆의 보좌관에게 물었지만, 그도 아는 눈치가 아니었다.
취임한 지 몇 개월밖에 안 된 대통령, 그리고 그 안보보좌관들.
미합중국의 모든 시선은 아직도 포탄이 날아다니는 비잔티움과 키로스의 국경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나마 이번에 언급이라도 된 것은 이번 주 브라질 미국 대사관에 대한 폭탄 테러 사건 때문이었지, 그도 아니었으면 대통령도 딱히 그들을 지목할 일이 없었으리라.
“CIA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FBI의 정보에 접근할 권리가......”
“CIA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입니다. 대통령 각하, 연방의 주권이 닿는 범위 내는 엄연히 FBI의 활동구역입니다.”
“빌어먹을, 국내와 국외에 걸쳐있는 놈들을 따로 쫓으니 자꾸 몸뚱아리가 빠져나가잖소! 그쪽이 일을 제대로 했으면 우리가 이러지도 않소 국장!”
“그만들 하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대통령은 짜증스럽게 한 마디 하고는 서류를 넘겼다.
“이번에 세계보건기구에서 공식적으로 모기 개체의 야생 절멸을 선언했습니다. 유출사태에 대비해 각국이 연구용으로 보유하고 있는 잔존 개체들도 전부 살처분할 것을 권고했습니다만.”
“해야지, 그 부분은 보건부 장관이 처리하는 걸로 하고.....”
대통령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 미합중국은 너무 업보를 많이 쌓았다.
그 업보는 다른 게 아니라 외교 관계상의 업보였다.
쉽게 말해 전 정권이 하도 자기 꼴리는 대로 국제법 어겨 가면서 날뛴 바람에 그 백래시가 자기 임기 초반부터 몰아치는 판이었고, 한동안은 상임이사국이라고 해도 좀 쥐죽은 듯이 지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게 끝날 때쯤이면 내 첫 임기도 거의 끝나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대통령은 전임자를 한 번 더 원망했다.
***
아르헨티나 모처의 안전가옥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였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 그래.”
드디어.
드디어 되갚아 준다.
미국에게.
미합중국이라는 빌어쳐먹을 나라와 싹수 노란 국민들에게 되갚아 준다.
이것은 처벌이다.
이것은 정의다.
19명의 영웅들이 미국 내로 잠입했다. 조직의 운명을 걸고 준비한 것들과 함께였다.
“선언문은 준비되었나.”
“물론입니다. 때에 맞추어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주요 방송국과 언론사에 발송될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미국인들이 수치스러워 그 상처를 감추려고 한들, 그들이 왜 처벌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전 세계에 알려지리라.
남자는 창가로 다가가 시가에 불을 붙였다.
“이제 시작이다.”
저들은 보게 되리라.
자신들이 이룩한 모든 것이 단 하루만에 파멸하는 것을, 두 눈을 뜨고 똑똑히.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졋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다.
그의 죄가 하늘에 사무쳤으며 신께서는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시니.
“그러니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리 그를 심판하시는 신은 강하신 자임이라!”
그건 저주였다.
그리고, 그 이상의 확신이었다.
“모든 의로운 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신께서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내리셨음이라,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미국인들은 언제나 그랬다.
미국의 후원을 받은 반군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강간하고 약탈했다.
미국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민간인들을 쏴죽였다.
독재자들을 후원하고,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노예가 되기를 바라왔다.
그들은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탐구했다.
이 모든 일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경제적 혼란과 자본주의는 결국 악의 근원이 된다. 부유함은 죄악이며, 모두가 대가를 치르는 법, 우리는 북쪽의 야만적인 족속들에게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한 보상과 벌을 내려줄 것이다.”
노예들의 고혈을 빨아 부유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설령 그들이 직접 착취하지 않았다고 해도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왜 부유한 자는 계속 부유해지는가.
왜 가난한 자는 계속 가난해지는가.
누군가가 말했다.
정녕 부유한 자는 일하지 않아도 더욱 부유해지며, 그 다음으로 윤택한 삶을 사는 자는 일하면 부유해지고 일을 하지 않아도 가난해지지는 않으며, 평범한 이들은 일을 하면 가난해지지는 않지만, 가난한 이들은 일을 해도 가난을 면치 못한다고.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왜 누군가는 일을 하지 않아도 부유한가.
왜 누군가는 아무리 뼈빠지게 일을 해도 희망조차 얻을 수 없는가.
모두 자본주의의 잘못이다.
그러니, 저 자본주의의 창부를, 바빌론의 음녀를 파멸시킬 시간이다.
***
미국, 워싱턴 D.C.
거대한 트레일러를 실은 화물트럭이 포토맥 강변을 달렸다.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차량의 모습에 아무도 딱히 의심을 품지 않았다.
별다른 검문도 없이 어느 빌딩에 딸린 주차장에 차를 세운 운전수는 차에서 내려 트레일러로 들어갔다.
그때, 트레일러 창으로 뭔가가 보였다.
“이보시오! 이봐요!”
경비원이 트레일러를 향해 다가오며 뭐라 외쳤지만, 운전수는 묵묵히 마지막 조작을 마쳤다.
“지금 여기 주차를 하면........”
경비원이 곤봉으로 트레일러를 몇 대 두드리는 순간, 남자는 슬라이드식 트리거를 움직였다.
농축우라늄에 중성자가 충돌하고, 연쇄분열을 일으키며 막대한 에너지로 변했다.
그 에너지는 중수소 리튬-6을 향해 집중되었고, 중수소 리튬-6 코어는 핵무기의 파괴력으로 쥐어짜이면서 중수소는 헬륨으로 변하며 더욱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내었다.
마지막으로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열화우라늄 댐퍼에 그 에너지들이 충돌해 재차 핵분열이 일어났다.
트레일러와 경비원, 운전수는 그 자리에서 증발했다.
작은 태양이 워싱턴 D.C 시내 한가운데에서 솟아났다.
***
런던, G20 회의장.
G20은 세계 주요 20개국의 정상회담으로, 구성국은 미국, 유럽연방, 고려연방, 다뉴브 연방(=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앵글로노르드 연방, 알비온 연방, 히스파니아 연방, 스웨덴, 스위스, 동로마 공화국, 카자크 공화국, 페르시아 민주 공화국, 시베리아 공화국, 폴란드, 인도 공화국, 인도차이나 연방, 발트 연방,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모스크바 공화국이다.
신생국들까지 초청해 만들어진 이 G20의 목적은 세계의 경제 방향을 논의하는 것이다.
동로마 공화국의 경우, 내전 끝에 페르시아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점령했고, 여기에는 아라비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수에즈 운하가 포함된다.
페르시아 역시 막대한 석유를 가지고 있고, 인도와 인도차이나 역시 인구 때문에라도 세계 경제에서 배제할 수 없는 상대.
즉, 현재의 경제상황을 논할 때 빼놓기 어려운 국가들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 막 열린 제 1차 G20 회의장은 경악과 침묵으로 얼룩져 있었다.
“조금 전, 2발의 핵폭발이 추가로 일어났습니다. 뉴욕과 시애틀입니다.”
“...... 대체 누가.”
워싱턴 D.C가, 뉴욕이, 시애틀이 메가톤급 핵폭발에 휘말려 사라졌다.
워싱턴은 더 이상 도시가 아니다. 거대한 호수다.
뉴욕과 시애틀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 각료 대부분이 사망했습니다.”
대통령은 이곳, 런던에 있었으니 무사했다.
“각하, 즉시 에어 포스 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런던도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안 됩니다, 벙커로 가시지요, 에어포스 원에서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각국에서 영공과 영해를 급하게 봉쇄하고 있습니다. 모든 민항기의 이륙이 금지되었고 군용기만이 비행이 허가되었습니다.”
그때, 장교 하나가 급히 들어왔다.
“즉시 대피하셔야 합니다.”
“무슨 일인가?”
“북해 방향에서 70여 기, 헤이스팅스 방향에서 100여 기에 달하는 미확인 항공기가 레이더에 잡혔습니다. 영국도 공격받고 있습니다.”
***
파리, 유럽연방군 사령부.
“위성 시스템과 소서스 라인, 레이더망 일체에 대대적인 전자전 공격이 가해졌습니다. 복구에는 시간이 소요됩니다!”
“현재 상황은?”
“일단 공격 방식은 파악되었습니다. 컨테이너입니다.”
“컨테이너?”
“놈들이 컨테이너에 무인기를 탑재했다가 캐터펄트를 이용해 발사하고 있습니다. 항구와 화물선 등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륙하고 있어서 대응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다수의 전투기들이 이륙해서 요격에 나섰고, 다수를 격추했으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미사일과 기관포로 무장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세미-스텔스 기체인 데다 카운터 스텔스 장비도 갖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루이틀 준비한 기습계획이 아닌 것 같습니다.”
“런던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로스엔젤레스, 캘리포니아에도요,”
“우리 쪽은?”
“확신할 수 없습.........”
순간, 멀리서 큰 충격음이 울려퍼졌다.
“우리도 공격당한 모양이군요.”